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요한계시록 1장 / 네가 본 것
▣ 서론 : 1장 1-3절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특징들을 보며 이 책이 어떻게 씌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 책의 내용을 그리스도께 주셨으며, 주님은 이것을 그의 천사에게 주어 사도 요한에게 주도록 하셨다. “그의 천사”는 “그의 사자”라고 번역되어도 된다. 왜냐하면 헬라어로 앙겔로스(천사)가 “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22장 16절을 읽고서 22장 8-9절은 이 특별한 사자가 구약 예언자들 중의 하나일 수도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데에 유의하자.
“지시하다”는 말은 이 책이 신령한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징표나 상징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은 사실상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책의 내용을 실제로 보았다. 육체적으로 그는 밧모섬에 있었으나(1:9)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이런 사건들을 목격하고 우리를 위해 그것들을 기록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를 하늘로(4:1), 광야로(17:3), 산으로(21:10) 옮기셨다.
이 책을 소리내어 크게 읽는 자들과 마음을 기울여 경청하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그러나, 3절은 요한계시록이 공연한 호기심으로 연구할 책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이 말씀들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순종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가까움”과 “속히 될”이란 말은 이러한 예언들이 요한의 시대에 당장 성취되어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들이 성취되는 때의 신속함을 나타낸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이들을 위해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들이 임할 날이 올 것이며, 더 이상 연기되지 않을 것이다.
1. 요한이 아는 그리스도 (계 1:4-8)
요한은 11절에서 명령을 받은 대로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그의 안부를 보낸다. 그는 삼위일체의 위(位)를 각각 언급하면서 신성의 경이로움을 개관한다.
1) 성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란 뜻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뜻한다(1:8/4:8). 하나님은 역사를 초월하여 계시며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2) 성령-
“일곱”이란 완전을 나타내는 수로서, 성령의 충만함을 뜻한다. 4장 5절에서 우리는 일곱 영이 일곱 등불로 상징되는 것을 본다. 또한 5장 6절에서는 일곱 눈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시며(3:1) 영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3) 성자-
그리스도는 선지자(충성된 증인), 제사장(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나신 자, 즉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난 자 중 가장 높은 자), 왕(땅의 임금들의 머리)이라는 삼중 인격으로 제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삼중 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도다! 아담에게서 잃었던 통치권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획득하였다!”
7절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일곱 구절들 가운데 첫번째 것이다(2:25/3:3/3:11/22:7/22:12 /22:29 참조). 이 재림은 공개적이며(단 7:13/행 1:8- ) 교회의 은밀한 휴거는 아니다(살전 4:13-). 이방인들은 그로 인해 애곡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그들이 찌른 자를 볼 것이다(슥 12:10-12/마 24:27-30).
2. 요한이 들은 그리스도 (계 1:9-11)
요한은 그가 소아시아 교회들을 보살피고 있었던 에베소에서 약 110 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에 유배되어 있었다. 마가복음 10장 33-35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보좌에 대해 질문하였었는데, 그 수년 후에 이들 둘에게 환란이 닥쳐왔다. 야고보는 목베임을 당했으며(행 12 장), 요한은 유배되는 고난을 겪었다. 요한은 그가 전파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배되었다.
요한이 바다를 25회나 언급하고 있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섬에... 성령에”, 참으로 경이로운 국면이다. 우리의 지리적인 위치가 우리의 신령한 축복들을 결코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요한계시록에서 나팔은 중요하다. 4장 1절에서 나팔 소리가 요한을 하늘로 불러 올렸는데, 이는 휴거를 표상한다. 또한 8장 2절 이하에서는 나팔을 불자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쏟아졌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총회로 모이는 때, 전쟁을 알리는 때, 특별한 날을 선포하는 데에 나팔을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나팔은 교회를 본향으로 불러갈 것이며(살전 4:16), 이스라엘을 모을 것이고(마 24:31), 세상에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계 8:2-).
음성은 요한에게 이 책을 기록하라고 말했고, 그것을 그와는 떨어져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라고 했다. 지도에서 이 교회들의 위치들 확인해 보라. 이 지역에는 일곱 개 이상의 교회가 있었으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영적인 필요를 묘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장차 올 교회들의 신령한 역사를 개관하기 위하여 이 일곱 교회들을 선택하셨다.
3. 요한이 본 그리스도 (계 1:12-20)
요한은 더 이상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 수 없었다(고후 5:16). 그리스도는 이제 부활하시고 높이 올리우신 왕인 제사장이시다! 요한은 일곱 촛대 사이에서 계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였다(1:20). 우리는 세상의 빛이며 교회는 그 빛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붙들고서 그것을 비치게 한다. 우리는 거대한 등불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따로 있는 일곱 촛대를 갖는다.
