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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구약의 제사법/성막 · 구약의 제사법

번제의 신학적 의미

by JORC구원열차 2009. 2. 17.

번제의 신학적 의미

 

번제의 형식 :

 

'번제'(히, 올라)는 제사의 종류중 하나로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물을 전부 태워 드리는 형식의 제사이다.

제물을 계층에 따라 어린 양이나 비둘기를 택하였고 의식은 제물드리는 자가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 후 성소입구 제단 북쪽에서 짐승을 잡아 각을 뜨고 내장과 다리를 씻으며 피를 뿌리고 제물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드린다(burned whole).

 

'희생'은 보통 '속죄'를 위한 것이라 언급되어 있다(레 1:4).

그런데 '속죄'란 말은 '덮는다', '씻어 버린다', '속전하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씻어 버린다'는 현대의 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이며, '속전한다'는 성경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레 17:11).

제사 의식의 모든 면들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모두 중요한데, 희생 제물의 죽음이나 제물의 피를 뿌리거나 처분하는 일련의 의식들은 속죄함을 받는데 모두 중요했다.

대속 이론은 인격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반면, 다른 관점들은 인격적 관계를 부차적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마술적인 차원으로 내려가는 경향을 띤다.

속죄 제물 중에 제사장이 먹은 것이 있었다는 사실이 대속 이론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더 거룩한 제사장이 동물에 전가된 죄를 '흡수했다'는 것으로, 혹은 희생의 죽음이 전가된 죄를 이미 '상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제의 기원 :

 

번제는 레위기의 5대 제사 가운데 가장 첫번째로 나오는 기본적인 제사이며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성경에서 기록된 번제의 최초의 기원은 창8:20절에서 노아가 드린 것이다. 

물론 창 4:4절에서의 아벨이 하나님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창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고, 이삭 대신 드린 수양을 번제로 드렸다. 

창 46:1절에서도 야곱이 희생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나온다

 

번제의 어의 :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로 "올라간다"  "승강한다"  "기어오른다" 등의 의미로  Hiphill 형에서는 "가져온다" "드린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번제는 제물이 불로 태어지면서 연기로 하나님께 올라가 드려지는 것이다.

곧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 인 것이다(레1:9).    

 

번제의 목적 :

 

번제는 자유로이 드리는 제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 가운데 하나를 무심코 깨드린 것을 속죄하기 위한 제사인 속죄제나, 하나님의 성물이나 타인과의 직접적인 관계의 죄를 속하는 속건제와 같이 분명한 목적이 없어도 하나님께 자신 전체를 온전히 드린다는 헌신의 의미에서 바치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소제, 화목제와 더불어 강제적인 조건 없이 누구든지 드릴 수 있는 제사이다.

이 제사 역시 일종의 속죄 제사이다(4절). 

그러나 이 속죄의 의미는 속죄제나 속건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Keil은 이 제사가 하나님께 완전한 항복, 헌신 하나님에게 기뻐하는 삶의 행동이라고 한다. 

Clement과 Dillmann은 번제의 속죄가 속죄제나 속건제와 달리 더욱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죄에 대한 속죄라고 하였다.

이것은 죄를 제거하거나 인간의 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악된 인간과 거룩한 하나님의 사이의 가능한 교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반대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것이다.2

 

번제의 방식 :

 

누가 - 대상:누구든지(2절), 집례:제사장(5절)

언제 -  본문 의미상으로  때가 없음

무엇을 - 생축 중에 소나 양의 수컷(2,3절)/ 새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14절)

왜 - 죄를 사하기 위해서(4절)

어디서 - 잡는 장소- 회막문 앞, 드리는 장소- 회막문 앞 (단/ 양이나 염소는 단 북편)

 

구약 속의 번제에 대한 요약 :

 

번제는 구약 제사의 가장 공통적인 것이다. 

이것은 주된 기능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램으로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것이었다. 

동물의 제물에 안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은 양,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상징화되어졌고, 그 동물은 인간을 대신해서 고통을 받았다. 

예배자는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함으로서 그의 죄와 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였다. 

양은 인간의 죄를 위한 몸값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전이나 장막에서의 예배에서 매일의 희생의 관습은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끝임 없는 상기였다.

그래서 이러한 관습들은 질병이나 출생, 맹세 후 수시로 행해졌다. 

제사를 드리는데 있어서 사람은 자신의 죄성과 범죄를 인정하였다.

그는 주님 안에서 그의 신앙과 과거의 은혜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의 삶 전체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살기로 한 결심을 공개적으로 고백한다.19

 

번제와 신약과의 관계 :

 

신약에서 번제는 단지 두 구절에서만 명백하게 언급되었다(막12:33;히10:6-8). 

이 둘은 구약으로부터의 인용이나 구약의 부연이었다. 

다른 경우들에 있어서는 번제에 대한 표현은 암시적이다(눅2:24,17:14;행21:26).

이러한 지나가는 참조는 신약신학에 있어서 번제의 중요성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가 자신을 희생 제물로 묘사하곤 했던 많은 표현들 중의 하나이다. 

예수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왔다고 말했다(막10:45).

레위기에서 빌려온 말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고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라고 말했다. 

베드로 역시 구약을 반향 하였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히 7:27에서도 구약의 제사장들은 날마다 제사를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한 번 제사를 드렸다.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G. Verme는 예수가 세상 죄를 짊어진 한 번의 참된 제사였다는 생각은 아마도 예수 그 자신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일찍이 번제에 대한 유대인들의 토론에서 하나의 경우가 특별히 의미 있는 것으로 눈에 뛴다.

