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신약

[마 14장] 세례 요한의 죽음

JORC구원열차 2013. 8. 14. 23:15

[마 14장] 세례 요한의 죽음

 

[내용개요]

 

분봉왕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두려워한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헤로디아의 음모로 인해 죽였기 때문이다(1-12절). 예수께서 배를 타고 빈들로 가시니 많은 무리가 뒤쫓았다. 예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날이 저물어 식사시간이 되었으나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오병이어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다(13-21절). 그 후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태워 보내셨다. 배가 풍랑으로 흔들릴 때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오셨다(22-33절). 게네사렛 땅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서 치유함을 받았다(34-36절).

 

[강 해]

 

본장은 세례 요한이 헤롯의 잘못을 지적하여 옥에 갇혔다가 헤로디아의 음모에 의해 죽음을 당한 사건과,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 애도하시되 절망치 아니하시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그의 인류 구속 사역을 꿋꿋이 해 나가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오병이어의 기적 및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어가다 빠진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세례 요한의 죽음

 

1) 원인

세례 요한이 헤롯과 헤로디아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세례 요한이 그들의 불륜적 행위를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본장이 말하는 헤롯은 헤롯 안티바스이며, 헤로디아는 그의 이복 동생 헤롯 보에투스의 아내이자 조카입니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결혼은 명백한 불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죄악을 책망하였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노여움을 사 급기야 죽게 된 것입니다.

 

a.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겔3:4)

b. 나단의 직언(삼하12:7)

 

2) 경과

세례 요한이 헤롯 가문의 불륜을 지적함으로 바로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헤롯은 백성들의 눈이 무서워 세례 요한을 죽이지는 못하고 옥에 가두어 두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을 극렬히 미워한 헤로디아의 간계로 세례 요한은 목이 잘리는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자기 딸 살로메를 이용해 헤롯으로 하여금 세례 요한을 죽이지 않을 수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어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a. 어리석은 자(잠14:18)

b. 궤계를 쓰는 악인들(마26:3-4)

 

3) 결과

세례 요한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헤롯 안티바스와 헤로디아는 더 이상 그들의 불륜으로 책망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드러난 현상일 뿐 그들은 세례 요한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간음죄 위에 살인죄를 더하는 더 큰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내면적으로 더욱 비난받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하였습니다. 헤롯과 헤로디아는 의인을 죽임으로써 멸망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a. 살인하지 말라(출20:13).

b. 간음하지 말라(출20:14).

 

2. 예수의 반응

 

1) 조용한 애도

세례 요한이 헤롯과 헤로디아에 의해 죽음을 당하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예수께 전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소식을 듣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거기서 애통해 하셨습니다. 예수는 거기서 세례 요한을 애도하며 기도하셨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 곧 인류 구원이라는 더 큰 일을 위해 세례 요한의 일에 분노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는 때를 아는 지혜로운 분이셨던 것입니다. 분명 예수께서는 심판의 주로 오실 때에 반드시 이 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a. 혈과 육이 싸움 대상이 아님(엡6:12)

b.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2) 자기 길을 계속 가심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 앞에서 잠시 애도했으나 즉시 자신이 해야 할 일, 곧 인류 구속 사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예수께서는 헤롯과 같은 악인이 지배하는 어두운 사회 속에서 온갖 죄의 질고도 말미암아 신음하는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그들의 질고를 벗겨 주시고 그들에게 영생의 복음을 전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의 그러한 구원 사역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a. 병인을 고치심(마14:14)

b. 배고픔을 제거(마14:16)

    

3. 물위를 걸은 베드로

 

1) 믿음으로 걸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심으로써 자신이 인류를 모든 부족함과 죄의 고통에서부터 구할 수 있는 메시야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신 예수께서는 그 후에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 제자들만 먼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뒤 예수께서는 배로 떠난 제자들에게 가기 위해 바다 위를 걸으셨습니다. 바다 위로 걸어오는 예수를 보고 베드로도 믿음으로 물위를 걸었습니다.