여기서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상징들을 연구하려면 관주를 이용하면 된다. 그의 옷은 제사장으로서 왕의 옷이다. 흰 머리는 그의 영원성을 말한다(단 7:9). 그의 눈은 빠짐없이 두루 보며 그 본 대로 심판한다(단 10:6/히 4:12/계 19:12). 교회들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는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보며 심판하신다. 주석으로 된 발은 심판을 나타내는데, 죄가 심판받았던 장소가 놋제단이었다.
“많은 물소리와 같은” 그의 음성은 두 가지 것을 암시했는데, 곧 바다와 같은 주의 말씀의 능력과, 그리스도 안에 모여진 신적 계시의 “시냇물”인 것이다(시 29편/ 겔 43:2 참조). 그는 손에 일곱별을 쥐고 계시는데, 이 별들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 또는 사자들(목회자들)이다. 이 교회들로부터 요한에게로 온 사자들이 이 계시록을 그에게서 개인적으로 받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별들은 사자들이다(1:20). 그리스도는 자기의 종들을 그의 장중에 붙드신다(단 12:3).
이 입에서 나오는 검은 심판하는 그의 말씀이다(사 11:4/사 49:2/계 2:12/계 2:16/계 19:19-21). 해같이 비취는 그의 얼굴빛은 그의 영광을 말한다(말 4:2 참조). 22장 16절에서 그는 광명한 새벽별로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직전인 가장 어두운 때에 교회를 위하여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요한은 그의 가슴에 기대었으나(요 13:23)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린다(단 8:17/계 22:8 참조). 오늘날 성도들은 그들의 언어와 태도에서 그리스도와 “격이 없는” 것처럼 된 듯한 것을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권위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을 안심시키시고 그의 두려움을 평온케 하신다. 그리스도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다(1:8/22:13).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음부, 곧 죽은 자의 영역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음부는 어느 날 잃어버린 영혼들을 내놓고 텅 비게 될 것이다(20:13-14).
그리스도는 1장 19절에서 우리를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개관하신다(개요 참조). 다른 개요를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보다도 이 책에 관하여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2-3장에서 그리스도는 일곱 교회들을 다루신다. 그는 그 한복판에 서서 그의 불꽃같은 눈으로 그들의 영적 상태를 살피신다. 주님은 오늘날도 이 일을 행하고 계신다. 사람들이나 교파들이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당신은 13-16절에 있는 그리스도의 묘사에 대한 각기 다른 부분들이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반복되는 것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교회에 적용시킬 그리스도의 속성이 언급된다. 교회들에 대한 위험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증거를 옮기시는 것이다(2:5). 그는 그의 신적 의지를 벗어나 있는 촛대를 가지시기보다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한 성읍을 가지려 하실 것이다 .
본 장에 나오는 많은 상징들이 이 책의 후반부에 반복되어 나온다. 연구할 때 관주를 살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는 없다.
▣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만일 요한계시록 1장 19절이 영감된 이 책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면 2-3장은 “이제 있는 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특정한 멧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소아시아의 많은 교회들 중에서 일곱교회를 선택하셨던 것이다. 확실히 다른 교회들에게 죄들이 있었지만 이 일곱편지들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은 가능한 모든 상황을 망라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이 일곱 교회들을 택하여 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있을 수 있는 교회의 형편들을 예증하며, 사도 시대로부터 세상 마지막까지의 예언적 교회사를 예증한다. 일곱은 그저 아무렇게나 정한 숫자가 아니다. 교회들이 관련된 한에 있어서 일곱이란 역사의 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예언적 교회사에 나타난 일곱 단계를 보게 된다.
① 에베소 : 사도시대-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기 시작함.
② 서머나 : 초기의 박해받는 교회(주후 100-300년)
③ 버가모 : 교회가 로마와 결탁함-국가 교회가 됨(주후 312년).
④ 두아디라 : 로마 가톨릭 시대-간음과 우상 숭배
⑤ 사데 : 개신교회-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어 있음.
⑥ 빌라델비아 : “형제 사랑”-이 마지막 시대의 선교하는 교회
⑦ 라오디게아 : 마지막 시대의 배교하는 교회-미지근한 교회이며, 그리스도는 밖에 있음.
이 일곱 교회들은 교회사를 요약하고 있으며, 고백의 2대 주류인 로마 교회와 개신교의 발전을 요약한다.
에베소 - 사도적 교회 | |
서머나 - 로마가 교회를 박해함 버가모 - 로마가 교회를 받아들임 두아디라 - 로마가 교회를 조종함 |
사데 - 교회들이 로마에서 이탈함 빌라델파아 - 현대의 선교운동 라오디게아 - 미지근한 거대한 교회 |
결과 - 로마 가톨릭 |
결과 - 무기력한 개신교회 |
각 교회의 “이기는 자”에 대해 특별한 말씀을 하고 계심에 유의하자(2:7/2:11/2:17/2:26/3:5/ 3:12/3:21). 이 “이기는 자”들은 각 교회에 있는 “초월적인 성도들”로서 그리스도로부터 특권을 부여받게 되는 특별한 부류인가? 아니다. “이기는 자”란 이러한 각 교회들에 있는 참된 신자들이다. 우리는 역사의 매 시대의 각 지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라고 섣불리 믿을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이기는 자들”이다(요일 5:4-5).
