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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마태복음13 - 마 12장 (용서받지 못할 죄)

by JORC구원열차 2009. 7. 9.

13. 마태복음 12장 / 용서받지 못할 죄

 

12, 13장에 나오는 사건들은 우리 주님의 사역에 있어서 어려운 날들의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왕에 대한 반역이 점점 더 맹렬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이미 주님의 사자인 세례(침례)요한을 거절했다(11:1-19).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능력의 일들을 행하셨는데도 회개하지 않았다(11:20-30). 이제 그들은 주님의 원리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논쟁을 벌이며(안식일의 문제), 주님이 사단과 맺어져 있다고 힐난하기조차 하였다. 이 장은 대결로 가득 채워져 있다.

 

1. 안식일 문제로 인한 대립 (마 12:1-21)

 

1) 그들의 비난(1-2절)-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귀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그 민족과 맺으신 특별한 언약의 표시였다(출 31:12-17).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영적인 축복과 기쁨의 날을 의식 수행의 날로 전환시켰으며, 바리새인들의 법은 이 날을 축복이 아닌 짐으로 만들어 놓았다. 안식일은 교회에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의 언약일은 첫 날, 주의 날(主日) 곧 부활의 날이다.

 

2) 그리스도의 대답(3-8절)-

예수께서는 적들에게 대답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곤 하셨는데, 여기서는 배고팠던 다윗이 안식일에 성막에 들어가 진설병을 먹었던 일에 대하여 언급하신다(삼상 21:1-). 그 때 다윗은 예수님처럼 거절당한 왕이었다. 그리스도는 또한 제사장이 안식일에 일하며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을 허용하는 율법(민 28:9-10)에 대해 언급하신다.

 

마지막으로는 선지서에서 인용하여(호 6:6)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해 주셨음과, 공허한 외적인 의식보다는 마음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그리스도는 담대하게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그가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언급하시는데, 이 말은 자신이 하나님임을 주장하는 한 방편이었다.

 

3) 그들의 두번째 비난(9-21절)-

바리새인들은 “일하지 않는 것”을 대단히 엄격하게 규율로 만들어 놓았으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도 죄라고 주장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규율이 잘못임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평범한 논리를 사용하신다. 그들은 주일에 가축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양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치 있는 것임을 주장하셨던 것이다.

 

14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멸하려는 계획을 시작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구절이다. 그리스도는 어떻게 대처하셨는가? 주님은 스스로 철수하셨다. 이것은 이사야가 메시야의 사역에 대하여 설명했던 것을 성취한 것이다(사 42:1-3). 주님은 적들과 논쟁을 하거나(19절) 그들을 심판하려 하지 않으셨다(20절).

 

어떤 이들은 20절의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가 연약하고 곤핍한 죄인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적들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 같다. 그리스도는 정당한 때가 오기까지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18절과 21절에 나타나 있는 “이방인들”이란 단어에 주목하자. 왕이 그의 민족에게 거절을 당하시고 이방인들을 향하시게 될 것을 시사하는 구절이다. 41-42절에서 이방인들이 다시 나오는데, 주님은 니느웨와 스바의 여왕에 대해 말씀하신다.

 

2. 사단에 대한 논쟁 (마 12:22-27)

 

오늘날의 세상적인 사람들과 같이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무엇인가 비판할 것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인간을 치료하는 것을 기뻐하는 대신 그리스도께서 사단과 동맹을 맺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리스도는 이 논쟁이 논리적이 아님을 지적하신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단이 스스로 싸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도 귀신을 내쫓을 수 있었다(27절/ 행 19:13 이하). 그렇다면 이 말은 그들도 사단과 결탁하고 있다는 뜻인가?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언급하신 것은(29절) 주께서 먼저 귀신들의 지도자 사단을 정복하지 않고서는 귀신들을 내쫓을 수 없다는 것인데, 주님이 사단을 이미 정복한 사실은 4장에 나온다. 이 논쟁은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무서운 말씀을 하시게 만든다.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다음의 사실들을 명심하자.

 

입술의 죄가 아니라 마음의 죄이다(34-35절). 입술의 말은 마음의 상태에 대한 증거이다. 그리고 악한 말들은 그들의 악한 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밝은 증거의 빛 가운데서 저지른 죄이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보았는데도 주님을 향하여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의지적인 죄였고, 지속적인 불신앙이며, 결정적인 거부였다. 간음이나 살인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아니다(요 8:1-11 /행 9장에서의 바울). 그러나 계속적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하며 마음이 지나치게 부패한 자리에 이르게 되면 때는 늦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세례(침례)요한의 메시지를 설교하시는 데에 주목하자(3:7).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시는데, 이들은 옛 뱀, 곧 마귀의 자녀들인 것이다(23:33). 그들은 형식상으로는 경건하였으나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다. 사단처럼 이들은 참된 경건의 흉내자들이었다(고후 11:13-15).

 

3. 표적에 관한 대결 (마 12:38-50)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는데도 이들은 표적을 구하였다(요 12:35-43). 그리스도께서는 한 가지의 표적만을 약속하셨는데, 곧 요나의 표적에 비유한 자신의 죽음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이었다. 요나가 이방인을 위한 사자였음을 기억하자.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될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요나보다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41절) 주님의 인격이 보다 위대하시다. 요나는 단지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주님은 헌신에 있어서 위대하시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의 메시지에 있어서 더 위대하시다. 주님은 심판이 임할 것을 전하지 않고 구원을 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또 다른 이방인으로서 스바의 여왕(왕상 10장 참조)을 언급하시는데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왔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유대인들은 솔로몬보다 크신 그리스도의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43-45절에 나오는 비유는 “거듭남이 없는 개혁”이라고 말하면 어울린다. 유대인들은 구약 시대에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추방되었다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다. 그 “집”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으나 비어 있었다. 이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외적으로는 도덕적인 생활을 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공허했으며 그들의 종교도 공허하였다. 결국, 사단이 다른 죄들을 가지고 그 집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나빠졌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우상을 숭배하였다. 그런데 복음서에서는 그들 자신의 메시아를 죽였다.

 

이와 같은 일들이 각 개인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지 않는데도 자기의 생애를 “개혁”하고 교회에 등록하여 존경을 받고 살기는 쉽다. 이러한 “거짓 의(義)”는 잠시 동안만 지속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사단이 그 공허한 생애를 주장하여 몰락시킬 것이다.

 

종교란 외부를 정결케 함을 뜻하나, 구원이란 새 생명과 내적인 거룩함을 뜻한다. 구원을 참으로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신앙을 고백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한 비유가 있다.

 

11장의 끝 부분에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모두” 초청하고 계신다. 그런데, 여기서(12:46-50) “누구든지”라는 놀라운 단어를 사용하신다. 주님은 본성적으로 묶여진 모든 것들을 풀어 놓으신다. 그 민족은 주님의 메시지와 주님의 사역을 반역하였다. 이제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세계적인 가족이 됨을 말씀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