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도행전 17장 / 데살로니가와 아덴에서의 바울
바울과 더불어 그의 2차 선교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세 가지 종류의 도시들에 갔었다는 것과, 복음에 대한 반응도 세 가지였음을 알게 된다.
1. 데살로니가-말씀을 반대함 (행 17:1-9)
이 도시는 로마로 가는 주요 도로에 위치해 있었다. 이 도시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바울은 그의 원칙대로 회당에서 시작하여 3주 동안 그들과 함께 토론하였다. 그는 성경을 펴 보였는데, 이것은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눅 24:32 참조). 몇몇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회심한 헬라인 무리들이 믿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하듯이 사단은 불신자들을 사용하여 반대하였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대하기 위하여 시장의 하류 계층의 사람들을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야손과 함께 머물렀는데, 군중들은 그의 집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만일 그가 로마서 16장 21절에 언급된 야손과 동일 인물이라면, 그는 바울의 친척이 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친절과 공격을 받은 이유가 설명된다. 그들의 거짓 고소가 누가복음 23장 2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소와 비슷하다는 점에 유의하자.
이로부터 얼마 후에 고린도에서 쓴 데살로니가후서를 읽어 보면 겨우 3주 동안에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교리의 이모저모를 폭넓게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나라(왕국)와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이 일어나는 것 등에 대해서 말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새로운 신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권고를 받아들이기는 너무 약하다고 여겨서는 결코 안된다. 바울의 사역은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불과 3주 동안에 바울이 세상을 뒤엎는다고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2. 베뢰아-말씀을 받음 (행 17:10-14)
그 날 밤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14절) 그리스도를 위해 계속 전도하는 교회를 뒤에 남겨 두고 40마일(약 64km) 떨어진 베뢰아를 향하여 떠났다. 사실상, 바울은 이들이 그처럼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 칭찬하였다(살전 1:6-10). 이것은 참된 신약적 형식이다. 개심자들을 얻어 이들을 가르치고(살전 2장),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남겨 두고 떠나오는 것이다.
베뢰아는 주요 간선 도로에 인접한 지역이 아니라 샛길에 접해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고자 하셨던 곳이다. 베뢰아에 사는 이들과 같은 유대인들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웠을 것인가! 하나님은 바울과 그의 일행에게 격려와 다시 새롭게 되는 일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셨으며, 이들은 베뢰아에서 이 두 가지를 얻었다. 오늘날 우리도 이들의 본을 따라야 한다.
- 이들은 말씀을 받았다.
-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말씀에 대한 준비가 있었다.
- 성경을 상고하고 설교자가 하는 말들을 시험해 보았다.
- 이들은 매일 성경을 공부하였다.
12절에 나오는 “그러므로”에 유의하자. 11절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때에 이들은 말씀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바쁜 동안, 사단은 문제를 일으키기에 바빴다. 사단도 그의 선교사들을 베뢰아에 보냈다. 사단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른다. 바울은 아덴을 향해 출발하였으며 이 형제들이 강건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실라와 디모데를 남겨 두었다. 이들은 계획된 대로 아덴으로 오지 못하여, 후에 고린도에서 합세하였다(18:5). 바울이 이번에 떠나온 것은 비겁한 일이 아니었다. 바울이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전진해 가는 동안 실라와 디모데는 교회를 가르칠 수가 있었다.
3. 아덴-말씀을 비웃음 (행 17:15-34)
바울은 관광객으로 아덴에 와서 구령자로 전환하였다. 이 유명한 도시는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바울이 본 것은 미신뿐이었다. 어떤 고대 작가는 아덴에서는 사람보다도 신(우상)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고 썼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했으나, 거의 또는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자, 바울은 헬라 교사들의 방식을 따라 사람들이 토론하거나 물건을 거래하기 위하여 모이는 광장(아고라)에서 메시지를 전했다.
이 당시 아덴에는 두 가지 주된 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스토아학파(stoics)의 사상은 물질주의적이며 운명론에 가까왔다. 자만심과 개인의 독립성에 근거하여 세워진 체제로서, 자연이 곧 그들의 하나님이었으며 모든 자연은 위대한 절정을 향하여 움직여 간다고 믿었으므로, 범신론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에피큐러스 학파(Epicureans)는 쾌락을 목표로 삼으며, 이성이 아닌 경험에 그들의 철학이 기초하고 있었고, 이들은 거의 무신론자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철학을 보게 되는데,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들과 직면한다. 이들은 바울을 말쟁이라고 부르며 경멸하였다.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자 이들은 그가 새로운 두 신(神)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활”은 헬라어로 “아나브스타시”(ajnavstasi")인데 아마도 이것을 이름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이들은 바울을 “아레오파구스”(Areopagus)라는 공식 법정으로 데려갔는데, 이곳은 마르스 언덕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했다. 이곳에서 바울은 위대한 설교를 했다.
바울은 “내가 보니 당신들은 매우 종교적인(“미신적”이라고 말하지 않았음) 사람들입니다“라는 정중한 말로 시작하였다. 그는 또한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에 대한 말을 사용하여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하나님을 전하는 데에 이 기회를 사용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네 가지 위대한 진리를 제시한다.
1) 그는 창조주이시다(24-25절)-
헬라 사람들은 창조에 대하여 다른 이론들을 신봉하고 있었고, 일종의 진화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성전에 사시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며, 실제로는 인간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그는 통치자이시다(26-29절)-
하나님은 나라들의 경계를 정하시고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게 만들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유지시키는 분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 바울은 그들 자신의 작가(시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28절). 이 말은 헬라의 그 싯귀가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인의 말이 하나님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다시 수완있게 그들의 신당과 우상들이 어리석고 무지한 일인 것을 지적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그는 구세주이시다(30절)-
바울이 위대한 헬라의 문화를 “알지 못하던 시대”라고 불러 백지화시키는 것을 눈여겨보자! 그들의 모든 지혜와 문화로써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고전 1:18-). 하나님은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회개한다면 용서하실 것이다.
4) 그는 심판관이시다(31절)-
하나님은 장차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심판하실 분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이 사실을 입증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거절한다면 장차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이들의 반응은 서로 엇갈려 혼합되었다. 어떤 이들은 비웃었는데 이것은 이방 문화와 철학이 언제나 보이는 태도이다. 어떤 이들은 결정을 연기하고, 어떤 이들은 믿었다. 회심자들 중에는 디오니시우스라는 탁월한 법관이 있었다.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5-31).
본 장에서는 복음에 대한 세 가지 다른 태도를 제시한다. 오늘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똑같은 태도들을 발견한다. 어떤 이들은 공개적으로 말씀을 반대하고, 어떤 이들은 비웃거나 결정을 늦추며, 소수의 사람들은 말씀을 받아들일 것이다.
바울이 충성스러운 종으로서의 길을 계속 똑바로 전진하고 있듯이 우리 또한 그래야 한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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