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과 그리스도
차례
01. 성막에 대한 서론적 이해
☞ 02. 성막의 명칭들
03. 성막의 위치와 건축 및 재료
04. 성막뜰의 울타리와 출입문
05. 번제단
06. 물두멍
07. 성소와 지성소
08. 성소로 들어가는 문
09. 진설병상
10. 순금등대
11. 향단
12. 지성소의 기구들
13. 지성소의 휘장
14. 경건의 시간의 위한 제언
제2장 - 성막의 명칭들
이 책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치셨던 구조물의 "성막"으로 이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몇 개의 다른 이름들이 있다. 이 구조물에는 일곱 개의 이름이 주어졌는데 이들 모두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사역을 예표한다. 성막의 이름들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가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을 잘 연구해 보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에 있어서 성막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 장막
성막은 종종 장막으로 불렸다(출 39:32, 33,출 39:40). 장막은 성막의 바깥 덮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장막은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긴 순례여행시에 사용되던 것이었다. 따라서 성막을 장막이라고 한 것은 성막이 잠시 머무는 장소였지 영구적으로 머무는 장소가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임시로 설치하도록 하셔서, 그 백성을 머물게 하거나 또는 이동시키고자 하실 때 언제든지 지었다가 다시 쉽게 거둘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나 그런 생활 역시 한시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광야 생활을 전제로 고안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궁극적인 약소의 땅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영원히 거하도록 계획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역시 이 땅에서만 존재하는 한시적인 것이며 영원한 천국의 새 예루살렘의 예표이다(계 21:22). 그리스도의 몸은 그분을 구주로 고백한 각 개인들로 구성된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던 각 성도들은 궁극적으로 새 예루살렘을 이루는 구성원이 될 것이다.
성도들의 육체 또한 한시적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영원한 삶을 살게 되겠지만 그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지 않는 이상, 그의 육체는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진정한 사람-영혼-은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된다. 성경도 성도가 몸을 떠나면 주와 함께 거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후 5:8).
성도의 몸에 대해서 고후 5:1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한다. 성도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의 몸은 장막집(tent-house)과 같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기다리는 동안만 거기에 체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예비해 놓으신 집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고 "저기에 아무개가 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가 거하는 장막만을 바라보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성도라면 언젠가는 영원히 거할 처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몸이 환란을 많이 당할수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처소를 더욱더 고대하게 된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임시 처소로서의 장막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당시 가장 부유한 계층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택보다는 오히려 장막에서 살았다. 아브라함에 관해서 히 11:9-10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알고 있다면 당신이 거하고 있는 처소에 대한 당신 자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당신의 다른 소유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한시적 은총물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마치 영원히 그 곳에서 거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당신이 믿는 바는 이 세상 것들인가 아니면 영원한 하늘나라의 것인가?
"장막"은 또한 만남의 장소로서의 성막을 언급할 때에도 사용되었다(출 39:33, 40). 성막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였다. 사실상 그곳은 희생제물이 흘린 피에 의지해서 사람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 분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막의 중요한 목적은 그의 백성들이 앞서 서술한 바 희생 제물의 피에 의지하는 방법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만나고 교통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원의 사역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아가는 길을 닦아 놓으신 것이다. 이 사실은 히 10:19-22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을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 성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가장 먼저 사용하신 이름은 "성소"였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8).
성도는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실 한 곳으로 특별히 구별하신 장소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9:45-46)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는 우주적인 교회(the universal church) 역시 하나님의 성소이다. 우주적인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모든 곳, 모든 세대의 성도들 전체, 곧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 전체를 가리킨다(엡 1:22-23).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의 몸된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교회는 성전으로 불리워진다. 엡 2:19-22은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라고 말한다.
각 성도들 또한 교회의 구성원들로 부름 받은 자들이다.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의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에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성도들 전체를 포함하는 우주적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불리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우주적 교회와 더불어 각 성도 개인도 성전으로 불리워진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하나님 그분께서 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권고한다. 성도들 안에는 성령님께서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의 몸은 성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는 본질상 구약 시대의 성막이나 성전과 같은 외형적인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일 뿐이다. 구분은 성도들 개개인 안에 거하신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곧 그분에게 속한 자이다. 그래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라는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다.
3. 성막
"성막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임재하여 계시는 곳으로서의 장소를 강조하는 이름이다. 하나님은 성막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레 1:1의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편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성막을 통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던 것처럼 현재도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다. 성도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망은 요한계시록 3:20에서 가장 단적으로 나타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삶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것은 바울의 기도에서도 나타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7).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얼마나 가슴 벅찬 사실인가! 이에 대해 계 21:3은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말한다.
4. 회막
성막은 또한 "회막"이라고도 불렸다(출 27:21, 레 1:1, 민 1:1, 신 31:14 등등). 여기서 "회"(회(會), congregation)라는 단어에 주의해보자. 이것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임은 단하나였음을 가리킨다. 그 모임 안에는 나뉨이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거하시는 몸된 교회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말씀하셨다.
