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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약(言約 - Covenant) - (행위언약, 구속언약, 은혜언약)

JORC구원열차 2009. 1. 8. 09:59
언 약(言約 - Covenant)
 
(행위언약, 구속언약, 은혜언약)
 
Ⅰ. 서 론
 
성경은 언약(言約)의 책이다. 성경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구약과 신약을 말한다. 이 구분을 언약적 관점에서 말하면, 구약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고 신약은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에 대한 성취의 말씀이다. 그리고 다시 신약은 재림(再臨)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으며, 초대교회 이래로 인류의 역사를 포함하는 교회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언약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성취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언약과 성취의 역사로 해석할 수 없다면, 성경해석에 있어서 많은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대교회 이래로 종교개혁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해석의 관심은 언약이 항상 그 중심을 이루어왔다.
 
교부(敎父) 시대에 터툴리안(Turtulian)이 신약(Novum Testament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래로 성경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확증되었고, 오늘에도 성경의 이름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사용하고 있으니 그 증거는 더욱 확실하다.
 
그런데 성경의 틀을 이루는 언약 중에서도 창세기를 배경으로 한 세 가지의 언약인 행위언약과 구속언약 그리고 은혜언약은 이후의 모든 언약의 원형(原形)이며 근거라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언약은 장차 오실 완전하고 영원한 성취자이신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指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의 완전하고 영원한 성취자로서, 오늘의 우리뿐만 아니라 과거의 열조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기 위한 영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히 11:13)
 
이러한 지식은 단순히 상상으로 얻어진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심으로 알려진 지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은 언약관계로서의 신(神)-인(人) 관계 안에서 유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인간 역사 속에서 드러내어지고 선명해진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도와 언약의 관계는 구원과 구원의 역사 즉, 구속사(救贖史)를 이해함에 있어서 불가분(不可分)의 관계 속에 놓여지게 된다. 그러므로 언약은 창조- 타락- 구속으로 이어지는 구속 역사(구속사)에 있어서 중심에 놓여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 소고(小考)는 이 세 가지의 언약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언약의 개념과 함께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 론
 
언약은 구속역사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이어주는 연결체이다. 언약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인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격을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다.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로서의 인간과 관계를 맺으신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그 관계 안에서 알려진다.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 관계를 맺으심을 통해서 그 자신과 그의 구원과 관계된 그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하신다.
 
1. 언약의 개념(槪念)
 
1) 구약에서
 
언약, 「한국컴퓨터선교회」, 기독정보검색, 2005. 인용 편집
“언약”은 히브리어로는 베리트(תיꙞꔶ)인데 이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통상적으로는 “자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바라(הꙜꔯ)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추측에 의거하면 창 15:17에 기록된 의식이 언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 언약은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에 부과하는 약정(約定)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는 일방적 성격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은 동등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법령을 인간에게 부과하시는 주권자이시다.
 
「신학사전」, 신학사전편집위원회,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p. 445
이런 점에서 볼 때 계약(testament)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언약(covenant)이라고 함이 좋을 것이다. 즉 언약이란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세우신 약속인데, 이를 세상 사람들이 상거래(商去來)에 많이 쓰는 계약이란 말로 쓰면 신학적 사상이 사실상 약해지기 때문이다.
 
2) 신약에서
 
70인역(LXX)에서 “베리트”는 신 9:15(μαρτυριον)과 왕상 11:11(εντολη)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디아데케(διαθήκη)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일반적인 헬라어 용법에서 언약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지 않고 단지 하나의 약정 양도 계약서를 가리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언(遺言) 또는 유언장을 가리킬 뿐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이와 같은 용법은 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Ibid. p. 446
 
그러나 고전(古典) 헬라어에서는 두 집단 가운데 한 집단이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어 그 다른 집단에게 자신의 요구 조건을 명령할 수 있는 그러한 두 집단 사이의 협정에 이 말이 쓰인 예가 가끔 있었다. 그러므로 신약에 쓰인 “디아데케(διαθήκη)”는 구약에 쓰인 “베리트(תיꙞꔶ)”보다 훨씬 더 특수한 뜻을 가지며, 이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한 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기되고, 다른 한 집단은 그저 순응할 뿐 거절할 수 없는 협약 또는 협정(agreement)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하여 디아데케(διαθήκη)라는 단어는 많은 다른 단어들과 같이 하나님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 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았다. 많은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어 왔지만 이 단어는 유언보다는 언약으로 번역되었다.
 
