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6장] 우상의 멸망과 하나님의 부르심
[내용개요]
본장은 바벨론이 섬기는 신은 우상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바벨론의 신이 행할 수 없는 것들을 이루어 가시는 살아 계신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일생 동안 돌보시고 이끌어 주신다(1-4절). 금과 은으로 만든 신들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다. 거짓 신은 인간의 간구를 알지도 못하고 구원도 할 수 없는 것이다(5-7절). 패역한 자들 즉 바벨론인들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임을 기억해야한다.(8-11절). 회개하지 않는 바벨론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할 고레스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12-13절).
[강 해]
메소보다미아 지역 남부에는 바벨론이라는 갈대아인이 세운 큰 제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제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있지도 않은 허망한 신들을 섬겼습니다. 우상이 그들의 생명과 길흉화복을 주장하는 것처럼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본장은 그런 바벨론이 끝내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우상의 짐
1)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수고
이 세계 내에서 여호와 한 분 외에는 신이 없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이외에 신이 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실제에 있어 신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이외에 신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신으로 섬기는 모든 것들은 여호와 이외에 신이 아닌 것들입니다. 그 모든 거짓 신들은 인간이 미련하여져서 하나님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만들어 낸 허상들입니다. 인간은 그 허상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a. 허탄한 우상(사41:29)
b. 허망한 우상(사59:4)
2) 메고 다니는 짐
인간은 헛된 신들을 고안해 내자마자 그것들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손으로 그것들을 조각했습니다. 아니면 자연물 그대로를 신이라고 하고 그것들을 신상으로 채택했습니다. 채택된 신들은 소중한 것이 되었으므로 보존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좋은 곳에 두기 위해 땀 흘려 이동시켰습니다. 자기 곁에 두기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고안해 낸 우상을 만들고 이동시키고 지키기 위해 수고하였고 지금도 수고하고 있습니다.
a. 손으로 만든 것(렘1:16)
b. 메임을 입는 우상(렘10:5)
3) 허망을 기대하는 수고
죽은 자는 행동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이 그것에게 절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줄 수도 없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상에게 절을 하고 그 우상이 자신들에게 복을 주기를 기대합니다.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오지 않는 기다림처럼 지루하고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만들어 내고 지키기 위해 힘쓴 그 우상이 복 주기를 또 기다리는 수고까지 합니다.
a. 무능한 바알(왕상18:29)
b. 무능한 우상(사41:24)
2. 우상과 우상 숭배자의 멸망
1) 우상 숭배자의 죽음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우상만 파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세워진 신당만이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신당에서 우상에게 절한 자들도 제거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고 세상의 쾌락을 좇았던 모든 소돔과 고모라의 거민들이 다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그와 같이 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도망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합니다. 물론 최후의 심판 때에 그들이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것은 물론입니다.
a. 무너진 다곤(삼상5:4)
b. 우상의 훼파(겔6:6)
2) 새로운 우상
근세 이전에는 우상이 매우 형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이 대다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인성이 개명되었다고 할 무렵부터 그런 보이는 우상들이 배척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우상이 사라져 간다고 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우상을 보이는 우상으로 대치하였습니다. 새로이 떠오른 보이지 않은 것이란, 권력이나 재력, 쾌락 따위의 손에 잡히지 않으나 가지고 있으면 육신에게 유용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현실적인 힘을 가진 그런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추구해도 멸망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a. 권력의 우상(마4:8-9)
b. 탐심의 우상 숭배(골3:5)
3. 하나님의 부르심
1) 깨달음에의 부르심
우상 숭배는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어리석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상에 가깝고 하나님으로부터 먼 자들에게 그 마음의 문을 열도록 부르십니다. 그 마음의 눈을 열어 영이신 하나님을 보고 마음의 귀를 열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a. 깨닫게 하라는 명령(단8:16)
b. 듣고 깨달으라(마15:10)
2) 돌이키기를 소망하심
듣고 본다고 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들은 듣고 보아도 하나님께로 가지 아니하고 그냥 그 죄악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며 현재의 육적인 삶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상태로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부르십니다.
a. 돌아오라(사44:22)
b. 회개와 돌이킴에의 부름(행26:20)
3) 장부가 되라
장부는 아녀자들과 달리 용맹하며 개척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른 장부는 정의를 숭상하며 진리를 존중합니다. 이러한 특징이 장부에게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보는 자들에게 장부가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신앙의 대장부가 되지 않고는 죄와 사단에 대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건설하는 건설의 역군이 되지 못합니다.
a. 예수의 좋은 군사(딤후2:3)
b. 남자답게 강건하라(고전16:13)
결론
우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없는 우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보이는 것으로 조각하고 지키며 곁에 두려는 것은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복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은 더 큰 헛수고입니다. 우리는 그런 우상에게 절하지도 말고 무엇을 기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 하나님을 보고 그에게 돌이켜 장부처럼 그를 섬기고 그의 신민이 되어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벨. '소유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의 <l['B;:바알>에서 유래했는데
초기 바벨론이 섬기던 신의 이름이며 후기에는 마르둑과 결합되어 섬겨졌다.
2절. 구부러졌고. 하나님 앞에서 우상들이 아무 힘이 없고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이스라엘의 구원자이고 보호자이심을 의미한다.
4절. 구하여 내리라. 위급한 재난이나 죽음의 위협에서 구해 내는 것을 말한다.
5절. 비기며. '같다, 유사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본질적으로 다르며 유일무이한 절대자임을 의미한다.
6절. 쏟아 내며. '낭비하다'라는 뜻으로, 우상 숭배자들이 무력하고 무가치한 신상을 만들기 위하여
아낌없이 자신의 금전을 탕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8절. 장부가 되라. '남자처럼 행동하라'는 뜻으로 어리석고 무가치한 우상 숭배 행위를 과감하게 청산하라는 의이다.
9절. 옛적 일.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을 가리킨다.
10절. 모략. 하나님의 계획 또는 뜻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하여 결코 변하지 않으며, 반드시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있다.
12절. 완악하여. 용감하고 대담한 자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우매한 자를 뜻한다.
[신학주제] - 바벨론의 신보다 우위에 계시는 하나님.
바벨론은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유다를 심판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그들 또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교만하며 또한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신이 우상이어서 그들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벨은 태양신인 마르둑의 다른 이름인데(참조, 렘50:2), 가나안의 바알과 같은 중요성을 가지는 우상이다. 그 우상은 바벨론의 축제가 있을 때마다 그 나라 백성들의 손에 의해 움직여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섬겨 왔다. 또한 그 신상은 대단히 컸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바벨론 백성들의 짐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손에 의해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백성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시는 분이다. 따라서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유일성과 참된 구원 사역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잉태의 순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지켜 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다. 바벨론 백성들이 섬기는 신은 살아 있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보호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이 자랑하는 우상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우상이 가지는 한계로서, 어떠한 우상이라도 인격을 가지지 않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인격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일이라도 도와줄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사정들을 아시고 참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것이다. 바벨론은 자신들의 신이 결코 자신들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주변의 강대국을 통하여 바벨론을 침략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임을 입증하는 것이며, 좁게는 바벨론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하나님보다 결코 위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영적교훈]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민도 아닌 이방 나라의 흥망성쇠에 관여하시는 것은 그분이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며,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각 개인이나 나라가 저지른 죄악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비추어 심판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륜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선민을 향한 은혜와 사랑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의 구원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 성도가 접하는 상황이나 그 마음이 변화되는 기적으로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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