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소선지서12 - 말라기(제사장들의 죄)

JORC구원열차 2009. 7. 9. 10:46

13. 말라기 / 제사장들의 죄

 

우리는 구약 선지자들 중에서 마지막인 이 선지자 이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세례(침례)요한이 마지막이었다(말 3:1/말 4:5-6/마 11:10-15/막 1:2/눅 1:17). 말라기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400년 전에 회복된 유대 민족을 위하여 사역하였다.

 

말라기서에 묘사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들은 느헤미야 13장 10-30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말라기는 제사장들에게 그의 첫번째 메시지를 주며 다음으로는 백성들 전체를 향한다. 참으로 “그 백성에 그 제사장들이다!” 이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백성들은 논쟁으로 응수하였다. “어떻게?”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에 유의하자(1:2/1:6/1:7/2:17/3:7/

3:8/3:13).

 

백성들이 하나님과 논쟁하며 그들의 죄악된 길을 옹호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말라기는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무서운 죄들을 지적한다.

 

1.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 (말 1:1-5)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백성들은 응수한다. “오,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입증하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시작이다.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였으며 금지된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 하와는 하나님께서 그녀를 붙들어 두려고 하신다고 생각하였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하여 소홀히 여김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기를 원한다. “너희의 어려운 환경을 살펴보라”고 사단은 유대의 남은 자들에게 말하였다. “곡식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왜 너희를 돌보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랑을 입증하신다. 그는 은혜로 그들의 조상 야곱을 선택하셨으며,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훨씬 나은 사람이었던 에서를 거절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에돔 사람들을 심판하셨으며(에서의 후손들), 이스라엘에게 그 땅의 가장 좋은 곳을 주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셨는데 슬프게도 그들의 죄들은 그 땅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오염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롭게 그들을 그들의 땅으로 회복시키셨으며 포로 생활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내셨다.

 

2.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여김 (말 1:6-14)

 

이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로 향하시는데 이들은 이 땅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으며 가장 좋은 것을 자신들이 취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영적인 특권들, 즉 제단에서 섬기는 일, 향을 태우는 일, 드려진 진설병을 먹는 것 등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제물을 드릴 때에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지 않았고 동물들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것들을 가져왔다(신 15:21 참조). 하나님은 그들에게 최선의 것을 주셨으며 최선의 것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10절은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할 것이다. “성전 문을 닫고 이러한 위선에 종말을 고할 수 있는 영적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은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종교를 가지고 장난을 하며” 가장 좋은 것을 그들이 가지는 것보다는 성전의 문이 닫히게 되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다. 제사장들은 먼저 자신의 몫을 받지 않으면 제사를 드리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엘리 시대에 이스라엘을 패전으로 이끌었던 죄도 바로 이러한 종류의 죄였다(삼상 2:12-17/삼상 4:1-18).

 

11절은 주님의 백성들보다 “이교도 이방인”들이 오히려 좋은 제물을 가져온다고 언급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우리들보다 그들의 믿음을 위하여 더욱 희생적인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제사장들이며, 또한 주님께 “영적인 제물”을 가져간다. 이 제물은 무엇인가? 우리의 몸(롬 12:1-2)과 우리의 헌금(빌 4:14-18), 찬양(히 13:15),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행(히 13:16)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영혼들(롬 15:16) 등이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최선을 가져오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에게 편리한 대로 하고 있는가?

 

3. 자신의 언약을 더럽힘 (말 2:1-17)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경시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레위인들과 맺으신 주님의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이기 때문이다.

 

5-7절은 이상적인 제사장 상을 묘사한다. 즉,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주님께 순종하고, 말씀을 받으며 말씀을 가르친다. 그는 그가 가르치는 것대로 살며 다른 사람들을 죄에서 돌이키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은 사실상 사람들을 곁길로 이끌어 갔다(2:8). 그리고 거룩한 언약을 더럽혔다.

 

하나님은 이들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 “나는 너희를 저주하리라.” 이것은 3장 9절과 연결되며 십일조와 헌물을 가져오지 않는 것과도 연결된다. 하나님은곡식들을 저주하셨고, 백성들은 가난해져서 제물을 제사장들에게 가져오지 않았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배가 고팠다. 하나님의 언약을 위반하고 죄를 범하자 이들은 스스로를 해친 결과가 되었다.

