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6장] 네 병거의 환상과 성전 건축 예언
[내용개요]
스가랴는 본장에서 네 병거에 대한 이상을 보게 된다. 하나님 곧 열방의 왕이 천사의 사역에 의해 세계를 통치하시는 것이 네 수레의 환상에서 나타난다(1-8절). 하나님 곧 성도들의 왕이 그리스도의 중재에 의하여 교회를 다스리시는 것이, 면류관을 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 속에 또 그가 수행하는 의식 속에 나타나며,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해 설명된다(9-15절).
[강 해]
스가랴 선지자는 네 병거의 이상을 목격하여 하나님의 악인에 대한 심판과 유다 백성에 대한 구원의 계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모든 이상들의 결론으로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울 것을 명하셨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유다 백성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1. 네 병거에 대한 환상
1) 두 놋 산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
스가랴 선지자는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를 이상 중에 보았습니다. 이 산이 놋으로 되어 있다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놋은 강함을 상징하므로 두 놋산은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자로서 악인에 대하여 심판을 행하시되 철저하고 완벽하게 행하십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목격한 네 병거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참조, 렘49:36). 그 말들은 홍색과 흑색과 백색과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었는데 이러한 말들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등장하고 있어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이상 중에 본 병거는 하나님의 군대를 나타내는데, 성경에서 하나님은 군대를 지휘하시어 대적을 무찌르시는 강한 용사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이방 군대와 싸울 때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아무리 강한 군대에게도 무조건 승리하였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강한 하나님의 군대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고 악한 세력의 손에서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a. 강대한 네 나라(단2:38-40)
b. 꺾인 뿔에서 네 나라가 일어남(단8:22)
c. 검은 말(계6:5)
2) 하늘의 네 바람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자신이 본 이상의 의미를 물었는데, 이는 계시를 받는 자의 적극적인 계시의 수납 자세를 보여 줍니다. 스가랴의 질문에 대해 천사는 대답하되 두 놋산에서 나온 네 병거는 하늘의 네 바람으로서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천사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부르시어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그들로 자신의 뜻을 행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요 구윈주요 섭리주요 심판주로서의 권세를 가지시고 천사들을 부려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통치하시고 계십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나오는 모습 속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박하여 곧 악인이 멸망을 당하고 의인이 구원받는 시대가 올 것임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a. 크고 강한 바람(왕상19:11)
b. 말씀을 좇는 광풍(시148:8)
c. 하늘의 네 바람(단7:2)
3) 북편과 남편으로 향한 말들
스가랴가 본 이상 중에 흑마는 북편 땅으로 가고 백마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북편에 있는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을 상징하는 나라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 받아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치 않고 스스로 교만하게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남편 땅은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던 애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오래도록 대적하였던 애굽을 심판하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건장한 맡은 땅에 두루 다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세상에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은 어느 특정한 지역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지역이 해당됩니다. 천사가 외쳐 말하기를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자기 마음을 시인케 하였다고 증거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심판을 철저히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와 사랑을 땅에 실현시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참고 계셨지만 때가 되자 천사들을 보내어 악한 자들에 대하여 심판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a.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남(렘1:14)
b. 여호와께서 보내심(슥1:10)
c. 주께서 보응하심(사1:24)
2. 예루살렘 성전 건축 예언
1)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
하나님은 모든 이상의 결론으로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는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자들의 집에 가서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고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인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고 유다를 회복시키실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면류관은 권세와 명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쓴 면류관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정치적으로 이방의 압제를 받는 처지에 있으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놀라운 영적인 권세와 축복을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밭아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임을 예표한 것입니다.
a. 정금 면류관(시21:3)
b. 거룩한 관(레8:9)
c. 머리에 씌울 정한 관(슥3:5)
2)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순
하나님께서는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장차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는 스룹바벨이 바사 고레스 왕에게 유다 총독으로 임명을 받고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스룹바벨로 나타났지만, 이는 스룹바벨이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일을 알 수 있습니다. 스룹바벨이 유다의 회복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성전은 궁극적인 성전의 의미를 청취하지는 못했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함께하심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죄인 가운데 거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의미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성전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근거로 하여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 역사를 예언하심에 있어서 성전이라는 상징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a. 주의 종 순(슥3:8)
b.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시80:15)
c. 한 의로운 가지(렘23:5)
3) 먼 데 사람이 와서 건축하는 성전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한 순이 여호와의 천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의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스룹바벨이 유다의 총독이 되어 유다 백성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음을 의미하는 동지에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구속 사역을 이루시고 영적으로 자기 백성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왕권과 영광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밝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먼 데 있는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라는 예언은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임을 의미하는데, 이는 신약 교회에 이방인들이 참여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 계획을 오래 전부터 세우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계획을 성취하셨는데 이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a. 전 역사를 마치게 됨(슥4:9)
b. 주께서 교회를 세우심(마16:18)
c. 존귀와 위엄을 입음(시21:5)
결론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이방인들에 내한 구원을 계획하시고 예언하셨으며 그 예언의 성취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타나 만민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역사 속에서 구속의 은혜를 받았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도구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놋. 성경에서 놋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승리 또는 저주와 심판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놋 산은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며, 특히 어떤 존재도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심판의 엄중함을 보여 준다.
