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 3-4장 / 모세의 소명
모세에게 새 날이 동터 올랐고 모든 것은 변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아침, 그가 양들을 데리고 나갈 때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큰 유익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슨 계획을 갖고 계신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심 (출 3:1-6)
불타는 나무는 세 가지의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불타는 나무는 하나님의 모습이다(신 33:16).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계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나무는 타버리지 않았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불가능한 임무를 맡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 나무는 괴로움의 용광로를 통과하면서도 타버리지 않는 이스라엘을 상징했다. 인간들은 얼마나 자주 유대인을 근절시키려고 시도했던가! 그러나 실패해왔다.
끝으로, 그 나무는 모세의 예표(豫表)였다. 비천한 목자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꺼뜨릴 수 없는 불이 될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경이로움 중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장소로 인도되었음에 주목하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예배의 참된 시작이기 때문이다. 겸손하게 신을 벗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능력으로 행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시기 전에도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사 6장). 불타는 나무에 대한 기억은 광야에서의 긴 시련의 여정을 통하여 모세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2. 하나님이 모세를 임명하심 (출 3:7-10)
“내가... 고통을 정녕히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왔노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소식인가! 모세는 자주 그의 사랑하는 백성의 상황에 대해 이상히 여겼으나 이제 그는 하나님이 내내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때의 형편을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의 형편과 쉽게 적용시켜 생각할 수 있다. 속박과 시련과 슬픔의 시대였으나 하나님이 아들의 인격을 통해 강림하셔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리고 가실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가 시작하신 일을 그가 끝내신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하려 하심을 듣고 기뻤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신이 구원자라는 소식을 듣는다. “내가 너를 보내겠노라!” 하나님은 이 땅에 그의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언제나 인간이란 도구를 사용하셨다. 준비하는 데 80년이 걸렸으며 이제 행동할 때였다. 불행하게도 모세는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지 못했다.
3. 하나님이 모세에게 응답하심 (출 3:11-4:17)
모세는 그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즉각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실패자가 아니었던가? 가족이 있지 않은가? 나이가 많지 않은가? 아마도 이런 어떤 논란이 그의 마음 속을 스쳐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관해 논쟁적인 최소한 네 가지의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1) 나는 누구인가(3:11-12)-
이전 40년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모세의 겸손에 우리는 탄복한다. 그는 “배워... 말과 행사에 능한”(행 7:22)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친 사막에서의 교제관계와 훈련은 모세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육으로 행하는 사람은 충동적이며 장애물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겸손하게 행하는 사람은 앞에 놓인 전투를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답은 그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은 40년 동안 그를 지탱케 했으며, 여호수아에게도 그러했다(수 1:5). 우리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요 15:5).
2) 누가 나를 보내는가?(3:13-22)-
이 질문은 회피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명을 위해 모세를 보냈다는 신적인 권위를 원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 영원히 있을 자”)라고 계시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이 이름에 다른 이름들을 첨가하셨는데, 요한복음에는 “나는...이다”(I AM)는 언급이 일곱 번 나온다(요6:35/요8:12/요10:9/요10:11/요11:35/요14:6/요15:1-5). 하나님이 “있는 자”라면 그는 언제나 동일하시며 그의 목적들은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을 성취하실 것을 모세에게 약속하신다.
3)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4:1-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믿게 될 것이라고 방금 말씀하셨으므로(3:18), 이 언급은 불신앙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 기적을 주셨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였고 손이 문둥병에 걸리는 기적이었는데, 이 기적들이 백성들 앞에서 그의 신임장이 될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때 우리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취하여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다윗의 물매, 베드로의 배, 바울의 학식을 사용하셨다. 물론 지팡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때 능력이 되어졌다. 모세는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기적을 통하여 육신의 사악함을 고치셔서 그의 영광을 위해 모세를 사용하실 수 있으심을 보여 주셨다. 모세의 손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세번째 표적을 더하셨다. 이 표적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확신시켰다(4:29-31). 그러나 믿음없는 애굽인들도 이를 흉내 내었다(7:10-25).
4) 나는 재능이 없다.(4:10-17)-
하나님은 “나는... 이다”(I AM)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나는... 이 아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자기가 언변이 없다고 주장했다(바울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전 2:1 참조). 그러나 사람의 입을 만드신 바로 그 하나님께 자신을 바칠 때에 그의 입을 사용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달변이나 수사(修辭)의 기술을 필요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로 채울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필요하실 뿐이다. “다른 보낼만한 자를 보내시고 나는 보내지 마소서”라고 모세는 13절에서 외친다. 이런 불신의 태도가 하나님을 노하게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협력자로서 아론을 보내시지만, 아론은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것이 드러났다. 그는 그 민족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했고(32:15-28), 모세에 대항하여 불평했다(민 12장). 모세가 살아계신 하나님 대신 육에 속한 연약한 인간을 의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14절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움직이실 때 “줄의 양 끝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는 다른 것을 세우기 위해 다른 하나를 내려뜨리지 않으신다.
4. 하나님이 모세에게 확신을 주심 (출 4:18-31)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의 표적과 그의 형 아론이라는 조력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구절들을 보면 아직 믿음으로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장인에게 애굽으로 여행하는 일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제가 아직 살아있음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떠나기 전에 신실한 태도로 이 땅의 임무를 돌보려 했으나, 이드로에게 좋은 간증이 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그가 새로운 봉사의 생활로 한 걸음 내딛자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확신들을 유의해서 보자.
1) 그의 말씀(19-23절)-
모세를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은 죽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그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해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어 주는가!
2) 그의 징계(24-26절)-
유대인에게 할례는 중요한 것이었으나 모세는 자기 아들에게 그 언약을 시행하는 일을 무시했었다(창 17장).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자기의 직무를 생각나게 하도록 징계를 내리셔야 했다(아마도 병들었던 것 같다). 모세가 영적인 일들에 있어서 자기 집안조차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할 수가 있겠는가? 모세는 아내와 아들을 미디안에 남겨놓고(18:2) 아론과 함께 간 것이 분명하다.
3) 그의 인도하심(27-28절)-
하나님은 아론이 오고 있다고 약속했었고(14절), 이제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비록 모세와 아론이 둘 다 연약함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을 실망시켰으며, 서로 간에도 한 번 이상 실망시켰던 반면, 모세가 형을 옆에 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모세가 불타는 나무를 보았던 “하나님의 산“에서 만났다(3:1). 모세는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하셨던 위대한 진리들을 형에게 말했다.
4) 백성의 영접(29-31절)-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3:18).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세를 영접하며 머리숙여 절하던 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노역이 더 심해지자 그를 미워하고 비판했다(5:19-23). 사람들의 반응에 당신의 희망을 걸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을 실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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