 

10-16절은 제사장들이 유대인 아내들과 가족들을 배반하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던 무서운 죄를 지적한다(출 34:10-17/스 9:1-4/느 13:23-31 참조). 제단에서 그들이 아무리 울지라도 상황을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다. 이들은 죄를 버려야만 하였다. 15절을 다음과 같이 읽으라. “주께서 남편과 아내를 하나로 만들지 않으셨는가? 그 까닭은 거룩한 가족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사실상, 이 민족이 이혼에 대해서 느슨해 있는 것은 그 씨, 곧 그리스도가 오실 약속에 위험이 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신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4.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다 (말 3:1-15)

 

2장 17절에서 백성은 경멸하며 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로 인하여 벌하실 것인가? 그가 정말 돌보고 계신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심으로 이에 답하신다. 이 사자, 즉 세례(침례)요한은 언약의 사자(예수 그리스도)를 알릴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오셔서 죄를 폭로하시고 뜰을 정결케 하셨다. 주님은 그의 사역을 통하여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드러내셨고, 그리하여 이들은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다. 물론 이것을 미래에 적용할 수도 있는데, 여호와의 날에 주님은 이스라엘을 정련하실 것이며 거짓된 것들로부터 참된 것들을 분리하실 것이다. 왜 주님은 그의 반역하는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가? 6절이 그 해답이다. 그분은 변함이 없으시다. 따라서 자기의 약속에 진실하시다(애 3:22).

 

백성들은 주님에게서 십일조와 헌금을 훔침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다.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이 바치는 데 충성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것들을 훔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기심으로 인해 비를 내리지 않으시고 곡식을 망쳐 놓으셨다. 물론 십일조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청지기 직분에 충성된 사람들에게 축복하시고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파산자(지불 불능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금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를 향한 신자의 사랑이 식을 때 이것은 대개 그의 청지기 직분에서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10절에 나오는 “창고”가 지교회라고 생각한다. 여기 나오는 히브리 단어는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나오는 “저축하여 두라”는 말과 정확히 같은 뜻이다. 신약에서 바치는 일에 대한 교훈은 지교회에 주는 것이며, 교회의 각 개인들에게 한 교훈은 아니었다. 바울이 교회로부터 헌금을 받은 것은 명백한 듯하다(빌 4:15-17/고후 11:8-9). 그는 교인들이 그에게 직접 내도록 조장한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십일조와 헌금을 주일의 첫날 교회로 가져오라고 하였다(고전 16:1-2).

 

교인들 각자가 마땅한 분량(수입의 10%, 십일조)을 주님께 가져온다면,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헌금을 첨부한다면 우리의 지교회가 사역을 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원을 받을 만한 많은 다른 좋은 사역들을 위해 관대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말라기는 충성된 자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함으로 그의 메시지를 끝맺는다(3:16-4:6). 그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집을 버리지 않고 서로 간의 축복을 위하여 함께 만났던 충성된 남은 자들이 있었다(3:16-18/히 10:25). “이들은 나의 보석들이다!”라고 여호와는 말씀하신다. 충성된 신자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보석들은 귀중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답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으며, 시련들과 시험들로 우리를 빛내고 계시다. 어느 날 우리는 영광 가운데 아름다움과 광채를 발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끝맺는 장에서 의의 태양으로 묘사된다. 교회에게 그리스도는 “광명한 새벽별”이시다(계 22:16/계 2:28). 왜냐하면 가장 어두운 때에 그가 나타나셔서 교회를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는 태양이시며 “여호와의 날”을 인도해 오실 것이다. 이 날은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불타는 날이며,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는 치유를 뜻하게 될 것이다.

 

4장 5-6절에 나오는 엘리야는 세례(침례)요한을 말한다(마 17:10-13/막 9:11-13).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 중의 한 사람에 대한 참고 구절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는 저주이다. 그러나 신약의 마지막에서는 “더 이상 저주가 없을 것이다”를 잃게 된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핵심 성경 연구 <구약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