3) 태초 - 언약의 원형(原形)으로서 아담과의 언약
 
언약의 개념은 계시를 통해서 이 개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이미 역사에서 발전 되었다. 하나님께서 노아 및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기 전에 이미 인간들 사이에서 언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초의 에덴에서 맺은 아담 언약(창 1:28)의 발전이었다. 그 후로 인간들은 이 같은 준비과정을 거쳐서 죄로 분열된 세상에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계시를 통하여 인간과의 관계를 언약관계로 제시할 때 그것을 곧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언약의 개념이 인간에게서 시작되었다거나 하나님이 자신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서술하기 위하여 이 개념을 빌려다 쓰셨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언약 생활의 원형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존재 안에서 발견된다. 인간에게서 발견되어지는 것은 원형의 희미한 모형(模型)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이와 같은 언약 관계의 삶으로 제정하셨기 때문에 언약 개념은 사회생활의 여러 가지 기둥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언약 관계가 이미 발전된 이상 하나님은 공식적으로 이 관계를 자신과 인간과의 실존하는 관계의 표현으로 소개하셨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 관계는 아브라함과의 공식적인 계약 이전 곧 태초의 아담부터 존재 했었다.
 
4) 언약의 당사자(當事者) 언약,
 
「한국컴퓨터선교회」, 기독정보검색, 2005. 인용 편집언약의 당사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어떤 학자들은 언약의 당사자를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으로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은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로는 “죄인”, “선민(選民)”,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 이라는 한정어(限定語)가 붙을 때도 있다.
 
다른 학자들은 삼위일체를 대표하는 성부 하나님과 선민(選民)을 대표하는 그리스도를 언약의 당사자라고 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학자들은 두 개의 언약을 말한다. 곧 성부와 성자 사이에 채결된 구속 언약(Pactum Salutis)과 이 언약에 근거해서 맺어진 하나님과 선민 또는 택함을 받은 죄인 사이에 맺어진 은혜 언약을 구분한다.
 
조직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언약의 당사자를 하나님과 인간이라고 보는 것보다 성부와 성자로 보는 것은 더 적합한 사실이다. 이 표현은 롬 5:12-21과 고전 15:21-22, 47-49의 지지(支持)를 받고 있으며 구속 언약과 은혜 언약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언약의 통일성을 말하고 있다.
 
구속 언약과 은혜 언약을 구분하는 이 같은 생각이 성경의 지원(支援)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위언약에 대립되는 두 개의 별개의 독립된 언약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즉 은혜 언약과 구속 언약은 하나의 복음적인 긍휼의 언약의 두 양상(樣相)으로서의 메시야 언약인 것이다.
 
2. 행위(行爲) 언약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언약 즉 선악과를 금지한 것에 관련된 언약을 16세기 말에 이르러 행위계약 또는 생명의 언약 혹은 법적 언약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6세기 말에 보다 체계적으로 나타난 행위 계약 교리의 역사적 연대기(年代記)를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행위 계약 교리가 언약신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否認)할 수 없다. 「신학사전」, 신학사전편집위원회,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p. 448
 
그리고 이 언약 관계에서 하나님은 일정 기간 동안의 순종을 조건으로 미래를 완전하고 복되게 만드셨다.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7 장 - 사람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에 관하여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해설, A.A.하지 著, 편집부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 pp. 160-161
 
1절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는 멀어졌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사 은총의 계약을 인간과 맺으심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셨다. 비록 이성과 의지와 양심을 지닌 인간이 창조자로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과 보상을 받는 것은 이 순종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혜의 계약이 순종을 가져온다.(사40:13-17, 욥9:32-33, 삼상 2:25, 시100:2-3,113:5-6, 욥22:2-3, 35:7, 눅 17:10, 행 17:24-25)
 
2절 - 인간과 맺어진 첫 번째 계약은 행위의 계약이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완전하고 개인적인 순종에 의하여 생명을 약속받았다.(갈 3:12, 호 6:7, 창 2:16-17)
 
2) 행위 언약의 성경적 근거
 
“행위 언약”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없기에, 일부 학자들은 행위 언약을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행위 언약의 개념은 성경 전반(全般)에 걸쳐서 표현되어 있다.
 