3절. 어룽지고. 원어 <droB;:바라드>는 '점 있는, 얼룩진'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점박이 말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룽진 말은 우박이 쏟아지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갑작스럽고도 격렬하게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5절. 모셨다가. 단순히 서 있는 동작이 아니라 대항하기 위해서 또는 명령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복종의 자세로 서서 그의 은혜와 구원을 기다리는 태도를 의미한다.
11절. 면류관. 왕관이나 제사장의 관과는 구별되는 평범한 관 또는 면류관을 가리킨다. 관은 은이나 금 또는 꽃으로 만들며 대체로 명예나 권위를 상징한다(참조, 잠16:31).
12절. 돋아나서. '싹이 트다, 나타나다, 발생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종의 임재는 미래를 새롭게 열어 주고 의와 찬양의 상황을 만들며 무엇보다 영적 타락의 상태를 회복시켜 구원을 이루어 내심을 강조한다.
13절. 평화의 의논. 메시야의 특별한 직무를 보여 주는데 메시야는 제사장이자 왕으로서 이스라엘에 임하실 것을 암시한다.
[신학주제] - 순으로 오실 그리스도.
스가랴가 본 환상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순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벌써 오래 전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받으실 핍박과 고난을 내다보고 생각한 이름이다. 그의 이름을 철이라고 하지 않고, 혹은 그 밖에 어떤 굳센 성격을 예표한 이름을 생각지 않고 순(싹)이라고 했으니, 이는 나사렛 예수의 행동 원리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나사렛 예수는 얼마나 부드러웠든지(참조, 마12:19) 그야말로 그는 살았으나 죽었고 죽었으나 사신 분으로서 행하시는 분이다. 그는 살았으나 없는 자처럼 겸손하시고 온유하셨다. 그는 죄인의 손에 겸손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당시 로마의 속국으로 많은 고통과 억압을 당해 왔다. 그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열강의 침략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지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선민의식에 대한 포기와 좌절감이 민족의 장래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고 있었다. 정통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찬란했던 옛 다윗 왕국의 수립을 꿈꾸며 독립 운동을 시작했고, 용기 있고 힘이 넘치는 젊은 용사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모든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로마의 억압은 더해만 갔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을 무너뜨리기에는 유대 민족의 힘이 역부족이었다. 점차로 백성들 사이에는 현실을 도피하고 외진 곳에서 고립 생활을 하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자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이 싹트기 시작한다. 강하고 능력 있는 구세주가 나타나 자기들의 정치적 억압을 해방시키고 옛 다윗 왕국의 번영을 회복할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예수가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유대 민족으로부터 배척을 받게 된다. 병을 고치고, 먹을 것을 주며, 기사와 이적을 행하던 예수가 그만 말없이, 힘없이 종교 지도자들의 모함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은 메시야를 오해했던 것이다. 예수가 이루려 했던 메시야는 겸손히 어린양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죽어가는, 대속의 구세주였던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미 오래 전에 이 겸손하고 온유한 메시야를 환상 가운데 보게 된 것이다.
[영적교훈]
예수는 이 세상의 죄를 속하고 영원한 형벌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기 위해 오셨다. 그 어떤 정치적 목적도, 세상적 의도도 없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오해하여 그들의 지도자로 삼으려 하지만 이는 당시 우매한 이스라엘 민족의 행동과 같은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신 구세주로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정치적 상황을 변화시켜 세상적 왕국을 이루려 하신 분이 아니다. 예수는 세상의 왕이 라니라 영적 세계의 왕, 곧 이 땅과 저 세상의 영적 통치자이시다.
'구원의 이정표 > 장별요약강해-구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슥 8장] 심판 중에 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 (0) | 2014.04.25 |
---|---|
[슥 7장] 회개치 않는 금식의 가증함 (0) | 2014.04.25 |
[슥 5장] 두루마리와 한 여인의 환상 (0) | 2014.04.25 |
[슥 4장] 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환상 (0) | 2014.04.25 |
[슥 3장] 대제사장 여호수아 환상 (0) | 2014.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