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여호수아4 - 수 6장(여리고 정복)

JORC구원열차 2009. 6. 24. 15:17

3. 여호수아 6장 / 여리고 정복

 

이스라엘이 이 거대한 도성을 정복했다는 것은 몇 가지 실천적이고 영적인 진리들을 예증한다. 즉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믿음이며(히 11:30/요일 5:4), 우리의 사용할 무기는 영적인 것이다(고후 10:4). 또한 그리스도는 승리자이시며, 우리는 그를 온전히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요 16:33).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여리고인들”과 부딪친다. 그리고 이들은 자주 가데스의 정탐꾼들처럼 포기할 것을 유혹한다(민 13:28- 이하).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너무나 높거나 너무나 강한 벽이란 없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며 믿음으로 유업을 주장한다!

 

1. 무리의 대장 (수 5:13-6:5)

 

여리고성은 닫혀져 있었다. 여호수아는 성 곁에 서 있었는데 칼을 뽑아 든 한 사람을 보았다. 여호수아는 신분을 밝히라고 요청하였는데 그 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전쟁상의 칭호”로서, 그가 천군(天軍)의 최고사령관이심을 가리킨다(시 24:10/시 46:7/시 46:11/왕상 18:15/사 8:11-14/학 2:4/약 5:4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전쟁을 지휘하시려고 내려오셨고 여호수아는 그 분의 지휘권을 재빨리 인정하였다. 여호수아는 명령에 있어 제 2위였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여호와를 예배한 경험이 없이는 공적인 일에서 주님을 위해 승리할 수 없다.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하였고, 겸손한 중에 신을 벗었다.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그가 말할 때 자기의 계획을 모두 사령관에게 넘겨드렸다.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딤후 2:3/엡 6:10- 이하),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여야하며 말씀(성경)에 나타나 있는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 성을 어떻게 정복하라는 정확한 명령을 여호수아에게 내리셨으며(6:2-5) 따라서 여호수아가 해야 하는 일이란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여리고를 네게 주겠다”고 그가 약속하셨다. 그런데 백성들 편에서는 믿음의 발걸음을 한 발 내딛어야 하며 승리를 주장해야만 한다.

 

무장한 사람들이 앞서 대열을 인도해 가고(3, 7절), 일곱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며 법궤 앞에서 행하고, 그 뒤에 나머지 백성들이 따랐다(9절). 이 대열은 나팔 소리만 울릴 뿐 철저한 침묵 가운데 6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여리고성 주위를 돌며 행진하였다(10절).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으며(모두 합하면 13회 돌았다). 일곱번째 돌 때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질렀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참으로 이상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는 강한 자를 쳐부수는 데 있어 세상이 “어리석다”고 부르는 것을 사용하신다(고전 1:26-31).

 

하나님은 복음을 전파하고 적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그의 말씀 가운데 요약해 놓으셨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교회들)이 인간이 만든 선전용 계략을 빌려 자신의 계획을 고안해 낸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최종적으로는 실패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대장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며 그 명령에 순종한다면 그가 승리를 주실 것이다.

 

2. 성의 함락 (수 6:6-25)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 그들은 지도자에게 순종하였다(6-9절)-

우리는 1장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명령의 사슬“을 눈여겨 보았다. 여기서는 그 명령의 사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본다. 백성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지도자가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으며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였다. 단합과 협동이 잘 이루어졌으며 상, 하 간에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2) 이들은 인내와 믿음이 있었다(10-14절)-

하나님은 첫날에 그 성을 여호수아에게 주실 수 있었겠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던 6일은 이 민족을 훈련시키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었다. 믿음과 인내는 동행한다(히 6:11-15). 또한 이들은 침묵을 지키며 하나님의 약속된 시간을 기다리는 훈련이 필요하였다. 야고보서 3장 1-2절은 자기의 혀를 조절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잠 16:32 참조).

 

3) 이들은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였다(15-16절)-

고함과 나팔 소리로 성을 점령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법궤가 그들에게 있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뜻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한, 모든 일이 가능하다“(렘 33:3 참조).

 

4) 이들은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였다(17-25절)-

이 성의 전리품은 “하나님께 헌납(저주를 받아서, 또는 성별되어서)되도록 되어 있었다. 동물들과 성읍 사람들은 살육을 당해야 했다.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아 살아났다. 우리는 흔히 승리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한다. 그러나 아간처럼(7장) 승리한 후에는 주님께 불순종한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여리고를 쳐서 완전히 승리하도록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었다. 라합과 그녀의 가족은 성이 불타기 전에 빠져 나왔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세상에서 데려감을 당할 것임을 상징한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하나님의 영적인 군대가 믿음으로 도시들을 하나씩 하나씩 점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거대한 로마제국도 복음의 능력 앞에 엎드러졌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금 도시들을 점령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본장에서는 그 방법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3. 여호와의 저주 (수 6:26-27)

 

26절의 “그들”이란 아마도 구원을 받아 생명을 부지한 사람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들의 성을 재건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중에서 더러는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처럼 라합의 가족 중에서 더러는 여리고로 돌아가기를 원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하나님은 이 성에, 그리고 이 성을 재건하려는 어떤 사람이라도 특별한 저주를 받게 하셨다(신 13:15-18 참조).

 

이 저주는 열왕기상 16장 34절에서 성취되었다. 사악한 왕 아합이 통치하는 동안에 벧엘 출신의 히엘이라는 사람이 여리고를 재건하였다. 기초를 놓을 때에 그의 장자를 잃었고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를 잃었다. 성을 위해서 이러한 희생을 치러야 하다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의 뜻에 대항하여 반역하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여리고는 신약의 여러 곳에서 설명되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고 있었다(눅 10장). 여기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성(예루살렘)에서 저주의 성(여리고)으로 여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선한 사마리아인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삭개오는 여리고 사람이었으며(눅 19:1-10), 그리스도께서 소경을 고치신 곳도 이 성이었다(눅 10:46-52). 신약의 여리고는 구약의 여리고 자리에 위치해 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성으로서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다.

 

● 몇 가지 실천적인 강조점들

 

가장 잘 싸우는 군인은 전투에 임하기 전에 가장 낮게 자신을 낮춘다(5:13-15). 우리는 주님 앞에 우리의 무릎과 얼굴을 향함으로써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

 

어떠한 사람도 혼자서 성을 취할 수는 없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충성된 협력을 얻었다. 이들은 모두 함께 적을 정복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를 때에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며 영광을 받으신다. 주께서 이처럼 “어리석은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속임수와 제도들을 사용할 때에 인간이 영광을 받으나, 승리가 지속되는 일은 결코 없다.

 

불신앙은 성벽과 거인을 보지만(민 13:28- 이하) 믿음은 주님을 바라본다. “장애물이란 우리가 목표에서 눈을 뗄 때에 보게 되는 성가신 작은 일들이다.” 주님께로부터 눈을 뗄 때는 장애물들이 더 첨부될 것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심판이 진행되는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라합과 그녀의 가족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최종적으로 임할 때 “구원을 받을 사람이 매우 적을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