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창세기10 - 37~40장(고난당하는 요셉) / 41~45장(통치하는 요셉)

JORC구원열차 2009. 6. 2. 20:31

17. 창 37-40장 / 고난당하는 요셉

 

우리는 이제 성경에 나오는 가장 흥미진진한 전기(傳記) 중의 하나, 곧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전체 이야기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그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예증하고 있다. 요셉에게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집안의 영적인 거인으로 두드러져 보인다.

 

1. 사랑받는 아들 요셉 (창 37장)

 

1) 야곱의 사랑(1-4절) -

라헬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였고 요셉은 그녀가 낳은 첫 아들이었다(30:22-24). 야곱이 노년에 왜 그를 총애했는지는 알만한 일이다. 가정에서의 이런 편애는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17세의 요셉은 양치는 일을 도왔으나, 야곱은 곧 그 의무로부터 그를 해방시켜 “맞춤옷”을 입힘으로써 감독관을 삼았다. 야곱은 요셉이 실제로 섬기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통치자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미워하며(4절) 시기하였다(11절).

 

2) 요셉의 꿈(5-11절) -

이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할 바 없다. 요셉이 애굽에서 시험을 받은 여러 해 동안 신실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느 날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첫 꿈은 그 배경이 땅이고 두번째 꿈은 그 배경이 하늘인 것에 유의하자. 이것은 또다시 아브라함의 지상 자녀들(유대인)과 그의 천국 자손(교회)을 나타낸다. 요셉의 형제들은 어느 날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42:6/43:26/44:14 참조).

 

3) 유다의 꾀(12-28절) -

요셉을 없애자고 제일 먼저 제안한 형제가 누구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아마도 시므온이었을 것인데 그는 야곱이 장자권을 불법 점유한 것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결국 르우벤은 장자권을 잃었다/ 49:3-4). 34장에 보면 시므온은 교활하고 잔인했는데, 42장 24절에서 요셉은 시므온에게 가혹하게 굴었다. 어쨌든 형제들이 세겜 지역(전에 문제를 일으켰던 곳/ 34장)에 들어와 있었고 요셉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비록 좋은 뜻을 성취하기 위해 나쁜 방법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르우벤은 요셉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증오심을 번복시키셨고, 요셉은 살해당하는 대신 노예로 팔리웠다.

 

4) 야곱의 슬픔(29-36절) -

오래 전에 야곱은 그의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염소를 죽였었다(27:9- 이하). 이제 그의 아들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그를 속인다.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둔다! 야곱은 그 후 22년 동안 요셉의 죽음을 생각하며 슬픔 가운데 지냈다. 그는 만사가 자신을 해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창 42:36). 그런데 사실은 모든 일이 그를 이롭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앞서 보내어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 보존하기 위한 길을 마련하셨다.

 

 

2. 충성된 청지기 요셉 (창 38-39장)

 

38장은 유다가 육신의 더러운 욕망에 굴복하는 상황을 보여 준다. 이것은 요셉의 순전함과 잘 대조를 이룬다(39:7-13). 유다는 그의 동생을 노예로 팔았으나 그 자신이 “죄의 노예”였다(요 8:34).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 왜냐하면 다말이 그리스도의 가계(家系)에 끼어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마 1:3). 유다는 자신에 대해서보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엄격했음을 주시하자(24절). 다윗이 그러했듯이, 유다는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기까지 “죄인”이 심판받기를 원했다.

 

야곱은 요셉을 일해야 하는 책임에서 벗어나게 했으나, 하나님은 요셉이 먼저 종이 되기까지는 통치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마 25:21).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통치자가 되게 하기 위해 준비 단계로서 세 가지 훈련을 시키셨다.

 

1) 봉사(섬김)의 훈련 -

요셉은 “채색옷”(마춤복)대신 종의 옷을 입었다.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그에게 일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이렇게 하여 그는 겸손(벧전 5:5-6)과 명령에 순종하는 일의 중요성을 배웠다. 요셉이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보다 큰 일을 그에게 맡기셨다(잠 22:29/잠 12:24 참조).

