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 - 제임스 패커
1부 : 여호와를 알라
이 책은 하나님에 대한 책이다. 흔히 이야기 하는 교리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다른 교리에 관한 책과는 틀리다. 그것은 저자가 단순히 지식적이고, 교리적인 하나님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계시되고, 알려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이 부분을 '발코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비유로 설명한다.
"발코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여행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귓결에 들을 수 있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들은 여행자들이 걸어가는 길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러쿵 저렁쿵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은 길에 대한 문제들, 곧 어떻게 그 길이 존재하는가 또는 어떤 곳으로 이끌 수 있는가, 그 길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여러 지점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 그들은 구경꾼들이며, 그들의 문제는 이론적인 것일 뿐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여행자들은 나름대로의 이론적인 국면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실제적인 문제들과 직면한다. 그들은 '어떤 길로 갈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갈 것인가'와 같은 유형의 문제들 곧 이해뿐만 아니라 결단과 행도을 요구하는 그런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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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하나님에 대한 연구
저자는 세상의 지식를 자신을 우쭐하게 하며,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마음을 넓여 주며, 우리 삶에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을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채로 이 세상 속에 살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무자비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이상하고 미친 듯하며 고통스러운 장소가 되고, 삶은 실망스럽고 불쾌한 일이 된다.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하는 것은 눈가리개를 하고서 아무런 방향 감각 없이 그리고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재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폭풍 속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무시하는 폭풍들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폭풍우가 잠잠하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아무도 출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소홀히 여기는 이 시대에 우리는 왜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 저자는 이 부분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는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는 목적이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위해서라면 그 목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고전8:1-2)"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과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진리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행위가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시1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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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에 계시된 것을 사랑함으로 그 분을 알고자 하는 열망... 그 분의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마음... 이런 마음에서 너무 멀리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 성도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서 그 분을 알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상황... 이 시대의 목회자와는 너무나 멀어진 모습인 것 같다. 그러나 오늘도 그런 목회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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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저자는 현대의 신앙인들은 각자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적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바울처럼 자신이 잃은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자신이 얻은 것을 자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잃은 것에 연연하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아는 것과 들어서 아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 한다.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교리나 신학,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도 경건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증거들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것에 대해서 세 가지를 이야기 한다. 첫째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정력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해 이 세가지를 설명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기에 바벨론 땅에서의 온갖 어려움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섬겼으며, 거대한 바벨론 나라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으며, 목숨을 걸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을 가지고 위해서 저자는 먼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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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아는 것과 아신 바 되는 것
저자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목적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인생을 알지 못한다. 저자는 실존주의자나 허무주의자들이 인생을 방황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우리가 어떤 사물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물이 무엇인지 이름을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 대상을 경험하여 그 대상의 속성을 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도 이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죄된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를 나타내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단순히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 분을 경험하여 하는 것, 즉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인격적인 알을 저자는 세 가지로 이야기 한다.
첫째는 인격적인 교제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를 하는 것이다. 신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설교를 읽고, 설교를 듣는 순박한 사람이 신학적으로 박식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두번째는 인격적인 앎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부분에서만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맛보다 아는 것이다.(시34:8) 이것은 지적이고 의지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즉 경험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이다.
