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성령세례를 좀 더 생각해보자!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baptisqhseqe ejn pneumati aJgiw/:밥티스데세스데 엔 프뉴마티 하기오)문자적인 번역으로 옮겨 보면, '거룩한 영 안에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가 된다. 즉 '성령으로(by sprint)'가 수단적 의미를 갖는 것임에 비하여 원문(ejn pneumati aJgiw:엔 프뉴마티 하기오)은 '성령 안에서 (in sprint)'라는 장소적, 소재적, 개념임을 나타낸다.
요한의 세례는 물 세례이었고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령으로의 세례임을 가리킨다. 요한은 자신의 물세례와 그리스도의 성령세례를 이미 자신의 세례 사역시에 예고한 바 있다(마3:11).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설교에서 이 의미를 강조 하였다(행11:16). 요한의 세례 의식과는 구별되는 성령세례는 기독교 회심자의 중요 구별점이 된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사도들과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기다리라고 하셨다(행1:3,4 ; 행2:16).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권능' 받음이 없이는 '증인'(행1:8)으로서의 사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사도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여 아무 사역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세례를 받고부터는 그들은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대사도들이 되었다.
1. 성령세례의 특성
1) 물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에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이 말씀 속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별개의 것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세례요한으로부터 연유했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요1:33 ; 마3:11 ; 막1:8)고 한 것이 세례요한이었기 때문이다. 물세례는 회개와 믿음의 세례이다(마3:11 ; 막16:16 ; 행2:38 ; 행18:8 ; 행22:16). 그러므로 그것은 '사죄의 표'(행22:16)이며 '구원의 표'(벧전3:21)이다.
2) 성령세례
120문도에게 주어진 '권능'과 연관되어 있고, 이는 그리스도의 '증인'(행1:8)으로서의 사역 능력이며 순교 신앙의 능력이다. 물세례가 단회적인 것같이 성령세례도 단회적이다. 최초의 회개와 신앙고백으로 물세례를 받듯이, 최초의 성령 충만이 성령의 세례이다(행1:5 ; 행2:4). 오순절 이전의 베드로는 성령에 의하여 죄를 씻음 받고(요13:10,11 ; 요15:3), 신앙을 고백했으나(마16:16 ; 고전12:3) 신변에 위협이 다가왔을 때 예수를 부인했으며(마26:69-75),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시체를 두려움 때문에 장사지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아무 사역도 하지 못했고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은 이후부터 그는 위대한 사도로서 권능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3) 성령세례의 특성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성령세례는 성도가 성령의 완전한 지배하에 있음을 의미하며,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의 일체를 이루는 것이며, 이 체험은 나와 타인과를 일체로 만드는 영적 체험이다. 이 영적인 연합과 통일성은 오만과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를, 순교적 환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2. 성령세례 주시는 방법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소명과 중생과 회개와 믿음을 전제로 한다. 성령세례는 이와 같은 기본 구원이 있는 다음에 오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간혹 기본 구원 즉 성령을 받음과 성령세례를 일시에 체험하는 경우가 있다. 열한 사도의 경우는 전자에 속하고 고넬료 가정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행10:44-48). 처음으로 오순절 날에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 충만은 전심으로 기도할 때였으며(행1:14),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설교를 들을 때였으며(행10:44-47), 에베소 교회에 임한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안수를 받을 때였다(행19:4-7). 기본 구원(중생 회개 믿음 칭의 등)을 받은 자들이 전심으로 기도에 열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감동적으로 수용할 때, 그리고 교리적 진리를 믿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안수를 받을 때였으니, 성령의 사역에 자신을 완전히 맡길 때 첫번째의 성령충만이 주어졌다.