 

2) 절제의 훈련(39:7-18) -

요셉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므로 아들이 그녀의 용모를 물려받았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애굽 여인들이 불경건한 것은 잘 알려져 있었으나 요셉은 굴복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요셉을 시험하고 계셨다. 요셉이 종으로서 자신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통치자로서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를 텐데!” 또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살았으며,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계기로 삼았다(롬 13:14).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바울은 충고했다(딤후 2:22). 요셉이 한 일이 바로 이 일이었다. 그는 겉옷을 잃었으나 자기 품성을 지켰다. 이 훈련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고전 9:24-27/잠 16:32/잠 25:28).

 

3) 고난의 훈련(39:19-23) -

요셉은 자기 정욕을 조절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혀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는 관리들과 다투거나,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모함하려 퍼뜨린 거짓말을 폭로하지 않았다. 혀를 잘 조절하는 것은 영적인 성숙의 표시이다(약 3장). 보디발은 죄수를 책임 맡은 경비대장이었던 것 같다. 수석 사형집행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요셉을 왕의 감옥에 넣도록 한 것은 틀림없다(20절). 요셉의 충성과 헌신은 관리들의 호의를 샀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이 말은 요셉의 성공의 열쇠이다(39:2/39:5/39:21).

 

요셉은 죄수로서 최소한 2년이나 그 이상을 고난 받아야 했다. 시편 105편 17-20절은 이 고난이 그의 영혼을 단련하였다고 설명한다. 고난은 자신을 벗어나도록 돕는다. 고난을 피하는 젊은 사람들은 참된 개성을 개발해내지 못한다. 요셉이 고난으로부터 인내를 배웠음은 분명하다(롬 5:1-5).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히 6:12). 이 고난이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난은 영광으로 그를 인도했다.

 

3. 잊혀진 종 요셉 (창 40장)

 

이제 요셉은 왕의 감옥에 있는 종으로서 일하며(41:12) 예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죄수가 들어왔는데, 이들은 왕의 술 맡은 사람과 떡 맡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죄명은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통치자를 거스리는 어떤 작은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들을 갇히도록 배정하셨음을 안다. 요셉은 불의한 자로 취급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꿈을 해석할 때에 보여준 요셉의 겸손에 주목하자(8절). 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두 죄수는 그들이 저지른 일로 인해서 갇혀 있으나 요셉은 무죄였다. 그가 해석한 꿈이 이루어져 술 맡은 자는 복직되고, 떡 맡은 자는 처형되었으며, 요셉은 감옥에 남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축복을 받는데 우리는 왜 이처럼 핍절한가에 대해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계획과 그의 시간이 있으신 것이다.

 

14절에 나오는 요셉의 요구에서는 실망과 불신을 보게 된다. 요셉이 육신의 팔에 기대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육신의 팔이 그를 실패케 했다. 왜냐하면 술 관리는 2년간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을 결코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교훈이었다. 하나님은 결국 요셉을 구하시는 데 술 관리의 좋지 않은 기억력을 사용하실 것이지만 바른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술 관리는 요셉을 잊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잊지 않으셨다.

 

요셉이 애굽에 왔을 때 17세였는데 30세에 감옥에서 구출되어졌다(41:46).이 말은 종과 죄수로서 13년을 보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해들은 단련과 훈련의 시간들이었고 애굽 제 2의 통치자로서 평생의 사역을 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해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굴복하기만 하면 우리를 준비시켜서 그가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일에 쓰신다.

 

※ 그리스도의 모형인 요셉

 

신약 어느 곳에도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조형이라고 밝힌 곳은 없지만 유사점이 너무 분명하고 많아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많은 분들이 이 제목으로 책을 쓰셨는데, 특히 아더 핑크(Arthur Pink/ 창세기 단편록)와 아다 R. 하버슨(Ada R. Habershon/ 모형의 연구)이 잘 알려져 있다. T. W. 칼러웨이(Callaway)박사는 그의 양서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Christ in the Old Testament)에서 요셉에 대하여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여기 주어진 비교와 대조 중에는 이 책들에서 발췌한 부분이 첨가되어 있다.

