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여호수아6 - 수 14~15장(정복자 갈렙)

JORC구원열차 2009. 6. 24. 15:23

5. 여호수아 14-15장 / 정복자 갈렙

 

갈렙은 성경에서 믿음의 위대한 영웅이며 뛰어난 사람이다. 그가 “온전히 여호와를 따랐더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온다(민 14:24/민 32:12/신 1:36/수 14:8-3/수 14:14). 갈렙은 “정복자”였으며(요일 2:13-14/요일 5:4), 주님께 온전히 순복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다. 우리는 그의 영적인 역사를 네 단계로 추적해 볼 것이다.

 

1. 고민하는 갈렙

 

갈렙이 가데스 바네아에 있을 때 40세였으므로(수 14:7), 그가 태어난 것은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고난당하고 있었던 때인 것이 분명하다(출 1-2장). 그는 노예로 태어나서 영웅으로 죽었다! 그의 부모에 관해서는 여호수아 14장 13-14절에 나와 있다. 어떤 이들은 갈렙(“개”라는 뜻)의 부모가 잡혼을 했으며, 아버지는 그니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다지파 여인이었다고 생각한다(수 15:13). 만일 그렇다면 그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훨씬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역대상 2장 18절은 갈렙이 베레스의 자손인 헤스론의 아들이라고 말한다(대상 2:5). 이 말은 그가 그리스도의 조상에 들어간다는 뜻이다(마 1:3).

 

어쨌든 갈렙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써 구속을 받았고, 애굽에서 구출되어 빈곤에서 큰 유업을 받을 전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만일 모세 아래 있으면서 먼저 구속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여호수아에게서 아무 유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2. 수호자 갈렙 (민 13-14장)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이스라엘의 반역은 앞부분에서 이미 논의했었다. 이 민족이 가나안의 입구에 도착한 것은 애굽을 벗어난 지 약 2년쯤 되었을 때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즉각적으로 그들의 유업을 주장하는 대신 이들은 열 두 정탐군의 보고를 듣고자 했다(신 1:21- 이하). 갈렙과 여호수아는 정탐꾼들 중의 일원이었으며 그 민족에게 자신들이 가진 확신적인 입장을 보여 주었다. “보고”가 있자, 갈렐과 여호수아는 모세를 옹호하고 그 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격려하였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그 땅을 기뻐했던 반면 열 명의 정탐꾼은 그 땅을 경멸하였다(14:36). 다수의 민족은 돌아가기를 원하였으며, 소수만이 믿음으로 행하였다. 반역하는 민족은 장애물만을 보았고, 문제거리들만 보았다. 그러나 믿는 지도자들은 기회와 전망을 보았다.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열 명의 정탐꾼들과 불신하는 세대는 광야에서 죽었으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살아서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며 그 축복을 누렸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롬 8:6). 갈렙이 전체 민족을 대항하여 서 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용기를 영광되게 하셨다.

 

3. 방황하는 갈렙

 

갈렙은 광야에서 죽지 않았으나 거의 40년간을 방황하는 동안 불신하는 민족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이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 얼마나 인내를 해야만 했던가를 생각해보자! 매일매일 그는 사람들이 죽어가며 유업을 잃는 것을 보았다. 또한 그들의 불만과 불평을 들어야만 했다. 이 믿음의 사람은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을 참아내야만 했다. 그는 모세를 사랑했는데 유대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비판하고 대적하는 말들을 들어야만 하였다.

 

이처럼 육신적이고 불신하는 사람들 틈에서 갈렙은 어떻게 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의 마음은 가나안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유업을 주셨으며(수 14:9-12), 비록 그의 몸은 광야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 곳에 있었다.

 

갈렙은 골로새서 3장 1-4절에 기록된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에 대한 완벽한 예증이다. 로마서 8장 6절에서의 “영의 생각”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갈렙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으며, 받을 유업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가 실패하지 않게 하실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광야의 시련들을 견딜 수가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훨씬 더한 유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쉽게 순례의 여행을 포기하며 실패한다.

 

4. 정복자 갈렙

 

이 내용은 여호수아 14-15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간다.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게 특별한 유업을 분배하고 있으며 갈렙은 자기의 몫을 주장한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킨다(6-9절). 우리가 우리의 축복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할 때뿐이기 때문이다. 갈렙의 강건함에 대한 영광스러운 증언에 주목하자(10-11절).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강건한 사람이다. 이 민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실패한지 45년이 되었으며 갈렙은 85세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유업을 주장하는 데 열성이다. 신자들이(갈렙처럼) 정복자가 되어야 할 나이에 “나이가 많은 것”을 불평하는 것은 대단히 나쁜 일이다.

 

“이 산을 나에게 주소서!”(12절) 갈렙은 영적인 생명력의 사람이었던 것같이 영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 자질이 영적인 승리로 인도해갔다. 하나님께서는 유업을 주시기로 그에게 약속을 하셨으며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롬 4:20-21 참조). 갈렙은 자기가 유업으로 받을 땅의 주민들을 몰아낼 능력이 있었다(수 15:13-14). 이 주민들은 바로 열 명의 정탐꾼들이 두려워했던 “거인들”이었다(민 13:28/민 13:33). 불신앙은 거인들을 본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을 본다. 불신앙이 일반적인 감각에 의지하는 반면,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다.

 

갈렙의 조카 옷니엘은 정복하는 일 중의 하나를 도와주었으며(수 15:15-17), 갈렙의 딸을 아내로 얻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첫 사사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 가족의 지도적 위치는 계속되었다. 믿음의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유업을 나누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갈렙의 딸은 15장 18-19절에 나오는 놀라운 영적인 진리를 보여 준다. 갈렙이 그녀에게 들을 준 후에 그녀는 그 들판을 기름지게 할 우물을 원했다.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이 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열매맺는 생활에 물이 될 “영적인 샘물“을 갈망한다는 것은 특히 축복된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들은 샘물이 없이는 결코 열매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다(요 7:37-39).

 

사람이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며” 말씀을 믿는 믿음을 행사할 때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는가! 갈렙의 헌신과 신앙은 그 외 생명을 구원하였고, 유업을 얻게 했으며, 적을 무찔렀고, 앞으로 을 수십 년 동안 그의 가족을 풍성케 할 수 있었다.

 

주님은 분명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복자들이 되기를 기대하신다. 사실상 바울은 우리가 “정복자보다 나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롬 8:37). 여호수아와 갈렙은 육신적인 무기로 정복하였으며 물질적인 유업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무기로 정복하며(고후 10:3-5),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유업을 주장한다(엡 1:3).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복자들이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요일 5:4).

 

우리는 세계를 정복해야 하며(요일 5:5), 거짓 교리들을 정복해야 하고(요일 4:1-4), 그 뿐만 아니라 사악한 자를 이겨야 한다(요일 2:13-14).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의 적인 사단과(눅 11:21-22) 세상(요 16:33)을 정복하셨으므로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주님의 승리를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계 2-3장) 이긴 사람에게는 많은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에 유의하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계 21:7).

 

우리는 갈렙과 같은 방식으로 적을 이기며 유업을 주장한다.

(1)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넘겨 드려야만 한다.

(2)우리는 그의 약속들을 알아야만 하며 믿어야 한다.

(3)우리는 마음과 뜻을 유업에 고정시켜야 한다.(4)우리는 승리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존해야만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