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 13-14장 / 열 두 명의 정탐꾼
히브리서 3-4장은 이 장들에 대한 신약적인 주해이다. 이 부분의 핵심 사상은 불신앙이다. 이 사건들에 나타난 불신앙의 증거들에 대해 유의하자.
1. 정탐꾼의 파견 (민 13:1-27)
신명기 1장 20-23절을 읽어보면, 정탐꾼들을 보내는 것은 여호와의 명령이 아니라 백성들의 욕망이었던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이 계획을 허용하신 이유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마음이 진실로 어떠한가를 나타내 보이는 데에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가나안이 어떠하며, 어떤 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그가 그들의 적을 어떻게 멸하셔서 약속된 유업을 그들에게 주실 것임을 여러 번 말씀했었다. 그러므로 정탐꾼들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슬픈 일이지만 인간의 본성은 믿음으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기를 더 좋아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에 의존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그 땅을 정탐하였고 놀라운 과일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나쁜 보고를 가져와 백성들의 마음을 실망시켰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그 민족 중 아무도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지 않았다. 이 열 명의 정탐꾼들은 오늘날의 여러 그리스도인들을 상징으로 보여 준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업을 “정탐하였고“ 하나님의 축복이란 열매를 맛보기도 했으나, 그들의 불신앙은 믿음으로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가지게 된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여호수아의 “진급”을 주목해보면 흥미롭다. 민수기 11장 28절에서 그는 “모세의 종“으로 불리워졌으나 결국은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다(수 1장). 출애굽기 17장 8-16절에서는 그가 군인이었고, 출애굽기 24장 13절에서는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 있었고, 출애굽기 33장 11절에서는 성막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민수기 13장은 그가 정탐꾼 중의 한 사람임을 보여 준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그에게 어떤 임무를 맡기든지 성실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맡은 책임이 하나 하나 진보되어 갔다(마 25:21 참조).
2. 그 땅에 가기를 거절함 (민 13:28-33)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의 영화로움을 자세히 설명하고는 “그러나...”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단어는 대개 불신앙을 표시하는 말이다.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인들을 보았고, 자신들을 메뚜기같이 보았으나 하나님을 보지는 못했다. 그들의 눈은 장애물들을 보았으나, 그들을 거기까지 인도한 하나님을 보지는 못했다. 갈렙은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다”고 말하여 참된 믿음을 보여 준다. 반면에 백성들은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불신앙을 나타낸다. 그 땅의 축복을 보고하는 대신 열 명의 정탐꾼들은 어려움을 강조하였고 하나님의 거룩한 땅에 대하여 “나쁘게” 보고하였다. 불신앙은 언제나 문제거리를 보지만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의 해답을 바라본다.
들어가기를 거절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유업을 누리기를 거절하는 신자의 모형이다(히 3-4장).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한 안식과 축복에 들어가 모든 필요에 대하여 그를 신뢰하는 대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문제거리와 장애물들을 보고 안식을 얻지 못한 채 방황하며 그들의 축복들을 누리지 못한다.
3. 지도자에 대항하여 반역함 (민 14:1-39)
출애굽기 15장에서 우리는 큰 승리를 얻어 노래 부르는 이스라엘을 본다. 그러나 여기서는 실망 중에 울고 있다! 그들은 노래를 잊었던가?(출 15:14-18 참조).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반역과 불신앙의 태도로 그를 시험하고 있다(22-23절).
하나님은 백성들이 모세를 교체시키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욕망을 표현할 때까지 기다리셨으며, 이제 행동을 개시하셨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것이 반역일 뿐임을 인식하고 있었다(9절). 하나님의 영광이 갑자기 나타났고 모세에게 말씀이 임하였다.
1) 하나님의 제의(11-12절)-
하나님은 전 민족을 멸망시키시고 모세의 가족으로 새 민족을 만들려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 겸손과 사랑이 놀랍다. 모세는 자기 자손들이 지금 인도하고 있는 민족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기” 때문이다.
2) 모세의 중재(13-19절)-
이 일이 있기 바로 전에 모세는 그의 백성이 그토록 짐스러워서 불평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그들의 행위를 변호하고 있다. 그는 참된 목자의 마음을 가졌다. 그는 자기 백성을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의 약속과 그의 성취하신 일을 상기시킨다. 위태로운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자비하심과 용서를 상기시킨다(출 33:18-23/출 34:5-9 참조). 이 장면에서 모세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유업을 기꺼이 포기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3) 하나님의 심판(20-39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그러나 그의 통치에 있어서는 죄의 쓴 결실을 거두게 하셔야 했다(삼하 12:13-15 참조). 먼저 하나님은 백성들이 요구한 것을 주시어 그들이 광야에서 죽게 될 것임을 알린다(2, 28-30절).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들의 믿음과 충성으로 인해 이 심판에서 제외되었다. 백성들은 자녀들의 일로 인하여 안달을 했으나 그들이야말로 그 땅에 살며, 그 땅에 들어갈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40일간 그 땅을 정탐했으므로 40년 간 그 민족을 심판할 것이며, 그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동안 광야를 방황하도록 하실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불신앙의 마지막 유대인이 죽어야 그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나쁜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재앙이 내려 즉시 죽임을 당했다(37절).
하나님께서 믿음을 높이시고 불신앙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믿음은 순종으로 인도하고 불신앙은 반역과 죽음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약속들과 확신으로 가득 찬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승리 가운데 행할 수 있을 때에 불신앙으로 방황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4. 하나님 없이 싸우려고 함 (민 14:40-45)
인간의 본성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 한 순간 그 민족은 그들이 처한 곤경 때문에 불평하며, 다음 순간에는 무모하게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축복을 떠난 채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죄를 고백했으므로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어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세가 그들에게 경고했으나 그들이 그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행하고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육은 언제나 자기를 신뢰하고 자신에게 만족한다. 이러한 예를 베드로에게서 볼 수 있다(눅 22:31-54).
남자들이 산꼭대기에 진을 쳤고, 적들은 이들을 패배시켰다! 이 모든 모험은 분수를 모르는 주제넘은 일이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지 않고 기회로 살고 있었다. 그들의 외관적인 회개와 열심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믿음으로는 어떠한 일도 결코 할 수 없다. 그 백성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과 그의 뜻에 굴복하는 것뿐이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광야를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밖에서 패배의 전투를 벌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 두 장은 믿음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은 모든 약속들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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