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8장] 진정한 종교 의식의 의미
[내용개요]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크게 외치고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할 것을 명하셨다(1절). 본장의 나머지 부분은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형식주의적 신앙을 비판하는 내용으로서, 주로 형식적인 금식과 형식적인 안식일 성수에 관한 것이었다. 금식하면서 오락을 하고 다투고 죄악을 행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금식은 소외당한 자를 돌보며 배고픈 자를 먹여 주는 것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2-12절). 또 안식일에는 오락을 행치 않고 존귀히 여기면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13-14절).
[강 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가식적인 금식을 책망하면서 진정한 금식의 의미를 교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금식을 행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지만 거짓으로 금식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이는 외식적인 종교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었습니다.
1. 형식적인 종교 의식의 죄악
1) 야곱 집에 죄를 고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크게 외치고 아끼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명하신 말씀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허물을 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사역자라 할지라도 저주와 죄에 대한 책망의 말씀을 크게 외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과 복을 비는 소리는 듣기 좋아하고 죄와 허물에 대한 책망은 듣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축복이든지 저주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크게 외치는 것이 복음 사역자의 의무입니다.
a. 말하는 자의 소리(사40:6)
b. 그들을 깨우치라(겔3:17)
2) 금식 중에 오락을 행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금식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하나님 앞에 겸비히 엎드린다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식이라는 의식적인 행위를 실천했지만 그 행위에 내포되어야 할 진정한 의미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금식 중에 온갖 일을 시켰습니다. 여기서의 일을 시킨다는 말의 뜻은 다른 사람에게 가혹한 일을 강요하며 압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는 금식을 행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는 행위는 가증한 외식 행위 입니다.
a. 스스로 괴롭게 하는 금식(레16:29)
b. 자신들을 위한 금식(슥7:5-6)
3) 금식 중의 다툼
이스라엘 백성은 금식을 하면서 서로 다투고 싸우며 주먹으로 쳤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육신은 금식을 하였지만 그 속마음에는 증오와 미움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용서치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용서와 사랑을 베풀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식하는 것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는 식이라는 뜻입니다.
a. 강포와 탈취를 행함(렘6:7)
b. 죄악의 몽둥이가 된 포학(겔7:11)
2. 진정한 의미의 금식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금식의 참 의미에 대해 교훈하셨습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과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는 오직 사랑과 긍휼을 베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함을 교훈한 것입니다.
a. 마음을 찢는 금식(욜2:12-14)
b. 약자들을 배부르게 함(신14:29)
2) 진정한 금식의 능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의 결과로 그의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습니다. 빛이 아침같이 비취는 것은 번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금식하는 자에게 치료를 급속히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질병이 치유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엎드려 자신의 연약함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진정한 의미의 종교 생활을 실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배경이 되어 주셔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a. 생명의 빛이 비췸(사9:2)
b. 맞은 자리를 고치심(사30:26)
3)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금식
본문에서 경건하고 진실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은 곧 구원의 은총이 임함을 의미합니다.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심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성도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실 뿐 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도 해결하여 주십니다.
a. 의로운 집으로 형통케 하심(욥8:6)
b. 은혜로 응답하심(사30:19)
3. 의인에게 임하는 축복
1)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의인
하나님께서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심정을 동하여 긍휼을 베풀고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그의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티는 죄를 버리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생의 모든 고통과 슬픔이 사라지고 만족과 기쁨으로 가득 차는 복을 내리실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에 구원의 빛을 비추실 때 어두움은 빛으로 변하고 슬픔의 눈물은 기쁨의 환희로 바뀌는 것입니다.
a. 선을 베푸는 자(신15:7)
b. 생명이 대낮보다 밝음(욥11:17)
2) 의인의 받을 축복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의인은 마른 곳에서도 그 영혼이 만족케 되며 뼈가 견고하게 됨으로 그 생이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이는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경건히 행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를 받는 자에게는 무너진 데를 수보하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는 복이 임합니다. 무너진 데를 수보함은 곧 회복을 의미하며 영적, 정치적 승리를 뜻합니다.
