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과 그리스도
차례
01. 성막에 대한 서론적 이해
02. 성막의 명칭들
03. 성막의 위치와 건축 및 재료
04. 성막뜰의 울타리와 출입문0
5. 번제단
☞ 06. 물두멍
07. 성소와 지성소
08. 성소로 들어가는 문
09. 진설병상
10. 순금등대
11. 향단
12. 지성소의 기구들
13. 지성소의 휘장
14. 경건의 시간의 위한 제언
제6장 - 물두멍
1. 물두멍의 목적과 재료
성막뜰에 놓여진 기구들 중에 번제단 다음에 놓여졌던 기구는 '물두멍' 또는 '놋대야'였다. 그것은 제사장이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해 만든 기구였다.
물두멍에 대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로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출 30:18-21).
모세는 놋(또는 청동)으로 물두멍을 만들었다고 출애굽기 38:8에서 말하고 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그 당시 거울은 윤이 나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써 모세는 이를 가지고 물두멍을 만드는 데에 사용했던 것이다.
성막의 기구를 배열하는 순서는 구원의 진행과 아름다운 대응을 이룬다.
번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며 인간이 구원에 이르기 위한 출발 장소가 된다. 그 곳에서 죄를 위해 번제가 드려지고 그 피에 의해서 인간이 구원에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주로 믿을 때에 완성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롬 5:10).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써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은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주의 자리로부터 구원받았다.
구원의 두번째 단계는 성화의 단계로 더 잘 알려진 분리(separation)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성도의 행함과 관련되어 있고 정결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물두멍과 대응을 이루게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성도의 정결한 삶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라고 말씀하셨다.
구원의 세 번째 단계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때 이루어진다. 곧 영화의 단계라고도 하는 이 구원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다함께 영화롭게 변화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고전 15:51-53).
여기서 물두멍은 성화 또는 분리의 단계인 구원의 두 번째 단계를 가리킨다.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번제단에서였다. 그리고 물두멍은 죄에 대한 속함을 받은 후에도 성도들은 그의 매일 매일의 삶을 정결하게 유지해야함을 교훈한다.
신약성경은 모든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점차 성숙하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촉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물두멍 앞에 멈추어 서지 않는 자는 결코 성화에로 나아갈 수 없다.
2. 물두멍의 용도
성막뜰에 놓여졌던 물두멍의 용도를 살펴보자.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인 성소로 들어가기 전 여기에서 그의 손과 발을 정결히 했다. 왜냐하면 광야에 세워진 고로 성막뜰에는 항상 먼지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이 매일 매일 손발의 먼지를 씻는 것은 우리가 매일 범하는 죄를 고백함으로 깨끗게 용서함 받는 것을 상징한다.
물두멍은 그릇과 그 받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릇에 있는 물로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었다. 이것은 성도의 생활과 아름다운 대응을 이룬다. 손은 섬기는 것을 가리키고, 발은 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 성막의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깨끗이 씻었던 것은 곧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나타내는 것이다.
번제단에서 번제를 드렸을지라도 그의 손과 발을 씻지 않으면 어느 제사장도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만약에 그렇게 하려 했다가는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는 자만이 죽기를 면할 수 있었다(출 30:20-21).
구약 시대 제사장은 신약 시대 성도들의 모형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계 1:6) 분이라고 말한다. 사도 베드로도 성도들에게 말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따라서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은 것은 신약시대의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과 교제하러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는 반드시 매일의 삶 속에서 죄로 더럽혀진 마음을 정결히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을 교훈한다고 불 수 있다. 우리의 영혼이 정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또 진정한 교제도 나눌 수 없다. 이것은 예배의 의식적인 형식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번제단과 물두멍을 거쳐야만이, 곧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자신을 정결케 한 자만이 비로소 성소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시 24:3). 그 다음 구절에서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하고 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4).