이때에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교회는 개별적인 지역교회가 아니라 오순절로부터 시작하여 성도들이 승천하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 날에 이르기까지 거듭난 모든 성도들로 구성된 우주적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거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라고 말한 것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를 두고 한 것이다. "한몸"이라는 말을 주목해 보자. 각 성도는 몸을 이루는 구성원이지만 그 몸은 단 하나이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전 12:20).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몸된 교회는 지역교회도, 특정 종파의 집단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종파에 상관없이 세계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간에 많은 분열이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특정 종파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성도라 불리워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파들이 있음으로 얻게 되는 긍정적인 유익은 여러 가지 교리들을 강조함으로써 어느 방편의 교리에서든지 치우침이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 종파들은 너무나 자주 극단적으로 특정 교리를 강조하고 그것을 일반화시키려 하는 우(寓)를 범한다. 어떤 종파나 교파에 속해 있든지 우리의 관심은 항상 성경을 살피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언제나 성경이 말하는 바에 기초하여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구약 시대의 성막은 "특정한"(the) 회중에 주어진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나뉨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음에 분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적인 교회 내에도 나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에게 그들이 한 몸에 속해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마치 다른 목적을 위해 섬기는 것처럼 나뉘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하였다. 하나님께서 몸의 각 구성원들을 세우신 목적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강조한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고전 12:25).
5. 여호와의 장막
구약 시대의 성막은 또 "여호와의 장막"으로도 불리웠다(왕상 2:28). 이 이름은 성막이 하나님 자신이 친히 거하셨던 장소임을 강조한다. 그곳은 단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하나님 자신이 실제적으로 이 땅의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곳이었다. 이처럼 초월자이신 하나님께서 각 성도의 삶 안에서 이 땅에 거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사실인가, 이 일의 이루어짐은 우리에게 위로를 줄 뿐 아니라, 동시에 경고도 준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우리와 함께 하심에 관해 말씀할 때 우리는 많은 위로를 얻게 된다. 히 13:5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위로에 관한 또 다른 말씀은 신명기 31:6이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심이라 하시니라"(수 1:9)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곳에 행할지라도 그분의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다(고전 6:19).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특히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갈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음을 깨달았던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시 139:7-12).
이처럼 '여호와의 장막'이라는 명칭은 여호와 자신이 친히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에 보듯 하나님께서 친히 실제로 각 성도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점검하게 된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다가도, 죄로 인해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에 대해 보다 엄격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라고 말한 것은 각 성도 자신이 곧 여호와께서 친히 거하시는 장막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고전 6:19에서 성도의 몸이 성령의 전임을 밝힌 것도 같은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6. 증거막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는 처소로서의 성막을 또한 "증거막"으로도 불렸다(출 38:21). 지성소에 놓였던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들어 있었다. 이들은 각각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분 앞으로 나아갈 때 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 하나님의 지속적인 권능에 대한 증거들이다.
특별히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기준을 갖고 계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 기준 자체는 결코 낮아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죄를 대속하는 희생이 없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성막 안으로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정해주신 희생 제물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 성막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민족의 삶은 세계의 모든 다른 민족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기준을 그들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지침이라 할 수 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요 1:2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기준을 드러내는 빛을 발하는 증거들이 되어야 한다. 그 안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주고 고백하는 각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는가를 스스로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3-14)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하나님께로 돌려지도록 해야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하듯이 하나님을 향해 목마르도록 해야 한다. 소금은 또한 부패하지 않게 보존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소금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죄악을 미워하는 분이심을 세상에 대해 나타내는 증인들이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잘 감당해 낼 때에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분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이다.
우리는 또한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빛이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영혼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찾아 올 수 있도록 빛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신"(고후 5:20)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그분의 개인적인 대표자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진 책임이 얼마나 엄숙한 것이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기준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무인가를 말해 준다.
세상은 우리의 삶을 보고 있다. 책을 읽듯이 세상은 우리를 읽고 있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 세상이 우리의 삶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물어 보아야만 한다.
구약 시대의 성막이 주변 세계에 대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증거였던 것처럼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세상에 대한 동일한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복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을 그분께로 이끄는 삶을 살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기를 원한다.
7. 증거의 장막
성막에 주어진 일곱 번째 이름은 "증거의 장막"이다(민 17:7-8).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이들을 대표하는 지파를 증거하기 위해 열두 지파의 지팡이를 성막에 두었을 때 처음 사용된 이름이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민 17:8).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증거궤에 간직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제사장의 권세를 주신 것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셨다(민 17:10).
오늘날의 성도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라고 하셨다. 즉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지, 그것에 대해 하늘 아버지께 요청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위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말하고 행동하도록 선택받았다. 성경은 성도에 대해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라고 말한다. 성도들은 성경에 대해서 항상 좋은 것만을 말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오직 말씀하신 그 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을 다 말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성막이 증거가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 자신이 그 분에 대한 증인이 된다.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 예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 하시니라"(행 1:8)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과연 그 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중인이 되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충분히 알고 있는가? 그리고 말로써만이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그분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있는가?
'성막·구약의 제사법 > 성막 · 구약의 제사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막과 그리스도 - 04. 성막뜰 울타리와 출입문 (0) | 2009.01.14 |
---|---|
성막과 그리스도 - 03. 성막의 위치와 건축 및 재료 (0) | 2009.01.14 |
성막과 그리스도 - 01. 성막에 대한 서론적 이해 (0) | 2009.01.14 |
물두멍 (출 30:18-20) (0) | 2009.01.14 |
번제단 (출 27:1-8) (0) | 2009.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