①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먼저 계약을 체결하는 양측(兩側), 즉 하나님과 인간이 있다. 그리고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과하신 순종의 조건이다. 그리고 약속, 즉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 있다. 「벌코프 조직신학개론」, 루이스 벌코프 著, 박희석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p. 117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신 것”(창 3:24)은 언약을 범한 자가 영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시(敎示)하는 것이다.
 
② 로마서 5:12-21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對比)하여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이 많은 사람을 죄인 되게 한 것 같이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이 많은 사람을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아담의 범죄는 자신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죽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롬 5:17)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담이 인간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만일 아담 한 사람이 순종했다면 영생이 모든 사람에게 왕 노릇하게 되었을 것이다. Ibid. p. 117
 
그러므로 죄의 전가(轉嫁)와 다른 한편으로는 의(義)의 전가를 관련지어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한 내용은 아담이 그리스도처럼 언약의 머리였다고 생각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표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의를 공유(共有)하고 있다면, 우리가 같은 이유에서 아담의 죄책(罪責)을 공유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③ 호세아 6:7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행위언약이 맺어졌고, 아담이 이를 지키지 못함으로써 인류의 죽음이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행위 언약은 타락 후에도 유효한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알미니안주의자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했다는 의미에서 폐기되었고, 행위 언약은 영생을 얻기 위한 지정(指定)된 수단으로서 폐기된 것이다” -「챠트로 본 조직신학」, 박해경, 아가페 문화사, 2004. p. 56 - 와 개혁주의자 사이에 상당한 견해의 차이가 있다.
 
알미니안주의자에 의하면 아담이 타락하여 계약을 범함으로 말미암아 이 계약은 완전히 폐기되었으므로 아담의 후손들은 그 계약을 지킬 능력도 없지만 지킬 의무도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행위 언약을 맺기 이전에 이미 정해진 창조의 질서 “본래 교의신학(조직신학) 아래 전통적으로는 인간의 타락을 기점으로 행위언약(타락 전)과 은혜언약(타락 후)으로 나누어 성경의 언약을 이해해 왔다. 그러다가 성경신학의 발전과 함께 타락 전 창조 당시에 맺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창조언약으로, 타락 후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을 구속언약으로 부르게 되었다.” -「구약성경과 그리스도」, 김두석, 칼빈대학교출판부, 2003. p. 93 - 에 속한다.
 
언약의 유무(有無)와는 관계없이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명령에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한 번 언약을 범한 후부터 어떤 인간도 행위 언약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기독교 교리개설」, 김성린,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pp. 113-114
 
4) 행위 언약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다.
 
행위 언약은 영생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 언약은 폐기된 것이다. 아담 이후 행위 언약의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영생을 얻은 자는 한 사람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은 자는 순종을 통하여 믿음을 증거 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는 진정한 순종으로서의 금식령(禁食令)(창 1:17)을 성취하는 것이다. 첫째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창 3:5)
 
그러나 둘째 아담은 광야에서 부딪친 사탄의 유혹에서 승리하셨다.(마 4:1-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빌 2:6-8) 이렇게 둘째 아담은 첫째 아담에게 주어졌던 금식을 온전한 “자기 비움”으로 성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에게 주어졌던 행위 언약 또한 장차 언약대로 오셔서 성취하실 그 분 즉 메시야에 대한 언약인 것이다.
 
