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신약

[행 24장] 벨릭스 총독 앞에 선 바울

JORC구원열차 2016. 2. 18. 09:58

[행 24장] 벨릭스 총독 앞에 선 바울

 

강해

 

바울은 이제 가이사랴에서 로마 병정들의 보호 아래 유대인들의 폭행으로부터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 간의 감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동안 그는 존경을 받고 방문객을 맞을 수 있었으며 그의 복음 전도의 소명을 감당할 만큼 자유를 누리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했고 말씀의 성취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1. 유대인들의 송사

 

1)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고소

산헤드린은 정식으로 바울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들의 고소 내용은 바울이 신성한 성전을 모독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장로들과 함께 이 고소 내용을 보다 잘 진술하려고 변사인 더둘로를 고용하기까지 했습니다.

 

a. 아나니아(행23:2)

b. 유대인의 장로(막15:1)

 

2) 더둘로의 송사

더둘로는 벨릭스에 대한 아첨으로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벨릭스는 백성들을 억압하여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데만 열중하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둘로의 진술은 수사학적 표현으로 시작했으나 그 내용은 무능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에 대한 고소의 내용은 엄격하게 말하면 유대 총독의 소관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유대인을 소요케 하고, 나사렛 이단의 괴수이며 성전을 모독했노라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이 고소 내용은 후에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을 받게 될 일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둘로의 고소를 듣고 유대인들은 이 송사의 내용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답변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a. 거짓말의 정의(요일2:21)

b. 거짓 증인(잠25:18)

 

2. 바울의 세 번째 자기변명

 

1) 소요에 대한 변명

바울의 서론은 간단하고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벨릭스가 정확한 판단을 내릴 만큼 유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에 대한 고소 내용을 차례 차례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에 대하여 증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변호에 몇 가지 요점을 두었습니다. 첫째, 그는 소요를 일으킬 만큼 예루살렘에 오래 머물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목적 중 하나는 예배 즉, 오순절을 지키려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조차도 그가 그 도시에서 소요를 일으켰음을 예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거짓 진술을 말하고 성전에서 소요를 일으킨,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 고소자들이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서 그들의 고소가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소동을 일으킨 유일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부활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것으로 산헤드린 공회원들 사이에 불화를 조성한 것뿐이었습니다.

 

a. 예배의 자세(요4:24)

b. 하나님의 전(출25:8)

 

2) 바울의 신앙고백

바울은 더둘로가 '나사렛'이라고 지칭한 것을 이단이 아니라 '도'라고 일컬었습니다. 이 도는 이스라엘 조상들의 믿음을 조금도 감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소망을 성취시켰습니다. 바울은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었고 그 글들이 복음을 명백히 증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를 유대인의 정통 신앙에서 빗나간 이단으로 규정하였으나, 바울은 구약의 예언과 신앙은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임을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또한 이전에 산헤드린 앞에서 그랬듯이 벨릭스 앞에서도 부활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항상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구제와 헌금에 대한 언급은 매우 관심을 끄는데, 이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2년 간 준비한 헌금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헌금을 전달하는 목적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a. 믿음(롬4:18)

b. 영원한 소망(골1:5)

 

3. 바울과 벨릭스

 

1) 소송의 연기

총독 벨릭스는 기독교 신앙과 바울이 기독교 운동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약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조상들을 고려해 볼 때, 그가 그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알았다는 것은 의외의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일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은 그가 그의 아내인 드루실라로부터 이 지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벨릭스는 일단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일을 처리하기로 하고 이 소송을 연기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감금하여 두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석방을 유보시켰던 것입니다. 벨리스는 바울이 구제 헌금을 갖고 왔다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뇌물을 써서 석방되기를 원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년의 기간 동안 자유를 누리며 친구들의 방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 사건에 대한 결정을 연기하다 결국 자신은 로마로 소환을 받게 되고 바울은 그의 후계자에게 맡겨집니다.