3. 성령세례의 결과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16:6)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그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행동을 성령의 지배에 따라 행하는 자가 된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고 한 것처럼 성령의 뜻에 따라 사는 자는 '육체의 일'(갈5:19-21)을 거부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또한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복음)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권능을 받게 된다. 이 증인으로서의 권능은 '때로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4:2)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이며, '듣든지 아니 듣든지'(겔3:11)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능력이다.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은 이후의 사도들의 '증인'으로서의 삶이 바로 이것을 증명한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7:55)
스데반은 순교당할 때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보좌와 그 우편에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박해자들의 죄를 용서하고 순교할 수가 있었다(행7:59,60). 이처럼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순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단회적이며 아무나 주는 것도 아니며 권능이 증거로 나타난다 하겠다.
4. 성령충만을 좀 더 생각해보자.
충만'이라는 개념은 '가득 채워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가 성령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완전히 압도되는 상태 즉 그 나라와 그 의로 가득 채워진 상태를 가리킨다.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 이상 그 백성다움의 행실 즉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동하는 삶이 부득이하거나 수동적 의무에 의하여 소극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교인들로 말미암아 오히려 신앙에 대한 회의까지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까닭에 중생한 하나님의 백성은 시시때때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성령의 충만한 상태가 될 때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기쁘고도 자원하는 심정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신앙을 표출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충만한 상태는 <회개와 헌신>이 있어야한다.
성령 충만의 계속적 상태는 이 회개와 헌신의 과정에서 지속되며 또 헌신 행위 그 자체가 행위자를 성령으로 충만케 한다. 로마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는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제사는 곧 헌신을 강조하는 말이다.
다음으로는 <간구와 의존>을 들 수 있다.
갈라디아에 보내는 바울의 글에는 항상 성령을 좇아 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갈5:16) 이는 육체에 의지하지 않은 온전한 성령에로의 의존을 강권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입은 사람은 그 삶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배되는 생활이 되며(갈2:20), 더불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것은 그분의 온전하심과 완전한 이타주의적 가치관의 삶을 의존하는 것이다(갈5:22,23). 이러한 삶의 구체화는 곧 봉사로의 삶이다(요7:37). <성령 충만의 본질을 영적인 성숙(maturity)와는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활기와 건강'으로 본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어린 성도라 할지라도 성경에서 제시하는 성령 충만의 조건들을 갖추면 즉시로 성령 충만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5. 회개와 성령 충만의 관계
성도가 자기의 몸을 성전삼고 임재해 계신 성령님의 뜻을 거스려 불복하는 생활을 계속한다면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생활을 멀리하고 방탕한 탐욕, 이기주의, 물질주의적인 생활을 계속한다면 성령 충만한 은총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늘 자신의 생활을 회개하여 심령이 주를 향할 때 성령께서 충만히 역사하시는 은총을 맛볼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그 얼굴에 기쁨은 없이 슬픔과 불만의 그림자가 덮여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회개 생활을 멀리함으로써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성령 충만을 위한 회개의 본질은 '순종'임을 명심해야 한다. 구원을 위한 회개의 본질이 그리스도를 '영접'함이라면 성령 충만을 위한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고 성도로서의 본분을 벗어난 '불순종'에 대한 회개라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회개의 자세는 결단적임을 잊지 말자.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과 내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늘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그 결단을 잘하는 성도가 신령한 성도요 성령 충만한 성도라고 볼 수 있다.
6. 헌신과 성령충만과의 관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다. 성령 충만의 의미는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성령 충만을 성도의 개인적인 신비적 체험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 충만의 본질은 삼위 하나님 되시는 성령님과 인격적인 올바른 교제로써 얻어지는 결과이다. '인격적인 헌신'이 결여된 형식적인 물질 봉사와 교회 생활만으로 성도의 할 바를 다했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소치이다. 이는 마치 진정한 '헌신'이 결여된 가인의 예배 (창4:3-5)와도 같다.
