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사사기4 - 삿 13~16장(삼손)

JORC구원열차 2009. 6. 24. 15:34

3. 삿 13-16장 / 삼손

 

이처럼 비극적인 사건은 성경에서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 적을 정복하기 시작한 지 20년이 걸리게 하시고 최후에는 혼자서 정복하게 하신 사람이 여기 나온다. 삼손의 역사는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나오는 바울의 경고에 대한 좋은 예증이다. 왜냐하면 삼손은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11장 3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인하여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행한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삼손이 죄에 빠지는 단계들과 최후의 비극으로 빠져 들어가는 단계들을 주목하자.

 

1. 자신의 유업을 경멸하였다 (삿 13장)

 

삼손은 믿는 부모를 둔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의 부모에게, 또한 그 민족에게 있어서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소서“(13:8/13:12)라고 기도하였으며, 그의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아들에게도 똑같은 경외감을 심어 주려 하였다. 이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가지고 나아갔으며, 주의 놀라운 약속들을 담대히 믿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훌륭한 몸을 주셨으며 재치와(여우를 가지고 술책을 쓴 것을 주목하라. 15:4-5),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강하게 하신 성령의 부여하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삼손을 나실인(“성별된 사람“)이 되도록 부르셨는데, 이는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졌다는 뜻이다. 민수기 6장에 의하면 나실인은 독주를 마시거나, 죽은 자의 몸에 손을 대어서는 절대로 안되며, 헌신의 표시로서 머리를 깎지 않아야 했다.

 

삼손은 이러한 놀라운 모든 유산을 경멸하였다.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임무를 성취하는 대신 자기를 즐기는 삶을 택했다. 하나님께서 젊은이에게 놀라운 유산과 위대한 기회를 주시는데 그가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2. 그는 부모를 무시하였다 (삿 14:1-4)

 

영적인 쇠퇴를 알아보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삼손이...내려가서”(14:1)라는 말은 영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보아 맞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경계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적의 지경으로 들어가 이방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주신 구별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법칙들을 무시하는 편을 택했던 것이다(출 34:16/신 7:3/고후 6:14-18/창 24:1-4 참조).

 

그가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태도임을 주목하자. 아버지가 하나님의 법을 상기시켰으나 삼손은 그것을 무시하고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라고 말했다. 삼손은 비록 하나님이 그의 죄를 지배하시고 그것을 블레셋을 약화시키는 데에 사용하신다 할지라도, 자기의 욕망이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았다(4절).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경건한 부모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멈추어서 조심스럽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3. 그는 자기의 몸을 무시하였다 (삿 14:5-20)

 

그 시대에는 부모가 결혼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약혼과 결혼 사이에는 몇 개월의 기간이 있었다. 삼손이 사자를 만나자 하나님은 그가 비록 문제를 일으키러 가는 중이었지만 사자를 이길 힘을 주셨다. 결혼을 위하여 몇 달 후에 돌아왔을 때는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발견하였다. 민수기 6장 6-9절은 나실인은 절대로 시체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되어 있음을 알려 준다. 그러나 삼손은 그 꿀을 얻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자신을 더럽혔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유행하는 서적, 영화, 세상적인 기관들일 수도 있다. 말하기는 유감스럽지만 삼손은 그 죄를 부모들에게 전가했으며, 이 일에 관하여 친구들과 잔치하는 자리에서 수수께끼를 만들었다! 나실인으로서 또는 유대인으로서 그는 세속적인 블레셋 결혼식에는 참여할 권리가 없었다. 이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죄의 씨는 그의 마음에 이미 심겨졌다.

 

4.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경시하였다 (삿 15장)

 

본 장은 승리처럼 보이지만 이 “강한 자”가 물이 없어 극도로 갈증을 느끼는 가운데 끝난다. 삼손은 블레셋의 들을 불태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보복을 하여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식구들을 불태웠다(15:6/14:15). 그러자 삼손은 그들의 죽음을 복수하였고 이 일로 인해 자기 백성이 삼손에게 등을 돌리게 되어 그를 적에게 넘겨주었다(1-13절). 하나님께서 그를 구해 주셨지만 자신이 얼마나 약한 가를 보여 주심으로써 삼손을 경고하셨다. 우리는 삼손의 기도를 두번 보게 된다. 여기서 물을 구하였고(18-20절), 16장 28절에서는 블레셋을 멸망시킬 힘을 구한다. 그의 부모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삼손은 그들의 본을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기서 그를 경고하셨으나 삼손은 그 경고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5. 그는 고의적으로 죄와 더불어 장난을 하였다 (삿 16장)

