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왕기하 1-4장 / 엘리사의 사역의 시작
이제 우리는 엘리사의 생애와 사역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은 종종 대조된다. 엘리야는 극적인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맹렬한 선지자였던 반면에, 엘리사는 그의 백성에게 개인적인 방법으로 사역한 목회적인 선지자였다. 엘리야는 거친 언덕에, 엘리사는 평화로운 골짜기에 속해 있었다. 엘리야는 외로운 일군이었으나, 엘리사는 백성들과의 교제를 즐겼다. 포괄적으로 말해서, 엘리야는 그 민족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려 한 심판의 선지자였으며, 엘리사는 그 민족이 멸망하기 전에 “남은 자”을 불러내는 은혜의 사역자였다.
1. 엘리야를 계승한 엘리사 (왕하 1-2장)
1) 불의 심판(1장)-
열왕기상 22장의 마지막 세 구절은 사악한 아하시야왕이 최근의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 그는 모압의 반역에도, 낙상함으로 인한 상해들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그가 나올지 안 나올지의 여부를 알아오도록 이방 신들에게 사람을 보내기조차 하였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엘리야는 “왕이 죽으리라”는 참된 메시지를 전하도록 사자들을 되돌려 보내고는 다른 곳으로 피했다(요 12:35-36 참조). 엘리야의 하나님께 순복하기보다도 왕은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하늘로부터 내린 불이 그들을 죽였다. 이 심판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으로, 엘리야가 한 일이 아니었다. 선지자의 동기는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데에 있었다(눅 9:51-56 /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오용함). 세번째의 군대는 비록 믿음이 아닌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라도 겸손하게 자신들을 낮추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접근하도록 허용하셨다. 두려움 없이 엘리야는 운명의 메시지를 전했고, 왕은 죽었다.
2) 불병거(2장)-
열왕기상 19장 20절에서 엘리사는 엘리야를 충실하게 따르겠다고 약속했으며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따랐다. 그를 섬긴 지 10년이 되자 엘리야는 떠나야 할 때임을 알렸다. 만약 엘리사가 안일한 길을 택하여 뒤에 쳐져 있었다면 그는 9-15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명에는 충성을 다해야 한다(“갑절”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신 21:17 참조). 수 년전에 엘리야는 광야에서 죽기를 구하였었다. 하나님이 이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대신 선지자는 회오리바람 가운데 하늘로 올리워갔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최선의 것을 주신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올리워진 그의 주인을 보았으며 영감을 갑절이나 받았기 때문이다. 12절에서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군대와 비교한다. 그들의 안전에 있어서 그는 말들과 병거보다도 더 중요하다(13:14 참조).
엘리사는 엘리야의 외투를 붙잡았으며(왕상 19:19 참조), 능력을 주실 것을 위해 하나님을 담대히 의지하였다. 엘리야와 함께 요단강을 건넌 것과 자신이 직접 믿음의 발을 내딛은 것은 확실히 별개의 것이었다. “엘리아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엘리야도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엘리야의 외투로 행한 그의 첫 기적은 선지학교의 젊은이들에게 엘리사가 참으로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입증한 것이 되었고, 그들은 엘리사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엘리야가 정말로 사라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16-18절에서 우리는 그들의 불신앙과 어리석음이 기록된 것을 본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부활과 육체로 승천하셨음과 성도들이 미래에 휴거할 것을 의심하는 “자유주의”설교자들을 예증하는 것이다. 소금으로 물을 고친 것은 3년 반동안 물의 공급을 멈추게 했던 엘리야의 기적과는 상당히 대조가 된다.
23-25절은 성경을 주의 깊게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라 젊은이들이었음과 그들 스스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음을 기억하자. 벧엘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왕상 12:28-33). 거룩한 장소가 오염되었으며, 실제로 이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그들 중의 42명이 함께 만났다는 것은 조직적으로 계획된 일임을 암시한다.
선지자를 “대머리”라고 부른 것은 모욕 중에서도 가장 천한 모욕중의 하나였다. “올라가라”는 것은 엘리야가 하늘로 휴거한 것을 조롱하는 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곰들이 그들을 “찢었는데”, 죽은 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이는 좀 더 알고 배워야 할 사람들이 경박하게 조롱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다.