성도는 헌물을 드리기 전 먼저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 절차가 결여된 헌신은 바로 비인격적이며 위선된 헌신이기에 인격을 지니신 성령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단에 아무리 많은 헌물을 드려도 그 마음이 세상에 대한 탐심으로 가득차 있다면 진정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성도가 될 수 없다. 또 교회에서 아무리 성도일지라도 내 이웃에게 무례를 행하고 분단과 분쟁을 일삼는 짓을 예사롭게 한다면 그 성도는 진심으로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성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마5:23-26).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적이며 형식적인 내용을 인격적인 진정한 교제로 바꿀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헌신이요 성령 충만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조건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7. 간구와 의존과 성령충만과의 관계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5:16)고 권고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 본성 안에는 옛사람의 죄인 된 성품이 잔존해 있다(롬7:21). 그래서 성경은 그 성품을 '육적인 본성'이라고 한다(롬8:12,13). 그리고 성도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령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이 두 본성 사이에서 성도는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다(갈6:17). 하나님께서는 거듭나는 순간에 과거의 나를 완전히 부셔버리지 아니하시고 옛 건물인 나를 천천히 부셔 가신다. 한편으로 새 건물인 나를 천천히 지어 가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지어져 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품대로 살 것을 거부하고 옛사람의 성품의 욕구에 질 때가 많다. 이와 같은 갈등과 애로를 인간적인 수단과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럴 때 성령께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뛰어난 능력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 결과 성도는 늘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롬8:26).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이 결국 그리스도의 은총을 의지함으로써 얻은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활하는 힘을 얻는 일도 결국 성령님의 능력에 의존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8. 성령충만의 결과
'성령을 위하여 심은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결과는 성도의 모든 삶에 축복으로 이어진다. 그 축복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어진 영광스러운 '영생'을 성도가 만끽하게 됨을 뜻한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게 되고, 또 그 뜻을 이 세대 속에서 이루어 드리는 하나님의 참되 자녀의 길을 가게 된다.
사도 바울은 갈2:20에서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거 고백한다. 이 고백은 바울의 인격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죄의 권세아래 포로 되었던 옛 삶에서 해방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거하게 된 은총을 고백한 것이다. 이렇듯 성령 충만의 결과는 무엇보다도 죄에서 해방되어 의와 평강과 진리 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 권세를 만끽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자신의 인간적인 지혜와 힘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의 시련, 환난, 유혹을 이겨내고 늘 안전한 신앙의 길로 나아간다. 성령님을 의지한 성도를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진리와 의와 평강으로 인도하신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이 시대의 인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삶의 올바른 '인도자'일 것이다. 성령님은 성령 충만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롬12:1,2). 마치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사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을 늘 의와 영생과 사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역사를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선을 이루어 주신다(롬8:28).
바울 사도는 갈5:22,23에서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열매는 곧 '그리스도의 인품'의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품을 닮아가는 축복이야말로 성도에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장차 성도가 저 하늘나라에서 온전히 누릴 영생 축복의 한 부분을 이 땅에서도 누리는 부분이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축복이기 때문이다(고전13:13).
신학적인 전문 용어로 이 그리스도를 닮는 축복을 '점진적인 성화'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께서도 장차 성령께서 오셔서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요16:12,13). 고전 2:9과3:2 에 보면 신령한 성도들, 즉 성령 충만한 성도들만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진리를 광범위하고 깊게 깨달을 수 있다고 증거되어 있다. 타인을 닮는다는 것은 곧 타인의 인품을 깊게 알고 그 인품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지라도 그 인격에서 그리스도의 인품이 발견되지 않는 성도들도 간혹 있다. 그 이유는 결국 성령 충만한 생활의 부재로 그리스도의 인격에 동참하지 못하고 아직 들익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누리는 가장 크고 영원한 이 땅에서의 축복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갖추게 되는 일이다. 이 하늘나라 사람으로서의 인격이야 말로 사탄과 자신과 세상의 유혹과 환난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성령에 의존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경배할 수 있는 참인간이 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결국 하나님을 경배치 않고 자신이 경배 받으려는 불신앙적 무지와 교만 때문이다( 롬1:18-32). 성령께 의존하는 사람은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즉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도다'(행20:35)라는 진리를 깊이 깨닫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즐거움이요 보람의 요소이며 바로 성령 충만한 성도만이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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