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여호수아3 - 수 3~5장(요단강 횡단)

JORC구원열차 2009. 6. 24. 15:15

2. 여호수아 3-5장 / 요단강 횡단

 

1. 횡단의 기적 (수 3장)

 

1) 성별된 백성(1-5절)-

우리의 신약 여호수아처럼(막 1:35), 여호수아는 말씀을 묵상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났고(1:8) 그날의 임무를 위하여 자신을 준비하였다(6:12/7:16/8:20 참조). 범람하는 요단강을 횡단할 방도를 고안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지시를 그에게 하셨기 때문이다.

 

본 장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법궤이며 열 번 사용되었다. 물론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법궤는 백성을 인도하기 위하여 그들보다 앞서 갔으며 민족 전체가 건너갈 때까지 강 한가운데 있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자기 백성들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열어 놓으신다. 하지만 백성들은 자신을 성결케 해야 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한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4절) 그들을 인도하려 하셨고 백성들은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2) 위엄을 갖춘 여호수아(6-8절)-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에게 알맞는 위엄을 갖추게 하심으로 백성들이 그들을 존중하도록 하신다(대상 29:25/대하 1:1/수 4:14).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은 여호수아였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빌 1:20-21).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자기에게 순종할 때에 자기 백성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뻐하신다(행 5:13).

 

3) 영광을 받으신 여호와(9-13절)-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은 자신이 여호와이시며 참 하나님이시고 애굽의 신들은 해로운 우상들임을 입증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온 땅의 여호와이심을 증명하려 하신다(11, 13절/ 시 97:5/미 4:13). 모든 이방민족들의 신들은 그 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하나님은 범람하는 요단강물을 붙들어 두어 자기 백성이 마른 땅 위를 횡단하도록 하심으로써 그의 능력을 입증하신다.

 

4) 확증된 말씀(14-17절)-

하나님께서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일들이 진행되었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앞서 갔고 물에 그들의 발을 담그자 하나님은 그들 앞에 강을 열어놓으셨다.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일을 하시기 전에 믿음으로 발을 적셔야 할 때가 있다(수 1:2-3 참조). 다음으로 제사장들은 강 한복판으로 걸어갔으며 이스라엘 전체가 저 편으로 건너갈 동안 거기서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도 반대편으로 따라 건넜다.

 

이 얼마나 완연한 그리스도의 상징인가! 그는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열어 놓으신다. 그는 우리가 건너가기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우리 뒤를 따라오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그를 믿고 그에게 순종하였기 때문에 그의 말씀을 지키셨다.

 

우리는 홍해의 횡단과 요단강의 횡단을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홍해                                          요단강

애굽의 속박에서 이들을 구원하심              가나안의 축복으로 이들을 인도하심

애굽으로부터의 분리(세상)                      하나님께로의 헌신(골 3:1- 이하)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심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음

-어린양의 피                                       (갈 2:20/롬 6:1- )

적들이 단번에 모두 멸망함                      그를 믿음으로 매일 승리함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에 “홍해를 횡단”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로마서 6-8장에 나오는 승리의 경험을 체험할 때에 “요단강을 횡단”한다.

 

2. 횡단 기념비 (수 4장)

 

두 개의 돌기둥이 세워졌다. 하나는 열두 명의 선발된 사람들에 의해 강둑에 세워졌고(3:12/4:1-8). 다른 하나는 여호수아가 강 한복판에 세웠다(4:9-10). 이들은 횡단의 기념비였고, 우리에게는 놀라운 영적인 진리들을 전해 준다.

 

요단강 둑의 돌 열두 개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르고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횡단시키신 증거로 강의 한복판에서 가져온 것이다(8절). 강 한가운데 숨겨진 열두 개의 돌은 하나님만이 보실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이스라엘의 기적적인 횡단에 대해서 말해 준다.

 

이 두 개의 돌기둥들은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을 상징하며, 신자와 그리스도가 가지는 영적인 연합을 예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죽을 때 우리는 그와 함께 죽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으며 그와 함께 승리 가운데 부활하였다(엡 2:1-10/갈 2:20/골 3:13/롬 6:4-5 참조).

 

오늘날 교회는 위대한 영적 진리를 내포한 두 가지를 기념한다. 곧 세례(침례)와 성찬이다. 세례(침례)는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세례(침례)를 행하셨음을 상기시키며,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차 다시 오실 것을 시사한다.

 

유대인들은 요단강을 먼저 건너지 않으면 가나안에서의 승리를 얻을 수 없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다고 간주하며, 성령께서 부활의 능력을 주시도록 하지 않는 한 영적인 원수들을 정복할 수가 없다. 이 진리에 대해서 신약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로마서 5-8장을 복습하라.

 

3. 언약의 표시 (수 5장)

 

유대인들은 강 저편에 도착하여 안전해지자마자 곧 언약의 징표로서의 할례를 받았다(창 17장). 하나의 민족으로서 집합적으로는 강을 횡단하여 “죽음의 경험”을 통과하였지만 이제 이들은 개인적으로 “자아에 대하여 죽는 것”을 경험하여야 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육체의 할례는 언제나 영적인 진리를 상징한다.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영적인 진리를 배우는 것보다 육신적인 의식(儀式)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롬 2:25-29).

 

할례는 죄된 것을 제거한다는 상징이다. 신약에서의 할례는 육에 속한 “옛사람”을 벗어버림을 예증한다(골 3:1-5/롬 8:13).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이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진리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여 육에 속한 행위들을 “죽음에 내어주어야” 한다. 구약의 유대인은 자기 육체의 작은 부분을 베어냈지만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육신의 죄악된 몸”을 제거한 것이다(골 2:9-13). 길갈에서의 이 수술은 각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것으로 알고 살아가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갈 2:20).

 

유대인 남성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에 이 언약의 표시를 받지 못했었다. 한 가지 적당한 핑계를 댄다면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임시적으로 중단했었다(민 14:32-34).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은 구세대가 죽을 때까지 수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그들을 방치해” 두셨다. 이제 새로운 세대는 언약의 표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애굽의 멸시”란 아마도 그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 애굽인들(그리고 다른 민족들)이 유대인을 모욕했던 것을 뜻할 것이다(출 32:12-/신 9:24-29). 이들의 불신앙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으며 이방 민족들은 “너희 하나님은 너희를 가나안으로 데리고 갈 만큼 강하지 못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셨으며 멸시가 사라졌다.

 

새 세대는 요단강을 건넜지만 즉각적으로 여리고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전쟁터로 곧장 달려가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전쟁에 대비하여 영적으로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을 아셨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기다리며 쉬게 하셨다. 기다리는 동안 이들은 유월절을 지켰다. 이 민족의 최초의 유월절이 있던 날 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지 꼭 40년 되는 날이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새 음식(그 땅의 소산인 묵은 곡식)을 주셨다. 이 민족이 순례자들이었을 때 만나를 먹었는데 이제는 이 땅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신 6:10-11/신 8:3 참조).

 

곡식은 복된 부활의 주, 그리스도를 말한다. 왜냐하면 씨는 열매를 맺기 전에 먼저 땅에 묻혀야 하기 때문이다(요 12:24). 사건의 순서는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을 다시금 기억케 한다. 이들은 유월절을 지키고(그의 죽으심), 그 땅의 곡식을 먹었다(부활).

 

본 장의 중심 교훈은 명백하다. 자아에 대해서 죽고(요단강 횡단),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동일시하지 않고는(두 개의 돌 기념비) 정복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적을 정복할 수 있기 전에 죄와 자아를 극복하고 승리한 경험을 가져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