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신약

[눅 19장]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

JORC구원열차 2014. 11. 25. 12:52

[눅 19장]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

 

[내용개요]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시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만나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1-10절). 그리고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11-27절).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 둘을 보내어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데려오도록 시켰다. 그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셨는데 많은 무리들이 호산나 찬송하며 환호하였고, 입성 후에 성전 정화 사건을 일으키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28-48절).

 

[강 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본장에서부터 새로운 전환 국면을 맞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예루살렘을 향한 긴 여행이 본장에서 끝나고,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십자가의 수난 및 부활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마지막 한 주간이 시작됩니다. 본장은 내용상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삭개오를 만나시는 부분(1-27 절)과 므나 비유(11-27절)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부분(28-48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구원받은 삭개오

 

1) 세리장인 삭개오

삭개오는 여리고 성의 세리장이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상업의 길목으로 매우 많은 통관세를 받는 고장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세리장인 삭개오는 부자로서 별 어려움이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기 때문에 일반 민중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세리는 창기와 더불어 죄인의 대명사로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세리들은 로마 정부의 앞잡이로서 국민들에게 받는 세금으로 부정 축재를 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a. 종려의 성읍(신34:3)

b. 세관의 책임자(눅5:27)

 

2) 예수님을 만나는 삭개오

삭개오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렸지만 영혼의 만족을 누리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항상 죄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분을 보고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은 삭개오는 많은 군중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가 없자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실 때 구원을 갈망하는 그의 갈급한 심령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부르시며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오늘 유하여야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a. 죄책감을 지녔음(눅18:13)

b. 두 소경을 만나신 곳(마20:29-30)

 

3) 아브라함의 자손인 삭개오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자 삭개오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즉시 뽕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시자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참된 회개와 전적인 자기 포기에서 우러나온 구제의 고백을 보시고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선포와 더불어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포하셨습니다.

 

a. 하나님은 늘 개인을 감찰하고 계심(시139:1)

b. 그리스도를 즐거이 영접한 자(눅19:5-6)

 

2. 므나의 비유

 

1) 먼 나라로 가는 귀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에 앞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열 므나 비유를 들려 주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의 종 열 명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귀인의 행동에서 우리는 그가 종들을 신뢰했으며 또 종들의 충성 여부를 시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자신의 일이나 다른 사람의 일을 막론하고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지만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의합니다.

 

a.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심(막4:34)

b.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임(고전4:2)

 

2) 귀인이 왕위를 가지고 돌아옴

귀인이 왕이 되려고 먼 나라로 갔을 때에 백성은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에 보내어 자신들은 귀인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악한 자들이 도모하는 일들이란 언제나 악하고 합당하지 못한 것들뿐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그 마음의 모든 계획들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성들이 귀인을 미워한 것과는 달리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a. 세상이 그리스도를 미워함(요7:7)

b. 충성된 자는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함(잠25:13)

 

3) 상급과 형벌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자 그의 종들은 주인에게 나아왔습니다. 한 므나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에게 귀인은 칭찬과 함께 열 고을과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종은 주인의 엄한 것을 무서워하여 맡겨 준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다가 주인에게로 도로 가져 왔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악단 종이라고 책망하면서 한 므나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왕 됨을 거절한 자들을 끌어다가 죽이라고 했습니다.

 

a. 정직으로 판단하심(시9:8)

b. 열매 맺는 백성이 천국을 차지함(마21:43)

 

3.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1)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감람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시기 위해 제자 중 둘을 보내시어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아 그대로 행한 제자들은 준비된 나귀 새기를 끌고 왔습니다. 준비된 나귀 새끼는 이제까지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였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웠습니다. 나귀 새끼를 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많은 무리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a. 나귀의 실질적 주인은 예수님이심(시50:10-11)

b.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고자 하심(마21:4-5)

 

2) 멸망을 안타까워하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아시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정신생활의 중심인 성전이 있는 신성한 성읍이었습니다. 이러한 도성이 하나님을 배역하고 선지자를 죽이는 일을 했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뉘우쳐 회개하지 않고 점점 강퍅해져 가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케 될 것을 아시고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a. 황폐하여 버린 바 될 성읍(눅13:35)

b,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임(눅21:20)

 

3) 성전을 정화하심

주님은 예루살렘을 장사꾼의 소굴로 더럽힌 것과 순진한 순례자들을 착취한 이유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엄히 책망하시고 내어 쫓으셨습니다. 주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셔서 성전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의 장소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사하는 자들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잃어 가고 타락된 곳을 정화하심으로써 성전을 회복하셨던 것입니다.

 

a. 하나님의 성산은 기도하는 집임(사56:7)

b. 백성이 즐겁게 들음(막12:37)

 

결론

 

우리는 본장에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 이 시대의 우리들이 소속해 있는 교회의 모습을 정화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 바람직스럽지 못한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하여 하나님의 성전의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켜아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2절. 삭개오 '깨끗한, 의로운'을 의미한다.

9절. 아브라함의 자손. 이 말은 그 동안 유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 다시금 유대 공동체로 복귀되는 것을 의미한다.

15절. 장사. 이 말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성도의 직무를 상징하며 청지기적 사명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학주제] - 므나 비유.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와 유사하나 주제가 다르고 내용상으로도 차이가 있다. 달란트 비유의 주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각자의 재능대로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고, 본 비유의 주제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본 비유를 달란트 비유와 비교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해석하도록 하겠다. 우선 첫째로, 비유가 베풀어지는 정황이 다르다. 달란트 비유의 경우는 열 처녀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와 함께 언급되어서 천국을 준비하는 자의 자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므나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목적으로 주어졌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과 재림 사이에 상당한 기간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둘째로, 맡긴 돈의 액수와 남긴 돈의 액수가 각각 다르다. 므나 비유는 중성한 사람의 상급에 관심을 둔다. 많은 므나를 남긴 사람일수록 많은 고을의 권세를 차지한다. 재림을 소망하며 끝까지 열심히 충성하여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한 사람처럼 될 수 있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영적교훈]

 

삭개오는 예수를 보려는 열망으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를 보려는 그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마음이 그를 구원의 방주로 이끌어 들였다. 예수를 만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이러한 변화된 삶의 모습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