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출애굽기6 - 14~15장(홍해 횡단)

JORC구원열차 2009. 6. 4. 22:08

5. 출 14-15장 / 홍해 횡단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예증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구원을 받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여행 중에 겪게 되는 이스라엘의 경험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투쟁과 축복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있기를 원했으며 가나안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상징한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유업을 주장하는 생활이다(엡 1:3).

 

슬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옛 유대인들처럼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나 광야의 불신앙 가운데 길을 잃고 방황한다. 그렇다. 그들이 피로 구원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그들의 부유한 영적인 유업을 주장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이 장들에서 네 가지 다른 경험들을 살펴본다.

 

1. 두려움 중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출 14:1-12)

 

하나님은 홍해 근처에 야영하도록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장소를 지시하셨다. 그는 또 모세에게 애굽인들이 추적해 올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떤 것임을 그의 말씀에 설명해 놓으심으로, 우리가 무엇을 바라야하는지 알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다. 사탄은 사람들이 자기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 이를 기뻐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들을 추적하여 다시 노예로 삼으려 한다. 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의 적이 오고 있음을 경고해 주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보는 것으로 행하였다. 그들은 애굽 군대가 오는 것을 보자 낙담하여 자포자기 하였으며, 두려움으로 부르짖었다. 두려움과 믿음이 한 마음 속에 거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두려워할 것은 없다. 흔히 있는 경우지만 그들은 기도하고 피차에 격려하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를 비판했다.

 

그들은 사실상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었는데,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애굽을 돌아다보고 “바로의 노예로 있는 편이 더 나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여 치시고 큰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으나, 그가 그들을 내내 보고 계심을 믿지는 않았다. 의심할 바 없이 같이 간 혼합된 군중은(12:38) 이 불평의 합창을 지휘했을 것인데 저들은 후에도 이렇게 했다(민 11:4). 이 “혼합된 군중”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개심치 않은 세상적인 사람들을 나타낸다.

 

2. 믿음으로 행하는 이스라엘 (출 14:13-31)

 

모세는 승리의 길이 여호와께 대한 신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히 11:29). 그의 세 가지 명령에 유의하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기 때문이다. “가만히 서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보라”,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전진하기” 앞서 조용히 서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15절).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지 않으면 믿음으로 걸어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세는 그의 지팡이를 들었고,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애굽의 군대 사이에 임하셔서 그들을 보호하셨다(19-20). 주께서 일하시는 것은 세상에는 어두움이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빛이다. 하나님은 그날 밤에 군대가 접근치 못하도록 거리를 유지시켰다. 다음으로는 강한 바람을 보내어 길을 여셨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유대인들이 두려워했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그들을 놀라게 했던 바로 그 바람이 그들을 구원하는 도구였다. 모든 백성이 마른 땅을 밟으며 홍해를 걸어서 건넜다.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었던 바로 그 바다가 애굽에게는 정죄(定罪)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물로 애굽인들을 익사케 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영원히 분리시키셨다. 바로는 그가 뿌린 씨를 거두었다. 그는 유대인의 남자 아이들을 익사시켰었는데 이제 그 자신의 군대가 익사를 당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영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전 10:1-2). 홍해의 횡단은 부활을 통하여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모형이다. 이스라엘은 물을 통과함으로써 “모세에게, 또는 모세와 함께 세례(침례)를 받았다.” 또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세상(애굽)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애굽인들은 바다를 통과할 수 없었는데, 이는 피로써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월절과 홍해 횡단을 대조하면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유월절                                    홍해횡단

어린양의 죽음-갈보리                      그리스도의 부활

죄의 형벌에서 구원됨                       죄의 권세에서 구원됨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심-대속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하나됨

로마서 3-4장                                  로마서 6-8장

구원-죽음을 두려워할 필요없음        성화-적을 극복함

 

여호수아 3-4장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요단강 횡단은 믿음으로 그 땅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여 영적인 유업으로 들어가는 신자를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각 경우를 볼 때 그리스도인이 승리를 주장하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행할 때이다.

 

3. 승리를 찬양하는 이스라엘 (출 15:1-21)

 

이것은 성경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노래이며, 속박으로부터 구속된 후에 불리워졌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만이 노래 부를 권리가 있다(시 40:1-3). 출애굽기는 탄식으로 시작되었으나(2:23) 어린 양으로 인해 노래하는 민족을 보게 된다.

 

이 노래는 하나님을 높이고 있음에 유의하자. 이 18구절 가운데 적어도 45회나 여호와를 말하고 있다. 사실상, 하나님의 인격과 거룩한 성품, 그의 놀라운 권능의 일들을 높이는 대신 인간을 높이는 노래들이 너무도 많다.

 

2절에 나타난 후렴을 유의해서 보자. 에스라의 지도 아래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을 때에도 시편 118편 4절에 이 후렴구가 반복된다. 이사야 12장 2절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민족을 다시 회복시키실 미래의 그 날을 가리키며 이 후렴구가 반복된다(사 11:15-16). 선지자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구원받았던 때, 제사장 에스라의 인도로 바벨론에서 구원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서 구원받을 때, 왕이신 그리스도께로 돌이킬 때 그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 노래를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나, 주목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1-10절)과 인도하심(11-13절)과 승리(14-17절)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점이다. 이 노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통치를 내다보고 그 영광을 주목하는 것으로 끝난다(18절). 미리암은 여성 합창대를 지휘하였다(남성을 지휘한 것은 아님-고전 14:34/딤전 2:11-12). 물론 여성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에게 베풀어진 구속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4. 불신앙으로 불평하는 이스라엘 (출 15:22-27)

 

해변에 남아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겠지만 신자는 순례자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만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셔야 함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훈련시켜 자신의 마음을 깨닫도록 하셔야 하는 것이다. 물론 성도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물은 세상에 없다. 유대인들이 물을 보자 그것이 쓴 물임을 알았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모세와 하나님께 불평했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사악한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을 찬양하나, 다음 순간 쓴 물을 보자마자 불평을 터트린다. 이 경험은 이스라엘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쳤다.

 

1) 생활에 관하여-

삶이란 쓴 것과 단 것, 그리고 승리와 시련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의 가는 길에 무엇이 오든지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시련이 끝날 때마다 반드시 영적인 “엘림”(Elim: 27절)이 있어서 그곳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우리는 단 물과 함께 쓴 물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알고 계심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2) 자신들에 대하여-

생이란 하나의 큰 실험실이다. 매 경험들이 우리 마음을 X-선 촬영을 하여 우리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마라의 물은 유대인들이 세상적이며 육체의 만족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임을 드러냈다. 그들은 보이는 것으로 행하고 세상으로 만족을 얻고자 했다. 그들은 감사할 줄 모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 시련이 오자 하나님께 불평하였다.

 

3) 주님에 관하여-

하나님이 길을 계획하셨으므로 필요한 것도 아신다. 하나님은 나무(십자가-벧전 2:24)를 사용하셔서 쓴 물을 달게 만드실 수 있으시다. 그는 여호와 라파(Jehovah-Rapha), 곧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시다! 우리는 생의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를 신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