그것은 이삭의 제사였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적어도 죄의 속죄를 진정으로 지불 보증하기 위하여 제사 드려졌던 이삭의 자진하는 마음이었다. 

매일의 번제와 유월절 어린양들은 하나님에게 이삭의 자신을 드림을 상기시키는 것들이었다. 

하나님에 의해서 후의 제사들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의 업적들 때문이었다. 

복음서들 안에서 우리는 유대교 신학에서 이삭에게 주어진 자리를 예수가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세례에서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cf막1:11;눅3:22).

창22:16절과 사42:1에서 문장의 혼합이다. 

유사하게 세례요한도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으로서의 예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요한이 유월절 양으로 언급하든 번제의 양으로 언급하든 이삭의 그것과 거의 차이점은 없다.

왜냐하면 둘 다 가장 크게 보상하는 제사의 상기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신약 신약에서 예수는 성부 하나님이 역할을 하는 동안 이삭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한 생각은 요3:16절이나 롬8;32처럼 잘 알려진 구절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게다가 신약성경은 아주 다른 방법으로 번제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교회 안과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제사로서 비교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5-17; cf. 빌4:18; 벧전2:5). 

죄를 대속하는 유일한 제사는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단으로 그들의 양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제물을 가져온다는 것은 그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기 위한 의지를 선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제는 동물 제사는 폐기되었다. 

그들 자신에 의한 찬양과 선행은 기독교인으로서 간주되어지는 적합한 제사를 구성한다.20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번제의 의미 :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유일하게 충분한 "번제"는 한 번에 모두를 위해 드려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사를 예시했던 동물제사는 폐기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번제를 드릴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의 피흘림은 완벽한 몸값의 지불이었다.

그는 구약 성경에서 소들과 양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진노를 감당하였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의 죄를 불구하고 죄악된 인간이 하나님의 현존을 즐거워하며 그들의 기도들이 응답되어진다. 

 

레위기에서의 법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우리를 상기시킨다. 

그것들은 심각한 죄의 결과와 그것들의 확산을 우리에게 역시 상기시킨다.

죄는 오직 죽음으로만 속죄 받을 수 있다. 

예배자는 그가 희생되어지기 위한 선택된 양을 위하여 돈을 지불했었을 때 매우 많이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은 그 자신의 생명 대신에 몸값으로, 대체적인 지불이라는 것을 그에게 상기시킨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는 그의 자비 안에서 한 마리 양이라는 하나의 값 싼 대안을 마련하였다. 

신약 시대에는 값없는 구원이 가능해졌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번제는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매일 바쳐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매일 용서함을 위한 필요를 의식해야 한다. 

예배자가 그의 죄를 고백해야 하고 그가 그의 동물을 바칠 때 하나님의 길 안에서 걸어가겠다는 그의 의지를 선포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해야 한다. 

요일1:7-9절에서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서로가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번제는 정상적인 예배에서 그 날의 첫 번째 제사이다.

이것은 죄의 용서는 참된 예배의 전제가 되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오직 죄를 용서함 받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교제를 즐길 수 있고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찬양을 드릴 수 있다. 

 

구약성경의 희생제사의 형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예배의 형태를 제공한다. 

예배는 찬양과 간구를 시작하기 전에 죄의 고백과 그리스도의 죄 용서에 대한 주장 그리고 하나님의 섬기는 일에 전적인 재헌신과 함께 시작하여야 한다.21    

 

 

<미주>

 

1 죤. H. 세일해머, 서술로서의 모세오경(하), 정충하 역(서울:새순출판사,1995), p.189.

2 Gordon J.Wenham, N.I.C. on The O.T. Levititus,(Grand Rapids:Eerdmans,1979),p.57

3 각 제사의 자세한 것은 각 발제자를 통해서 설명되어질 것이다.

4 R.K.해리슨,텐델 구략 주석 시리즈 "레위기", 이순태 역,(기독교 문서 선교회: 서울,1990), p.48.

5 John E. Hartely, W.B.C. "Leviticus", (WORD BOOK, PUBLISHER:Dallas,1992), p.18.

6 R.K.해리슨, pp.48-49.

7 예를 들면 Noth는 일반인이 동물에게 자신의 인격을 전가한다고 생각했고, J.PEDERSON은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사람이 제사를 통하여 얻어지는 영적인 힘이나 거룩함을 그 자신을 위하여서 획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외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W.B.C. 레위기 20페이지를 참조.   

8 John E. Hartley, p.20.

9 John E. Hartley, p.21.

10 John E.Hartley,p.21.

11 John E.Hartley, p.22.

12 호크마 종합주석, 레위기,(기독지혜사:1989.서울).p.38.

13 호크마 종합주석, p.38.

14 호크마 종합주석, p.38.

15 R.K.Harrison,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Leviticus', (I.V.P. Downers Grove, Illinois:1980),p.47.

16 스위스 사람 Paul F. Keine의 감독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스위스에 있다.

17 레 9:22

18 베이커리 성경주해, '레위기'(기독교문서선교회: 서울,1987), p.43.

19 Gordon J. Wenham, p.63

20 Gordon J. Wenham, pp.63-65

21 Gordon J. Wenham, pp.6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