 

1. 아들

 

1) 아버지의 사랑을 받음-37장3절(마 3:17).

2) 목자-37장 2절(요 10:11-14)

3) 형제에게 미움받음-37장 4-5, 8절(요 15:25). 말 때문에 미움받음(마 26:64/요 8:40)

4) 불신당함-37장 5절(요 7:5). “통치함“-37장 8절(눅 19:14)

5) 참된 증거-37장3절(요 7:7)

6) 시기를 받음-37장 11절(막 15:10/마 27:17-18)

7) 형제에게 보내짐-37장 13절(눅 20:13/히 10:7). 그들의 평안을 위해-37장 14절(요 3:17)

8) 헤브론(교제)에서-37장 14절(요 17:5/요 17:24)

9) 모함을 받음-37장 18절(마 27:1/요 11:53).

“우리 손으로 말고”-37장 27절(요 18:28)-이방인

10) 유다가 거래함-37장 26-27절(유다-막 14:10)

11) 옷을 벗김-37장 23절(마 27:28/요19:23)

12) 앉아 지킴-37장 25절(마 27:36).

“꿈이 어찌되나보자.” -37장19-20절(마 27:39-44)

13) 노예로 팔림-37장 28절(마 26:15)

14) 애굽으로 데려감-37장36절(마 2:14-15)

 

2. 종(39:1/눅 22:27)

 

1) 하나님이 함께 하심-39장 2, 21, 23절(요 16:32)

2) 성공함-39장 2-3절(사 53:10)3)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김-39장 4, 8절(요 3:35)

4) 보디발을 기쁘게 함-39장 4절(요 8:29)

5) 유혹을 받음-39장 7절 이하(마 4:1-)

6) 거짓 고소됨-39장 16-18절(마 26:59-60)

7) 갇힘-39장 20절(마 27:2)

8) 변명하지 않음-39장 20절(사 53:7)

9) 다른 두 죄수-40장 2-3절(눅 23:32) 한명은 구원받고 다른 사람은 버려짐.

10) 이방인에게 고난당함-(행 4:26-27)

11) 간수에게 존경받음-39장 21절(눅 23:47)

 

3. 절대주권자

 

1) 감옥에서 나옴-41장 14절(부활)

2) 석방됨-시편 105편 20절(행 2:24)

3) 옷을 바꾸어 입음-41장 14절(요 20:6-7)

4) 신의 감동을 받음-41장 38절(행 10:38)

5) 하나님의 지혜를 가짐-41장 39절(요 5:20/마 13:54)

6) 집을 다스림-41장 40절(히 3:6)

7) 모든 백성을 다스림-41장 40절(행 5:31)

8) 바로의 보좌에 함께 함-(계 3:21)

9) 요셉 없이는 바로가 아무 것도 시행치 않음-41장 44절(요 15:5)

10) 사람들이 절함-41장 43절(빌 2:10)

11) 새 이름을 가짐-41장 45절(빌 2:9-10)

요셉-“더함”(30:24)

사브낫바네아-“비밀을 계시하는 자”(눅 2:34-35)

12) 30세-41장 46절(눅 3:23)

13) 이방인 신부-41장 45절(교회)

14) “그의 말하는 대로 행하라”-41장 55절(요 2:5)

15) 모든 민족이 나아옴-41장 57절(사 49:6)

16) 이중의 권한(마 28:19-20)

땅-37장 5-7절

하늘-37장 9-10절

 

4. 자기 백성을 구할 자

 

1) 백성이 그를 모름-42장 8절(요 1:10-11/행 3:17)

2) 피값을 치름-42장 22절(마 27:25)3) 요셉의 눈물-42장 24절(눅 19:41)

4) 그들을 벌함-42장 7, 17절(호 5:15)

5) 죄를 고백함-44장 16절(호 5:15)

6) 두번째 나타남-45장 1절(행 7:13/슥 12:10)

7) 그들이 놀람-45장 3절(슥 12:10)

8) 하나님의 하신 일-45장 8절(행 2:23)

9) “나를 보라”-45장 12절(눅 24:29)

10) 은혜를 보임-45장4-15절(사54:7-8).

