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창 29-31장 / 야곱과 라반
야곱은 벧엘이라는 영적인 산상으로부터(28장) 하란에서의 실제적인 일상생활로 내려온다. 여기서 그는 호적수격인 교활한 라반을 만난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20년을 보내며 자기가 지은 죄의 슬픈 결과들을 수확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미래 사역을 위해 그를 훈련하고 계셨다.
1. 라반의 딸들을 위한 야곱의 봉사 (창 29:1-30:24)
1) 결정(29:1-20) -
하나님은 섭리로써 야곱을 라반의 집에 인도하신다. 그러나, 중요한 심부름을 수행하던 아브라함의 종과는 달리, 야곱은 먼저 기도하기 위해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자(24:12). 야곱은 다른 목자들을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고(7절) 라헬과만 인사하려고 했다. 그는 역시 책략가이다.
야곱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라헬과 라반이 달려가고 달려오는 것에도 주목하자(12-13절). 야곱은 결정을 내렸다. 아름다운 라헬을 아내로 맞고 싶었다. 라헬은 “암양”이란 뜻이고 레아는 “들소”란 뜻이다. 레아의 눈은 광채가 나지 않았는데 동양 사람에게는 눈의 광채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야곱은 라반을 위해 7년을 일하기로 했는데,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시간과 수고는 빠르게 지나간다. 15절에서 우리는 야곱을 훈련시키는 제 1단계를 보게 된다. 그는 종이 된 것이다. 25장 23절에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이제 작은 자가 스스로 종이 되었다.
2) 기만(29:21-30) -
여기 제 2단계가 있다. 사기꾼이 자기도 속는다. 라반은 큰 딸의 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야곱으로 하여금 그녀와 강제로 결혼하게 했다. 야곱은 장자를 속였었는데(27:19) 이제는 장녀로 말미암아 속임을 당한다(29:26).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그는 레아를 위한 결혼식 주간을 채운 후 라헬과 결혼하였고 7년간의 두번째 봉사 기간에 접어들게 되었다. 라반은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로 레아와 결혼한 증인을 세워 야곱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22절). 법적으로는 야곱이 레아를 거절할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이 자신의 속임수에 대해 징벌하시고 계심을 인식했다.
3) 분열(29:31-30:24) -
결혼이 죄로 시작될 때, 가정에는 대개 분열과 불행이 있기 쉽다. 처음에는 두 아내가 모두 자녀를 낳지 못했다. 그러나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했으며 레아를 “등한히 한”(미워한, 31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르우벤(“보라, 아들이로다!”), 시므온(“들으심”), 레위(“연합되었다”), 유다(“찬양함”)의 네 아들을 레아에게 주심으로써 그녀를 높였다. 이는 레아의 기도가 응답을 받은 것이었다(29:33/30:6/30:17/30:22).
라헬은 언니를 질투할 수밖에 없었고, 질투는 그녀와 야곱 사이에 노여움과 불화를 만든다. 야곱은 침착성을 잃지 말고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도했어야 했다. 야곱의 부모들도 이런 문제에 직면하여 기도했던 일이 있다.(25:19-23). 인간이 만든 해결책은 야곱이 빌하와 결혼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단(“재판함”)과 납달리(“경쟁함”)를 낳았다. 레아는 야곱에게 실바를 주었고 실바는 갓(“군대 또는 큰 무리”)과 아셀(“행운”)을 낳았다.
분명한 것은 야곱이 영적인 분위기의 가정을 이루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아내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남편을 자기 계획의 저당물로 사용했다(30:14-16). 라헬은 우상에게 관심을 갖기조차 하였다(31:19). 집에는 제단이 없었고 그로 인한 슬픈 결과들을 쉽게 찾아 볼 수있다. 레아는 잇사갈(“상급”)과 스불론(“거함”)의 두 아들을 더 낳았으며, 라헬은 야곱이 사랑했던 요셉(“하나님이 더하시기를”)을 낳은 후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을 낳고 죽었다(35:16-20). 이 외에도 야곱에게는 여러 명의 딸이 있었다(30:21/37:35/46:7/46:15).
