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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신약

[요 7장] 예수에 대한 논란

by JORC구원열차 2015. 3. 2.

[요 7장] 예수에 대한 논란

 

[내용개요]

 

예수께서는 초막절이 되자 안전한 장소인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사역의 장소를 옮겼다. 그로 말미암아 대적들의 위협을 정면으로 받게 되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살의를 충분히 감지하셨음에도 이처럼 예루살렘을 방문하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때부터(초막절)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유월절까지는 반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 짧은 기간 동안 유대인들의 종교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영적 진리를 가급적 많이 선포하셔야 했다. 이러한 본장은 예수를 불신하는 형제들(1-9절), 유대인들의 이견(10-13절), 성전에서 가르치는 예수(14-18절), 공의의 판단(19-24절), 성부와 그리스도와의 관계(25-30절), 체포령(31-36절), 생수의 강(37-44절), 유대 지도자들의 불신(45-5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본장은 예수의 자기 증거와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예수를 잡으려는 유대인들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며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이르지 아니하므로 예수를 잡지는 못하였습니다.

 

1.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

 

1) 믿지 않는 예수의 형제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예수께서 주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자 예수의 친형제들은 예수께 초막절을 맞이하여 유다 땅으로 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유다 땅에 가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요구를 한 것은 예수를 믿지 않은 마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직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음을 말씀하시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날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그 형제들과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시고 비밀히 올라가셨습니다.

 

a. 예수를 배척한 자기 백성(요1:11)

b. 예수를 미쳤다고 함(막3:21)

 

2) 예수를 찾는 유다인들

유대인들은 명절 중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오셨으리라 생각하고 예수를 찾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기 위해 예수를 찾았던 것입니다. 한편 예루살렘에 모은 무리 중에는 예수에 대해 수군거림이 많았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과 말씀이 유다 전 지역에 소문이 나 있었으므로, 예수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유대인들이 두려워 예수에 대해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극에 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 진리를 말하므로 죽이려 함(요8:40)

b. 예수를 죽이려 함(요8:37)

 

3)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유대인들은 예수가 배우지도 않았는데 가르치는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이는 예수의 교훈이 범상한 교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치는 교훈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또한 자신의 영광을 위해 가르치는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교훈에 비하여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가르치는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훈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자신을 죽이려 함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인하여 자신을 죽이여 하는 사실을 아신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정죄하는 그들의 모순된 행위를 비난하시며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a. 천국 복음을 가르치심(마4:23)

b. 권세 있는 교훈(마7:29)

 

2. 그리스도의 자기 증거

 

1)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아 오신 예수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중 혹자는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면서 그 근거로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예수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 고향을 안다는 사실을 주장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말에 대해 자신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왔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즉 그들은 영적 무지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사람들 앞 에 드러내 놓고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셨으나 사람들이 예수를 잡지 않은 것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요한은 증거하였습니다.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잡히심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a. 하나님을 보신 예수(요6:46)

b.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심(요3:17)

c. 만민을 예수께 주신 하나님(요17:6)

 

2) 아버지께 돌아갈 것을 말씀하신 예수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 중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행하신 많은 표적들이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한다고 믿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민심이 예수께로 향하는 것을 싫어하여 예수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냈습니다. 그때에 예수는 조금만 더 있다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후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나름대로의 추측만 무성했습니다.

 

a. 보내신 이에게로 가심(요16:5)

b. 아버지께로 가심(요16:28)

c. 보혜사를 보내시기 위하여 가심(요16:7)

 

3. 예수에 대한 논란

 

1) 성령 주실 것을 예언하신 예수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치심으로써 장차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그 후에 일어날 놀라운 구원 사건에 대해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예언대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성모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어 구속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생수를 마시라는 예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적용됩니다.

