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8장] 다툼과 용서에 관한 교훈
[내용개요]
예수의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의 문제로 논쟁이 일어나자 예수께서는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답변하셨다. 그리고 연이어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실족케 하지 말 것과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길 잃은 한 마리 앙같이 사랑하심을 강한 어조로 선언하신다(1-14절). 또 형제가 범죄하면 세 번까지 권고하고 그래도 안 되면 출교하라고 명령하셨고, 기도에 관한 가르침도 주셨다(15-20절). 베드로가 형제에 대한 용서에 관하여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시면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베푸셨다(21-35절).
[강 해]
이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서기를 좋아하고, 힘없는 사람을 멸시하며, 용서할 줄을 모릅니다. 본장은 인간이 그러한 자신의 교만을 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힘없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의미
1) 순전
제자들은 천국에 가게 되면 누가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다투다가 도저히 해결점을 찾지 못하자 스승인 예수께 가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이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에 가는 것을 기정 사실화 한 뒤 누가 더 크냐에 대해 다투었으나 예수께서는 그처럼 크고자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답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의 첫번째 의미는 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원죄의 영향이 있어 아기들에게도 악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보편적으로 어른에 비하면 아이들은 천진난만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엔 고의적인 악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a. 순전한 욥(욥1:1)
b. 성도의 순전(빌2:15)
c. 아이들같이 순전하고(벧전2:2)
2) 전적인 의뢰
아이들은 힘도 없고 몸도 작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철저하게 부모를 믿고 부모를 의존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a. 여호와 의뢰(시125:1)
b. 의뢰하는 자에게 복이 있음(렘17:7)
2. 화를 면하기 위하여
1) 아무리 작은 자라도 실족지 않게 해야 함
흔히 사람들은 가진 것 없고, 권력도 없으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익을 가져다 주지도 못할 뿐더러 징벌을 할 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하대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결코 하찮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본문을 통해 교훈해 줍니다. 실로 모든 인간은 저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에 있어서는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모든 다른 인간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릅니다.
a. 소자에게 한 것이 주께 한 것(마25:40)
b. 나그네 접대(히13:3)
2) 범죄하게 하는 것을 과감하게 완전히 제거해야 함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찮게 보이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지 말 것을 교훈하셨을 뿐만 아니라 만일 어떤 것이 그러한 죄를 범하게 만들거든 그것을 과감하고도 완전하게 제거해 버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것까지 교훈해 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께서는 어떠한 인간일지라도 그 인간 자체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으므로 모든 인간은 가진 것과 관계없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a. 찍어 버림(마5:29-30)
b. 배설물(빌3:8)
c.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
3. 용서에 관하여
1) 용서의 대상은 모든 사람
베드로가 예수께 잘못을 행한 형제에게 어느 정도까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예를 들어 답하셨습니다. 그 예에서 나타나는 용서의 대상은 한 사람이 대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이 말하는 빛이란 죄를 말하는데, 인간은 하나님께만 아니라 모든 타인에 대해서도 상호 범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의 대상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a. 누구든지 용서(막11:25)
b. 모든 사람을 용서함(눅11:4)
2) 용서의 이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예에서 나타나는 것 중,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기자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 있어 영원한 사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을 때 우리 죄를 도말시켜 주셨습니다(참조, 롬5:8). 따라서 모든 죄의 근본을 용서받은 우리가 사소한 죄를 짓는 형제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a. 사하여 준 것같이(마6:12)
b. 용서 없이 용서 없음(눅6:37)
3) 용서의 한계
예수께서는 일흔 번의 일곱 번이라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용서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교훈이며, 온전한 용서를 암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a. 중심으로 용서해야(마18:35)
b. 하루 일곱 번이라도(눅17:4)
결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은 값없이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값없음은 은혜의 측면에서 언급되는 것입니다. 구원에는 은혜의 측면과 아울러 열매의 측면이 있습니다. 열매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구원에 합당한 행실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에서 교훈하는 행실은 겸손과 인간 존중, 용서입니다. 우리는 천국 입성을 위해 그러한 행실의 열매를 충실히 맺어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3절. 돌이켜. 원어적으로 회개를 수반한 전인격적인 마음의 변화를 의미한다.
4절. 낮추는. 원어적으로 '스스로 낮아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모든 고난을 감수한 겸손을 나타낸다.
10절. 소자.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없게 보이는 미약한 존재를 나타내는 말이다.
13절. 찾으면. 영적인 구원을 의미한다.
16절. 증참케. '확증하다, 증거하다'라는 의미이다.
19절. 합심하여. 원어적으로는 합의된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기도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치될 때만이 응답받게 됨을 나타낸다.
23절. 회계.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있을 최후의 심판을 암시하는 말이다.
24절. 빚진 자.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상징하는 말이며 나아가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함을 나타낸다.
28절. 목을 잡고. 이와 같은 행위는 냉정하고 난폭한 태도를 나타낸다.
31절. 민망하여. '슬퍼하다'라는 의미이다.
[신학주제] - 일만 달란트 빚진 자.
본 비유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만 달란트란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고대의 역사가에 의하면 유대 정부의 일 년 총 예산이 일천 달란트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돈의 액수로 따져 보도록 하자. 웨인하우스의 화폐 단위에 의하면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다. 일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이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오만 원으로 잡고 계산하면, 일만 달란트는 삼조 원이다. 그러므로 종 된 신분으로서 일만 달란트나 되는 고액의 돈을 빚지고 있었다는 상황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누가 그만한 액수의 돈을 빌려 주겠는가? 그리고 그 종이 무슨 일로 그만한 돈이 필요했겠는가? 본 비유는 그 종이 이미 갚을 능력이 없을 만큼의 빚을 지고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빚은 일만 달란트 보다 더 크다. 인간은 그 빚을 같을 능력이 없다. 다른 이들을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용서해 주어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빚을 갚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영적교훈]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 세상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교회에서는 가장 낮은 자가 가장 큰 자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교회의 현실은 정반대이다. 진실로 작은 자의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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