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열왕기하8 - 왕하 21~23장(므낫세와 요시야)

JORC구원열차 2009. 7. 1. 00:51

8. 열왕기하 21-23장 / 므낫세와 요시야

 

이 장들에서는 다섯 왕들이 언급된다. 그러나 우리는 주로 두 사람, 즉 므낫세와 요시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몬왕은 2년간 다스렸고(21:19-26), 여호아하스는 3개월만 다스렸다(23:31-33). 여호야김은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요시야와 므낫세를 비교할 때 흥미로운 일은 그들의 영적인 삶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므낫세는 죄 가운데 통치를 시작했지만 순종 가운데서 끝냈고, 요시야는 그의 생애를 순종으로 시작하여 불순종(죄)으로 끝냈다.

 

1. 므낫세의 통치 (왕하 21장)

 

1) 그의 반역(1-9절)-

역사가들은 므낫세가 경건한 히스기야와 적어도 마지막 10년 동안 함께 통치한 것으로 본다. 므낫세는 사악한 사람이었는데, 그보다 앞선 누구보다도 그리고 그 후의 누구보다도 더욱 그러했다. 경건한 히스기야가 29년을 통치했는데 경건하지 못한 므낫세가 55년을 치리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원했던 대로, 그리고 받을 만한 대로 주고 계셨다. 히스기야가 무대에서 사라지자마자 므낫세의 본래 성품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히스기야가 헐어 낸 것을 세우고 히스기야가 세운 것을 헐었다. 창세기 26장 18절에 나오는 이삭과 비교해 보라. 경건한 히스기야를 본받는 대신 므낫세는 아합왕의 길을 따랐다.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므낫세는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한다(히 11:37). 므낫세는 그의 우상 숭배를 성 전 뜰로 끌어들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경건한 본보기에 항거하여 반역하였으며 여호와의 법에 대항하였다.

 

2) 그의 이동(10-15절)-

전체의 흐름을 알려면 역대하 33장 11-20절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왕을 경고하셨으나 왕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심판과 유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이 민족에게 알렸다. 유다는 사마리아의 두려운 심판을 목격하였으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합의 집을 다루시던 대로 다윗의 집을 다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13절). 앗수르의 장군들이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데려갔으며, 그는 그곳에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3) 그의 회개(대하 33:12)-

그는 “환란을 당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실례이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 중에 사악한 왕을 용서하시고 그의 보좌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진실로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는 사람을 위하여 일하신다.

 

4) 그의 회복과 개혁(대하 33:13-20/왕하 21:17-26)-

므낫세의 회개는 피신하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는 아니었다. 일단 보좌에 돌아오자, 그는 즉각적으로 자신이 파괴했던 것들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적에 대항하여 예루살렘의 방비를 튼튼히 했으며, 우상과 이상한 제단들을 제거하였고 백성을 여호와께 인도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을 원상태로 돌리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죽기 전에 성취한 일들로 인하여 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므낫세가 히브리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래 통치하도록 하셨으나 그가 성취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상 그의 회개조차도 하나님의 심판의 손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이 민족이 포로가 되도록 하나님을 움직인 것은 므낫세의 죄였다(23:26-27).

 

므낫세왕이 경건한 삶을 살며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충실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다윗을 제외한 유다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을 것이며, 가장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그 시대에 사역을 하고 있었으나, 므낫세는 그의 생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가 회개한 후의 행한 일들을 칭찬한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시정한 것보다는 초기에 입힌 손상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왕들과 함께 장사되지 않았고 개인 동산에 묻혔다.

 

그의 아들 아몬왕은 아버지의 늦은 개심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의 죄를 본받았다. 아몬왕의 치리 기간은 불과 2년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떤 음모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후 므낫세의 곁에 묻혀졌다.

 

2. 요시야의 통치 (왕하 22-23장)

 

아몬왕의 계승자로서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올랐다. 우리가 다루는 핵심적인 사건들은 이 경건한 왕의 짧은 생애와 통치를 요약해 준다.

 

1) 구원(16세, 왕하 22:1-2/대하 34:3)-

그가 통치하기 시작한지 8년째 되는 해에 요시야는 여호와를 찾게 되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쳤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여디디야)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애칭”인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삼하 12:25). 그 이름은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레미야와 스바냐도 이때에 사역하였다.