11) 그의 영광이 나타남-45장 13절(눅 24:26)

12) 형제에게 소식을 전하게 함-45장18-19절(144,000명)

13) 오도록 초청함-45장 18-19절(마 11:28-30)

14) 그들을 위로함-50장 21절(사 40:1-2)

15)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킴-45장 20절(사 2:1-5)"

 

 

18. 창 41-45장 / 통치하는 요셉

 

이 부분에서는 요셉이 죄수에서 통치자로 승격되며, 새로운 이름(“비밀을 계시하는 자”/ 41:45)을 얻는다. 이 장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인 요셉이 계시하는 세 가지 비밀을 주목해서 공부할 것이다.

 

 

1. 바로가 꾼 꿈의 비밀 (창 41장)

 

요셉은 술 관리가 자신을 기억하고 그를 위해 중재해 줄 것을 바랬다(40:13-15). 그러나 그 사람은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고 그 뜻을 풀지 못하여 마음의 평정을 잃을 때까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지나고 난 후에 알게 되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은 결코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는 일이 없다.

 

이 땅 위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앞에 서있을 때 보여준 요셉의 겸손에 유의하자.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16절). 그는 바로에게 7년 간의 풍년이 있은 후 다시 7년의 흉년이 이어지리라고 해몽하고는, 식량 공급을 감독할 지혜로운 자를 세울 것을 조언한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명령하여 요셉을 지명케 하신다. 그리하여 이제 요셉은 보좌로 올리워진다(벧전 5:6 참조).

 

요셉이 이방인 신부를 맞아 결혼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와 결혼하는 것의 모형인데 그의 육적인 형제들(유대인)이 그를 거절하는 동안에 이방인들(교회)이 그리스도와 결혼한다. “므낫세”는 “잊어버리는 것”을 뜻하며, 이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얻은 요셉의 새 지위가 과거의 모든 시련을 잊게 한다는 뜻임을 암시해 준다.

 

“에브라임”은 “이중(二重)의 수확”이란 뜻으로 그의 모든 시련이 결국은 수확과 축복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한 알의 밀알처럼 요셉은 “죽었던” 것이며 그리하여 혼자 거하지 않아도 되었다(요 12:23-26). 하나님은 요셉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셨으며 요셉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여호와의 말씀은 인간의 지혜가 하지 못할 때 효력을 나타낸다(41:8).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이스라엘을 이 세상에서 보존하여 그리스도의 출생을 준비한다는 보다 더 큰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형제들의 마음에 있는 비밀 (창 42-44장)

 

그 계획이 이제 작동한다. 야곱은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먹을 것을 구하러 그의 아들들을 보낸다. 그들의 2차에 걸친 애굽 방문을 자세히 생각해 보자.

 

1) 첫 방문(42절) -

열 명의 아들이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요셉은 이들을 알아보지만 이들은 그를 알아 보지 못했다. 그의 모습이 20년 동안에 변했을 것이며 그가 사용하는 애굽의 언어와 옷은 형제들로 하여금 그가 애굽 사람인 줄로 믿게 했을 것이다. 열 사람이 엎드려 절했음을 눈여겨보자(42:6). 그런데 요셉의 꿈은 열 한 사람이 절한다고 예언했었다(37:9-10). 이 일은 베냐민이 그들과 동석했을 때 이루어 질 것이었다(43:26). 이것으로 요셉은 이 열사람이 동생과 함께 다시 돌아오게 됨을 알 수 있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그처럼 심하게 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데 그처럼 오래 기다려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죄를 회개하였음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그를 더 나쁜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눅 17:3-4 참조).

 

그가 형제들을 어떻게 다루었던가? 거칠게 말했고, 정탐꾼으로 기소했다(7-14절). 3일 동안 감금해 두었다가(17절)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 그들이 보는 데서 결박했다(18-24절). 요셉의 마지막 행동은 그들의 돈을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25-28절). 이 냉혹한 대접이 계획했던 결과를 가져 왔다. “우리가 범죄하였도다!”라고 고백하였기 때문이다(21-23절). 이 언급은 그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야곱에게 보고하고 돈이 자루에 그대로 있음을 발견하자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집에 그대로 있으면 도둑이 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면 베냐민을 함께 데리고 가는 모험을 무릅써야만 했다. 36절은 오래 전에 그들이 요셉에게 했던 일을 야곱이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을 준다.