우리는 번제단을 통하여 저주의 자리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그리고 물두멍을 통하여 매일 매일의 죄로부터 정결함을 얻는다.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자신의 손과 발을 규칙적으로 정결히 샜던 것처럼, 우리들도 일상적인 삶에서 오염된 것으로부터 자신을 규칙적으로 정결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번제단은 우리의 의로움을 이야기해 주는 것인 반면,
물두멍은 말씀의 능력을 통한 우리의 성화의 필요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죄로 만연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능력에 관해서는 로마서 6장에서 8장까지에서 잘 기록하고 있다. 즉 롬6장은 우리의 이런 분리된 생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기반을 두며, 그 분과 함께 우리자신도 십자가에 못박혔으므로 세상과는 분리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롬7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삶에서 종종 겪게되는 환란, 즉 영과 육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롬8장은 성령의 소욕을 좇을 때 그 갈등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이러한 구원과 분리의 양면은 둘 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들의 경험에서도 나타난다. 즉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았고 그 후 광야에서 분리된 생활을 했었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전도 사업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 전도사업의 결과로 성도가 된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지침이 거의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아이에게 주어져야 하는 영양분은 그가 자라가면서도 똑같이 공급되어야 한다.
영적인 출생은 매우 중시하면서도, 그 성장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영적인 성숙으로 자라갈 수 있는 적절한 영양분은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런 영적인 고아들을 돌보는 영혼의 고아원됨을 깨달았다. 이처럼 번제단은 구원을 나타내고 물두멍은 성장을 상징하고 있듯이, 구약 시대의 성막에서는 구원과 성장 양면을 모두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분을 경배하기 위해서 그 분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는 반드시 먼저 죄들로부터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것이 요한일서 1:7-9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한편 성경에서 놋은 종종 심판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는 세마포장을 받치고 있던 버팀목도 놋으로 마들어졌고, 번제를 드리던 장소였던 번제단 또한 놋으로 입혀졌었다. 마찬가지로 몰두멍 또한 놋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로부터 정결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3. 물두멍 안의 물
물두멍 안에 담겨 있던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성경은 종종 말씀의 적용을 통해서 오는 정결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성경은 또한 영혼의 새로운 출생은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이야기한다. 즉 성경은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라고 말한다.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벧전 1:23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미 새로 태어난 사람에게도,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계속적으로 필요로 한다.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라고 말씀하셨다.
즉 성경은 성도들의 성화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엡 5:26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을 이야기하면서,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한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다.
거듭된 성도들이 번한 죄들은 물두멍에서 깨끗케 된다. 이것은 그들의 원죄에 대한 대가가 지불된 후의 일이다. 원죄에 대한 대가는 번제단에서 지불되었고, 그 후에 더럽혀진 것들은 물두멍에서 깨끗케 된다. 다시 말하면 정결케 되는 일은 거듭나기 전이 아니라 거듭난 이후의 일이다.
물두멍은 거울로부터 취해진 윤이 나는 청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그 곳에서 그들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기 전 그들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세상과 끊임없이 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말씀의 물로 정결케 되어질 것이 요구된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정결케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그리고 대답한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나이다"(시 11:9).
그렇다면 얼마나 자주 말씀으로 우리를 정결케 해야 하는가?
그것은 객관화시켜 한계를 논할 수는 없다. 물두멍에는 항상 물이 채워져 있었고, 그래서 제사장들은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는 언제나 자신의 몸을 아주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손은 우리의 섬김을 나타내고 그들의 발은 우리의 행함을 상징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들은 오염으로부터 깨끗케 되어야 할 필요 아래 놓여 있었음을 기억하라.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미 살펴본 요일 1:7-9도 그렇고, 잠언 28:13도 그러하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는 자기의 발이 씻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때 예수께서는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베드로가 당신께 속하게 될 수 없으리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베드로를 깨웠고, 그래서 그는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요 13:10). 사람이 구원받을 때, 동시에 그 영혼은 이미 깨끗하여졌다. 따라서 구원받기 위하여 또다시 그 영혼을 깨끗게 하여 거듭나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죄를 고백함으로써, 그 더러움으로부터는 정결하여져야 한다.
각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전 6:19-20은 성도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성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것을 촉구한다(롬 12:1-2). 그러므로 죄를 범하게 될 때마다 우리는 요일 2:1-2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번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가!
그 분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의 오염으로부터 우리를 정결케 하는 길도 마련하여 두셨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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