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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에스라2 - 스 6~10장(공사가 필역됨)

by JORC구원열차 2009. 7. 3.

2. 에스라 6-10장 / 공사가 필역됨

 

1. 성전의 완성 (스 6장)

 

다리오는 주전 522년에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사 대제국을 건설한 사람이다(이 사람은 다니엘 5, 6, 9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메대의 다리오가 아니다). 그는 자기의 속국들에 대해 관용적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였다.

 

6장 3-5절에는 에스라 1장 1절에서 언급된 고레스의 첫 칙령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나온다. 다리오는 이 첫 칙령에다 자신의 칙령을 첨부하여(6:12) “총독은 유대인들이 하는 일을 지원해야만 하며 반대가 없도록 해야 할 것과, 물자들이 왕의 보고에서 공급되어져야 함”을 알렸다. 물론 다리오는 친절히 해야 할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왕의 건강과 가족의 복지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총독은 서둘러 이 칙령을 준수하였다. 학개와 스가랴는 영적인 격려를 제공하였으며, 총독은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하여 일이 완성되었다. 유대인들은 기쁨으로 여호와의 전을 헌당하였다. 물론 이 건물은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크기나 영광은 지니지 못했다. 이들은 유월절을 지켰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왕의 마음을 바꾸셨고(잠 21:1 참조), 이 민족은 성전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6장과 7장 사이에 58년의 기간이 있는데, 에스더서는 이 기간에 해당된다.

 

2. 예루살렘에 온 에스라 (스 7-8장)

 

7절에 나오는 아닥사스다는 465년에서 435년 사이에 바사를 통치한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이다. 즉위 7년에 그는 제사장이며 서기관인 에스라를 예루살렘에 돌아가도록 허락하여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돕도록 하였다. 1-5절에는 에스라의 족보가 나오는데 이는 그가 아론 집안 출신의 제사장임을 증명한다. 그는 율법에 대해 박식한 학자였으며 서기관이기도 했다(렘 8:8 참조). 에스라가 왕에게 허락을 요청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복구된 민족의 남은 자들에게는 영적인 인도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거의 1000마일의 여행을 하는 데에 4개월이 걸렸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그 위에 있었으며 그는 성공하였다(느 1:10/느 2:8/느 2:18 참조).

 

왕은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함께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렸다. 이 유대인들은 또한 여호와의 일을 지원할 자의적이고 막대한 헌금을 바벨론에서 가져가야 했다. 다리오는 또한 약 십만 달러 쯤 되는 “경비”(20-22절)를 왕의 보고에서 가지고 가게 했다. 에스라의 임무는 그 땅에 질서와 종교적인 예배를 설립하는 것이었다(25-26절). 7장 27-28절에 나오는 에스라의 독백은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에 대하여 여호와께 얼마나 감사해 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8장은 예루살렘으로 오는 위험한 여행길에 그와 동반한 가족들과 사람들의 명단을 열거한 것이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레위인의 임무이기 때문에, 레위인의 함께 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불행히도 에스라는 몇 명의 레위인을 징발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원해서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5-20절).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했는데 이는 하나님만이 그들의 여행을 성공시키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민족의 간증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 것이므로 군사 호위가 필요치 않다고 말하였다. 그들의 금식과 기도는 오늘날 우리들을 위하여 좋은 본보기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셨던 것이다(21-23절).

 

에스라는 24명의 경건한 자를 택해 보물을 옮기게 하고(24-30절)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하나님께서 계산하실 것임을 그들에게 경고하였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청지기에 대한 아름다운 상징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보물들을 맡기셨으며,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458년 4월에 출발하여 7월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하루 평균 7마일(약 10km)의 여행을 한 것이다. 백성들은 그들의 보물들을 분담하여 담당했으나 각자가 풍성스러웠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에스라의 경고를 마음에 두었던 것이다. “삼가 지키라”(깨어 지키라/8:29)!

 

3. 죄의 고백 (스 9장)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어떤 교사라도 말씀 자체가 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보다 더 빨리 이 일을 해낼 수는 없다(히 4:12). 에스라는 유대인들이 이방인 이웃들과 섞여 살면서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것을 알게 되었다(신 7:1- /출 19:5-6/시 106:35 참조). 에스라는 이 보고를 듣고 너무도 마음에 부담이 되어 슬픔과 회개 가운데 공식석상에게 그의 옷을 찢었으며, 저녁 희생제사 시간이 될 때까지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은 이 어리석은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까 두려워하며 떨기 시작하였다(사 66:1-2 참조).

 

에스라의 고백 기도는 다니엘과 느헤미야의 기도와 비교된다(단 9장/ 느 9장). “내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라고 에스라는 기도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과거의 죄를 돌아다 보며(7절) 그 민족이 유배를 당함이 마땅했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구원하셨고 그의 은혜로써 회복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다시금 죄를 범하고 있다. 말하자면, 왕국의 미래는 천막 못에 걸린 옷과 같은 것이었고, 이스라엘의 회복된 그루터기 역시 이처럼 연약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방어할 수 있는 성벽을 주셨고(9절), 은혜롭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에스라가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들을 벌하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으니까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가 하나같이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간구한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역대하 7장 14절이 여기에 적용된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이 기도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민족 전체가 그 죄들에 직면하여 여호와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했다.

 

4. 민족의 정화 (스 10장)

 

예루살렘에 있었던 종교의 부흥운동에 대한 기사는 느헤미야 8-13장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에스라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남자들 중에 더러는 공개적으로 그를 찾아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여호와의 율법에 불순종한 것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세워 부정한 아내들을 내버리기도 하였다. 만일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케 하여 죄를 고백하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참으로 큰 부흥을 이를 것이다.

 

그 결과로,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든 백성을 불러 모으도록 은 땅에 포고를 내리게 되었다. 죄가 있으면서 오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그 땅에서 자기의 위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때는 주전 457년 12월 20일이었으며, 많은 민중이 그 계절에 내리기 마련인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모여 들었다. 백성들은 비로 인하여 몸을 떨었을 뿐 아니라 여호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도 떨었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내렸다. “죄를 고백하라. 그리고 이방인 아내들을 버리라.” 이것은 회개와 배상이었으며, 이 두 가지는 병행하는 일이었다. 백성들은 순종하기로 뜻을 모았으나, 그 문제를 하루에 해결하기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시인하였다. 백성들은 지도자들이 그들의 가정을 바로잡고(14절) 바른 일을 행하며, 죄에 대해 민족을 정화하는 일에 에스라를 지원하도록 제안하였다. 15절은 네 사람만이 이러한 제안에 “반대하고 나섰으며” 남은 지도자들은 이 제안을 받아 들였다. 우리는 언제나 100퍼센트의 협력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특히 징계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민족을 정화하는 일은 12월부터 4월까지 계속되었다. 18-44절은 17명의 제사장과 10명의 레위인, 87명의 다른 사람에게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 죄가 발견되었음을 시사한다. 제사장들이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타락할 때, 일반인들에게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조사가 너무도 철저하였기 때문에 이방인 어린이들은 드러나는 대로 추방되었다. 물론 유대인 남편들과 아버지들은 추방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하여 대책을 마련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더 상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개혁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 25년 후에 느헤미야는 똑같은 문제에 부딪혔다(느 13:23- 이하). 이것은 반복된 죄였으며 반복된 징계가 요구되었다. 하나님의 일이 번영하려면 하나님의 종들은 “깨어 기도해야” 한다. 백성들을 개혁하지 않은 채 성전을 다시 건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에스라가 죄악된 민족을 하나님께로 되돌리기보다는 차라리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

 

이어서 핵심 성경 연구 <느헤미야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