 

2) 두번째 방문(43-44절) -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배고프게 하셨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처럼 이 사람들은 다시 돌아가거나 굶어 죽을 수밖에는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다른 면, 즉 유다가 어린 베냐민을 위해 기꺼이 볼모로 가는 것, 돈을 기꺼이 돌려주는 것, 요셉의 청지기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것(43:19-22)을 본다. 그러나 요셉에게 선물을 가져가는 것, 요셉 자신에게가 아니라 종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 등의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는 이 전체의 이야기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을 다루시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죄인을 자신들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환경을 조절하신다. 그러나 슬프게도 죄를 깨달은 사람들 중에는 선물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 큰 희생(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자기 생명을 볼모로 제공했을 때와 같이)을 치루어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요셉이 그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진정한 고백과 회개를 받는 길뿐이었다.

 

요셉은 그들이 죄를 고백하는 자리에 이르도록 하는 데 두 가지 책략을 썼다. 기쁨의 잔치(43:26-34 / 26절과 28절에서 열 한명 모두가 그에게 절하는 것에 유의하자)와, 베냐민의 자루에서 컵을 발견케 한 일이 그것이다.

 

44장 14절에서 다시 열한 명 모두는 진실로 죄를 깊이 뉘우치며 그 앞에 엎드린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라고 고백한다(44:16). 이 말이 요셉의 귀에 음악과 같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유다가 44장 18-34절에서 한 연설은 그 겸손과 죄에 대한 고백 때문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린 동생에 대해 보여 준 사랑 때문에도 칭찬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생명을 잃더라도 책임을 지기 위해 기꺼이 볼모가 되고자 했다.

 

우리는 여기서 얼마나 아름다운 영적인 교훈을 가지게 되는가! 유다는 요셉이 참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다(44:20). 따라서 그에게는 살인했다는 죄의식이 있었다. 그는 요셉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구세주임을 알지 못했다. 잃어버린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데, 이때 이들은 죄를 고백하면 어떤 진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고, 그가 살아계심으로 인해 가장 극한 자라도 구원하실 수가 있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값으로 볼모가 되거나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볼모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볼모가 되시기 때문이다(히 7:22).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한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실 수 없으시며 그리고 그는 영원히 사실 것이다.

 

그 형제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 것은 죄의 고백이나, 희생이나,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요셉의 은혜로운 용서였으며, 그들로 인해 받은 고난으로 값주고 산 용서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3. 하나님의 목적에 속한 비밀 (창 45장)

 

이제는 요셉이 자신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그를 보내신 목적을 나타낼 차례이다. 사도행전 7장 13절은 요셉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두번째”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모세를 거부하고 40년이 지난 두번째에 그를 받아들인 것과 같다(행 7:35). 이것은 스데반이 했던 설교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언제나 구세주를 거절했고 두번째에야 받아들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요셉이 자신을 나타내자 그들은 몹시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해 요셉에게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았고, 그에게 절했으므로 그들을 용서해도 될 것을 알았다. 그는 앞으로 5년 더 기근이 들 것을 설명하고, 그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애굽에 피난처를 준비해 두었음을 알렸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요셉을 앞서 보내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좋은 예화가 여기 나온다. 요셉은 그들을 봉양하여 식물을 공급하고(11절) 보호할 것을 약속하였고, 그들을 보고 울며 입맞추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선물을 보내어 애굽의 풍성함을 확인시켰다. “내게로 오라!”이 말은 그의 초청의 말이었다(45:18).

 

요셉이 살아있음을 알게 됨으로써 야곱에게 생긴 변화는 어떠하였을까! 그리스도가 살아나셨음을 발견했을 때 보인 제자들의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에 야곱은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42:36)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