3. 구속(救贖) 언약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7 장 - 사람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에 관하여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해설」, A.A.하지 著, 편집부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 pp. 165-166
 
3절 -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첫 번째 계약에 의해서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두 번째 계약을 맺으신 바 보통 우리는 이것은 은혜의 계약이라고 부른다.(갈 3:21, 롬 3:20-21, 8:3, 창 3:15, 사 42:6) 이 은혜의 계약이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과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말한다. 이때에 하나님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이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요구하고(막 16:15-16, 요 3:16, 롬 10:6-9, 갈 3:11)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모든 사람들에게(겔 36:26-27, 요 6:44-45, 5:37) 성령을 주시고 믿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시고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4절 - 이 은혜의 계약은 성경에서 종종 유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언자로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의 유언을 효과 있게 하였으니, 그는 그의 유언대로 영원한 기업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상속해주셨다.(히9:15-17,7:22, 눅22:20, 고전11:25)
 
2) 구속 언약의 필요성 - 은혜 언약의 토대(土臺) 위에서
 
인간이 범죄 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영적 교류는 사실상 단절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언약을 맺음에 있어서 종전처럼 인간과의 직접적인 언약을 맺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은혜 언약을 맺기에 앞서서 구속의 언약을 맺을 필요가 생긴 것이다. 구속 언약은 은혜 언약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로 볼 수 있다. 다만 은혜 언약은 구속 언약의 토대 위에 세워진 언약이다. 「기독교 교리개설」, 김성린,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pp. 132-133 편집
 
3) 구속 언약의 성경적 근거
 
성자께서는 자발적으로 범죄 한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고, 성부께서는 그것을 조건으로 구속의 축복을 성자를 통하여 택한 자에게 주며 더불어 성자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겠다는 성경적 근거이다.
 
① 구속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영원 전부터 있었다.(엡1:4, 3:11, 살후 2:13)
② 그 계획은 언약의 성격을 지녔다.(요5:30, 17:4-6)
③ 메시야 예언 가운데는 언약의 요소들인 당사자(시2:7-8)와 조건(시40:7-8)과 약속(요 17:5, 24)이 들어 있다.(삼하 7:12-13, 시 89:3-4)
④ 「벌코프 조직신학개론」, 루이스 벌코프 著, 박희석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p. 138
 
언약 개념을 메시야와 직접 연결하는 구절로서 여호와의 종에 관해서 말하는 시편 89:3과 이사야 42:6이 있는데, 이 연결은 여호와의 종이 단순히 이스라엘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더욱이 메시야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말하는 절들이 있는데, 이것은 언약적 용어이다.(시 22:1-2, 시 40:8)
 
4) 구속 언약의 당사자 - 메시야
 
성자(聖子)는 구속함을 받도록 영원 전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한다.(엡 1:4)하나님은 아담의 범죄 직후 은혜의 언약을(창 3:15) 아담에게 하셨고, 그 후 아브라함과 족장들을 통해 계승시켜 왔다. 그리고 이 구속 언약은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마 1:1)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구약과 신약 모두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은혜 언약인 것이다.
 
5) 보증인으로서 언약을 성취하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구속 언약에 있어서 선택함을 받은 자를 대표하여 성부와 언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이 언약의 보증인이 되신다.(히 7:22)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범죄 한 인간의 신분으로 낮아지심으로써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구속의 언약은 속죄함을 받은 죄인들에게 있어서는 은혜 언약의 근원이 되지만,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행위 언약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속 언약으로 말미암아 성자를 희생의 제물로 받으시는 것은 “공의(公儀)”의 속성 때문이다. 죄가 있음에도 아무 근거가 없이 죄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참으로 구속의 언약은 은혜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한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개설」, 김성린,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pp. 135-136 -
 
이처럼 성부 하나님과 구원 받을 자의 대표인 성자 사이에 설정(設定)된 인간 구원을 위한 언약이 구속 언약이다.
 
6) 선택으로 인한 구속의 제한(制限)
 
구속의 언약이 선택의 작정과 혼동되는 일이 가끔 있지만, 둘은 동일하지 않다. 선택의 작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의 후사(後嗣)들이 될 사람들의 수(數)를 결정하는 반면에, 구속의 언약은 은혜와 영광이 죄인들을 위해서 마련되는 길을 나타낸다. 논리적으로는 선택이 구속의 의논(議論)에 앞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보증이 되신 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람들만 제한적 “특별한 구속 혹은 제한적 속죄 -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택자들만 구원하려는 것이며 또한 실제적으로 그들만이 구원을 획득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어떤 특정한 죄인들 대신에 당하신 형벌에 대한 대속의 인내였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는 것에 부가해서 자기와 그들을 연합하는 믿음을 포함하여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획득하셨다.
 
