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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마태복음11 - 마 10장 (첫 선교사들의 파송)

by JORC구원열차 2009. 7. 9.

11. 마태복음 10장 / 첫 선교사들의 파송

 

이 장은 마태복음의 첫 부분인 왕의 출현(1-10장)을 다루는 마지막 장이다. 1-4장에서 주님은 그의 인격을 나타내셨고, 5-7장에서는 주님의 원리를, 8-10장에서는 주님의 능력을 계시하셨다. 8-9장에서 그리스도는 연속된 기적을 통하여 그의 능력을 나타내셨는데, 이 장에서는 그의 대사들을 파송하여 기적들을 이루게 하시며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표적이 생길 때는 반드시 유대인과 천국의 메시지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기” 때문이다(고전 1:22).

 

이 장을 읽다 보면 16절과 24절의 교훈들에 변화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본 장을 모두 열 두 사도에 적용시킨다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15-23절에서 예수께서는 수 세기를 뛰어넘어 대환란 기간 중의 왕국 메시지를 다루시기 때문이다. 본 장은 과거에 살았던 사도에게 주는 교훈(1-15절), 미래의 환란기에 살 사도들에게 주는 교훈(16-23절), 오늘날의 제자들과 종들에게 주는 교훈으로(24-42절) 되어 있다.

 

1. 과거의 사도들에게 주는 교훈 (마 10:1-15)

 

그리스도는 9장 36-38절에서 추수에 대하여 기도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을 추수에 봉사하도록 파송하신다. 잃어버린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응답하심에 있어서 당신을 사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1절의 “제자”(배우는 사람들)란 말이 2절에서 “사도”(보냄을 받은 사람들)로 변화하고 있음에 유의하자. 이들 열둘은 최초의 “선교사들”이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신적인 능력을 주셨다. 주님은 언제나 봉사 사역에 부르신 사람들에게 준비를 갖추게 하신다. 배반자 유다를 포함하여 인간이란 참으로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일을 성취하시는 데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사용하신다(고전 3:4-9/롬 12:3-8).

 

그들의 사명은 명백하였다. 왕국을 전파하며 오직 유대인에게만 가는 것이었다. 세례(침례)요한도 이같이 했으며(3:2), 예수께서도 이렇게 하셨고(4:17), 이제 그의 제자들이 전국으로 다니며 메시지를 퍼뜨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일으키는 기적들은 그들이 왕을 대리하고 있다는 신임장이 될 것이다.

 

이 사명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며 또한 오늘날의 각 선교사들에게 해당되는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능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나라를 허락하신 동안에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이 물질적인 일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면 자신과 가족이 쓸 것을 준비하고 제공해야 한다(딤전 5:8).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10장 9-10절의 교훈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오늘날 선교사들이 하듯이 교회들이 자신을 후원해 준 일에 감사를 표했다.

 

끝으로, 우리는 왕국 복음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며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초청한다. 이 부분의 영적인 원리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이 될지 모르나, 특정한 교훈들로서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2. 미래의 사도들에게 주는 교훈 (마 10:16-23)

 

성경에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도약”하는 일이 흔치 않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역사를 내려다보며 대환난 기간 중에 주님의 증인이 될 유대인들을 보고 계신 것이다. 이 구절들은 열 두 사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5절에 보면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가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18절은 이방인들에게 증거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시기 전에는 성령이 그들 안에서 말씀하실 수가 없다(요 14:17). 열 두 사도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누가복음 9장 10절과 마가복음 6장 30절은 그들이 성공적인 사역을 했으며 즐거워했음을 시사한다. 22, 23절은 마태복음 24장 9, 13절과 비슷한데, 이 구절들은 명확히 말세에 해당되는 구절들이다.

 

이 부분은 “사도행전” 시대 동안에 있을 사도들의 사역, 특히 사도바울의 사역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대환란 기에 적용시키는 것이 옳다. 22절에 보면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 유의하자.

이 구절은 대환란 시기의 박해 기간 동안 그의 대사들이 믿음으로 인내해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박해는 주님의 재림으로 종말을 고할 것이다.

 

3. 현재의 제자들에게 주는 교훈 (마 10:24-42)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계신 데에 유의하자. 이 단어는 유대인에게만 제한하여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에는 오늘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와 교훈이 들어 있다. 우리는 배우는 사람들(제자)이며 일군들(종)이다.

 

1)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경고(25-31절)-

주님도 그런 취급을 받으셨음을 말씀하시며 그들이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의 특권이라고 확신시키신다(빌 1:29/행 5:41). 28절은 사단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지옥에서 몸과 혼을 멸망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돌보고 계심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하나님은 참새들조차 돌보시는 분이다.

 

2) 그리스도에 대한 공개적인 고백의 중요성(31-33절)-

이것은 그의 종들과 그들로 말미암은 개종자들에게 적용된다(롬 10:9-10/딤후 2:12 참조). 고백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고백은 구원의 자연적인 결과이다.

 

3) 복음은 사람들을 갈라놓는다(34-39절)-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시며 복음은 평화의 소식이지만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고백한 그 순간부터 적들이 생긴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리시키시며, 가족과 친구라는 가장 강력해 보이는 자연적인 연관마저도 별 중요성이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짐으로써, 십자가에 달려 그의 수치와 비난을 감수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가 없다. 우리의 생명을 이기적으로 구하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잃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가지면서도 다음 세상에서는 조금밖에 갖지 못하는 예가 얼마나 많은가!

 

4) 그리스도인의 종됨의 중요성(40-42절)-

그 종은 그리스도를 대리한다. 종을 거절하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다. 우리가 왕 중의 왕을 대리하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에 주께서 우리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아는 일은 참으로 큰 격려가 된다.

 

이 부분에서(24-42절), 그리스도는 종의 지위(24-25절), 보호(26-32절), 특권(33-38절), 약속(39절), 그리고 실천할 사항(40-42절)을 요약해서 말씀하신다.

 

● 실전적인 면

현대의 “신유주의자들”은 마치 마태복음 10장 8절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주장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이 “죽은 자들을 일으킨 일”이 있는가? 만일 이 구절이 오늘날의 “신유주의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라면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전도를 해야 하고 헌금을 받아서도 안 된다. 이렇게 하고 있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종을 거절하거나 잘못 취급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종이 주인보다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인을 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