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7장] 성도의 생활과 주의 재림
[내용개요]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과 형제를 용서할 것을 당부했다(1-4절). 제자들이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간구했을 때 예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용기를 주셨다(5-10절). 그리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문둥병자들을 치료해 주셨다(11-19절). 바리새인들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20-21절). 그리고 제자들에게 종말의 여러 징조들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셨다(22-37절).
[강 해]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19절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것이고, 2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장차 주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본장은 천국 시민의 생활 에 있어서 규범이 될 만한 윤리관과 내세관에 관한 교훈입니다.
1. 올바른 믿음
1) 형제를 실족시키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실족케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없을 수는 없지만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족이란 말은 장애물, 올가미, 미끼, 함정 등으로 유인하는 덫을 의미합니다. 실족케 하는 자 즉 죄를 모르는 이에게 죄를 짓도록 유인하고 죄의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자를 실족케 하는 것보다 연자 맷돌을 목에 메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의인을 자처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영혼에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상황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죄를 짓도록 유도한 그들에게 경책하시기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a.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음(사3:11)
b.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실족함(벧전2:8)
2) 무제한으로 용서하라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의 범죄를 보고도 이를 묵과하는 것은 마음으로 그에 대해 무관심하고 소외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범죄를 볼 때는 경계하며 책해야 합니다. 이는 성도들의 의무 중 하나로 죄인을 권면하는 일에 속합니다. 또한 회개한 형제를 용서해 주는 것도 성도들의 의무에 속합니다. 죄지은 자를 비판하고 정죄하기는 쉬우나 그 죄를 용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에 대한 무한정한 용서를 요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무제한의 용서를 가르치신 것을 기억하며 성도들은 용서의 생활을 실천해야 합니다.
a. 범죄치 않도록(시39:1)
b. 용서하면 천부께서도 우리의 과실을 용서하심(마6:14-15)
3) 믿음의 기적
사도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의 믿음을 더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뽕나무를 바다에 옮겨 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할 때 흔히 사용합니다. 겨자씨는 땅에 심으면 잠깐 피었다가 스러지는 잡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가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만일 우리가 지극히 작은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a.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막9:23)
b. 주를 믿는 자는 주께서 하시는 일을 저도 할 수 있음(요14:12)
2. 천국의 참된 의미
1) 종의 자세
고대 사회의 종은 주인의 재산과 같은 신분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주인의 소유이므로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 되고 주인의 배려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바로 이러한 종과 같은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종에게 있어서 자기 주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명령이 그에게는 법이요, 이 법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면 벌을 받게 됩니다. 그가 주인에게 철저히 순종할 때 주인은 그를 사랑하여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a. 주님은 만물의 통치자이심(롬11:35-36)
b.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음(딤전1:5)
2) 구원받은 문둥병자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갈릴리와 사마리아 접경을 지날 때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셨습니다.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 소리를 높여 긍휼히 여겨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긍휼히 여겨 달라는 그들의 외침 속에서 그들이 예수께서 자신들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 고침을 호소하는 열 명의 문둥병자들을 말씀으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 중 사마리아인 한 명만이 주께 나아와 감사드렸습니다.
a. 증세가 눈같이 희게 됨(왕하5:27)
b. 착한 행실로 영광을 돌림(마5:16)
3)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며 영적인 나라이며, 또한 어떤 특정 지역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a.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요18:36)
b. 의와 평강과 희락임(롬14:17)
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1) 인자의 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그 날이 언제 어디에 임하는가 하고 묻는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징조에 관해서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 것을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마치 번개의 번뜩임같이 밝게, 빠르게, 갑작스럽게 임하게 되는 것으로서 우주적이며 동시적인 것입니다.
a.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자칭함(눅21:8)
b. 그날과 그때는 오직 아버지만 아심(마24:36)
2) 혼돈의 삶을 살아감
주께서는 재림의 주로 오심과 그 전에 고난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후 그때에 있을 세상의 심판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날의 세상의 모습이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세속적인 신앙과 불신앙적인 삶에 빠질 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잊어버리고 종말을 염두에 두지 않게 됩니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 모든 사람들은 진리를 밝히 알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두려워하고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a.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함(마24:38-39)
b. 마지막 날(요12:48)
3) 의인과 악인의 분리
이 세상은 재림의 때까지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가 계속되어지다가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구원받을 자는 그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마지막 날에 들림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버림받는 자들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왔기에 마지막 날 멸망 받게 됩니다. 그 나라에는 의인과 악인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러한 구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의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열매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구원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a.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함(눅13:24)
b.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있음(벧후2:9)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성도들이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여건에 처하든지 다른 형제들을 실족시켜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남에게 거치는 자가 많은데, 우리는 철저히 각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실족케 하는. 원어적으로는 짐승을 잡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올무나 함정을 가리킨다. 이 말이 사람에게 사용되면 의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곤란에 빠뜨리는 행위를 나타낸다.
3절. 용서하라. 원어적으로는 지은 죄를 간과하는 것 즉 상대방이 지은 죄를 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5절. 사도. 원어적으로는 '보냄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구약에는 선지자를 가리키지만 신약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또는 교회에서 전도자로 임명된 사람을 말한다.
9절. 사례. 감사와 보응을 말한다.
16절. 사마리아인. 이들은 이방인의 대명사로 인식되어지는데 그것은 그들이 앗수르에 의해 함락된 후 순수한 혈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22절. 인자의 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또는 예수께서 재림하는 날을 의미한다.
32절. 롯의 처. 세상의 물질에 집착하는 것을 상징한다.
[신학주제] -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또 여기나 저기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21절). 예수의 인격과 사역과 함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현재적으로 임했다.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씨를 이미 뿌려 놓았음을 선포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심어졌다. 지금 그것은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처럼 미약하게 보인다. 그렇긴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현재적으로 임재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우리는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를 경험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천국)은 저 하늘 너머에 있는 미래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 바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의 강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령의 내주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신다면 그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영적교훈]
예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셨으나 다시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자는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 한 사람뿐이었다.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는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에 육체적인 병 고침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의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성도들은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감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 자체가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릴 조건이고, 나의 존재 자체가 이미 감사의 조건임을 깨달아야 한다. 감사 없는 신앙 생활은 거짓된 신앙생활일 뿐이다. 그리고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는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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