 

그는 이미 한 여자로 인하여 문제를 일으켰었는데 이제 또다시 일을 벌이며 적의 지경 깊숙이 가사(Gaza)에까지 여행을 하였다. 하나님은 또다시 적에게 거의 잡힐 뻔하게 하심으로 그를 경고하셨으나 삼손을 회개하기를 거절하였다. 들릴라가 그의 생활에 개입한 것도 이 때이며 그의 운명으로 그를 인도해 갔다. 소렉의 골짜기는 그의 집 근처에 있었으나 삼손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다.

 

이 나실인이 사악한 여인의 무릎에서 잠자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만 이것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님의 권고를 거절하고 자기의 길로 갈 것을 선택할 때 생기는 일이다. 들릴라는 세 번 삼손을 묶었는데 세 번 그는 거짓말을 하였다. 그 때마다 적들이 그를 공격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잠언 7장 21-27절을 읽어보면 삼손이 여기서 왜 항복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달아나야 할 때에 그는 자고 있었다. 마태복음 26장 20-41절에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주신 경고를 기억하자. 삼손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진실에 가까와진 것을 주목하자! 죄를 가지고 장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이야기의 남은 부분은 하나님께 그의 생애의 길을 맡기지 않으려는 신자의 비극적인 종말을 보여 준다. 삼손은 이제부터 잃기만 한다. 나실인으로 헌신한 표시였던 그의 머리카락을 잃고(이 헌신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으므로), 힘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기운이 다할 때까지도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종이 주님의 뜻을 벗어나서 주님을 섬기려 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그는 아마도 이전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참하게 실패하게 된다.

 

다음으로 그는 빛을 잃었다. 그들이 눈을 뽑아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유를 잃었다. 그들이 족쇄로 그를 채웠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께 유용함을 잃었다. 이전처럼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지 못하고 곡식을 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21절이 눈멀고, 묶이고, 곡식을 가는 죄의 결과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일들은 삼손이 자기의 축복을 경홀히 여기고 그의 부모를 무시했을 때 시작되었다!

 

삼손은 또한 간증을 잃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의 웃음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신(魚神)인 다곤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가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못했다. 삼손은 회개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셨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으며 삼손은 한 번 더 적에게서 승리를 얻을 힘을 달라고 구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나, 다른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중에 그의 생명도 빼앗겼다. 사울이 그러했듯이 삼손은 내던져졌다. 그는 죽을 죄를 범하였으며, 결국 무대에서 끌어 내려질 수밖에 없었다(고전 11:30-31/요일 5:16-17).주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외 시체를 구하여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에 묻었는데, 이곳은 그가 자기의 사역을 시작한 곳이었다(13:25).

 

삼손은 다른 사람들을 정복할 힘을 가졌으나 자기를 정복할 수 없는 사람의 본보기이다. 그는 블레셋의 들을 불태웠으나 자신의 육욕의 불을 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사자를 죽였으나 육신의 정욕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는 인간이 그에게 씌운 굴레를 쉽게 벗어날 수는 있었으나 그의 영혼에서 더욱 강력해지며 점점 자라는 죄의 쇠사슬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는 민족을 이끌어 가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일하기를 더 좋아하였다. 그 결과로써 영원한 승리를 뒤에 남겨 놓지는 못하였다. 그는 자신이 파괴한 것으로 인해 기념이 되고 있으며 자신이 세운 일로 기념이 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훈련과 방향 감각이 부족했으며 이러한 것이 없으면 그의 힘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역량 속에서 초기에 뛰기 시작한 맥박을 점검하지 못했으며, 20년 후에는 그 맥박이 그를 죽게 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멸망시키는 일은 후에 사무엘과 다윗에게 남겨졌다. 사무엘은 한 번의 기도로 삼손이 20년을 싸우면서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성취하였다(삼상 7:9-14).

 

이어서 핵심 성경 연구(구약) <룻기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