이러한 가운데 고생과 시련과 시험의 14년이 지난다. 하나님은 야곱을 훈련시키고 그 앞에 펼쳐진 일들에 대해 준비시키는 데에 라반과, 어려운 상황들을 사용하셨다.
2. 라반의 가축을 얻기 위한 야곱의 계략 (창 30:25-43)
야곱은 14년간 봉사해 왔는데, 자신의 소유를 위해 그리고 대 가족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투쟁해야 함을 깨달았다. 야곱은 라반에게 떠나게 해 줄 것을 요청하나, 간사한 수리아 사람은 쓸모있는 사위를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야곱은 두 아내들을 얻기 위하여 14년을 일했는데, 이제 가정을 세우려 한다면 그가 필요로 하는 가축을 얻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라반은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여 자기의 나쁜 동기를 감추며(27절) 품삯을 정하라고 청한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라반이 묻지만 야곱은 선물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지난번에 선물을 받았을 때, 그는 속았기 때문이다(29:19). 야곱은 라반이 양떼와 염소떼 중에서 “불합격품“을 그에게 준다면 라반의 목자로서 일하겠다고 제안한다. 동양의 양떼는 흰색이며, 염소는 갈색이거나 검은 색이다. 줄무늬와 점있는 것, 얼룩진 것을 받음으로써 야곱은 라반에게 외관상으로는 더 많은 양(量)을 주는 듯했다. 물론 이것은 믿음의 행위였다.
그러나 모략가는 일을 시작했다. 필요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31:9/ 28:15/28:20) 야곱은 자기 자신의 계획을 이용했다. 여물통 옆에 세운 특별한 막대기와 지팡이는 양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양, 어떤 염소가 생산될 것을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선택적인 품종 개량“을 이용했다(40-43절). 따라서 강한 가축만 새끼를 배게 했다. 우리는 31장 8절을 통해 라반이 야곱의 양떼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계약 조건을 여러 차례 변경시켰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라반을 다스리셨고 야곱은 부자가 되었다."
3. 라반의 집으로부터 도주한 야곱 (창 31장)
1) 회의(1-16절) -
야곱이 떠나기로 결심한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라반의 변한 태도, 자기 자신의 가정을 일으켜 세울 필요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에서의 서약을 생각나게 하셨고, 이 타락한 사람은 이제 돌아가서 그를 축복하신 여호와와 맺은 자기의 약속을 성취해야만 했다. 라헬과 레아는 떠날 것에 동의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주님의 뜻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문제를 고려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그의 아내들이 벧엘에서의 체험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 의아스럽다.
2) 추적(17-35절) -
그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야곱은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간 사이에 서둘러 도망친다. 신자가 비밀스러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간증인가! 라반은 이미 야곱에게서 3일 거리에 있었으므로 일 주일 동안은 그에게 잡히지 않았다. 라반이 야곱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이 미리 라반을 경고하셨으므로 야곱이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31절/ 잠 16:7). 라반은 짐짓 감정이 상한 것처럼 행동했다. 아마도 그는 자기를 죄로 이기려 하며 점점 부자가 되어가던 야곱이 없어진 것을 기뻐했을 것이었다. 그가 사실상 관심을 가졌던 일은 그의 우상을 누군가 훔쳐갔다는 것이다. 죄는 죄를 낳는다. 라헬은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였고, 성난 라반은 행렬을 모두 조사한다.
3) 대결(36-42절) -
20년 동안 쌓인 울분이 이제 모습을 드러내며 야곱은 장인에게 모두 늘어놓았다. 라반은 우상 숭배자였고 야곱은 타락한 사람이었다. 이들 사이에 무슨 합의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야곱의 성난 연설에서 유일한 속죄의 요소가 있다면 자기 성공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점이다(42절).
