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7장] 투옥되는 예레미야
[내용개요]
본장은 시위대 뜰 안에 갇힌 예레미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중보 기도를 요청하지만, 유다를 멸망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함을 안 예레미야는 매국노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 함락을 선포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방백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감옥에서 풀려 난 후에 역시 동일한 예언을 행했다. 이러한 본장은 예레미야와 시드기야의 첫 대면을 언급한 전반부(1-10절)와 예레미야의 투옥과 시드기야와의 두번째 대면을 진술하고 있는 후반부(11-21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앞두고 어설픈 개인적 소망을 가지고 있는 시드기야의 입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강 해]
본장과 다음 장은 시드기야 왕 시대에 예루살렘이 포위된 중에 되어진 사실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유다 왕위에 오른 후에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 대신 기도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 멸망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시드기야의 요청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함락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방백들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1. 시드기야의 처신
1)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를 대신하여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세웠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는 유다 왕국의 최후의 왕이 되었는데, 그는 21세 때 유다의 왕이 되었으나 자기를 왕으로 세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피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드기야는 그가 유다 왕이 된 이후로 바벨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은 눈앞에 되어지는 상황을 목격하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을 시드기야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a. 우리 위에 왕을 세우리라(신17:14)
b.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창36:31)
2) 기도를 요청하는 시드기야
유다 왕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하기 위해 여후갈과 제사장 스바냐를 보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믿음의 기도로 심중의 소원을 아뢸 때 그것을 얻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기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할 사실은 무엇이든 구하기만 한다고 해서 모두 응답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는 아무리 간구하여도 절대로 응답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참조, 약4:3). 그리스도인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a. 손이 다시 성하기를 기도(왕상13:6)
b. 욥이 너희를 위하여(욥42:8)
3)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퇴각함
유다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 군대가 침공해 오자 애굽에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시드기야의 요청이 있자 즉시 군대를 유다를 향해 출전시켰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유다를 돕기 위해 애굽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싼 것을 풀었습니다. 이것은 애굽 군대와 싸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라기스의 편지'에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a. 내게서 물러가나니(호11:7)
b.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시78:9)
2. 예레미야의 예언
1)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애굽 군대
예레미야는 애굽 군대가 시드기야의 요청으로 유다를 도우려고 왔으나 도움을 주지 못한 채로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퇴각했던 바벨론 군대는 다시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정복하고 불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다 왕과 백성들은 바벨론 군대가 잠시 퇴각하는 것을 보고 득의양양했습니다. 세상에서 신앙을 갖기에 가장 힘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것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은 굳이 하나님을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면 다 되는 것으로 여기기에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복음의 내용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a. 다 물러가 욕을 당케(시40:14)
b. 그들이 놀라 물러감(렘46:5)
2) 예루살렘은 반드시 함락될 것임
예루살렘이 멸망되지 않는다는 헛된 확신케 사로잡혀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군사들이 예루살렘에 부상자만 남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일어나서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것이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참다운 힘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불의와 폭력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자가 결국은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느 집단의 무력보다 강하고, 능력이란 말의 어원이 되는 다이나마이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a.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림(겔35:4)
b. 견고한 성이 무너짐(미5:11)
3) 예레미야가 체포됨
예루살렘에 있던 예레미야는 분깃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떠났습니다. 그가 베냐민 문에 이를 때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하는 문지기의 두목이 예레미야를 체포하였습니다. 베냐민 문은 예루살렘 영내에 있는 북쪽 문을 가리킵니다. 이곳을 일명 에브라임 문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참조, 왕하14:13,느8:16). 문지기의 두목이 예레미야를 체포한 것은 그가 바벨론 군대에 항복하기 위해 가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a. 결박과 환난이 기다림(행20:23)
b. 쇠사슬로 결박함(대하36:6)
3. 유다 왕과 선지자
1) 핍박받는 선지자
문지기의 두목에게 체포된 예레미야는 자신이 바벨론 군대에 항복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지기의 두목 이리야는 예레미야를 방백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난 다음에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습니다. 힘이 제 구실을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쓰여지게 하려면 의와 절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결한 힘은 올바르게 사용되기가 어렵고 도리어 폭력이라는 옷을 입음으로써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게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a. 바나바를 핍박함(행13:50)
b. 나를 핍박함(삼하14:7)
2) 시드기야와 예레미야
예레미야가 토굴 옥 음실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석방하도록 했습니다. 왕궁에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만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어 예레미야는 자신이 옥에 갇힘은 부당하다고 항변하였습니다.
a.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요18:21)
b.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함(행23:20)
3) 자유스럽지 못한 선지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요나단의 집 감옥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자 유다 왕 시드기야는 그를 시위대 뜰에 두고 매일 떡 한 덩어리씩 먹도록 주었습니다. 시드기야가 이렇게 한 이유는, 예레미야의 말을 인정은 하지만 그에게 자유를 주면 자신에게 불리한 예언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전장이라고 말하며 또한 인생을 싸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를 대적하는 것들이 많음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주를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대적들이 더욱 많게 마련입니다.
a.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벧후2:19)
b.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갈2:4)
결론
고난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만을 증거하는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자들의 태도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에 좌우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시드기야.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11년 간 유다를 통치하였다.
원래 이름은 맛다니야였으며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위에 오르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3절. 기도하라. '간섭하다, 중재하다'는 뜻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을 위해 드리는 중재적인 기도를 가리킨다.
7절. 도우려고. 원어 <hr:z][:아자르>는 주로 군사적인 지원을 가리킨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물리치기 위해 애굽과 동맹을 맺은 것을 가리킨다.
14절. 망령되다. 원어 <rq,v:솨카르>는 '거짓말, 허위'를 뜻하는데 사실이나 현실에 기초하지 않고 근거가 없는 말을 가리킨다.
17절. 손에 붙임을.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잡히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20절. 탄원을.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말한다.
이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직 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신학주제] - 예레미야와 시드기야의 대면.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와의 대면을 요청하여 예루살렘의 건재를 확인받으려고 했다. 본래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유다 왕으로 옹립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바벨론에 충성을 다해야 마땅했다. 더욱이 예레미야로부터 바벨론을 대적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기에 바벨론에 대항해서는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는 친애굽 동맹 국가들과 바벨론 동맹을 맺었다. 그 결과 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대면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시드기야는 예루살렘이 아직도 파멸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중재를 요청하기 위하여 빈번한 대면을 요구하였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시드기야가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여 선지자에게 중재를 요구한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그의 속셈은, 당시 국제 상황 속에서 바벨론의 일시적인 후퇴로 바벨론 정책이 성공하는 듯하였기에 바로 이 사실을 예레미야로부터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왕은 오로지 신하들의 입김에 기초하여 당시 바벨론 침공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픈 인간적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심판 메시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영적교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투옥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당하게 되는 핍박이다. 이와 같이 성도는 때때로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을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신앙의 정조를 지킨 믿음의 선배들이 기독교 역사상 많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 어떠한 핍박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만이 궁극적으로 온전한 승리자가 되실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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