a. 만족함(시104:28)
b. 영생수를 마심(요4:14)
3) 안식일 준수에 따른 축복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좇아 안식일을 지켜 준수하는 자에게 축복하시되 그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길러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의 업은 언약의 축복을 의미하며,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잇게 됨을 뜻합니다. 안식일은 궁극적인 쉼, 즉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자는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사는 자입니다.
a. 여호와께서 높이심(신32: 3)
b. 영영한 언약이 성취됨(시105:10-11)
결론
예수께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에 대하여 심하게 책망하시며 저주하셨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신앙생활이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면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하고, 마음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아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나팔같이. 원어 <rp;/v:쇼파르>는 원래 '숫양의 뿔'을 의미한다.
이는 보통 나팔을 만들 때 숫양의 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팔은 찬양할 때나, 군사적인 것, 일상적인 중요 행사를 알리는 것에 사용된다.
3절. 오락.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적인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는 어떤 것을 뜻한다.
6절. 결박. '차꼬, 족쇄'를 가리킨다. 이것은 불의하고 잔혹한 권위를 가지고 타인의 권리나 유익을 억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7절. 빈민.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사는 경제적으로 빈궁한 자와, 사회적으로 의지할 데 없는 피압박자를 가리킨다.
9절. 부르짖을 때.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에서부터 구원해 달라는 도움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행함을 의미한다.
11절. 만족케. 충분히 식사하여 만족함을 의미하는데,
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떡을 흡족하게 공급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다.
[신학주제] - 금식.
금식은 본래 음식을 일체 끊음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구약에서 볼 때, 포로기 이전에는 금식 자체를 가치 있는 경건한 종교적 행위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포로기 이전의 경우 금식은 단이 절망에 빠졌을 때나 참회할 때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할 때 시행되었다. 금식이 종교적 의미에서의 경건한 행위로 받아들여진 것은 포로기 이후의 일로서 유대인들이 포로 귀환 후에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과정에서 공동 금식의 날을 제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도 종교적 행위로서의 금식 자체를 비판하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초대교회 당시에도 금식은 경건의 훈련으로 권장되기도 했었다(참조, 행13:2). 금식은 음식을 일체 끊는 것이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할 힘도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금식이란 이제부터는 나의 힘으로 하던 모든 일을 일체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이 일을 이루실 수 있다고 믿는 신앙 고백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금식의 정신을 무시하고 금식의 형식만 갖추어, 금식하면서 오락을 즐기고 온갖 일을 다 하고 싸우기까지 하는 것은 도무지 금식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밥을 굶는 것일 뿐이지 나의 힘으론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어 달라는 간구가 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금식은 압제당하는 자에게 자유를 주고,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힘없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임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금식의 정신이다. 겉으로 초기에는 금식과 소외당한 자들을 돌보는 것 사이에는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 그러나 금식의 본래적 정신과 소외당한 자들을 돌보는 본래적 정신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공통적 기반이 있다. 금식이 하나님 사랑의 신앙적 행위라면, 소외당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이웃 사랑의 실천적 행위이다.
[영적교훈]
신약 이후 시대의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 구약 시대처럼 율법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으나 안식일의 정신만큼은 보존되어야 한다. 안식일은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천국의 기쁨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는 날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모든 인간적인 일상사로부터 떠나서 하나님의 일을 힘써 행해야 한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일하는 날이다. 종말에 안식일이 진정한 안식일이 되게 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날이다.
'구원의 이정표 > 장별요약강해-구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 60장] 시온에 임할 영광과 새 날 (0) | 2012.08.04 |
---|---|
[사 59장] 유다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0) | 2012.08.04 |
[사 57장] 우상 숭배자 책망과 회개자 위로 (0) | 2012.08.04 |
[사 56장] 이방인의 구원 예언과 지도자들 책망 (0) | 2012.08.04 |
[사 55장] 여호와의 구원의 초대 (0) | 2012.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