 

a. 생수의 근원 되신 예수(요4:10)

b.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심(계21:6)

c. 성령의 생수(계22:17)

 

2) 유다 지도자들의 논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많은 무리는 예수의 정체에 대해 논란을 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하속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와 그 말씀의 권위를 증거하자 더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예수를 좇는 무리를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하며 저주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직접적으로 예수를 옹호하지는 못했지만 바리새인들의 편협한 판단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예수를 옹호했습니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는 주장을 하며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했습니다.

 

a. 예수가 귀신들렸다고 함(마12:24)

b.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함(마22:29)

c. 영적 교만에 빠진 자들(요9:41)

 

결론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인 척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말씀대로 그 문제는 각자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있는지 그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마음을 청결히 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보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예수를 죽이려 함.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여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은 것 때문에 예수를 죽이려 했다.

2절. 초막절. 유대인의 삼대 명절 중의 하나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며 나그네 생활을 했던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 15일(태양력 10월 중순)부터 7일간 지켜졌으며 사람들은 나무와 나뭇잎으로 임시 거처인 초막을 지어 생활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념하기 위함.

3절. 형제들. 이 말은 주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의 육신적 가족인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을 가리킨다(참조,막6:3).

6절. 내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때'는 시간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 즉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메시야로서 자신을 나타낼 시기를 가리킨다.

15절.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유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유명한 랍비에게 정식적으로 교육을 받았어야 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그러한 교육을 받지 않았으므로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시비하였던 것이다.

18절. 스스로 말하는 자. 예수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말함을 강조하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욕심을 좇아 교훈하는 것을 빗대어 하신 말씀.

38절.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자궁을 뜻하는 배 <koiliva:코일리아>가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인간의 내부, 마음을 의미. 생명의 영원한 근원이신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성령을 받아 내적인 갈증이 해소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복된 삶을 나누어 줘야 함을 의미,

47절.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미혹되다'는 '잘못된 길로 인도하다'라는 뜻.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유혹하는 자로 판단하고 있었다.

49절. 저주를 받은 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저주받은 자라는 율법주의자들의 편견에 의하여 예수에게 내려진 평가.

 

[신학주제] - 초막절.

 

초막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방랑 생활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지켰지만 본래는 농경 생활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막절은 곡식과 포도와 올리브 추수가 끝난 후 농부들의 일이 종료되었음을 축하했던 절기로서 '수장절'이라고도 불렸으며(참조, 출23:16), '여호와의 절기' (참조, 레23:39)라고도 일컬어졌다. 이러한 특색은 본 절기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농경의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초막절의 이러한 축제는 바벨론 유배기 이후 유대교에서 매우 보편화되었으며, 유대 멸망 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본 절기의 축제에 참여키 위해 예루살렘을 순례하였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순례하며 축제에 참가하는 사실은 장차 모든 나라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다는 종말론적 사건을 예표하기도 한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월력으로 일곱 번째 달의 열 다섯 번째 날에 시작된다. 유대인의 3대 절기 가운데서 유월절이 최초로 돌아오고 그 다음 칠칠절이 지켜지며 이어서 초막절이 마지막으로 지켜진다. 초막절은 7일간 계속되었으며 제 팔 일째 되는 날에는 절기 마감을 기념하는 대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화제를 드렸다. 이렇듯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계속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제정한 절기이다. 또한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서의 최종적인 승리의 잔치를 보여 주고 있다. 한해의 농사를 마감하고 그 풍요한 소산을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하였듯이 새로운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백성들도 지상에서의 모든 수도와 환난을 마감하고 구원이라는 대가를 수여받아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임을 확증해 주고 있다.

 

[영적교훈]

 

생수의 강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그리스도인에게 임할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예수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 인간은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로서 영원한 생수이신 그리스도에게서만이 참된 안식을 얻게 된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자만이 생수를 마실 것이요, 그에게서 생수가 강같이 넘쳐 흘러남에게 물을 주는 근원이 될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처럼 세상의 곤고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남들에게도 기쁨과 평안을 제공하는 생수와 같은 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