 

2) 개혁(20세, 대하 34:3-7)-

왕은 이제 그 성과 나라에서 므낫세와 아몬의 우상 숭배를 정화시킬 수 있는 성숙한 나이가 되었다. 요시야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전을 복구하는 것이었고 민족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순종을 하기에 앞서 과거의 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시야의 부흥운동”은 표면적인 것이어서 백성들의 마음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요시야의 죽음에 임하여 많이 울었지만, 그가 이른바 “부흥 운동”에 대해서 젊은 왕을 칭찬한 것은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왕과 그의 고문들은 진지했으나 백성들은 따르지 않았으며, 마음은 우상 숭배에 머물러 있었다.

 

3) 복구(26세, 왕하 22:3-23:28/대하 34:8-35:19)-

우상들을 파괴하기는 했으나 요시야는 여호와를 참되게 섬기는 일을 재개하는 데 집중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재건을 해야만 한다. 그는 제사장들에게 돈을 모으도록 명령했으며, 성전을 수리하였다.

 

재건을 성전을 수리하던 중, 대제사장은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오래 전에 버려졌던 모세의 율법 사본 하나를 발견하였다. 이들은 헌물들을 다루다가 그 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책이 은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진 것에 유의하자. 이것은 하나님의 전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었다. 요시야는 율법을 읽는 소리를 듣자 즉각적으로 유다가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여호와께 물었다. 여선지자 훌다는 그 성의 “둘째 구역”(“College”: 22:14)에서 살았으며, 근심하는 왕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메시지의 내용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나, 요시야 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케 하였으므로 심판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요시야는 즉시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나라의 장로들과 상의하였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하는 대 예배를 주선하였다. 그는 그 땅의 부패를 일소하는 데에 계속해서 노력하였고, “도벳”(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사람들은 여기서 몰록에게 자기의 자녀들을 제물로 불태워 바쳤다)을 더럽혔다. 왕은 그 골짜기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만들었으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게힌놈)란 이름은 신약에서 “게헨나”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지옥을 생생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올리브산은 “퇴폐의 산”이었으나(23:13), 요시야가 이를 회복시켰다. 그의 일소 기간 동안에 요시야는 사악한 왕 여로보암의 제단을 들추어 내었고, 또한 그에게 경고하였던 선지자의 무덤도 찾아냈다.

 

이렇게 하여 요시야는 열왕기상 13장 1-5절에 나오는 예언을 성취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게 돌아가는 일이 결코 없다. 왕은 성전과 율법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그 민족이 오랜 동안 소홀히 해 온 유월절도 회복하였다. 그는 자기의 백성이 “값으로 산 바가 되었음”을 기억하기를 원하였다.

 

요시야의 개혁과 복구가 성취한 일은 무엇인가? 요시야의 시대에는 평화와 축복이 있었다. 그러나, 므낫세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한 본래의 약속은 철회되지 않았다(22:26-27). 요시야의 거룩한 생활과 사역은 수 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의 손을 유보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포로로 유배당할 일이 닥치고 있었으며 아무도 이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4) 암살(31세, 왕하 23:29-37/대하 35:20-26)-

아마도 애굽의 군대는 바다를 통해 와서 블레셋 해변에 상륙한 것 같다. 바로는 그가 유다에 대항하여 싸우지는 않을 것이며, 다만 앗수르를 공격하는 중임을 명백히 하였다. 요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지 않았고, 사실상 하나님의 뜻에 고의적으로 불순종한 것 같다(대하 35:22 참조), 그의 변장은 그를 보호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었다.

 

스가랴 12장 11절을 보면 요시야를 위하여 므깃도에서 큰 곡성이 들렸었다는 암시가 있다. 왕은 잠언 20장 3절과 26장 17절을 마음에 간직했어야 했다. 아마도 이때에 유다는 앗수르의 동맹국이었고, 함께 행동할 의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바로는 요시야와 전쟁하지 않게 되기를 더욱 바랬던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바로가 그를 퇴위시키고 결박할 때까지 겨우 3개월을 다스렸다. 바로는 요시야의 아들들 중에서 엘리야김을 선택하여 왕을 삼고 “여호야김“(여호와가 그를 일으킬 것이다)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우리는 다음 연구에서 그의 생애와 치리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