역사의 매 시대에서 고백 교회 내에 참된 성도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로마 가톨릭 주의를 나타내는 두아디라 교회 내에서조차 그러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각 시대에 사는 그들에게 격려하는 특별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며, 또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자신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할 수도 있다.
사단도 네 교회와 연관되어 언급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는 서머나 교회를 박해하는 배후에 있으며(2:9), 버가모에 그의 “보좌”(거하는 곳)를 두고 있고(2:13), 두아디라에서 그의 “깊은 교훈”을 가르치며(2:24), 그리고 빌라델비아에서 구령 사업에 전력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하여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회”(회당)를 사용한다(3:9).
그리스도는 이런 교회들에게 몇 가지 위험을 지적하신다.
1) 니골라당(2:6/2:15)-
이 말은 “하층 계급을 정복하다”란 뜻이며, 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를 암시한다. 이것은 에베소에서 “행위”로 시작하여 버가모에서 교훈으로 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사람들이 교회에 거짓 활동들을 소개하고 오래지 않아 이러한 활동들은 용납되고 즐거워하게 된다.
2) 사단의 회(2:9/3:9)-
이것은 아마도 신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마귀의 자녀들인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총회를 말하는 듯하다(요 8:44). 회(회당)라는 단어는 단순히 “함께 모이다”란 뜻이며, 그것이 사람들의 총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도 교회를 소유한다.
3) 발람의 교훈(2:14 /민 22-25 장)-
발람은 이스라엘이 이교도와 혼합되어도 이들이 하나님의 언약민이므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죄 가운데로 인도해 갔다. 그는 그들을 저주할 수는 없었으나, 육으로 유혹할 수는 있었다. 그러므로, 이 교훈은 교회가 세상과 짝할 수 있다는 사상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로마의 황제가 박해를 중단하고 기독교 신앙을 공식적인 로마의 종교로 받아들인 시기에 나타난 것임에 유의하자! 교회와 세상이 결합했고 거짓 선지자들이 가르친 발람의 교훈이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4) 이세벨(2:20)-
이 구절은 우리를 열왕기상 16장에서 열왕기하 10장까지를 회고케 한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이교도 아내였으며 이스라엘을 사악한 바알숭배로 인도해간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거짓 가르침으로 이스라엘을 타락시켰다. 신약에서는 이세벨이라고 하면 거짓 가르침을 소개하는 여인을 말한다. 이세벨은 로마 가톨릭 주의가 발전하고 있던 시기에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그리고 우상들에 관하여 강조함으로써 나타난다.
▣ 개인적인 메시지
우리는 이 일곱 편지들에서 교회의 예언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중요하고 우리의 지교회들이 거짓 교훈의 희생물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또한 이 서신들에서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아야만 한다. 교회는 사람들로 구성되므로, 회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이런 교회들에 있었던 영적인 문제들을 살펴보자.
1) 에베소-
주님을 위하여 분주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를 향한 진지한 사랑은 없다. 열정이 없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런 교회는 통계는 훌륭하지만 그리스도로부터 표류하는 분주한 교회이다.
2) 서머나-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았으나 위험은 역시 존재한다. 이 교회는 가난하고 고난받는 교회였다. 타협하며 부요하게 되며 박해를 피하게 되기란 참으로 쉽다. 라오디게아 교회 만큼 “부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용기를 잃었겠는가!
3) 버가모-
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고백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죄의 삶을 살기에도 쉽게 했던 거짓 교훈을 붙든 회원들이 있는 교회였다. 또한 이 사람들은 주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선전하고 있었던 영적인 독재자들의 수중에서 견디기 힘든 상태에 있었다.
4) 두아디라-
한 여인이 교훈하는 과정에서 자기 위치를 떠났다. 그녀의 교훈은 백성의 죄 가운데로 이끌었다.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로마에 강조를 두고 있으나 어떤 지교회라도 이러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5) 사데-
생명이 없는 명성! 그 교회의 미래는 지나간 일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명성을 떨쳤으나 오늘에는 아무런 사역도 없는 “시대에 뒤진” 교회에 불과하다. 사멸되는 것만 남아있는 것이다.
6) 빌라델비아-
문호를 개방하고서 복음을 세상에 가져가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교회이다. 그러나, 사단의 회가멀리 있지 않아서 언제나 타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7) 라오디게아-
예산은 많지만 어떠한 복도 가지지 않은 미지근하고 변절된 교회이다. 이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하나 영적으로는 가난 된 교회로서, 그리스도는 교회 밖에 계시며 그에게 순복할 단 한 사람이라도 초청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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