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도행전 18장 / 고린도에서의 바울
바울은 아덴에서 당대에 가장 큰 도시들 중의 하나인 고린도로 갔다. 고린도에는 유명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청동이 생산되고 도자기 공예가 발달하였으며, 올림픽과 같지는 않지만 대형 스포츠 경기들이 있었고 부도덕함과 사악함으로도 유명했다. 아덴처럼 문화가 발달하고 품격 높은 곳에서 고린도라는 사악한 도시로 복음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 곳에서 교회를 세운다!
1. 바울의 새로운 친구들 (행 18:1-3)
유대인의 관습은 아들이 랍비가 되려고 할 때라도 직업적인 일을 가르친다. 바울의 직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기술은 고린도에서 그의 사역을 뒷받침하는 데에 적절하게 이용되었다. 그가 이 직업에 종사하면서 그리스도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 동안 이들과 같이 살며 함께 사역하였다. 이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이 바울의 마음을 얼마나 즐겁게 했을 것인가! 바울은 자기 가족이 없었으며 자주 여행을 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한 장소에서 오래도록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후에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갔으며 거기서 아볼로를 소개받게 된다(18, 24-28절). 이들은 에베소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가졌으며(고전 16:19), 나중에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들에게 문안한다(롬 16:3). 이들은 마음과 가정을 열어서 주님께 봉사한 그리스도인의 좋은 본보기이다.
24-28절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순회 설교자인 아볼로에게 은혜의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요한의 세례(침례)만을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성령의 세례(침례)와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대중 앞에서 당혹시키지 않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집으로 데려와 말씀을 가르쳤다. 아볼로는 달변이고, 열성적이며 성실하다 해도 여전히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실례이다! 하나님은 아볼로를 인도하여 고린도로 가게 했으며, 그 곳에서 위대한 사역을 일으키게 하셨다(고전 3:6/고전 16:12).고린도에서 바울이 생업에 종사한 일에 대하여 한 마디 첨부해 보자. 자신이 먹을 것을 벌어들인다는 것이 좀 특별한 경우라고 바울 자신도 인정했다. 성경의 계획은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 9:14)는 것이다. 선교 사업을 개척함에 있어 바울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쓸 것을 지불함으로써, “돈을 위하여 전파하고 있다”는 말을 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9장을 읽고 그가 명백하게 설명한 것을 알아보자.
2. 바울이 새로운 교회를 발견함 (행 18:4-17)
그는 회당에서 시작했으나 잠깐 동안 사역한 다음 이방인들에게로 방향을 돌렸다(13:46). 이와 동시에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나와 회당 근처에 살고 있는 유스도라는 이방인의 집으로 옮겼는데, 이 사람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었다. 바울은 이 유대인 부부에게 어려움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방인의 집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다.
8절에 보면 회당장이 믿었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8절에서의 듣고, 믿고, 세례(침례)를 받았다는 과정에 유의하자. 이것은 오늘날 행해지는 형식이다. 고린도전서 1장 14-17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몇몇 사람에게 세례(침례)를 주었음을 알리고 있는데(고전 1:11-17), 이것은 물세례(침례)가 오늘날의 시대를 위한 명령인 것을 입증한다.
대부분의 세례(침례)를 실라와 디모데가 집행한 것 같다(18:5). 그것은 바울의 특수한 사명이 복음 전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승리에 대한 특별한 약속을 하셨으며, 바울은 그 도시에서 18개월을 지냈다. 정치지도자들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박해가 왔으나, 바울은 계속해서 머물며(18절) 전파하고 가르쳤다.
그리스보가 구원을 받아서 유대인들은 새로운 회당장을 선출해야 했었던 것 같다(8, 17절). 그러나, 17절에 나오는 소스데네가 고린도전서 1장 1절에 나오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면, 그도 역시 회심하였다. 세례(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젖먹이들을 제외된 신자들(8절)이었음에 유의하자.
3. 바울이 2차 여행을 마침 (행 18:18-22)
18절에 언급된 서원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고 있으나, 이 문제에서 제기되는 모든 질문 사항에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자라게 내버려 두는 일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것은 나실인의 서원일 것이 분명하다(민 6장). 서원 기간이 끝나자 그는 고린도의 항구인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이와 연관된 희생제사를 드렸는지의 여부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12-17절에 설명된 소요를 통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의 조력자들을 구원해 주신 후에 이 서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일 수도 있는데, 이 서원이 순전히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그는 유대인처럼 되었다(고전 9:19-23). 이것은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중함을 뜻한다. 물론 바울은 그러한 서원이 무슨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도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어서, 율법주의나 의식주의로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분명한 것은 바울의 생각에 예루살렘에서 이 서원을 완료하는 것이 가장 우선된 일이었으므로,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이 머물라고 청했는데도 머물지 않았다.
바울은 안디옥으로 되돌아와 교회에 보고하였다. 또한 예루살렘의 형제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얼마간의 시간, 아마도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바울은 믿음으로 그들을 세워 주기 위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였다. 갈라디아서를 고찰해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유대화된 교사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교회에 침투하여 모세의 율법을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바울은 이 교회들에 대하여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다시 방문하여 말씀으로 가르치며 믿음으로 확고하게 세우려 했다. 누가는 이 세번째 여행을 19장-21장 16절에서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록은 에베소에서 3년간 이루었던 바울의 위대한 사역을 다루고 있다. 본 장의 마지막 부분(24-28절)은 앞서 간단하게 다루었다.
▣ 실천적인 교훈
복음은 이교도의 도시(고린도)에서와 마찬가지로 문명된 도시(아덴)에도 적합하다. 그런데 고린도의 관원들과 죄인들이 아덴의 문명된 죄인들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 고린도전서 1장을 읽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자.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일해야 한다. 바울처럼 위대한 사람도 천막 만드는 비천한 두 유대인들의 도움과 우정의 가치를 귀하게 여겼다.
하나님의 약속(9-10절)은 바울이 그 도시에서 18개월 동안 머물 수 있게 했다. 그 시민들의 죄는 그에게 부담을 주었을 것이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생애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할 때 반대가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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