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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신약

[행 3장] 베드로의 능력

by JORC구원열차 2015. 6. 15.

[행 3장] 베드로의 능력

 

강해

 

전장의 끝부분은 예루살렘 교회의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탄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적과 함께 주의 은혜가 넘침으로 믿는 자의 수가 더해 갔습니다. 본장에서는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가 갖은 시련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온전함을 갖추기 위한 많은 모습을 대하게 됩니다.

 

1. 고침 받은 앉은뱅이

 

1)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정한 시간에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때의 시간은 제구시 즉, 오후 3시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앉은뱅이를 사람들이 메어 와서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40년 이상을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서 소외된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유대인들이 늘 그 곳을 지나 다녔기 때문입니다. 미문은 이방인의 뜰을 지나 여인들의 뜰로 들어갈 때 통과하게 되는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전(눅18:10)

 

2) 나사렛 예수의 이름

사도들은 유대인 남자들이었던 까닭에, 성전 바깥뜰(이방인의 뜰)을 지나 계단을 올라 여인의 뜰(성전 내부의 첫 뜰)로 들어갔고, 다시 이스라엘의 뜰로 들어갔습니다. 제사 의식은 좀더 들어가 성전 가장 안쪽 뜰(제사장의 뜰)에서 행해졌습니다. 일반 유대인들은 보통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조금 더 걸으면 바깥뜰과 안뜰을 나누는 성전 벽이 있습니다. 이 성전 벽에는 이방인이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헬라어와 라틴어로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 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만난 것입니다. 실상 사도들은 그 사람이 구하는 유의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 나은 것을 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앉은뱅이는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a. 그리스도의 이름(사9:6)

b. 치유의 능력(막16:17)

 

3) 나타난 이적

누가는 이적을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행2:43에는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이 발생한 것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많은 이적을 행했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 고치는 이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와 표적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적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한 두려움을 주었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경외심을 갖도록 했으며 사도들의 교훈과 사도직을 확증해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적들로 인해 사도들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더욱 신빙성 있게 되었고 능력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본문에서 표적 중의 하나를 선별해서 기록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아보고는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습니다.

 

a. 찬양으로 감사함(계5:12)

b. 이적으로 인한 놀람(마15:31)

 

2. 베드로의 설교

 

1) 솔로몬 행각

앉은뱅이의 일로 놀란 무리들은 모두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 바깥뜰 동편 끝에 있는 행각이었고 이방인들의 뜰 동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부속 건물이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보고 잔뜩 관심을 가지고 그 곳 모여든 군중들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으나 이제 생전 처음으로 건강한 두 다리를 갖게 된 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설교할 자연스런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요한이 그 앉은뱅이를 걷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의 능력도, 경건도 아니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를 고친 것은 예수님의 권능의 이름이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a. 솔로몬 행각(요10:23)

b. 인간이 행한 일이 아님(요3:27)

 

2) 부활의 증인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적을 보게 된 사건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치료의 능력은 예수께로 말미암았음을 베드로는 힘있게 증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믿음을 찾으셨고 아무리 미미한 형태라도 믿음이 있으면 고치셨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도 바로 믿음에 의해서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불과 몇 달 전 예수님은 성의 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었습니다. 그분의 시체가 십자가에서 내리우고 장사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그분의 종말인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고 로마 관원들에게 넘겨져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이 일의 증인이었던 것입니다.

 

a.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히12:2)

b. 그리스도의 증인(요15:27)

 

3) 하나님의 종

베드로는 모인 무리를 향해 예수를 소개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가리켜 '거룩하고 의로운 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입은 사람에게 쓰는 고유명사였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듯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될 분'이셨습니다(참조, 사52:13). 누가는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말한 종이기도 하시지만, 모세가 예언한 대선지자이기도 하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사 그의 백성을 자기들의 죄에서 돌아서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 안에서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하시다는 것입니다.

죄사함(시51:1)

 

결론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사도들이 행한 많은 기사와 표적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속에서 이 표적은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능력으로 보여집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에 의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언들의 성취와 함께 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시대는 회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베드로의 메시지는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내용개요

 

앉은뱅이 치유 사건과 베드로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는 본장은 성령 충만을 입은 사도들이 복음 전파에 주력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본장에서부터 사도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점점 흥왕되어 나가며 자연적으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 전지역에 확산됨을 볼 수 있다. 본장은 앉은뱅이 치유(1-10절)와 이 기적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11-16절)과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17-26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설교는 예수가 메시야라는 복음의 선포에서 시작하여 죄에 대한 회개에의 요청으로 진전되는데, 이 설교는 앉은뱅이 치유 사건을 계기로 행하여진 설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의미, 죽음, 부활, 승천 등 기독론적 내용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설교 때에는 3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지만, 본장의 설교에서는 사도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는 차이점이 있기도 하다.

 

단어해설

(원어가 깨어져 보이실 때는 왼쪽 카테고리 <블러그에 사용된 폰트>에서 원어폰트를 다운 받아 설치하시면 정상으로 보입니다.)

2절. 앉은뱅이. 구약 시대에는 이러한 병의 근원에 대하여 죄의 대가, 형벌이라고 여겼다.

7절. 힘을 얻고. '확고한, 경고한'이라는 뜻으로 신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믿음에 대해서도 쓰였다.

11절. 솔로몬의 행각. 성전 바깥뜰에 있는 대리석 기둥으로 받쳐진 집채로서 종교 교사들이 자유롭게 강론하던 곳이며 유대인들과 나그네들의 휴식 공간이기도 했다.

19절. 회개하고. '돌아오다'라는 뜻으로 방향을 전환하거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며 죄에 대한 회개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20절. 예정하신. 원어 <prokekhrugmevnon:프로케케이리스메논>은 '선택하다, 임명하다'라는 의미로 이 용어는 예정된 운명의 의미보다는 어떤 직분에서의 임명의 의미가 더 강하다.

22절. 세울 것이니. 이 말은 '일으키다, 나타나게 하다'라는 뜻 외에도 병에서 회복되며, 나라가 일어나며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에도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임명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학주제

 

앉은뱅이 치유 사건의 의미. 본 사건은 '예수 사역의 연속성'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이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실재성을 나타낸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입었을 때 앉은뱅이를 향해 외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6절)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표적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죽으신 예수가 아니라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성이 하나의 표적을 통해서 확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표적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보여 준다. 성령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 된 일이 아니라 바로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하심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일어난 표적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중에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그들의 믿음을 보고 칭찬하시고 고쳐 주셨다. 비록 예수께서 승천하셨지만, 부활하신 그 예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살아 계실 때 와 똑같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영적교훈

 

앉은뱅이의 관심은 지금 당장 구걸해서 하루의 끼니를 때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물질적 적선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처럼 앉은뱅이가 육적 양식을 얻는 데만 급급하고 영적 양식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는 잘못된 태도이다. 또한 그가 앉아 있던 성전 미문을 통과하는 많은 사람들도 영적으로 무감각해 있어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결핍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양자 모두에게 잘못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오늘날 성도들은 당장 급하다고 하여 육적 양식만 지나치게 구하지 말고, 또 이웃을 도와줄 때에는 영적, 육적인 도움을 모두 줄 수 있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