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1장] 시드기야와 예레미야의 갈등
[내용개요]
본장에서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이제 현실적으로 다가온 바벨론의 침입을 맞이하여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비를 간청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는 두 길, 곧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제시하며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인 바벨론에 대항치 말고 투항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시드기야의 요구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선언하고 있는 전반부(1-7절)와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바벨론에 대한 순복을 종용하며 마지막으로 유다 왕가에 대한 심판 선언을 진술하고 있는 후반부(8-14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이제까지 줄곧 지적되어 온 죄악의 결과로서의 심판과는 차원을 달리하여 진정한 생명을 가리키는 모습으로의 심판의 양상을 중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심판에 관한 특별한 예언을 진술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적 기준이 된다.
[강 해]
본장은 2장에서부터 20장까지 지속되었던 유다 심판에 관한 예언에 뒤이어 심판에 대한 특별한 네 가지의 예언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본장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침략하자 당시에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기도를 요청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의 기도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
1. 시드기야의 요청과 거절
1) 기도를 요청함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아들이며 유다 최후의 왕입니다(참조, 대상3:15). 시드기야 왕은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예레미야가 우리를 위해 여호와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 왕과 지도자들은 모두 친애굽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은 회개의 태도를 내포하였다기보다는 국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a.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창20:17)
b.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김(대상17:25)
2) 기도를 거절하는 예레미야
시드기야가 보낸 사람들을 통해 예레미야는 왕의 기도 요청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시드기야의 기도 요청과는 반대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즉 그의 도움 요청이 거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듣고도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대항하는 어리석은 정책을 펴면서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말씀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없이 내 뜻대로 하는 기도는 아무리 해도 시간과 정력만 낭비할 뿐입니다.
a. 악함을 회개하고 기도하라(행8:22)
b.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6:9)
3) 바벨론 군대에 패함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시드기야의 기도 요청을 거절하실 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 군대에게 패배케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유다 백성과 시드기야 왕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면서도 자기들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아무 필요가 없게 됩니다.
a.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 지어다(행8:20)
b.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신30:18)
2. 재앙을 당하는 백성들
1)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유다 백성들을 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성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현상들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염병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지만 그 증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염병은 구약 시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던 병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사회에는 이 병에 한번 걸리면 죽음을 면치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a. 기근과 온역에 망함(겔7:15)
b.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잠11:3)
2) 남은 자도 피할 수 없음
하나님께서는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여 죽도록 내버려두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침입과 전염병과 기근이 있은 후에까지 남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 땅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을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은 주전 586년 바벨론의 세번째 침입 때 유다가 멸망하고 눈이 뽑힌 시드기야를 비롯해서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감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참조, 렘52:11-15).
a.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렘44:12)
b. 회개치 아니하면(눅13:3)
3)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포위 속에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항복은 생명의 길이며 저항은 사망의 길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주장은 동족으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가감 선택하는 것은 결국 말씀에 대한 전적인 확신과 순종을 방해합니다.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a. 망할 자는 망할 대로(슥11:9)
b. 우리를 생각하사(욘1:6)
3. 경고와 재앙
1) 공의를 행하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약탈을 자행하는 왕과 백성들에게 공의를 행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여기서 공의를 행하는 일이란 왕과 백성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귀하게 여기고 성실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성실한 업무는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돕는 일입니다. 진리와 더불어 용기를 내어 공의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자가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a. 공의를 행함으로(단4:27)
b.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삼하23:3)
2) 불순종하는 자에게 진노하심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진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을 행하기보다 악을 행하는 데에 더 재빠르며 할 수만 있으면 불순종과 불의에 빠지려고 합니다(참조, 롬7:19). 따라서 부패한 인간의 심성으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징벌과 저주에 대하여 성경은 자세하게 언급하고 보다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재앙은 아무도 피하여 숨지 못합니다. 이 세계 어디에도 그 분을 피해 숨을 곳이 없는 것입니다.
a.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롬13:4)
b. 저희에게 진노하사(왕상8:46)
3) 행위대로 벌할 것임
불을 보듯이 뻔하고 손바닥을 보듯이 환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함이 없는 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행위대로 벌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거나 공의를 굽히시는 법이 없음을 명심하고 성도들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필요악으로 묵인되는 것들조차도 성도는 용납해서는 안 되며 선한 목적을 위한 수단에 대해서도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해진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자신이 친히 그들의 대적이 되어 그들의 행위대로 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골3:6)
b.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단9:13)
결론
우리는 시드기야의 기도 요청을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인가를 알게 됩니다. 기도는 먼저 철저한 회개를 통해 나타나는 올바른 행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계속 악을 행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잠시 환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도는 올바른 것이 아닐 뿐더러 하나님께서도 거절하심을 분명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2절. 기사. 원어 <al;P;:펠레>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이례적인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의 행사나 역사적인 성취를 가리킨다.
7절. 불이리니. '주다, 두다, 만들다'는 의미로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바벨론 군대의 손에 위임하였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8절. 사망의. 원어 <tw<m;:무트>는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죽음이나 폭력적인 죽음을 가리키며 죄의 결과와 죄에 대한 큰 징벌을 의미한다.
9절. 갈대아인에게. 갈대아인은 아라비아 북부와 페르시아 만 사이의 지역에 살고 있는 유목민들을 가리킨다.
후대에는 바벨론의 전 지역을 포함하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13절. 내려와서. 군사 용어로 성을 공격하러 행군해 내려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신학주제] - 바벨론의 침입으로 이루어지는 유다의 심판.
바벨론의 침입에 즈음하여 유다 백성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두 가지 맥락 속에서 드러난다. 첫째로, 시드기야의 구원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 속에서 발견된다. 유다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반바벨론 동맹에 가입하여 바벨론과 싸우는 행위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바벨론을 통해 징계 받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유다가 계속해서 바벨론에 대항한다면 시드기야를 포함한 유다의 지도자는 물론 백성들까지도 하나님의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침입하였을 때 우선 애굽의 바로 호브라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바벨론에 대항할 전쟁 준비를 하였고, 마지막으로 예레미야에게 특사를 보내어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한 것이다. 결국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고 아신의 힘으로 대항함으로써 패역한 모습을 더욱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둘째로, 두 가지의 대조적인 사실의 지적을 통하여 설명되고 있다. 유다 백성들에게는 바벨론의 공격에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는 '생명의 길'과 유다 본토에 남아서 바벨론에 대항하는 '사망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유다를 징계가시기로 작정하시고 바벨론을 그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바벨론을 대적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이 된다. 그러므로 유다는 무모한 항진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영적교훈]
본장에서 유다 백성들은 다가온 심판의 현실을 겸손히 받아들이도록 요구받는다. 만약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고 예루살렘 성안에 남아 있기를 선택한 자들에게는 처절한 죽음이 주어지게 된다. 반면에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항복하는 자들은 생명이 보존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는 반항하지 말고 묵묵히 순복하여야만 진정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항하는 자들은 인간의 힘을 의지해 그 힘으로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는 교만의 죄를 저지르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이나 심판을 당하는 성도는 그것을 인간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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