세번째는 은혜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분을 계시하실 때, 즉 하나님이 그 분을 알려 주실 때 우리가 그 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의 근저에 있는 더 큰 사실 곧 그 분이 나를 아신다는 사실이다. 나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아로새겨진 존재이다. 나느 결코 하나님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나의 모든 지식은 하나님이 계속해서 주도권을 쥐고 나를 아시는 것에 좌우된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아셨기 때문에, 그리고 계속해서 나를 아시기 때무에 내가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은 친구로서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분으로서 나를 아신다. 하나님의 눈이 내게서 벗어나거나, 하나님의 주의가 다른 곳으로 돌려지는 순간은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돌보심이 멈칫하는 때는 없다.(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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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그 분을 아는 지식으로 들어가는 것, 그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나를 아시고,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계속해서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의 삶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시선을 느낀다. 그 분은 나를 알고 계시고, 지금도 나를 바라보고 계시며,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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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오직 참되신 하나님
저자는 십계명의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구절을 단순히 하나님 외의 다른 우상을 섬기라는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현대 교회에서 여러가지 이미지나 형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들을 비판한다. 이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 역시 그 분의 참모습을 변질시키는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현대의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싶어 하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인간의 시각에서 알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을 알려는 모든 시각과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다음과 같은 식의 말을 듣는가 생각해 보라. '나는 하나님을 위대한 건축가(혹은 수학자 혹은 예술가)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요.' '나는 하나님을 심판관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하나님을 단지 아버지로 생각하기를 좋아해요.'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런 식의 말이 종종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어떤 것을 부인하기 위한 서곡 구실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2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조하여 말할 필요가 있다."
"비추어 보면 제2계명의 적극적인 측면은 명백하다. 이 계명은 소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명예를 잃게 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는 예배 방식들과 종교적 관행들에 대한 경고이다. 적극적으로 보면, 창조주 하나님을 초월하시고 신비로우시며 불가해하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상상과 철학적 사고 범주 너머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명령 - 그리고 따라서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에게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에게 배우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님이 위를 가르치도록 하라는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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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성육하신 하나님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여러가지 난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바로 성육신 부분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그러자 저자는 오히려 성육신의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은 고린도후서 말씀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8:9)"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부요하게 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자신을 제한 하셨다.(가난하게 되셨다.) 이 부분을 신학자드른 케노시스 이론으로 설명했다. 케노시스란 헬라어로 비우는 것이다. 이 이론은 성자께서 인간이 되시기 위해 하나님의 속성 중 어느 한 부분을 포기하셨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의 대표적인 사람은 고어 주교이다. 그는 성자께서 인간이 되면서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완전한 신적 무오성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실들에 대한 그 분의 신적인 지식은 포기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이론을 부정한다. 만약 고어의 이론이 맞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한 지식을 소유하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고어의 케노시스 이론을 부정한다. 대신 그는 성자가 자신을 비우셨다는 것은 스스로 성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신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였기에 자신의 특권을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복종은 성자 하나님이 성육신 하시면서 새로이 생긴 관계가 아니라 창조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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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케노시스 이론에 의하며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에게 복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삼위일체의 지위나 순서를 규정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이 부분은 올바른 삼위일체론에서 약간 벗어난 것 같다.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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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그가 증거하실 것이요
저자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령 하나님이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온전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성령 하나님이 없었다면 복음도 신약 성경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택한 제자들은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모든 오류에서 지켜 주시며, 그것을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보존해 주셨다.
둘째로 성령 하나님이 없으셨다면 믿음도 중생도 없고, 그리스도인도 없었을 것이다. 복음의 빛이 우리 가운데 비추지만 우리는 타락했기에 그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복음을 믿게 해 주신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성령님은 사도들에게 계시하시고 영감을 주심으로 증거 하셨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모든 시대에 걸쳐 조명하심으로 증거 하신다. 즉 멀어 있는 눈을 열어 주시고, 영적 시야를 회복시키셔 주시며, 복음이 진정한 하나님의 진리이고, 성경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스도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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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2부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글들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7장 :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가며 성경이 기록된 시기와 장소의 차이로 인해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천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말씀하시던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시기와 장소에서도 말씀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속성으로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 한다.
1. 하나님의 생명은 변하지 않는다.
피조물은 다 시작과 끝이 있지만 하나님은 변치 않는다. 또한 피조물의 본성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102:26-27)"
2.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성격과 기질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6-7절)"
3. 하나님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이 말한 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운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옇오ㅘ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6-8)"
4. 하나님의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며, 그들을 겸손케 하시고, 마음에서 불순종을 버리게 하신다.