믿음의 은총은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가 위해서 돌아가신 모든 자들에게 빠짐없이 적용되며 그러므로 해서 그들의 구원을 보증하신다.”-「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D.스틸/C.토마스 共著, 김남식 譯, 도서출판 엠마오, 1992. p. 20 - 으로 구원하신다.
 
「벌코프 조직신학개론」, 루이스 벌코프 著, 박희석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p. 139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6)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7) 구속 언약의 성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으로서의 예언
 
그러므로 언약의 당사자인 성부께서 언약의 또 다른 당사자인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고(요3:16), 성자로 하여금 언약의 조건에 따라 세속적인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하셨고(롬3:26), 언약의 약속에 따라 부활케 하시고 승천(昇天)케 하여 성부 우편에 앉히시고(벧전3:22), 보혜사(保惠師)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교훈하시고, 지도하시고, 보호하시다가(요14:26) 마침내 성자의 재림과 심판을 통하여 성자와 택한 자를 영화롭게 함으로써(엡5:6,12) 구속 언약을 성취하신다.
 
과연 이로 보건대 구속의 언약은 은혜의 언약이다. 오직 죄 밖에는 지은 일이 없는 우리가 오직 구속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그저 “은혜”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더구나 “택(擇)함과 불택(不擇)함”이라는 “이중 예정” “이는 선택(Election)과 유기(Reprobation)로서, 인류 중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말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간과하기로 결정하시고 그들의 죄를 벌하기로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작정이다.” -「챠트로 본 조직신학」, 박해경, 아가페문화사, 2004. p. 43 편집 - 의 일이 이미 창세전에 아버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작정과 예정의 섭리(엡 1:3-14)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없는 감사와 소망과 위로를 주는 것이다.
 
4. 은혜(恩惠) 언약
 
은혜 언약의 사상은 종교 개혁 당시부터 거듭 강조되어졌다. 아담의 범죄 직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고, 그 후 아브라함과 족장들을 통해 재천명(再闡明)되어 왔고, 마침내 새 언약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이하)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13) - 에서 완전한 실현에 이른 것으로 간주하였다. “블링거”는 이를 “유일하고 영원한 계약” 또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중의 언약”이라 불렀다. 또한 칼빈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인간과 더불어 맺은 언약 관계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고, 그리스도는 이 언약의 약속을 성취하셨고, 그리스도의 성취가 새 언약을 이룬다고 하였다.「신학사전」, 신학사전편집위원회,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p. 449
 
1) 은혜 언약의 특징
 
은혜 언약은 구원에 관하여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은혜로운 언약이며, 구원의 계획과 성취와 적용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이 모두 동원된 언약이다.(엡1:3-5, 요 19:30, 요 16:7-8) 또한 시간이 흘러도 효력이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이며(창 17:9, 삼하 23:5), 세상사람 모두가 아니라 택함을 받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 언약이다. 그리고 신앙과 순종을 조건으로 하지만, 인간의 공로가 필수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조건적이며(엡2:8), 계약 당사자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호의(好意)로 성립된 편무(片務)계약이다(히6:17).
또한 은혜 언약은 시대에 따라 여러 형태로 주어졌으나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요,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약속의 내용(창17:7, 출19:5-6, 렘31:33)과 약속의 조건이 “믿음”이라는 사실(창15:6, 롬4:9-11) 그리고 중보자가 언제나 동일하다는(딤전2:5,갈3:19-20,히13:8) 일치점을 갖는다.
 
2) 은혜 언약의 계약 당사자「챠트로 본 조직신학」
 
박해경, 아가페 분화사, 2004. p. 65제 1 당사자는 하나님으로서 제 2 당사자인 인간이 당신에게 대해 가지실 관계를 솔선하여 은혜롭게 결정하시는 당사자이다. 인간은 목적 자체(생명의 교통의 언약)로 볼 때는 피택자이다. 그러나 목적에 대한 수단(합법적 관계의 언약)으로서 넓은 의미의 언약에서는 객관적 협약(協約)이므로 언약의 생명을 받지 못하는 자들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구원의 실현이라는 수단적 의미에서는 신자들과 그 자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은혜 언약의 약속과 요구
 
