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전도서2 - 전1-2장(문제제기)/3-10장(문제논의)/11-12장(문제결론)

JORC구원열차 2009. 7. 3. 15:07

전도서

 

본 서의 제목으로 표기된 전도서(ecclesiastes)라는 단어는 “총회”를 의미한다. 유대 백성들이 총회로 모여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하는 솔로몬 왕의 말에 청종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이 총회에 있어 솔로몬은 설교자 또는 토론자이며(1:1-2/1:12/7:27/12:8-10), 그는 “인생은 과연 살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당신은 이보다 더 실제적인 주제를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 논하기에 더 적절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솔로몬은 왕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왕이며, 지혜와 부로써 충분한 삶의 체험이 가능했던 사람이었다. 이 짧은 고찰을 통하여 우리는 이 흥미로운 책의 주안점들을 단지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개요를 참조하라.

 

1. 문제의 제기 (전 1-2장)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여 솔로몬은 이에 대해 논하고 있다. 1장 1-3절에서 그는 첫번째 결론으로서 “생은 살 가치가 없으며 삶이란 헛된 것(공허한 것)이라”고 선포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인간은 커다란 바퀴의 톱니에 지나지 않는다(1:4-11).

세계의 방대함에 비교해 볼 때 인간은 무엇인가? 자연의 모든 것은 지속되고 한 세기가 가면 또 한 세기가 오지만 인간은 시간의 짧은 영역을 차지했다가 죽는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인다!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솔로몬은 이 책에서 헛되다는 말을 37회나 사용한다). 삶은 이처럼 짧고 인간은 이처럼 무의미한데, 왜 사느라고 괴로움을 당하는 것인가?

 

2) 인간은 생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1:12-18).

솔로몬은 인간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나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을 때 좌절하고 당황하게 되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자신의 극단적인 무지를 시인하게 될 뿐이었다.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일일까?

 

3) 인간의 부와 쾌락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2:1-11).

솔로몬은 부와 쾌락과 학식과 교양과 명성을 한 몸에 지녔으나 이러한 것들이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지속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13-21절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알아보라.

 

4) 인간은 결국 죽어야 하며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낸다(2:12-23).

한 가지 일(죽음)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부자나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임한다. 인간은 온 생애를 수고하다가 죽으며 그의 부는 다른 사람들이 즐기도록 남겨 두고 간다! 이러한 일이 공정한가?

 

이러한 네 가지 논점은 하나의 큰 결론으로 인도해 가는 듯하다. 즉, 인간이 산다는 것은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내지는 않았다. 2장 24-26절에서 그는 현재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들을 받아들여 누리고 이러한 축복들로부터 유익을 얻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서 바울이 권면하는 것과 일치한다. “오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완전한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오늘을 넘어 저편으로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음의 여덟 장에서(4:1/4:7/ 9:11)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그리고 그의 논점들을 보다 심오하게 다루어 간다.

 

2. 문제의 논의 (전 3-10장)

 

1)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3장).

하나님은 인생을 균형있게 하셔서 출생과 죽음, 슬픔과 기쁨, 만남과 헤어짐을 조정하신다. 이렇게 하시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즉,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11절), 인간이 자기가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12-13절).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영원성”을 주셨다(11절). 이 말은 세상의 일들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애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야 하며 그의 목적에 따라서 그가 “재료들을 섞으시도록” 양도해야 한다.

 

2) 하나님은 그의 뜻에 따라서 부하게 하신다(4-6장).

이 장들에서는 부의 의미를 논의한다. 왜 어떤 사람은 부유한데 다른 사람은 가난한가? 세상에 불공정과 불평 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불확실한 부를 신뢰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부를 위하여 살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부를 사용하라.

 

3) 하나님의 지혜는 생명을 통하여 우리를 안내한다(7-10장).

“지혜”와 “지혜로운”이란 단어는 7-12장에서 35회 사용되고 있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계획을 통찰할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은 그의 뜻을 알고 행하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실망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가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라.

 

당신은 솔로몬이 각 부분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즐기는 것과 죽음의 실재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간파하였는가?(3:12-21/5:18-6:7/8:15-9:4 참조). 인간은 죽을 것인데 왜 일하고, 재물을 저축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괴로움을 당하는가? 그러나, 솔로몬은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말한다. 11-12장에서 솔로몬은 그가 의도하는 바를 설명한다.

 

3. 문제에 대한 결론 (전 11-12장)

 

솔로몬은 이미 결론짓기를 인간은 “수레바퀴의 톱니”가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와 낙을 즐기는 일이 잘못은 아니라고 하였고,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행복한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11-12장에서 솔로몬은 세 가지 실천적인 권면으로 전체 문제를 종합하고 있다.

 

1) 믿음으로 살라(11:1-6)-

이 생에서 환경이란 결코 이상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대로 전진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라. 만일 적절한 기회나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면 기회를 잃을지도 모르며, 이런 사람은 흐르는 물 위에 빵을 던지는 사람처럼 바보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실 것이며 그것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2) 인생은 끝이 있음을 기억하라(11:7-12:7)-

이것은 하나의 병적인 제안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현실관이다. 어느 날 당신은 죽을 것이므로 현재의 삶이 당신의 최선이 되도록 하라. “내일은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며 즐기자”는 것은 세상적인 태도이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바울은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젊은이에게 주는 세 가지 핵심적인 단어가 있다. 즉, “즐거워 하라”(9절), “떠나게 하라”(10절), “기억하라”(12:1)는 것이다. 젊었을 때에 하나님의 축복들을 즐거워하며, 슬픔을 가져오는 죄를 생활에서 떠나게 하고, 젊은 시절에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경외할 것을 기억하라는 교훈이다. 12장 1-7절은 연로함과 죽음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 나오는 서로 다른 단어들이 인간의 몸에서 어떤 부분들을 가리키는 것인지 찾아보도록 하자.

 

3)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순종하라(12:8-14)-

어느 날 심판을 받을 사람처럼 살라. 하나님의 불이 당신의 수고를 시험할 때 모두 불타버릴 것인가(고전 3:9-17)?

 

솔로몬의 결론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비추어서 해석할 수 있다(성경에서 위대한 부활장). 만일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낸다면 인생은 살 가치가 없을 것이며 모든 일들이 사실상 “헛되고 공허할”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은 죽음은 끝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도 또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영원에서 누릴 영광과 상급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생활에 달려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58절).

 

“해 아래”라는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은 헛되고 공허한 것 같다.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러나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 때는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이 50년 동안 살며 수고하다가 죽었다고 한다면, 그의 생애가 허비된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의 수고는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가 수고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죽을 때 모든 것을 잃는다.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며 이들은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고전 3:15).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삶을 사용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올 생애에서 풍성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신약의 빛으로 비추어 볼 때 전도서는 인생의 기쁨을 부정하는 “염세적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전도서는 인생에 우리가 다 설명하지 못할 신비스러운 일들이 많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어서 핵심 성경 연구 <아가서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