5. 하나님의 목적들은 변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변캐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라(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6. 하나님의 아들은 변치 않는다.
저자는 성부 하나님뿐 아니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도 변치 않는 부니아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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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하나님의 엄위하심
8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역자는 이 부분에 엄위하심이란 단어를 쓰고 있지만 전능하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 이 단어로 쓰기로 한다.) 결여된 부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체로 결여된 지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믿음이 그처럼 힘이 없고 우리 예배가 그처럼 활기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현대인이며, 현대인은 대체로 자신에 대해서는 은 생각을 품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 사람들은 처치하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조차 그들은 신적 위엄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대한 이런 생각은 현대인들이 인격적인 하나님을 많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하나님이란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교제하고자 인간의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인격적인 하나님을 강조하다보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 생각하지를 못하게 된다. 그러기에 저자는 하나님은 인격적이지만 동시에 전능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올바르게 묵상하기 위해 두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서 하나님을 조그맣게 만들 만한 제한들을 제거해 버리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가 위애하다고 여기는 권세들이나 힘들과 하나님을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첫번째의 제안을 시편 139편을 통하여 묵상한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록 계시며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나는 내 마음과 내 과거와 내 미래의 계획들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숨길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나는 내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동료들을 기만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거나 행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을 기만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내가 마음에 숨기고 있는 모든 것과 모든 허식을 꿰뚫어 보신다. 하나님은 내 진정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아신다. 실로 그 분은 내가 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것이다."
저자는 두 번째 제안을 이사야 40장을 통하여 묵상한다. 이사야는 열방과 세상, 위대한 자, 별들과 비교하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잘못된 생각에 대해 두 가지 방향으로 꾸짖는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을 사람과 비교하며 하나님을 왜곡하고 축소하는 생각들이다. 둘째는 자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를 버리지 않건만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왜곡하는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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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묵상하며, 특히 2부를 묵상하며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왜곡하고 있으며, 인간의 시각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이런 하나님을 왜곡하는 부분이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나,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왜곡은 자기 자신에 대한 왜곡을 가져 온다. 하나님은 전능하심을 왜곡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왜곡하게 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바로 아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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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지혜로우신 하나님
9장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야기 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본질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 지혜는 하나님의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능력이 없는 지혜는 애처로운 상한 갈대이며, 지혜가 없는 능력은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하나님만 하나님 안에서는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능력이 한데 결합해 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의 완전한 신뢰를 받았기에 합당한 분이 되신다."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현대 사람들은 잘못 해석한다. 이 지혜를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세상에서 축복받는 지혜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에서 복을 받는 지혜가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지혜인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의 이야기를 통하여 설명한다. 하나님이 이들은 어떻게 세상 가운데서 부르시며, 때로는 연단과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경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지를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지혜를 여러가지 신련과 과정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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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얼마나 잘못 해석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지혜를 세상에서 복을 받고 성공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숙한 신앙을 가지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 분의 지혜를 통해 순간 순간 우리를 인도해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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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하나님의 지혜와 우리의 지혜
이 장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 인간의 지혜를 이야기 한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으로 나누었다. 비공유적 속성이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공유적인 속성이란 하나님과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셨다. 즉 인간을 하나님을 닮도록 만드신 것이다. 인간이 타락한 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간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유적인 속성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이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 중의 하나로 하나님의 지혜를 든다.
