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사야 7-12장 /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구약 예언을 연구할 때 마음에 새겨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원리들이 있다. 즉,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겸손하게 오시는 것과 영광 중에 오시는 것을 보았으나 그 두 사건들 사이에 있는 기간 곧 교회시대는 보지 못했다(벧전 1:10-12)는 점과, 각 예언들은 제한된 역사적인 상황에서 나오게 된 것이지만 그 시대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앞에 놓여진 장들을 통하여 이러한 원리들을 찾아보려 한다. 이 선지자는 유다 역사상 가장 처절한 위기, 곧 이스라엘(북왕국)과 수리아에 의한 임박한 공격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어떤 일들이 생길 것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선지자들과 더불어 이사야도 역시 메시야의 오심을 알리고 있다! 그의 예언들에 주목하자.
1. 유다는 적들에게서 구원될 것이다 (사 7:1-16)
1) 상황(1-2절)-
앗수르는 점차 강대해져서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수리아는 군대를 연합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공격하려 하였다. 이들은 유다가 그들의 편에 가담하기를 원하였으나 유다는 동조하지 않았다. 사실상 아하스는 은밀히 앗수르와 거래하여 그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왕하 16:1-9). 수리아와 이스라엘이 공격하려고 하였고,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이 백성은 깜짝 놀라고 당황하였다.
2) 약속(3-9절)-
하나님은 이사야와 그의 아들 스알야숩(“남은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을 보내어 아하스왕을 접견하도록 하였는데 그 때 이 왕은 수로의 안전도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사야는 왕에게 희망과 신뢰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수리아와 이스라엘을 겁내지 마시오. 65년 안에 이들은 망할 것입니다!” 이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앗수르는 수리아(다메섹)를 732년에 멸망시켰으며, 이스라엘(에브라임, 사마리아)을 721년에 멸망시켰는데 이 시기는 예언된 기간 안에 들어 있었다.
3) 징조(10-16절)-
아하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징조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여 매우 위선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하스로부터 등을 돌려 다윗의 집에 징조를 보이셨다(13절). 이 징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으로 성취되었다(마 1:23).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눅 1:31-35). 14절에 나오는 “처녀”라는 단어를 젊은 여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8:8/8:10)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서, 죄가 없는 분이시다(요 1:14).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좋은 사람“이거나 “위대한 선생”일 뿐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다(요일 4:1-6).
왕과 민족에게 보내는 징조로서 이 같은 종류는 즉각적으로 성취될 수도 있다(반드시 그래야 했을 필요는 없었지만). 이 말은 기적적인 처녀 탄생이 그 당시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런 방식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유대 처녀가 결혼하여 다음 해 안에 아이를 낳는다는 뜻을 암시하는데 이 아이가 유대의 법으로 계수 대상이 되는 나이(12세)가 되기 전에 원수인 이스라엘과 수리아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징조가 주전 735년에 주어진 것이라면(추정연대) 721년에 약속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수리아는 732년에, 사마리아는 721년에 망하였다. 이 “징조의 아이”가 이사야의 아내에게서 태어났을 수도 있다. 8장 1-8절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말은 선지자의 첫 아내가(스얄야숩의 어머니, /7:3) 죽었고 이 예언을 말한 직후에 둘째 아내와 결혼했다는 뜻이다. 앗수르에 뇌물을 바치기 위해 성전 기물을 훔치는 아하스 왕의 불신앙과 속임수에도 불구하고(대하 28:24-25),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유다를 그의 적들에게서 구원하셨다. 그러나 유다는 앗수르의 노예로 남게 되었으며, 히스기야 시대의 하나님의 중재로써 이 민족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사 36-37 장).
2.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될 것이다 (사 7:17-10:34)
7장 17절부터 계속해서 이사야는 배반하는 이스라엘과 왕 베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북왕국에게 경고하기를 “앗수르가 그들에게로 와서 그들을 완전히 패망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나라는 축복으로 가득 차는 대신 빈곤과 패망에 남겨지게 될 것이었다. “징조의 아이”가 태어난 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이다(8:1-4). 그의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하기에 빠름, 서둘러 빼앗음”)였다. 그의 이름은 사마리아와 수리아의 다가오는 패망에 강조를 두고 있다(8:4).
