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0장] 올바른 신앙을 가르치심
[내용개요]
예수께 와서 이혼 문제에 대하여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대원칙을 세워 주셨다(1-12절).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에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귀찮게 여기고 막았으나 예수께서는 어린이를 사랑하사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다(13-16절). 예수께서 길에 나가셨을 때 한 사람이 달려와 영생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음을 아시고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하시니, 그 사람은 근심하며 돌아갔다(17-22절). 나중에 제자들과 있을 때에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23-31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다시금 인자의 고난과 부활을 예언하셨다(32-34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메시야의 왕국에서 고위 관직을 요구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무지를 책망하시고 섬김의 삶과 인자의 대속물 되심을 강조하셨다(35-45절). 여리고에 이르렀을 즈음엔 소경 바디매오를 고쳐주셨다(46-52절).
[강 해]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사역과 예루살렘 사역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갈릴리 사역(1-8장)과 은둔 사역(9장), 그리고 베레아를 중심으로 하는 본장이 마가복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본장에서는 이혼에 관한 논쟁과 영생에 관해서 묻는 부자 청년의 어리석음과 제자들의 무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이혼에 대해 가르치심
1) 이혼에 대한 질문과 대답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을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무리로 인하여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사람이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대하여 율법이 무어라고 말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다만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한 것뿐입니다. 모세의 이혼법이 주어진 이유에 대해 바리새인들의 통념과는 달리 주님은 사람들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혼법이 제정되었다는 주님의 견해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a.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것(롬7:7)
b. 마음을 강퍅하게 말라(시95:8)
2)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심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처음 남자를 창조하시고 그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최초의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하와는 창조와 동시에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두 인격체가 하나로 연합된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로서 생물학적으로는 종족의 번식과 그 영속화를 도모하는 한편,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적 존재로서의 동물적 삶을 초월하는 도덕적 존재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표상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선택이며 소명이므로 사람이 임의로 이혼할 수 없는 것입니다.
a.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룸(창2:24)
b. 음행을 막기 위해서(고전7:2)
3) 이혼과 재혼은 금지 사항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창조의 원리는 불변의 원리이므로 가령 이혼 증서를 써 주었다 해도 하나님의 원리에서는 승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맺은 부부 관계는 불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혼은 죄악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간음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음행한 연고 외에 이혼하는 것은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참조, 마19:3-8). 그리고 재혼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재혼도 금하셨습니다.
a. 혼인을 귀히 여기라(히13:4)
b. 간음은 자기를 더럽히는 행위임(레18:20)
2.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
1) 어린이를 축복하심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주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이의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태도를 주님은 책망하시고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19:14)
b.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심(고후13:13)
2) 참된 헌신을 요구하심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청년이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부자였으며 관원이었습니다(참조, 마19:22눅18:18). 예수님은 청년에게 십계명 중 지켜야 할 도덕적 계명들을 지켰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청년은 그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그 청년에게 가진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 후에 당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헌신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청년은 자신의 많은 재물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포기하였습니다.
a.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막10:21)
b.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함(눅12:15)
3) 올바른 물질관
슬픈 기색으로 돌아간 청년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그가 부자라는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 대신 물질을 두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재물은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물질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은 삶에 있어서 단지 수단임을 알아야 합니다.
a.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함(잠27:24)
b. 모든 것을 더하심(마6:33)
3. 주의 뜻대로 살라
1) 수난을 예고하심
올바른 물질관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난에 관하여 세번째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수난에 관한 예언은 앞서 말씀하신 두 예언보다 더욱 자세하면서도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듯이 우리는 어떠한 시험과 환난이 올지라도 이겨내야 합니다.
a.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결심하심(눅9:51)
b. 당할 일을 다 아심(요18:4)
2)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께 야고보와 요한은 장차 임하게 될 주의 영광 중에서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대해 주님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추구해야 위대하게 왼다고 하셨습니다.
a. 정욕에 의한 구함(약4:3)
b. 스스로 종이 되라(고전9:19)
3) 소경 바디매오를 고쳐 주심
주님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에 소경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주님을 부르면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이 외면한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한다고 솔직한 답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흔히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고침을 받은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a. 앉아서 구걸하는 자(요9:8)
b.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15:25)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재물 때문에 영생의 길을 포기한 청년의 어리석음을 보았습니다. 이와 유사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그것을 멀리하는 결단을 내려야 주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단어해설]
2절. 시험하여 묻되.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소할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당시 만연되어 있는 잘못된 메시야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5절. 마음의 완악함. 이것은 모세의 율법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데 율법은 인간의 죄를 깨닫도록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6절. 창조시로부터. 이 말은 이혼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임을 보여 준다.
8절. 한 몸. 이것은 육체적 결합만이 아니라 영적인 연합을 통한 완전한 하나됨을 의미한다.
11절. 간음. 구약에서는 결혼한 사람이 성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만 간음으로 규정되었는데 예수께서는 결혼의 신성한 의미를 강조하여 '재혼을 위한 의도적인 이혼'도 간음임을 말씀하신다.
14절. 분히 여겨. 예수께서 보여 주신 인간적인 분노는 궁극적으로 그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노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분노도 일시적인 것이며 그의 영원한 속성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1절. 사랑하사. 원어 <ajgavph:아가페>는 이성간의 사랑이나 우정과는 달리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내포한 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보여 주시는 사랑은 그분의 변함없고 선한 의지를 나타낸다.
27절. 하나님으로서는. 하나님의 주권 또는 능력을 말한다.
29절. 전토. 전토는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물질적인 부나 권세는 물론 가족이나 가정 등의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말이다.
33절. 이방인. 여기서는 본디오 빌라도를 가리킨다.
38절. 잔. 여기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나 죽음을 의미한다.
44절. 종. 원어적으로는 '식탁 아래에서 시중드는 자'를 의미한다. 당시 종은 주인의 재산과 같은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가 없었다.
[신학주제] - 인자.
예수에 대한 호칭에는 하나님의 아들, 주, 그리스도, 다윗의 아들, 그리고 인자 등 여러 가지 호칭이 있다. 여기서 인자란 주로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 썼던 호칭이라는 점에서 조금 독특하다. 예수께서는 인자에 관해 많이 말씀하셨다. 구약과 랍비 전승에서 메시야를 인자라고 호칭한 경우가 없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서도 이상할 만큼 예수에 대해서 인자란 호칭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자 말씀은 예수의 진정한 말씀이다. 바울이 이상하게도 예수를 인자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바로 그 사실이 바울은 인자 말씀을 잘 알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하신 뜻을 보존하기 위함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인자란 말은 직역하면 사람의 아들이다. 그런데 아람어에서는 숙어적으로 쓰여서 어떤 한 사람 즉, 불특정한 어떤 사람을 나타낸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자라는 말 앞에다가 항상 정관사를 붙인다. 그 인자,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아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인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학자들이 많이 토론했는데, 결론은 단7장에 나오는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것이었다. 단7장의 메시야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사람의 아들)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인자를 가리키셨기 때문에 항상 정관사를 붙여 그 인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말할 때에는 메시야적인 자기 이해를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영적교훈]
부자가 천국께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예수의 말씀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도전이다. 그러나 삭개오나 고넬료와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전혀 들어가지 못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자를 그대로 천국에 입장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부자의 마음과 재물을 모두 받으심으로써 부자를 부자 아니게 만든 다음에 천국으로 불러들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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