2. 민족을 구한 엘리사 (왕하 3장)
유다의 여호사밧이 스스로 아합의 사악한 아들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죄였으나, 그는 이 죄를 범하였다. 이들 두 사람은 모압과 싸우기 위하여 또다른 적인 에돔과 결탁하였다. 이스라엘의 여호람은 모압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의 군대가 유다와 에돔의 영토를 통과해야 했으므로 그들과 연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마실 물조차 고갈되었다. 여호사밧은 엘리사와 여호와께로 돌이켰다. 엘리사는 다윗의 자손(여호사밧)을 의식하여 도움을 베풀었으나, 아합의 불경건한 상속자(여호람)를 인정하지는 않았다(13-14절).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그들이 판 도랑에 물을 공급하셨으며 그들 앞에 있는 대적들을 파하셨다. 이 일은 다음과 같은 이상한 사건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희망을 잃은 모압의 왕은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하여 번제를 드렸으며, 유다와 에돔은 이스라엘을 향해(여호람) 대단히 분개하여 전쟁을 철회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와 동맹을 맺지 말았어야 했다. 나라를 구한 것은 사악한 왕이 아니라 충성된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3. 백성을 섬기는 엘리사 (왕하 4장)
“숨어있는 기간” 동안에 엘리야는 백성들을 도왔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주된 사역은 아니었다. 엘리야는 근본적으로 불의 선지자였으며 엘리사는 백성들에게 “목회자”적인 사역자였다. 우리는 가난한 백성을 돕기 위하여 몇 가지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1) 선지자와 과부(1-7절/ 레 25:39-46 참조)-
유대인들은 빚에 관한 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으며 율법에 순종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할 때 우리의 가진 것을 취하여 우리의 필요에 대처하신다(출 4:2). “문을 닫으라!”는 말은 마태복음 6장 6절을 상기시킨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에는 종종 “문을 닫았던 것“에 주목하자(21, 33절). 하나님은 그녀가 믿음으로 가져올 수 있는 만큼의 많은 그릇들을 채우셨고, 그녀에게 그릇을 빌려 주었던 사람들도 역시 유익을 얻었을 것이다. “나의 하나님께서 너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다.”
2) 수넴여인(8-37절)-
여기에는 두 가지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의 남편이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주셨으며, 그 아이가 죽자 생명을 되살려 일으키셨다. 수넴은 갈멜에서 7마일(약 11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집을 자주 지나다녔던 엘리사는 마침내 그들 부부와 더불어 떡을 떼도록 초청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선지자가 엘리야와는 달리 사회적인 경향이 있는 것을 본다. 세례(침례)요한과 그리스도의 관계가 이와 비슷하다. 요한은 엘리야처럼 홀로 살았으나, 그리스도는 엘리사처럼 가정을 방문하며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겼다. 그 여인은 참으로 영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방문하는 선지자를 위하여 지붕에 “선지자의 다락방”으로서 특별한 방을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상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한 아들을 주셨다. 그러나 그 아들은 들에서 심한 괴로움을 당하였으며(일시병일수도 있다) 죽은 채로 집으로 옮기워졌다. 어머니는 실망하지 않고 즉시 낙타를 타고 선지자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선지자의 종 게하시와는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게하시는 그 아이를 살리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이미 마음에 자리잡은 탐심 때문일 것이다. 이 탐심은 나중에 드러나게 된다(5:20- 이하). 게하시가 그녀를 물리치려고까지 했었던 것을 주목하자(27절/ 마 14:15/마 15:23). 엘리사 자신이 여행을 하여 그 아이를 일으켜야만 했다.
34절은 한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노력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실례이다(왕상 17:21- 이하 참조). 일곱번의 재채기는 정상적인 호흡작용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그 소년은 살아서 일어났다.
3) 선지학교(38-44절)-
이 학교는 사무엘이 시작하였고 엘리야가 계속하였다(삼상 19:2/왕상 20:35). 젊은이들 모두가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며, 그 땅에 경쟁이 되는 배교자들의 학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2:23-25 참조).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말은 음식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설교자들은 국을 끓였다. 이 생도들 중의 하나는 그 음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나은 것으로 먹기 위하여 채소를 찾으러 나갔다. 그가 가져온 독있는 호박은 거절해야만 하는 식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국은 늘 먹는 음식이었는데 여기에 호박을 첨가시켰다. 우리는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맛을 본 후 위험한 것을 알게 되었고, 이들의 기도는 엘리사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하였다. 그는 밀가루를 떨어뜨려 독을 제거하였다.
말하기는 슬프지만 많은 대학에, “선지 학교에”, 그리고 교회에까지도 “늘 먹는 음식”에 “죽음”이 들어있다. 독있는 음식의 독을 제거하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순전한 밀가루이다. 42-44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한다. 손에 좋은 음식이 있었으나 다 돌아갈 만큼 넉넉하지 못하였다. 엘리사는 모든 사람의 필요에 대처할 만큼 음식을 늘렸다(요 6장 참조).
엘리사는 물론 기적의 사람이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그 필요에 대처할 수 있으시다. 그리고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자!
'구원의 이정표 > 핵심성경연구-구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하3 - 왕하 6~8장(엘리사의 기적들) (0) | 2009.07.01 |
---|---|
열왕기하2 - 왕하 5장(나아만의 병 고침) (0) | 2009.07.01 |
열왕기상7 - 왕상 20~22장(하나님이 아합을 처리하심) (0) | 2009.06.30 |
열왕기상6 - 왕상 19장(엘리야의 패배) (0) | 2009.06.30 |
열왕기상5 - 왕상 17~18장(엘리야의 승리) (0) | 2009.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