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출 19-23장 / 하나님의 율법
1. 중요성 :
오늘날의 신약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모세의 율법과 그 의미라는 논제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하나님의 언약들에 혼동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말씀을 검토하여 전체 모세 체제의 위치와 목적을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2. 이름 :
출애굽기 19장의 시작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골 2:14) 우리는 모세의 제도 아래 있게 된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 “율법”, 때로는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편의상 우리는 흔히 “도덕율”(근본이 되는 십계명을 가리킴), “의식법”(제사 제도에 나타난 모형과 상징에 연관됨), “민법”(백성의 생활을 치리하는 일상의 법을 의미함)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성경은 도덕법과 의식법 사이에 어떤 구분을 두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의 일부인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대한 네번째 계명은 “도덕법”에 있는 것이지만 분명히 유대 안식일에 관한 “의식법”의 일부이다.
3. 목적 :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유대인과 영원한 약속을 하셨다(창 15:1-). 이 언약은 그들이 순종하거나 불순종하거나 상관이 없는 언약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주셨다. 모세의 법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첨가된“ 것이지 그것을 무효화시킨 것은 아니었다(갈 3:13-18). 율법은 하나님의 이전 언약 옆에 나란히 끼어든 것이고(롬 5:20) 또한 임시적인 방법이기도 했다(갈 3:19).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다(출 19:4-6/시 147:19-20). 하나님은 누구를 구원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은 아니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갈 3:11/롬 3:20). 하나님은 다음의 이유들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함(신 5:22-28)
인간의 죄성을 나타내기 위함(롬 7:7/롬 7:13/딤전 1:9-/약 1:22-25)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을 알리고, 이교를 믿는 이방 민족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함(시 147:19-20/엡 2:11-17/행 15:1-)
이스라엘에게 경건한 삶의 기준을 주셔서 땅을 물려받고 축복을 누리도록하기 위함(신 4:1-/신 5:29-/삿 2:19-21)
이스라엘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기 위함(갈 3:24)
몽학선생은 아이를 성인의 생활에 대비시키는 직무를 맡은 훈련받은 노예였다. 아이가 성숙하여 성인이 되면 유업을 받게 되며, 몽학선생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율법 아래의 이스라엘은 “영적인 아이“였으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갈 3:23-4:7).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모형과 의식으로 나타내기 위함(히 10:1)
율법은 거울로 비유된다. 인간의 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약 1:22-25). 멍에로 비유되는 것은 율법이 속박을 가져오기 때문이며, 속박이라 함은 육신이 율법에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행 15:10/갈 5:1/롬 8:3). 가정교사로 비유됨은 이스라엘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한 길을 준비하기 때문이며(갈 3:23-4:7), 돌비에 쓴 의문은(고후 3장) 성령에 의해 우리의 마음에 기록된 사랑의 율법과 대조된다. 그림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소유한 실현과 성취에 대조된다(히 10:1/골 2:14-17).
율법이 할 수 없는 일들, 즉 무엇을 완전케 하는 일(히 7:11-19/히 10:1-2), 죄로부터 의롭게 하거나(행 13:38-39/롬 3:20-28), 의롭다함을 주는 일(갈 2:21), 마음에 평안을 주며(히 9:9), 생명을 주는 일(갈 3:21) 등을 할 수 없음에 유의하자.
4. 그리스도와 율법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요 1:17).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제도와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가지는 은혜로운 지위 사이에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서 나셨고(갈 4:4-6) 모든 면에서 율법을 성취하셨다(마 5:17). 그의 인격과 사역은 율법에 나타나 있다(눅 24:44-47). 그는 율법의 마침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로움이시다(롬 10:1-13). 그는 율법의 형벌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갈 3:10-14/골 2:13-14). 율법은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엡 2:11-12).
5. 그리스도인과 율법 :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롬 6:14/갈 5:18) 은혜의 영역에서 살고 있음을 아주 명백히 밝힌다. 그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며(롬 7:1-4) 율법에서 구출되었다(롬 7:5-6),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속박에 다시 말려들지 말라고 경고를 받고 있다(갈 5:1-4). 은혜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와 아들이 아니라 종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이 그리스도인은 법없이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요구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바울이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광스런 지위를 강조하자 그의 적들이 바울에게 던진 반론이다(롬 6:1).
고린도후서 3장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복음의 영광이 구약 율법의 임시적인 영광을 훨씬 능가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은혜 안에서 성장함에 따라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3:18). 사실은 신약 그리스도인들이 구약 신자들 보다 생활에서 요구받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약 율법은 외적인 행위를 다루지만 신약 율법인 사랑은 내적인 마음가짐을 다루기 때문이다.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자유란 면허증은 아니다. 우리는 자유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그 자유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만 한다(갈 5:13-26 참조).
우리는 더 높은 법, 사랑의 법, 곧 그리스도의 법 아래에 있다(갈 6:2). 우리는 육신의 힘을 좇아 하나님께 순종하려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롬 7:14). 육은 죄악되고 연약하여 법에 순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여기며(롬 6장), 성령께 굴복할 때,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율법을 성취하신다(롬 8:1-4).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실체를 그림자와, 자유를 속박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은혜 안에서 가지는 높으신 부르심을 상실하는 것이다. 율법이란 하나님을 기쁘게 할 무슨 일을 행해야 한다는 뜻이며, 은혜는 그의 완전하신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뜻이다
6. 오늘날의 십계명 :
구약의 율법은 모두 십계명을 확대하여 적용시킨 것이다. 십계명 중 아홉 가지 계명은 오늘날의 신자를 위해 신약에 반복되어 있다.
1)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행 14:15/요 4:21-23/딤전 2:5/약 2:19/고전 8:6).
2)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지 말라(행 17:29/롬 1:22-23/요일 5:21/고전 10:7/고전 10:14).
3)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약 5:12/마 5:33-37/마 6:5-9).
4)안식일을 기억하라(신약 어디서도 반복되지 않았다)
5)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 6:1-4).
6)살인하지 말라(요일 3:15/마5:21-22).
7)간음하지 말라(마 5:27-28/고전 5:1-13/고전 6:9-20/히 13:4).
8)도둑질하지 말라(엡 4:28/살후 3:10-12/약 5:1-4).
9)거짓 증거하지 말라(골 3:9/엡 4:25).
10)탐내지 말라(엡 5:3/눅 12:15-21).
신약에 나와 있는 이 율법의 요약을 눈여겨 보자. 안식일에 대하여 언급한 구절은 없다(마 19:16-20/막 10:17-20/눅 18:18-21/롬 13:8-10). 물론 사랑의 “새 계명”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위한 근본적인 동기이다(요 13:34/롬 13:9-10). 이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널리 흘러나간다(롬 5:5).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그 외의 법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옛 본성은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새 본성은 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을 위한 옛 언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날이었다. 반면에 주의 날은 새 언약 아래 있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날이다. 안식일은 행위로 얻는 구원을 상징한다. 6일간 일하고 그리고 쉰다. 반면에 주의 날은 은혜로 받은 구원을 뜻한다. 먼저 쉬고 다음으로 행위가 따른다. 안식일, 희생제사, 음식에 관한 법, 제사장 직분, 성막 예배 등,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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