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린도전서 2장 / 하나님의 지혜 대 인간의 무지함
본 장에서는 복음과 인간의 지혜에 대한 바울의 토론이 계속된다. 고린도에는 인간의 철학을 칭송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아볼로의 웅변이 이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가 단순하고 비웃음을 받는 십자가의 메시지보다도 인간의 지혜와 철학을 사용하는 편이 회심자들을 얻는 데에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 바울이 전한 두 가지의 메시지(2:1-8)
1) 복음-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는 아덴에서 외관상 실패를 경험한 후였다(행 17:22-). 그 곳에서는 헬라 철학자들에게 연설을 했는데, 회심자들을 거의 얻지 못한 정도였다. 이러한 경험 위에 순수한 복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확신이 더해져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는 웅변술의 유혹적인(설득하는) 말이나 철학을 이용하지 않았으며,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단순하게 전도하였다. 그는 신자들이 인간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열성을 다했다.
목회자들이나 전도자들이 “그들 자신에게로” 회심자들을 만들며, 사람들에게 오직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보게 됨은 슬픈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신자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고” 그들 스스로는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3장에서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젖먹이”라고 부른다(3:1-4).
2) 비밀(mystery)-
그러나, 바울은 단순히 복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믿음에서 더욱 성숙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가르쳤다. 유감스럽게도 고린도에는 성숙한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지도자들만을 바라보고 비교하며 말씀 안에서 자라는 데에 실패하고 있었다.
지교회에서 목회자와 교사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런데 믿음에서 성장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것만으로 강력한 교회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에 대한 가르침이 수반되어야 한다. 비밀(mystery)이란 구약에서는 감추어진 진리인데, 이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시된 것이다. 이것도 외부 사람이 아닌 내부인들에게만 알려진 “가족의 비밀”이다.
물론, 바울이 고린도에서 가르친 비밀은 에베소서 2-3장에 요약된 대로 현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한 몸, 곧 교회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 비밀 또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지혜는 “이 세상의 관원”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신앙을 고백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진실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촛대, 분향, 의식적인 복장, 화려한 건물, “첫째는 유대인에게”라는 식의 가르침, 유아세례(침례) 등과 같은 이 시대에 속하지 않은 “유대인의 골동품”에 여전히 속박당하고 있다.
1장과 2장에서 바울은 이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한다. 이러한 대조점들에 유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세상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말의 지혜(1:17/2:4) 말뿐이 아닌 능력의 지혜(2:4-5)
인간의 말(2:4) 성령의 말(2:13)
세상의 영(2:12) 하나님의 영(2:12)
하나님 보시기에 미련함(1:20) 인간들에게 미련하게 보임(2:14)
철학자(1:20) 전도자(1:31/2:4)
무지함(1:21) 하나님을 앎(2:12)
멸망으로 인도함(1:18) 영광으로 인도함(1:18/2:7)"
2. 오늘날 세상에 있는 두 영 (고전 2:9-13)
1) 이 세상의 영(12절)-
분명히 사단은 이 세상에 동력을 공급하는 영이다(엡 2:1-3). 사단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자아를 부풀리고 마음을 눈 멀게 하는 “지혜”를 주며,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한 진리로부터 그들을 멀리 인도해간다.
오늘날 많은 학문의 장(場)에서는 성경을 원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필요성을 거부한다. 이러한 무지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는데 사람들은 “교육받은” 이들조차 그 이후로 계속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오고 있다. 이 세상의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다(요일 4장).
2)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일들을 가르치는 분이신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9절에서 바울은 이사야 64장 4절을 언급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지금 여기서 누릴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셨다고 언급한다. 이 구절은 하늘(heaven)의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영적인 축복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축복들을 어떻게 우리에게 계시하는가? 주님의 영을 통해서(10절) 하신다. 사람의 내부에 거하는 영이 외부 사람들은 전혀 모를 일을 이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며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진리들을 우리에게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아는 데” 거하기를 원하시며, 어두움에 거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를 가르칠 성령을 보내신 이유가 이것이다. 신자들은 인간 교사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말씀으로부터 그에게 교훈하는 영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신다는 것에 유의하자(13절). 여기서 성경의 축자영감설, 즉 모든 말씀이 성령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을 보게 된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일로 분별함”이란 말은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과 결부됨” 또는 “영적인 일을 영적인 사람에게 설명함”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이들 중 어떤 경우이거나 전해 주는 진리는 명확한데,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거나 세상의 사람들이 가르친 인간의 말을 믿거나, 둘 중의 한 편에 설 수 있다.
3. 오늘날 세상에 사는 두 종류의 인간 (고전 2:14-16)
1) 자연인(육에 속한 사람)-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며, 세상에 속하였고 세상에 있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성령의 일들(말씀)을 받을 수 없는데, 그것은 영적인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몸과 마음에는 성령께서 내주하시지 않는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는 성령의 일은 어리석게 보인다.
1장 23절에서 바울은 헬라인들이 복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말한다. 헬라인들은 대단한 철학자들이었는데도 그들의 철학으로는 십자가에서 죽은 하나님이라든지, 인간을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신들은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 대한 그들의 생각으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에 있어서조차 세상의 위대한 “선생들”은 복음과 성경의 교훈에 대해 조소한다.
2) 영적인 사람(신령한 사람)-
이는 성령에 의해서 조절을 받는 신자이다(다음 장에서 바울은 육신의 조절을 받는 그리스도인, 곧 육적인 사람을 다룰 것이다). 영적인 사람은 분별 있는 사람이므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다.이것이 참된 지혜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영적인 지혜가 결여되어 있다.
15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일들을 이해하며 또한 그에 대한 지혜를 가진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있어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거리다.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한다(빌 2장 참조). 이 말은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신자들을 도우심으로써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생각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다는 것,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세월을 흘러내려 오며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말한 일들을 예언했는데, 그것들은 현실로 나타났다. 영적인 마음을 가진 성도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인간의 정보로부터 얻은 것보다 더많은 세상의 일들을 성경으로부터 알고 있다.
이 두 장에서 바울은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설명하며, 복음을 인간의 지혜와 혼합시키거나 또는 복음을 인간의 철학으로 대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다음 두 장에서 그는 복음의 사역을 다루며, 우리의 눈을 인간에게서 옮겨 그리스도에게만 두어야 함을 보여 준다.
'구원의 이정표 > 핵심성경연구-신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 전서4 - 고전 4장(바울이 보인 겸손의 본) (0) | 2009.07.20 |
---|---|
고린도 전서3 - 고전 3장(상급을 내다보는 봉사) (0) | 2009.07.20 |
고린도 전서1 - 개요 및 서론 / 고전 1장(그리스도인의 지위와 신분) (0) | 2009.07.20 |
로마서17 - 롬 16장(형제들에게 보내는 인사) (0) | 2009.07.17 |
로마서16 - 롬 15장(그리스도인의 수고) (0) | 2009.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