이스라엘과 수리아가 연맹을 하였지만,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다(8:11-15). 이들은 여호와 편에 서서 주께서 그들의 안전한 바위가 되도록 했어야 했다. 이들은 율법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8:20).
9장 1-7절에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두번째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마 4:13-16 참조). 9장 1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곳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휩쓸었을 때 가장 고난을 많이 당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메시야의 빛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3-5절에서 이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즐거워하며 짐을 벗게 될 때, 전쟁의 무기들이연료로 사용되어 불탈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통치할 때를 내려다 본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한 아기가 태어나다”)과 신성(“한 아들이 주어지다”)을 본다. 그 다음은 그의 겸손한 탄생에서 영광스러운 통치로 옮겨진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실 것이며 그 때 완전한 평화가 임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그의 성품과 사역을 또렷하게 보여 준다. 기묘자는 그의 출생과 생애와 말씀, 죽음, 부활과 약속 등을 나타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영원의 아버지”, 즉 자기의 영적인 가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을 의미하며, 평화의 왕은 그가 다윗 보좌에 오르실 때 평화가 임할 것을 나타낸다.
9장 8절-10장 34절에서 이사야는 계속하여 임박한 재난을 경고한다. 또한 앗수르에게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앗수르가 멸망할 날이 올 것이다. 앗수르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예루살렘에 대항하여 모든 나라들을 모으는 적그리스도로 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능력으로 앗수르를 멸망시키신 것처럼 주님은 또한 사단과 그의 연합군을 무찌르실 것이다(계 19장).
3.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은 통일될 것이다 (사 11-12장).
분열된 민족들이 어느 날 통일될 것이며 평화 가운데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게 될 것에 유의하자(11:12). 11장 1-3절의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이다. 6장 13절에서 우리는 이 민족이 나무가 찍히듯 “베어버림을” 당하여 그루터기만 남았음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백성을 구하시려고 그 그루터기로부터 오심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법적인 자손이시며 한 사람의 유대인으로 유다의 “뿌리”에서 나셨다. 그는 “여호와의 싹”(4:2), “의로운 가지”라고 불리워진다(렘 23:5).
스가랴 3장 8절에서는 “내 종 순”이라고 하였고, 스가랴 6장 12절에서는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어의 네째르(“가지”)는 마태복음 2장 23절에서 예수님께 주어진 이름인 “나사렛 사람”과 관계가 있다.
사 복음서들은 이 “가지”에 대하여 각각 묘사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다윗의 의로운 가지”(렘 23:5)로, 마가복음 “나의 종 순”(슥 3:8), 누가복음은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슥 6:12), 요한복음은 “여호와의 싹”(사 4:2)으로 언급하였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날 구약의 모든 예언들을 유대인들에게 성취하실 것이며 영광과 승리 중에 왕국을 다스리실 것이다(롬 15:8-12).
11장 2절에서는 삼위의 각 인격이 다 나오는 것을 본다. “여호와의 영이 그(그리스도)에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성령의 일곱 가지 사역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성령께서 능력을 주신 것은 확실하다(요 3:34). 성령은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능력을 입히신다(행 1:8).
4절부터는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통치하실 때 세우실 영광스러운 왕국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는 죄가 즉각적으로 처리를 받는 정직한 심판의 때가 될 것이다. 자연을 회복될 것이며(롬 8:18-25) 더 이상 저주가 없을 것이고, 폭력과 전쟁은 사라질 것이다! “땅은 여호와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할 것이다.”(9절/ 사 6:3/합 2:14 참조). 이러한 약속들을 “영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약속들을 이스라엘에게서 훔쳐서 교회에 적용시키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다스리시게 될 문자 그대로의 왕국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약속들이다.
10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듣는다. 출애굽 당시 홍해를 횡단한 기적은 마지막 때에 다시 반복될 것이며, 이스라엘은 자기의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11-16절). 사람들은 과거에 이러한 약속들을 비웃었으나, 현재 이스라엘은 자신의 땅과 거룩한 성(예루살렘)을 소유하고 있다. 예언의 성취는 가까워진 것 같다. 12장은 이 민족이 부른 승리의 노래이다. 이들은 애굽에서 구원되었을 때 이 노래를 불렀으며(출 15:2),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건축하였을 때도 이 노래를 불렀다(시 118:14). 이들은 예수께서 평화와 번영의 세상을 통치하실 때 승리와 영광 가운데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다시 이 노래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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