4) 언약(43-55절) -
찬송가에 나오는 “미스바의 축복”이란 말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둥을 세워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피차에 상기하도록 했다. 이 돌들은 “미스바의 축복”이 뜻하듯 그들의 우정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상호 불신에 대한 증거였다. 47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언어도 서로 달리 사용하였다. 두 가지 명칭이 모두 “증거의 무더기” 또는 “간증의 무더기”란 뜻이다. 가족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들이 서로 용서하고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의존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52절은 라반이 세운 기둥을 경계석으로 하여 야곱이 감히 넘지 못하도록 했음을 알려준다.
야곱의 20년에 걸친 종살이가 끝났다. 그러나 그는 벧엘로 돌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16. 창 32-36장 / 야곱과 에서
이 장들에서는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벧엘로 가는 도중에 생긴 생의 중대한 경험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육과 영, 옛 생활과 새 생활 사이의 대결을 예증해 주는 세 가지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
1. 씨름꾼 야곱 (창 32장)
에서가 오고 있었으므로, 야곱은 그의 잊어버렸던 과거와 만나야 할 처지에 있었다. 에서가 그를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야곱은 속여 취한 모든 것을 잃을 것인가? 과거가 어떤 사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지울 수 없으며 20년이란 역사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에 세 가지 다른 만남을 경험한다.
1) 하나님의 천사들과의 만남(32:1-20) -
그는 벧엘에서 처음으로 이 천사들을 만났었다(28장). 이들은 하나님이 조정하고 계심을 그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 즉 “두 진영”(야곱의 장막과 천사들의 군대)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게는 오래 전에 그를 보호하시리라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오늘날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할 때에 히브리서 1장 14절과 시편 91편 11-13절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야곱은 다시 자기 자신과 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는 선물로 에서를 누그러뜨리려고 하였다. 그는 자기의 식솔을 두 떼로 나누고(7절), 보호하는 천사들의 군대는 무시했다. 육신적인 확신으로 이런 단계를 밟은 후에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청한다. 하나님께서 라반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셨던 방법을 잊었단 말인가?(31:24)
2) 주님과의 만남(32:21-26) -
사람이 하나님과 홀로 있게 될 때에 일들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께서 야곱과 씨름하려고 오셨고, 이 전투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야곱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고 씨름을 한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그는 자신을 방어하며, 양보할 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야곱이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갈 2:20)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게 하시려고 그를 깨뜨리시기를 원하셨다. 밤새도록 야곱은 자기를 방어하였고 항복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가 죄를 지은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이 야곱을 연약케 하셨고 이 씨름꾼은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축복을 받으려고 꾀를 부리거나, 축복을 받으려고 거래를 벌이는 대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축복을 받았다.
3) 자기 자신과의 만남(32:27-32) -
사람은 먼저 주님을 보기까지는 참으로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의 참된 자아가 “야곱 - 사기꾼!”이라고 고백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가 자신을 직면하고 죄를 고백하자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과 더불어 겨룸” 또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과 함께 능력을 소유하는 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새로운 출발, 새 이름과 함께, 곧 새로운 능력, 육신으로 행치 않고 성령으로 행하는 능력을 주셨다. 이것은 새로운 걸음걸이로 증거가 되었다. 야곱이 절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다. 그러나 다리를 저는 것은 연약함이 아니라 능력의 표시였다. 31절은 새 날이 밝아옴을 말한다. 해가 솟아 올랐고,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에서를 만나려고 절룩거리며 나아갔다."
2. 타락자 야곱 (창 33-34장)
야곱이 그의 새 이름에 따라,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새로운 지위에서 살아갔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이 장은 새 이름 “이스라엘”이 아니라 옛 이름 “야곱”이란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눈을 들어” 믿음이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행함을 본다. 야곱이 자기의 영적인 특권을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잃어버린 것을 보자.
1) 그의 절룩거림(3절) -
그는 에서 앞에서 걷거나(절룩거림) 정면으로 대면치 않고 절을 한다.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기까지 했던 사람이 세상의 사람 앞에 아첨하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절룩거리는 것이 자기를 신뢰하여 절하는 것보다 낫다.