은혜 언약의 약속으로서는 하나님과 백성의 참된 관계 회복, 영적 상징으로서의 현세적 축복의 약속, 죄의 사유(赦宥)와 양자(養子), 칭의(稱義)의 약속, 최종적 영광의 약속(영생) 등이 있다. 또한 은혜 언약에는 믿음과 순종의 요구가 있다. 믿음으로 언약과 그 약속들을 받아 언약의 생명에 들어가고, 새 생명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순종으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 Ibid. p. 65
 
그러나 이 요구는 약속 이행(移行)의 조건으로서가 아니고 약속의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언약의 약속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생의 원리에 따라서 힘주시는 자 안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며 헌신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엡 1:8)
 
4) 은혜 언약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그리스도는 언약의 중보자이다. 그리스도는 특별한 중보자이신데, 그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개재(介在)하셔서 중재(仲裁)만 함이 아니라 실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보증인과 율법의 완성자로서 그가 대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정상(正常) 관계를 갖도록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말로써 우리의 죄를 변호하시는 것이 아니고, 죄인이 지불해야 할 죄책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율법의 의를 완성시키신 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다.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진리에 따라서 생활함으로써 구원을 완전하게 하도록 인도하며 촉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그를 대신하여 사신(使臣) “바울의 직책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화해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환이요, 증인으로서의 직책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QA시스템 성경연구시리즈」, 강병도, 기독지혜사, 1991. p. 213 - 을 세워서 봉사하게 하심으로 이 일을 계속하신다.(고후 5:20)
 
5) 언약 안에 있는 회원(會員)
 
① 성인(成人)
성인은 신앙과 신앙 고백을 통해서 합법적 협정으로서의 언약에 들어갈 수 있다. 신앙은 유일한 방법이다.
 
② 신자의 자녀들
신자의 자녀들은 합법적 관계로서 언약에 들어간다. 그 자체가 생명의 교통으로서의 언약관계가 아니고 조만간 현실이 되리라는 합법적인 관계이다.
 
③ 비중생자(非重生者)
합법적 협약으로서 언약에 참여된 비중생자는 회개하고 신앙을 가진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약의 파기자(破棄者)로서 심판 받게 된다. 「챠트로 본 조직신학」, 박해경, 아가페문화사, 2004. p. 66
 
은혜 언약 안에 있는 회원에 대하여 논의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단순히 법적인 협정으로서의 언약과 하나님과의 친교를 통하여 실현되는 언약과를 구별하는 것이다. 저들의 믿음이 참 믿음이 못되고 고백이 진실 되지 못할 때는 진정한 의미에서 언약 관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하지 않거나 언약에 수반(隨伴)하는 책임을 감당하기를 거부한다면 이는 언약을 파기한 자로 간주(看做)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이나 교회 안에 끝까지 중생하지 않다가 언약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무조건적 선택 -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구원을 위하여 특정한 개인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심은 다만 그 자신의 주권적 의지일 뿐이다. 특정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믿음, 회개 등과 같은 이런 예지(預知)된 반응이나 그들 편에 대한 순종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그가 선택하신 각 개인에게 믿음과 회개를 주신다.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인간에게 있는 어떤 덕성(德性)이나 예지된 행위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제약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가 주권적으로 택하신 자들을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죄인을 택하심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구원의 원인이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D.스틸/C.토마스 共著, 김남식 譯, 1992. p. 19 -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약속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6) 여러 경륜(經綸) 시대의 언약
 
은혜언약은 본질상 하나이다. 그러나 은혜 언약은 시간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계시되었다. 그 형태를 크게 나누면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된다.
 
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7 장 - 사람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에 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A.A.하지 著, 편집부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 pp. 171-172
 
5절 - 이 계약이 맺어지는 방법에 있어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는 서로 다르다.(고3:6-9)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의 계약은 약속들, 예언들, 희생제사들, 할례, 유월절 어린 양 및 다른 유형들과 제정들에 의해서 특징 지워졌으니, 이 모든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것으로서(히 8-10장, 롬 4:11, 골 2;11-12, 고전 5:7)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피택자(被擇者)들에게 약속된 메시야(고전 10:1-4, 히 11:13, 요 8:56)를 신앙하도록 교훈하고 세우는 일에 있어서 그 당시로는 충분하였고 효과적이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이 약속된 메시야에 의하여 충분한 속죄와 영원한 구원을 얻었으니, 이 계약을 우리는 구약이라 부르는 것이다.
 
