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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요한계시록3 - 계 2장(교회들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메시지)

by JORC구원열차 2009. 8. 5.

3. 요한계시록 2장 / 교회들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메시지

 

1. 에베소 교회-타락하는 교회 (계 2:1-7)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여기서 강조되고 있다. 그는 별들(교회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시며 교회들(촛대들)을 심판하시러 다니신다. 그는 밧모섬에서 가장 가까운 에베소 교회로부터 시작하신다. 이곳은 거대한 상업 중심지로서 수로 및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었다. 로마는 에베소를 자유 도시로 만들었으며, “아시아 제일의 대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다이아나 신전이 있었던 것인데, 이것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길이 약 120미터, 너비 66미터, 높이 18미터쯤 되는 신전으로, 대문들과 127개의 대리석 기둥들이 있었고 이들 중의 더러는 금으로 싸여 있었다. 다이아나(아데미)숭배는 최악에 달해 있는 “종교적인 부도덕” 그것이었다(행 19-20장 참조).

 

에베소 교회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칭찬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행하는 일이 아니라 그 배후의 동기인 것이다.

 

이 교회는 분주한 교회였으며 표준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다. 그 표준이 “무가치한 사람들”(악)을 용납할 수 없었고, 거짓 선생들을 경청치 못하게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모든 면에 있어서 성공적인 교회였다. 오늘날, 줄 잇는 각종 행사와 지친 일꾼들로 가득찬 분주한 교회들은 아마도 이 설명에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들 가운데 계시는 이는 무엇이 잘못인지를 보셨다. 이들은 첫사랑에서 떠났다(렘 2:2). “잃은 것”이 아니었다. 지교회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이며(고후 11:2) 사랑이 점점 식어갈 위험도 항상 있는 법이다. 마르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분주하게 일하다가 주님을 사랑할 시간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눅 10:38-42).

 

그리스도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수고가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일반에게는 에베소 교회가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한 교회였다.

 

그들에게 주는 주님의 권고는 세 마디였다.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우리가 처음 사랑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처음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가 그리스도와의 처음 만남을 생각나게 하였다. 만일 교회가 그 중심을 바른 상태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촛대가 옮겨지게 될 것이다. 지교회는 세상에서 빛을 비춰야 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사랑이 없이는 그 빛은 꺼지고 말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칭찬하신다. 니골라당의 헬라어 어의는 “하층 계급을 정복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교회 내의 제사장 특권 계급(성직자)의 발달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일반 신자들이 외면당한다는 말이 된다. 교회 내에서 목사의 지도력은 있어야 하지만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에베소는 교회가 늘 분주했던 때인 사도 시대를 방불케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사랑은 쇠미해지고 있었다. 이 일이 다른 실패의 길을 걸을 여지를 남겨 놓았다.

 

2. 서머나 교회-고난당하는 교회 (계 2:8-11)

 

그리스도에 대한 각각의 서술이 1장 13-16절의 묘사를 어떻게 회고케 하는지 살펴보고, 또한 각각의 서술이 그 교회의 특별한 필요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라. 서머나는 박해당하는 교회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고난, 죽음, 부활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계신다(2:8). 서머나는 “씁쓸한”이란 뜻이며 “몰약”이란 말과도 연관된다. 어떤 이는 짓밟는 박해로 인하여 향기를 생각해 낸다. 교회는 언제나 고난의 때를 통과하고 있었을 때 가장 순전하고 향기로웠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말이 없다. 고난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충성스러웠다. 이들은 그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실상은 부요하였다. 이는 실상은 가난하면서 부자라고 생각한 라오디게아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3:7) 성도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사단의 회, 마귀의 자녀들, 요 8:44/빌 3:2)로 말미암아 모독을 받고 있었다(중상을 받고 있었다). 사단은 모든 박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에서조차 그렇다.

 

그리스도는 더 많은 박해가 오고 있음을 그들에게 약속하시는데, “십 일”이란 초기 교회에 있었던 열 가지의 큰 박해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서머나는 주후 100년으로부터 300년에 이르기까지 박해받는 교회를 나타낸다. 사단은 삼킬 자를 찾고 있는(벧전 5:8) 사자와 같이 달려왔으나 박해는 교회를 더 강하게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몸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둘째 사망 곧 지옥(20:14/21:8)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두 번 태어난 사람들은 한 번만 죽으면 된다. 그러나,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을 것이다!

 

3. 버가모 교회-세속적인 교회 (계 2:12-17)

 

버가모는 “결혼한”이란 뜻이며 이 교회는 국가와 결혼한, 곧 로마 제국과 결합했던 시기인 주후 312년 이후의 시기를 묘사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십자가 환상을 보고 기독교를 채택하였으며, 제국에 이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충성된 교회에 대한 파국의 시작이었다. 버가모에는 중대한 세 가지 잘못이 있었다.

 

1) 사단의 보좌가 있었다-

이것은 바벨론의 “비밀 종파”가 그 곳에 총본부를 두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또한 이런 이교 도시에서 핵심 역할을 한 황제숭배를 포함한다.

 

2) 발람의 교훈이 있었다(민 22-25장)-

발람을 그가 받은 부와 특권의 답례로 이스라엘 백성을 죄 가운데로 인도해간 삯군 선지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방 우상들을 섬기게 하여 간음에 빠지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유익을 얻으려고 세상과 짝한 교회를 본다. 로마제국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와 세상의 권력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매수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있다.

 

3) 니골라당의 교훈이 있었다(2:6)-

“행위“에서 정착된 교훈에로 점차 나아간다. 우리는 이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로 분리된 교회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로마 가톨릭주의의 시작이다."

 

4. 두아디라 교회-회개하지 앉은 교회 (계 2:18-29)

 

로마 가톨릭이 이제 완전한 성장을 보여 주는 때이다. 불꽃같은 눈과 주석으로 된 발이 보고서 심판하러 오신다. 그러나, 사악한 교회는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교회는 사업과 섬김과 인내를 가지고 있었으나(병원과 학교 등 로마교의 활동을 잘 묘사하고 있다!), 죄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일곱 편지들 중 유일하게 언급되는 여자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이는 아합왕의 아내인 사악한 왕비 이세벨을 가리키고 있다(왕상 16-왕하 10장).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 바알 제사장의 딸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 바알숭배를 소개하였다. 그녀는 우상 숭배, 살인, 사기 사제술(司祭術)과 마찬가지로 매음과 마법의 죄를 지었다(왕하 9:22). 오늘날 로마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이 거짓 여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기 위해(속이기 위해) 거짓 교훈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자. 그녀는 그들에게 죄를 지어도 되는 면허를 주었다. 로마교 이상으로 거짓 교훈과 우상과 죄의 면허를 가진 종교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로마교 이상으로 여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이들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한다.

 

오늘날 로마는 배교자라 부른 신교 교회를 향해 우정의 손짓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21절에서 로마가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계신다. 예배에서의 몇 가지 것들을 고칠지는 모르지만 그 불경건한 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과로 로마는 요한계시록 6-19장에 나오는 대환란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이 땅을 타락시킨 큰 음녀로 나타나고 있다.

 

그녀는 자기의 교훈을 “하나님의 깊은 것들”이라고 부르지만 그리스도는 “사단의 깊은 것”이라고 부르신다(24절). 하지만 24-29절은 가톨릭주의 안에서조차 참된 신자들(이긴 자)이 일을 것을 분명히 밝힌다. 로마의 자녀들(22-23절/ 이 제도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녀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교회의 참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굳게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