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야고보서4 - 약 4장(세상적인 것들)

JORC구원열차 2009. 8. 1. 07:55

4. 야고보서 4장 / 세상적인 것들

 

본 장은 신자들 사이에 육적인 분열과 논쟁이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 가지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선생이 되려고 이기적인 욕심을 부린 것이다(3:1). 그러나, 그 근본적인 원인은 영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의 생활에는 진정한 성별됨이 결여되어 있다. 형제들이 연합하는 대신 불화하여 동거하는 것은 비극이다(시 133편).

 

1.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원수들 (약 4:1-7)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세상, 육신, 마귀와 싸우고 있음을 3장 15절에서 살펴보았다. 에베소서 2장 1-3절도 이와 똑같은 내용을 열거하고 있는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과 육신을 위하여 살며 마귀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그는 성령을 받게 되어 새로운 본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러한 대적들과 싸워야 한다.

 

1) 육신(1-3절)-

“정욕”이란 단어는 감각적인 열정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욕심을 뜻한다. 이러한 욕심들은 몸의 지체를 통하여 일하며 육신을 자극시켜 문제를 일으킨다. 몸 자체가 죄악된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몸을 지배하는 타락한 본성이 죄악된 것이다.

 

육신이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인간의 본성이며, 이것은 마치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원한 인간 사회인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6장이 우리 몸의 지체를 성령께 굴복시키라고 권면하는 이유이다(롬 8장/ 갈 5장 참조). 1장 5절에서는 우리의 욕심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보라.

 

2절에서 야고보는 그들의 죄악된 행위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들은 욕심을 내며, 얻기 위하여 죽이며(갈 5:15),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기도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더하려고 이기적으로 구했다. 육신은 사람을 기도하도록 격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내적으로 자신과 싸울 때는 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화평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음은 물론이다.

 

2) 세상(4-5절)-

그리스도와 결혼하고서도(롬 7:4)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고후 11:2-3) 영적인 간음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간음”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우상이 그들의 헌신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았다면 어떻게 세상과 벗될 수 있겠는가?(요 15:18-19)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세상은 우리들에 대해 그러하다(갈 6:14). 신자들이 세상과 가지는 관계에는 네 가지의 위험한 단계들이 있다. 즉, 벗됨(약 4:4)과 사랑(요일 2:15-17), 본받음(롬 12:1-2)과 세상으로 판단 받음(고전 11:32)이다. 이러한 예가 롯의 경우이다(창 13:10-13 / 19장 참조).

 

믿는 자가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 그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의 사랑과 충성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방식을 보기란 슬픈 일이다. 사실상, 그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말하기조차 어렵다!

 

3) 마귀(6-7절)-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육신을 위하여 살 때 교만해지며, 마귀는 이 지점에서 역사하게 된다. 그것은 교만이 마귀의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보다 많은 은혜를 주고자 하신다. 그것은 사단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단을 대적하는 데에 말씀을 사용해야만 하며(눅 4:1-13), 성령께서는 이렇게 대적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기를 거절하는 교만한 사람을 도우실 수가 없다. 은혜는 높은 자들을 위하여 있지 않고 낮은 자들을 위하여 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그리고는 마귀에게 효과적으로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원수들 중의 어떤 하나라도 진행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마음을 검토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2.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권면들 (약 4:8-17)

 

그는 이제 세 가지 중요한 경고들로 전환하여 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교회에서 각 사람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면 화평이란 있을 수 없다.

 

1) 교만에 대한 경고(8-10절)-

전쟁과 싸움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교만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화평의 씨앗을 뿌린다(3:13-18). 교만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며 우리의 마음과 손을 더럽힌다. 이것은 또다시 두 마음을 품는 죄가 되며, 근본적으로는 항복하지 않은 것이다.“마음을 성결케 하라”는 말은 세상을 사랑하거나 성령을 근심케 하지 않으며 정조를 지키는 충성된 마음을 가지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이러한 신자들은 웃음과 세상적 기쁨을 가지고 유쾌한 가운데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건전하고 진지하게 되어 그들의 삶에서 죄를 물리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야고보는 그들이 스스로 낮추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실 것이라고 약속한다(마 23:12/눅 14:12/벧전 5:6/잠 29:23 참조).

 

2) 비판에 대한 경고(11-12절)-

사람이 세상적인 마음, 교만을 가질 때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데 빠른 법이다. 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싸움도 그 기원을 여기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판단하며 피차 비방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혀의 문제가 나온다!(1:19-20/1:26/3:5-6)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증오하며 비판하는 혀로 인해 분열되고 수치를 당하였는지 알 수 없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고 가르친다(살전 5:21-22/요일 4:1-6).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나 동기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이 먼저 자신의 죄들을 판단하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도움을 줄 권리를 가지게 된다고 가르치신다.

 

만일 내 눈에 들보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 티끌이 들어 있다고 비판할 권리가 어디 있겠는가? 먼저 내 자신의 장애를 제거하기까지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볼 수가 없다. 사랑과 긍휼이 없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면 우리는 자신을 입법자로 세우는 것이 되지만, 하나님만이 유일한 입법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여 가는 중에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잘 순종하는지를 보지 않고 법에 순종하는 데에 자신을 온전하게 바쳤다면 우리의 교회들은 화합과 화평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야고보는 12절에서 판단할 권리를 가지신 유일한 분은 형벌을 내릴 권세도 가지신 분임을 암시하고 있는데, 하나님만이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3) 자기 신뢰에 대한 경고(13-17절)-

교만, 비판, 자기 신뢰는 모두 함께 다닌다. 겸비한 사람은 범죄하는 형제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를 그리스도께로 돌이키려고 사랑하기까지 한다. 겸비한 사람은 매일 매일 계획을 짜면서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말할 줄을 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신자들은 그들의 계획을 자랑으로 여기며 그들이 얼마나 성공적인가를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이들은 큰 도시로 가서 사업을 일으켜서 부자가 되어 돌아올 작정이었다.

 

야고보는 이러한 육신적인 자랑과 자기 신뢰는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선 첫째로 그들은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하나님만이 아실 뿐이다. 내일을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삶 자체는 확실하지가 않아서 떠도는 구름과 같다(욥 7:7/시 102:3). 우리는 생애가 언제 끝날른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주께서 허락하시면 살리라”고 말해야 한다. 모든 신자들은 인생이 짧다는 사실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계획을 세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전혀 고려에 넣지도 않고 있다. 이들은 미래에 대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죄인처럼 살고 있지만,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눅 12:15-21).

 

17절은 본 장의 요약이 되기도 하며 고의적인 행위로도 범죄하지만 소홀히 함으로도 범죄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행하는 것만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된다. 옛 청교도들이 “범하는 죄”와 “행치 않는 죄”에 대하여 말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은 너무도 짧은 것이어서 낭비하도록 버려둘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재림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삶을 계산해야만 한다. 이제, 본 서신의 마지막 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주제로 다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