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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신약

[막 11장]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by JORC구원열차 2014. 6. 20.

[막 11장]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내용개요]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절). 다음날 예수께서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으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절).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정화 사건을 일으키셨다(15-18절). 다음날 아침에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절).

 

[강 해]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정화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입성 첫 날 성전을 둘러보셨습니다(참조, 슥9:9).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만연되어 있는 인간의 위선과 탐욕, 허영과 자기중심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숙청하기 위해 채찍을 드셨습니다.

 

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1) 나귀를 끌고 오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내에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벳바게와 베다니는 서로 인접한 마을이었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2.5km거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하여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심은 곧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a.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슥14:4)

b.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눅19:29)

 

2) 나귀 새끼 위에 펼쳐진 겉옷

제자들은 주님이 시키신 대로 나귀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그 나귀는 아직 어느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습니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참조, 왕하9:13). 예수님은 분명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주님은 보좌 대신 나귀 새끼에 앉으셨습니다. 그 위에 양탄자 대신 제자들의 허름한 겉옷을 깔았습니다. 그러한 메시야의 모습은 그가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종으로도 오셨기 때문입니다.

 

a.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시24:1)

b.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마21:4)

 

3) 환성을 들으면서 입성하심

나귀 새끼를 타신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으며 나뭇가지를 꺾어 주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입성을 알리는 그들의 아우성은 왕께 대한 찬송이었으며, 장엄한 영접은 백성들의 뜨거운 눈물과 정감어린 사랑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환호를 끊임없이 외쳐댔던 것입니다. 많은 백성의 환호를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우선 성전이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가를 돌아보셨습니다.

 

a. 큰소리로 외침(계7:10)

b.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21:9)

 

2. 성전 정화와 무화과나무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베다니에 나오신 예수님은 매우 시장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찾으신 무화과는 열매가 없이 잎만 무성하였습니다.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향해 주님은 저주하셨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주님의 저주를 면치 못했듯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도 또한 그리스도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a. 금식하신 후에 주리심(마4:2)

b. 과실을 항상 맺어야(요15:16)

 

2) 성전에서 악행하는 자들

예수님 당시 성전은 성소와 제사장의 뜰, 그 다음 이스라엘의 뜰 그리고 여인의 뜰, 그 다음 이방인의 뜰로 그 구조가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이방인의 뜰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전에 들어오신 주님은 우선 매매자들과 환전자들을 성전 뜰에서 내어 쫓으셨습니다. 주님의 의분은 바로 타락한 성전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 이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의 성전 정화와 그 교훈은 당시 도처에서 모여든 경건한 순례자들에게 큰 호응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a.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마26:61)

b.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심(마21:12)

 

3) 뿌리가 마른 무화과나무

제자들은 다음날 아침 주님께서 앞서 저주하신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전날 주님의 명령의 결과임을 기억한 제자는 베드로였다고 마가는 증거합니다.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과 튼튼한 뿌리의 생명력은 결국 주님의 말씀의 힘에 굴복되고 말았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마른 사실에 대한 제자들과 베드로의 경이에 대해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김(마21:20)

b. 버림을 당함(히6:8)

 

3. 기도하는 자의 자세

 

1) 의심하지 말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이 인간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온전한 기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즉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모든 사건과 환경을 지배하는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신뢰하여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a.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롬4:18)

b.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고전13:2)

 

2) 믿음과 화목

예수님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어떤 문제의 해결을 놓고 기도할 때 응답받는 방법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즉 기도의 응답을 받는 길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믿음의 관계를 논한 후 이제 기도와 화목의 관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끼리 용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형제와 불화하는 자가 하나님께 온전한 기도를 드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a.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임 (마7:8)

b. 용서해야 용서를 받음(눅6:37)

 

3) 예수의 메시야성에 관한 논쟁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고 그분의 권위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며, 누가 이런 권세를 주었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예수의 권세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도리어 그들을 향하여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아니면 사람에게로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답변을 하지 못하자 예수님도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a.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함(막14:1)

b.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김(마21:26)

 

결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주님의 모습을 통해 열매 없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때가 아직 멀었다고 안심하지 말고 주어진 시간을 귀히 여기고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가람산.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해 있는 이 산은 감람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감람산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종인 메시야의 도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2절. 나귀 새끼. 나귀는 순결. 평화 등과 연관되어 있는 짐승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사역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담을 허시고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의 대속 제물이 되심을 암시하고 있다.

13절. 때. 여기서 의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구원 사역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먼저 이루어지고 나아가 그분의 재림을 통하여 완전해질 것이다.

14절. 강도의 굴혈. 문자적으로는 강도가 거처하는 동굴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성전이 본래적 기능인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악한 인간의 행위를 통해 상실되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23절. 의심. 원어적으로는 마음이 둘로 나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마음의 결정이 흔들리거나 이성적인 판단 자체가 흐려지는 상태를 말한다.

 

[신학주제] - 성전 정화 사건.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동이다. 본래 예루살렘 성전은 매우 넓고 유월절 등의 절기가 되면 마치 시장처럼 환전상들과 많은 짐승들을 파는 상인들로 붐볐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밖에는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에 대비하여 로마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므로 성전 상인들을 내어 쫓으시고 의자를 둘러엎으시던 예수의 행동이 정치적인 시위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만약 정치적인 시위였다면, 로마의 군사들이 즉각적으로 출동했을 것이고, 또 예수의 열두 제자만으로는 그 넓은 성전 시장을 무력으로 점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은 넓은 성전 시장 중의 한 부분에서 예수께서 벌이신 상징적인 성전 개혁의 행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영적교훈]

 

오늘날 각종 부흥회에서의 설교 테이프나 찬송가 테이프 등의 판매를 보면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성도들에게 은혜로운 말씀을 듣게 하고 은혜로운 찬송을 듣게 한다는 명목으로 시행하는 일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장사의 개념이 배제되지 않는다. 그러한 일들이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려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라면, 이천 년 전의 예루살렘 성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정화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그러한 외형적인 것 뿐만 아니라 교회가 예배당 건축의 명목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다른 수익 재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교회들이 점점 강도의 굴혈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낳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