2) 그의 능력(33:1-2/33:8-11) -
야곱이 적과 거래하며 다시 속임수를 쓴다! 하나님이 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았던가? 언제나 그를 보고 있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3) 그의 간증(33:12-17) -
그는 양떼에 대하여 에서에게 거짓말을 하고 반대 방향으로 여행한다. 에서와 야곱은 아버지를 장사지낼 때까지 결로 만나지 않았다(35:29). 에서가 야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4) 그의 장막(33:17) -
그는 숙곳에 집을 짓고 정착했다.5)그의 소망(33:19) - 그는 다시 이동하여 롯과 다를 바 없이(13:12) 세겜성 근처에 장막을 쳤다. 야곱은 하나님의 성(城)에 대한 소망을 잃었다(히 11:13-16).
6) 그의 딸(34장) -
롯과 같이, 야곱은 유혹의 장소에 가족을 방치해 두었다. 그의 딸이 성을 보러 갔다가 사고를 당하였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의 아버지처럼 거짓말쟁이였다. 사실상 그들은 신성한 할례 의식을 이용하여 사악한 속임수를 쓴다.
30-31절은 야곱이 가족의 죄보다는 자신의 안전과 복지에 더 관심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이 모든 일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세운 새로운 표준에 따라 살지 못했을 때였다.
오늘날 신약 그리스도인들은 왜 속이고 죄를 짓고 실패하는가?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의 지위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엡 4:1- 이하).
3. 여행자 야곱(35-36장)
이 장들에서는 야곱이 매우 자주 “여행했음”에 주목하자(35:5/35:16/35:21). 하나님은 “벧엘로 돌아가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1절). 꿈과 서약의 장소로, 야곱이 그러했듯이, 타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헌신의 장소로 돌아가서 약을 새롭게 하는 일 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식솔을 제단으로 인도하기에 앞서, 야곱은 “집을 청결케” 해야 했다. 이방인의 종교의식과 연관된 이상한 신들과 보석을 땅에 묻어 버렸다. 죄가 처할 곳은 무덤 속뿐이다. 이 장에는 사실상 네 개의 무덤, 즉 우상의 무덤(4절), 드보라의 무덤(8절), 라헬의 무덤(19절), 이삭의 무덤(29절)이 나온다.
야곱은 벧엘로 돌아와 제단을 쌓았다.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를 만나셨고, 새 이름 이스라엘을 상기시키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약속들을 재 확인하셨으며, 야곱은 새 기둥을 세우고 전에 했던 대로 기름을 부음으로써 이에 응답하였다. 야곱이 전에 잃었던 모든 것은 제단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이제 다시 얻게 되었다. 타락한 신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는 새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는 옛 경험을 새로운 방법으로 재차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한 직후에 라헬이 죽은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위대한 영적 체험은 삶에 있어서의 슬픔과 시련에 대하여 세속적인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분명히 야곱은 그의 제단을 다시 쌓은 지금, 이 슬픔을 더욱 잘 극복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제단에서 만남으로써 그가 이전에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이제는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
헌신적인 신자의 가족에게는 슬픔뿐만 아니라 죄 또한 있다(22절). 르우벤은 큰 기대 속에서 태어났다(29:32). 말년에 야곱은 르우벤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고 말했다(49:3). 그러나 르우벤에게는 참을성이 없었고, 경건한 성품이 결여되어 있었다(49:4). 그 결과로 장자에게 속한 장자권(대상 5:1-2)을 잃었고 이것은 유다와 요셉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죄는 결코 축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 여행은 야곱과 에서가 아버지를 장사지냄으로 끝난다. 야곱은 그의 어머니를 다시 만나려고 계획했었으나 그녀는 야곱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 36장은 에서의 역사인데 하나님이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나, 불행히도 에돔족속은 세대를 통해 내려오며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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