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사도행전17 - 행 16장(빌립보에서의 바울과 실라)

JORC구원열차 2009. 7. 16. 13:44

16. 사도행전 16장 / 빌립보에서의 바울과 실라

 

1. 새로운 조력자 (행 16:1-5)

 

바나바와 바울은 그들의 선교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끊고 각기 새로운 조력자들을 구하였다(15:36-41 참조). 바울이 아는 한에 있어서 마가 요한은 낙제생이었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이 젊은이에게 기회를 또 한 번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교리적인 면에서는 일치하면서도 실천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15:12).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유감스럽게 여기지만,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들의 실수조차도 관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라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었으며(15:22) 선지자였다(15:32). 그는 안디옥에서 바울과 함께 사역에 참여하였으므로, 서로 낯선 사이가 아니었다. 마가 요한을 대신하여 들어온 디모데는 바울이 그의 1차 선교 여행 중에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구원받은 젊은이였다(14:6-22). 디모데는 아마도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당한 고난을 목격했을 것이며(딤후 3:10-11), 그리스도인의 사역에 적합함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디모데는 바울의 마음에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바울은 그를 가리켜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나이가 많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젊은 신자들을 “양자”로 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본향으로 부르실 때에 그 자리를 메울 사람들은 누구일 것인가?(딤후 2:1-2 참조)

 

디모데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와 외조모에게서 양육을 받았다(딤후 1:5/딤후 3:15). 교회의 선지자들은 환상으로써 이 젊은이가 위대한 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딤전 1:18/딤전 4:14). 빌립보서 2장 19-23절은 디모데가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얼마나 충성스럽게 봉사했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디모데의 할례는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갈 2:1-4). 또한 회의의 결정 사항에 불순종하는 행위도 아니었으며(행 15:1-),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거침이 되는 돌을 옮겨 놓는 것이었다(고전 9:20). 디모데는 이방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그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대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2. 새로운 기회들 (행 16:6-12)

 

지도를 보고 6-8절에 언급된 장소들을 찾아보자. 바울과 그의 일행은 그들이 있던 곳에서 말씀 사역을 하였으나, 성령께서는 그들이 동쪽의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6절의 “아시아”란 흔히 알고 있는 거대한 아시아 대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소아시아라고 알고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만일 바울이 동쪽의 비두니아로 가서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유럽보다 동양이 먼저 복음을 받았을 것이며, 오늘날 그들이 선교사들을 파송했을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였다. 사도행전은 참으로 “성령의 행전”이며, 성령은 사도들의 생애를 통하여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한 환상을 보이셔서 에게해를 건너 마게도냐로 가도록 지시하셨다.

 

어떤 이들은 환상 중에 나타난 사람이 누가(사도행전의 저자)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0절에서 “그들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의사 누가는 드로아에서 그들과 합세하였다(20:6-7 참조).

 

3. 새로운 그리스도인들 (행 16:13-40)

 

빌립보는 주전 4세기에 그 지역을 정복한 마세돈 출신 빌립의 이름을 따서 붙인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의 식민지들은 사실상 이태리에서 떨어져 있는 “작은 로마”였다. 사람들은 로마의 법과 관습을 따랐으며, 회당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곳 빌립보에서 바울이 세 종류의 다른 죄인들을 만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을 본다.

 

1) 마음이 열려진 신앙심 있는 여인(13-15절)-

바울은 여인들의 기도모임에 참석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사역을 시작한다. 루디아는 부유층의 상인으로서 이방 우상 숭배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으로 변화한 여자였던 것 같다. 하나님은 바울이 유럽에 가도록 문을 열어 놓으셨을 뿐 아니라 루디아의 마음 문을 열어 놓으셨으며, 그녀는 구원을 받았다.

 

그녀는 자기의 가족과도 메시지를 나누었으며 그들 역시 구원을 받았다. 바울이 세례(침례)를 받은 새로운 이방인들을 얻었다는 사실은 그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사명을 성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젖먹이가 세례(침례)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가족”이란 단어는 말씀을 이해하고 믿어 구원을 받고 나서 세례(침례)를 받은 가정(그리고 노예들)의 구성원들을 말한다.

 

2) 귀신들린 여종(16-18절)-

바울과 그의 일행은 루디아의 집에서 살면서 그녀와 함께 기도 모임에 갔다. 사단은 언제나 주님의 일에 반대하려고 다가오며, 이번 경우에는 노예 소녀를 사용하였다. 그녀의 말이 마치 주님의 일을 증진시키려 하듯이 사도들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하게 나타난 것에 유의하자. 사단은 빛의 천사들처럼 다가와서 아첨을 하지만 그리스도는 복음을 진흥시키는 데 사단의 도움을 결코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이 증언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바울은 그것을 중지시켰다. 그 다음 부분을 보면 뱀같은 사단은 사자처럼 되어 사도들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3) 마음이 굳은 사람(19-40절)-

로마 간수가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무정한 관리였음을 상상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바울과 실라가 굴욕을 당하고 얻어맞기조차 했으나, 이 간수는 이들을 깊숙한 감옥에다 던져 넣고 발을 착고에 채워 둠으로써 고통을 더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의 일을 보러 갔으며 드디어는 밤이 되어 잠을 잤다.

 

그러나, “하나님은 밤에 찬송을 주신다”(시 42:8/시 77:6). 바울과 실라는 불평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 모임은 참으로 놀라운 간증이 아닐 수 없다. 한밤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러 임하셔서 감옥을 흔드셨으므로 모든 죄수들이 결박에서 풀려났다. 만일 간수가 죄인을 놓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된다는 뜻이 되므로, 깜짝 놀란 간수가 자살을 기도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자 같은 살인자인 사단이 다시 일을 벌인 것이다. 만일 바울이 그를 불러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간수는 죽어 지옥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의 마음에 와 닿았으며, 그 간수는 회심하였다.

 

이 구절은 이른바 “가정의 구원”이 문제로 대두되는 구절이다. 부모가 구원을 받았다고 자녀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유아나 믿지 않는 자녀들은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 구원의 약속은 그의 가정 모두에게 해당된다(31절). 말씀이 온 집안에 전해졌으며(32절), 모든 집안의 식구들이 세례(침례)를 받았다(33절). 그런데 이것은 모든 집안이 믿었기 때문이다!(34절) 유아들이 “믿을 것이다”는 상상만으로는 안 된다.

 

간수는 사도들의 상처를 닦아 주고 자기 집에서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진실로 개심하였음을 입증하였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열 때에 그의 가정도 마찬가지로 열려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35-40절에 나오는 바울의 행위에 의혹을 일으킨다. 바울이 그 일을 공개적으로 처결하여 로마 관리들을 난처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다만 자기의 로마 시민권과 법적인 권리들을 사용하여 복음과 그가 세운 새 교회를 온당히 존중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조용히 그 마을을 벗어났다면 모두들 그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교회의 사역을 방해했을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대의명분을 증진시키는 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법적인 관리들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러한 법적인 권리들을 박탈당했었으므로, 이 공식적인 사과와 공개적인 해결은 복음과 교회에 위엄(威嚴)을 가져다주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언제나 친절하였다.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를 읽어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교회의 핵심은 한 부자여인과 노예소녀와 로마의 간수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연약한 것들을 택하사 능력 있는 자들을 당황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