저자는 이 하나님의 지혜를 현대 사람들이 왜곡한다고 말한다. 지혜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나 현대인들은 이 지혜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온전히 파악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 마치 우리가 철도청의 상황판에 앉아 모든 철도의 운행 사항을 파악하듯이, 하나님의 지혜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지혜를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의욕을 잃고,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의 지혜는 이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경회하고 그 분께 예배하며, 그 분의 뜻대로 살려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길이다. 분명 그것은 믿음의 삶의 한 측면이다. 왜냐하면 불가사의한 섭리의 하나님은 지혜롭고 자비로운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이 그 기저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놀랍도록 복잡한 세계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 애굽으로부터 위대한 구속을 계획하신 분, 그리고 후에는 죄와 사단으로부터 훨씬 더 큰 구속을 계획하신 하나님이, 비록 지금 당장은 자신의 손을 감추고 계시다 해도, 자신이 하고 계시는 것을 알며, '매사를 잘 처리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분별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다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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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 역시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내 삶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온전히 알려고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마치 철도상황판에 앉아서 모든 철도의 움직임을 읽듯이 나와 주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모두 알려고 했던 교만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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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주의 말씀이 진리니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크게 두 가지이시다. 첫째는 이 땅은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그 분은 주권적인 능력으로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당신의 진리를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통치의 방편이자, 우리와 교제하시는 교제의 방편이다. 이 말씀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율법, 하나님이 이루시기로 우리와 맺으시는 약속, 그리고 하나님과 그 자녀들에 대한 선포이다.
창세기 1-3장에는 이 하나님의 말씀의 율법과 약속, 선포가 모두 등장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시고, 선포하신다. 그러나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고 율법을 주신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에게도 구원을 약속하신다.(창3:15) 이 율법과 약속과 선포는 성경 전체에서 계속된다.
저자는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복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말씀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영혼은 예배, 율법 준수, 진실됨, 정직함, 훈련, 자체 그리고 하나님과 동료들을 섬기는 것 등을 실천함으로써 '가동'되도록 만들어졌다. 만일 이러한 것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점점 파괴하게 된다. 양심이 위축되고 수치심이 말라 버리며, 진실함, 충성, 정직함의 능력이 침식되고, 인격이 분열되어 버린다. 그런 사람은 지독하게 비참해질 뿐만 아니라 꾸준히 비인간화된다. 이것이 영적 죽음의 한 측면이다.(P179)"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은 참되시며,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이시다. 저자는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라고 말하시고, 그 하나님의 성실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 아래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진리의 글(단10:21)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믿고, 약속을 신뢰하며, 그 명령에 따르며 그 말씀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이다.(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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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묵상하며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안에서 의지하는 것이 무엇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화려함과 세상적인 방법이 모든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까지 유혹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의지하고 믿을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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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하나님의 사랑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 인간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5장 5절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의 성경적인 의미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첫째로 저자는 여기서 저자는 '부은 바 됨'이라는 동사의 의미에 주의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흘러 나온다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고, 넘쳐나서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모습니다.
두 번째로 '부은 바 됨'이라는 시제가 현재완료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골짜기에 물이 가득차서 넘져 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이 '부은 바 됨'이 성령의 사역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개인과 교회를 회복시키고 부흥되는 것이 성령을 통한 하나님은 사랑임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이야기 한다. 첫째 저자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 부분적인 진리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여러가지 하나님의 속성이 있고, 사랑도 그 부분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속성과 조화를 이룬다. 즉 저자는 이 사랑을 거룩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서 거룩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로 이 하나님이 사라이라는 의미는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완전한 진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과 함께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우리의 삶에 매일 매일 나타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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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하나님의 은혜
저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 하지만 그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고 제시한다.
첫 번째는 인간의 도덕적 악덕을 단순히 실수나 심리학적인 문제로 깨닫는 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적 악덕의 근본에 있는 죄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응보적인 정의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반드시 벌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세 번째는 인간의 영적 무력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시도로 선을 행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유이며,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는 죄사함의 근원으로서의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피 흘리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칭하셨다. 저자는 '칭의는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큰 대가를 치루셨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는 두 번째 은혜와 연관되어서 이 약속이 단순이 예전에 있었고, 현재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칼빈은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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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계획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적이 많이 있었다. 그것이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반대되는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서적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주권의 그 영광과 은혜를 조금이라도 깨닫게 된다. 얼마나 큰 하나님의 구원은 계획이 있었으며,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그리고 내가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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