6절 - 신약에는 구약의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되었는데, 이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 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와 세례와 성만찬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제도에 의하여 맺어지게 되었다.(갈 2:17, 골 2:17, 마 28:19-20, 고전 11:23-25, 고후 3:7-11) 이 제도는 수적으로 구약에서보다 더 적고 외견상으로 구약에서보다 덜 화려하게 보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제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에게 보다 충만히, 보다 명백히, 그리고 보다 효과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틀림없다.(마 28:19, 엡 2:15-19, 히 12:22-28, 렘 31:33-34) 우리는 이 계약을 신약이라 부른다.(눅 22:20, 히 8:7-9) 그러므로 본체(本體)가 다른 두 은혜의 계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본체를 지닌 은혜의 계약이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집행되는 방법에 있어서만 구약과 신약이 다른 것이다.
 
② 아담과의 원시(原始) 언약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꺾을 것이라는 원(源)복음(창 3:15). 그러나 더 근원적으로는 타락 이전에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하셨다.(창 1:28) 이 언약의 주로서 하나님은 전능자의 자리에서 아담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주(the Lord)가 되시고 여호와가 되셨다. 바로 이 사람의 하나님 되시고 언약의 주가 되심을 표시시하기 위하여 창세기 2장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명(記名)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첫 언약 체결 후에도 사람과 관계를 맺으실 때 이 여호와 이름으로 일하셨고, 그 언약에 근거해서 그 언약의 약속들을 이행하실 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타나시고 일하셨다. 또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실 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타나시고 일을 시작하시고 결말(結末)하셨다.(출 3장 이하)「하나님의 구속경륜」, 서철원, 성문당, 1993. pp. 25-26
 
③ 노아와의 이중(二重) 언약
홍수 이전에 택한 자의 구원에 대한 암시가 깃들인 언약을 맺으셨고(창 6:18), 홍수 후에 다시 땅을 침몰시키는 홍수가 없으며(창 9:8-10) 일반 은총적인 언약을 주셨다. Ibid. pp. 28-29이는 첫 언약이 하나님의 백성 됨이 그 목표였음이, 이 목표 달성을 위한 갱신된 언약 체결에서 분명히 계시되었다. 이 진리는 노아에게 주신 말씀과 언약에서 분명히 나타났다.(창 9:1) 노아와의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다 회복되는 역사의 끝에까지 지속(持續)되고 유효할 것이다.
 
④ 아브라함과의 언약
가나안에 대한 현세적(現世的) 축복과 메시야에 대한 영적 축복을 받았으며(창 15:4-5),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졌다(창 15:6). 이는 신약의 성도들도 창대(蒼大)하여지며 영적 가나안, 즉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을 보여준다(롬 4:12). Ibid. pp. 30아브라함과의 언약체결은 낙원에서의 첫 언약체결의 목적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언약의 주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임이 분명하고 확실함을 나타낸다.
 
⑤ 시내산 언약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덕적, 의식적, 국가적 율법을 주었다(출 20장 이하). 이는 인간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으로서(롬 3:20, 4:15, 5:13, 갈3:19)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蒙學) 선생의 역할을 한다(갈 3:24).
 
⑥ 신약시대의 언약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세워진 새 언약으로서 구약시대의 언약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인데 반(反)하여 이는 모든 국가, 모든 백성에게 확대되는 보편성과 성령의 강림(降臨)으로 인한 충만을 지닌다.
 
7) 은혜 언약의 완성자로서의 메시야「계약신학과 그리스도」
 
팔머 로벗슨 著, 김의원 譯,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p. 278아담 이후로 이스라엘이 비록 계약적 책임을 성취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한 위대한 백성을 일으켜 그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위대한 나라를 이룩하는 그의 목적에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타락한 인간 가운데에서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목적은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멸망을 뛰어넘는 이런 희망어린 기대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예언자들은 약속의 땅으로의 복귀, 받아들여질 예배로의 회복, 메시야적 왕의 혈통의 재생 등에 대하여 가장 빈번히 말하였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계약적 약속의 다양한 흐름들을 한데 모으는 독특한 역할 때문에 이 마지막 하나님 계약은 “완성의 계약”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계약은 하나님의 이전(以前) 계약 사역들을 대신한다. 동시에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들 역사를 통해 경험했던 다양한 계약들의 핵심을 총괄적으로 실현하게 된다. 완성은 이 마지막 계약의 내용을 특징 지운다.
 