 

a. 믿는 자의 능함(막9:23)

b.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삶(롬1:17)

 

2) 믿음이 연약해져 빠짐

베드로는 믿음으로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게 불어 풍랑이 일자 베드로는 곧 두려움에 빠져 물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 믿음으로 걸었으나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빠져 믿음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이라는 바다를 가면서 믿음으로 섰다가 세파에 시달려 다시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께 책망 받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약해져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a. 두려움이라는 불신앙(마14:30)

b. 믿음(마17:20)

 

3) 예수에 의해 구원됨

베드로는 믿음이 연약해져 바다에 빠졌으나 죽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능하신 주께서 그를 건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비록 우리가 이 세상의 파도에 의해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 빠질지라도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우리는 결코 낙오되지 않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유기 하시지 않습니다.

 

a. 세상을 구원할 자(요3:17)

b. 예수로 인해 생명에 이름(롬5:18)

 

결론

 

이 세상에는 불의가 의를 이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불의의 승리는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것,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을 바라보며 꿋꿋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되 주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가운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3절. 헤로디아의 일. 이것은 헤로디아가 헤롯 안티바스와 한 불법적인 재혼을 의미한다.

14절. 불쌍히 여기사. 원어 <splagcnivzomai:스플랑크니조마이>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심을 의미한다. 

17절. 떡. 보리떡을 가리키며 이것은 예수를 따라다니던 갈릴리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다. 

30절. 바람. 여기서는 베드로에게 가해진 신앙적인 시련을 의미한다. 

33절. 절하며.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의 능력 앞에 완전히 굴복 당했음을 의미한다.

 

[신학주제] - 메시야에 대한 핍박과 구속사적 의미의 떡과 하나님의 아들.

 

본장은 세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주제를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로, 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적대 세력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예수께서는 헤롯의 정치적 핍박 때문에 거처를 옮겨 다녀야 했고, 예수가 주는 떡만을 바라는 군중의 영적 무지 때문에 군중을 물리치시고 혼자 기도하셨다. 또한 제자들은 풍랑이 휘몰아치는 배 위에서 두려워했고, 특히 베드로는 믿음이 적은 자라는 주님의 책망을 들어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은 은연중에 예수께서 적대 세력들에게 둘러싸여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둘째로,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떡은 구속사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오병이어 사건은 광야의 만나 사건(참조, 출16장)과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백 명을 먹인 사건(참조, 왕하4:42)을 연상시킨다. 오병이어 사건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이 점은 요한복음의 오병이어 사건 기록에서 명확히 드러난다(참조, 요6:32). 셋째로, 바다 위를 걸어오신 예수를 본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직접 하나님의 아들이 라고 말한 적은 없다. 이 명칭은 요단강 세례(참조, 마3:17)와 변화산 사건(참조, 마17:7)과 베드로의 고백(참조, 마16:16)에 나타났으며, 그밖에 마귀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진 적도 있다(참조, 마8:29). 즉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메시야적 칭호였던 것이다.

 

[영적교훈]

 

세례 요한의 죽음은 여러 가지 교훈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헤로디아의 음모에 의해 헤롯은 세례 요한의 참수를 명령하였다. 이 불의한 명령에 대 하여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였다. 즉 세례 요한을 껄끄럽게 여긴 정치권력이 바로 세례 요한을 죽인 것이다. 둘째, 세례 요한의 죽음은 최고 권력자의 도덕적 부패를 비판하다가 죽은 선지자적 죽음이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의 부정부패한 권력을 향하여 세례 요한처럼 비판하고 항거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일개 여인의 춤 값으로 세례 요한의 목숨이 지불되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다. 그러나 신앙적인 안목으로 보면, 세례 요한의 숭고한 죽음은 영원히 기억될 만한 가치 있는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