 

a. 구제 헌금(고후8:2)

b. 뇌물을 좋아하는 자(시26:10)

 

2) 벨릭스와 바울의 강론

가이샤라의 감옥 생활이 바울에게는 자유로웠습니다. 친구들의 방문뿐만 아니라 가이사라의 생활에 종종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두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바울과 이런 대화를 나눈 벨릭스는 바울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뇌물을 바라고 바울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연기하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총독직에서 파면되어 로마로 소환되어 갔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일이 가이사랴에서 발생한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분쟁을 과잉 진압함으로써 많은 희생자를 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a. 의를 행함(고전15:34)

b. 죄의 자각(행2:37)

 

결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임금들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때로는 소망마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성취되었고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에서 바울의 담대함의 비결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복음을 따라 살았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삶이 그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내용개요

 

본장은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변론하는 바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행 21:11>에서 선지자 아가보가 행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유대인의 음모를 피하여 무사히 가이사랴에 도착하자 곧 벨릭스에게 인도되었고,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를 대동하고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재판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바울은 손과 발이 묶인 죄수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장은 변사 더둘로의 고소 내용인 전반부(1-9절), 바울의 변증 내용인 중반부(10-21절), 총독 벨릭스의 반응을 언급한 후반부(22-27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바울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바울에 대한 기소의 부당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단어해설

(원어가 깨어져 보이실 때는 왼쪽 카테고리 <블러그에 사용된 폰트>에서 원어폰트를 다운 받아 설치하시면 정상으로 보입니다.)

 

2절. 가로되. '말하다, 의미하다'로도 쓰인다. 말함은 중요 진술을 전달해 주는 수단을 뜻하고, 기록된 글을 뜻하기도 한다.

5절. 퍼진. 로마 제국의 넓은 지역에 이동해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분포를 표현하는 뜻으로 쓰였다.

6절. 더럽게 하려. '신성을 더럽히다, 속되게 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 즉 비도덕적이고 비종교적인 면을 가리킨다.

14절. 고백하리이다. 원어 <oJmologw':호몰로고>는 '약속하다, 고백하다, 시인하다'라는 뜻으로 법적인 성역으로 게약이나 동의를 뜻하며 종교적으로는 죄를 고백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맹세하는데 쓰인다.

17절. 민족. 원어 <e[qno":에드노스>는 유대인들을 포함한 일반적인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민족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비유대인들과 이방인들까지도 포함된 용어로 보아야 한다.

 

신학주제 - 가이사랴에서의 옥중 생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목적은 이방의 여러 교회에서 모금한 연보를 전달하여 예루살렘 성도들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으며 그 후에는 곧 로마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아가보의 예언대로 투옥되어 2년 간에 걸친 옥중 생활을 겪게 되었다. 부당한 억압이 2년 간이나 지속 되었다는 사실은 바울의 선교 활동의 지연을 의미하는 바,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갖고 있었던 바울에게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울에 대한 로마 당국의 호의와 배려로 죄수들에게 관습적으로 가해지는 가혹한 조처가 완화되었고, 비교적 자유로운 감금 생활이 허락되었으므로 바울은 이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먼저 바울은 이 기간 동안 기도와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개인적인 경건 생활에 주력 하였으며 앞으로의 남은 사역을 준비하였다. 또한 이 기간에 바울은 서신을 통하여 각 교회에 안부를 전하며 훈계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한편 본서를 기록한 저자 누가는 이 기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기독교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히 바울과 동행하기 이전의 바울의 행적에 관하여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즉 누가에게는 가이사랴에서의 2년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되었던 것이다.

 

영적교훈

 

벨릭스는 바울을 자주 불러 그의 아내와 함께 바울의 강론을 들었었다. 그의 아내는 바울이 믿는 기독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남편 벨릭스에게도 기독교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단지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지, 진리에의 추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으며, 벨릭스 역시 바울의 강론보다는 물질에의 탐욕에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강론을 면전에서 수차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육신의 정욕에 눈이 어두웠기에 멸망의 길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성도들도 기독교에 대해 지적 호기심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영적인 갈급함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