이 완성하는 실현의 중심은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약속들(행위, 구속, 은혜)의 성취자로서 그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렘 31:33)라는 계약 원칙의 핵심을 친히 이루신다. 그러므로 그는 언약을 완성하는 그리스도로 나타나실 수 있다.
 
Ⅲ. 결 론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어 노아를 거쳐서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그리고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계승(繼承)된 언약들은 모세에 이르러 시내산 언약으로 구체화 되었다. 이 언약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신학자들에 의해)그 이름들을 달리 했지만, 결국 본질은 모두 은혜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약속의 당사자는 인간이 아니라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언약은 사실 인간이 행함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언약을 하신 당사자인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어 내실 언약이었다. 그래서 은혜 언약인 것이다. 또한 이 언약은 택자들에게서 반드시 하나님 스스로 이루어 내실, 인간이 조금이라도 기여(寄與) “불가항력적 은총 -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구원을 위한 외적 소명에 부가해서 성령은 택자들을 필연적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특별한 내적 소명을 계속하신다.
 
외적 소명(구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은 거부될 수 있고, 또 종종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내적 소명(택자에게만 하시는)은 거부되어질 수 없다. 그것은 항상 회개를 초대한다. 이러한 특별한 소명에 의하여 성령께서 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신다. 그는 인간의 의지에 구원을 적용시키시는 사역에 있어서 제한을 받지 않으며 또한 성공을 인간의 협동에 의존하지도 않으신다.
 
성령께서는 은헤스럽게도 택한 죄인을 협동하게 하시며, 믿게 하시며, 회개시키시며, 자유롭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도무지 거부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이 미쳐지는 사람들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신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D.스틸/C.토마스 共著, 김남식 譯, 1992. p. 21 - 할 수 없는, 은혜의 언약으로서 내적(內的)인 것이다.
 
장차 오실 메시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언약은,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는 율법으로(바울의 표현대로 “몽학선생”) 그림자적인 역할을 수행해낸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견고하고 화려한 왕국의 성취도 은혜 언약의 결과였지만,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모형에 불과했다. 이렇게 구약의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이루어지고 통치가 이루어지는 외적 모습이었지만, 이제 그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속사람 혹은 생각과 마음)안에 내적 모습으로 성취되었고 또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은혜 언약 안에 행위 언약과 구속 언약이 있는 것이고, 이들 언약 모두는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몫이었으며,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소망 중에,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영원천국의 맛들을 보고 있는 현세천국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앞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의와 능력을 손톱만큼이라도 내세울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약을 통하여 당신만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意圖)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성취되었다. 이 성취 아래서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성도의 견인 - 하나님에 의해서 택정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성령으로부터 믿음을 얻은 자는 모두 영원토록 구원을 받는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음을 유지하여 끝까지 인내한다.”- Ibid. pp. 21-22영원천국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을 쉬지 않게 될 것이다.
 
 
< 참고 도서 >
 
1. 「벌코프 조직신학개론」, 루이스 벌코프 著, 박희석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2. 「기독교 교리개설」, 김성린,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3. 「챠트로 본 조직신학」, 박해경, 아가페문화사, 2004.
4.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D.스틸/C.토마스 共著, 김남식 譯, 도서출판 엠마오, 1992.
5. 「계약신학과 그리스도」, 팔머 로벗슨 著, 김의원 譯,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6. 「QA시스템 성경연구시리즈」, 강병도, 기독지혜사, 1991.
7. 「구약성경과 그리스도」, 김두석, 칼빈대학교출판부, 2003.
8.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해설」, A.A.하지 著, 편집부 譯,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
9. 「하나님의 구속경륜」, 서철원, 성문당, 1993.
10.「신학사전」, 신학사전편집위원회,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