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열왕기하4 - 왕하 9~10장(예후의 통치)

JORC구원열차 2009. 7. 1. 00:44

4. 열왕기하 9-10장 / 예후의 통치

 

이 두 장은 폭력과 피흘림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에게 그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예후왕은 여호와의 손에 붙들린 복수의 도구였다(9:7). 비록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그의 열성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지만(10:16), 그는 지나치게 피에 굶주려 있었던 것 같다.

 

호세아 1장 4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무자비한 살인 행위로 인하여 예후의 집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예후는 이것을 “여호와를 향한 열성”이라고 불렀으나 그의 살육을 통하여 여호와를 영광스럽게 하지 못한 육신적이고 죄악된 동기를 볼 수 있다.

 

1. 기름부음 (왕하 9:1-13)

 

아합의 아들 요람(여호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당시에 아하시야가 유다를 다스리고 있었다. 두 왕은 수리아왕 하사엘에 대항하여 싸우기로 동맹을 맺었다(왕하 8:25-29). 요람은 전쟁 중에 상처를 입고 이스라엘에서 치료하고 있었으며, 아하시야는 그를 방문하러 그곳에 와 있었다. 예후는 이스라엘의 군대에서 존경받는 대장이었으며, 전쟁의 주역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사악한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 아합의 경호원 중의 하나였었다(9:25-26). 엘리사가 직접 예후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아니었다. 그를 알아보고 폭행을 가해 올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의 생도”를 급히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어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서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다. 이 일은 여러 해 전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었다(왕상 19:15-17).

 

젊은 선지자는 재빨리 순종하였다. 그는 전략 회의에 나타나 예후에게 개인적인 방으로 들어갈 것을 청하여 그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으며 올 때와 같이 재빨리 떠났다. 예후는 자기의 사명을 알았다. 그것은 아합의 집을 쓸어버리는 것이었으며, 아합과 이세벨과 그 자손들이 흘린 무죄한 피를 복수하는 것이었다(9절/ 왕상 15:29/왕상 16:3-11 비교).

 

군인들은 선지자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예후는 군인들이 이 모든 일을 진행시킨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들에게 “그대들이 그 사람(선지자)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고 말한다. 예후는 그들이 은밀하게 군대를 일으켜 왕에게 반역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시인하였다. 그래서 예후는 그 사자가 한 말을 전해 주었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에게 순복하는 것이었고, 그를 왕으로 선언하였다.

 

15절에서 새로운 왕은 자기의 기름 부은 것에 대해 자기의 중요한 임무를 성취하기까지는 기름부음 받은 것을 비밀에 붙이도록 조정하였다. 만일 이 말이 이스르엘에 있는 두 왕에게 전해진다면 예후의 갑작스런 공격은 방해를 받을 것이었다.

 

2. 복수 (왕하 9:14-10:28)

 

1) 요람왕의 죽음(9:14-26)-

앓고 있는 왕은 이스라엘에 있었으며, 아하시야가 그를 방문하러 와 있었다. 하나님은 심판의 시간에 두 왕이 함께 있도록 배정해 놓으셨다. 왕은 예후를 차단시키기 위하여 사자들을 보냈으나 예후는 그들을 위하여 멈추거나 어떤 것도 알려 주기를 거절하였다. 보초가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유명한 장군은 마차를 “사납게 모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느 정도 방어를 할 수 있었을 성에서 기다리지 않고 두 왕은 예후를 만나러 나갔다. 아마도 그들은 대 장군이 이 전쟁에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후는 우선 요람을 노렸으나 사악한 군주는 예후의 말을 듣고 등을 돌려 도망하였다. 예후는 뒤에서 활을 쏘아 쉽게 그를 죽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왕이 죽은 장소가 약 20년 전에 아합이 나봇에게서 빼앗은 땅 위였던 것이다(왕상 21:17-24).

 

2) 아하시야왕의 죽음(9:27-23)-

그도 역시 도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후의 사람들은 사마리아 왕국(사마리아성이 아님)으로 뒤쫓아 가 므깃도에서 그를 죽였다(대하 22:9 참조). 그의 종들은 그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장사를 지내도록 허락을 받았다. 아하시야는 요람의 매부였으므로(8:18), 아합의 집에 대한 심판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3) 이세벨의 죽음(9:30-37)-

왕의 어머니인 이세벨은 이스라엘에서 여전히 많은 권위를 행사하였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심판의 시간이 왔으며, 아무도 그녀를 보호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예후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담대하게 새로운 왕을 맞으러 나갔다. 그녀는 “눈을 그리고” 머리에 왕관을 썼다. 그녀는 왕비답게 죽고자 하였다. 31절의 그녀의 언급은 열왕기상 16장 9-20절로 우리를 인도해 가는데, 거기에는 시므리가 왕을 죽이고 7일간 통치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사악한 이세벨은 예후를 뇌물로 매수하여 그녀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보좌를 더욱 안정되게 하라고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왕궁에 있는 몇 명의 시종들은 윗창문에서 여왕을 내던짐으로써 예후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예후는 자기의 말들과 마차로 그녀의 시체 위를 달려 그 일을 끝냈다. 그리고나서 그는 왕국을 차지하고는 왕성한 식사를 즐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지시하여 죽은 왕비를 장사지내게 했으나, 개들이 이미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먹은 후였다.(왕상 21:23 참조)

 

4) 아합 자손들의 죽음(10:1-17)-

아합의 70명의 후손들(아들들, 손자들, 등)은 사마리아에서 살고 있었으며, 예후는 그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장로들에게 공식적인 편지를 써서(이세벨이 했던 방법/ 왕상 21:8-14) 이르기를 “아합 집안에서 우수한 자를 뽑아 예후와 그의 신하들에게 대항하여 싸우게 하라”고 하였다. 장로들은 싸우기를 두려워하여 즉시로 화평을 간청하였다. 예후는 두번째 편지에서 70명의 자손들의 머리만 가져오라고 제안하였다 그 날 저녁 사람들이 머리들을 가지고 왔으며, 다음 날 아침에 예후는 성문으로 들어가면서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9절에서 그는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 무죄한 체하는 것 같다. 10절에서는 살해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성취한 것이라고 확신을 준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예후의 말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보다도 아합의 집을 도륙하는 데 더 마음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2-14절에서 그는 아하시야의 사촌 42명도 죽였다. 17절에 보면 예후가 수도인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의 남은 가족들을 진멸했음을 알 수 있다.

 

5) 바알 숭배자들의 죽음(10:18-28)-

예후의 마음은 목적으로 방법을 정당화시켰다. 그래서 그가 백성들에게 “바알 숭배에 있어서, 나는 아합보다 더 열성적이다“라는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 음모에 여호나답을 가담시켰는데 그는 그 땅에서 우상 숭배를 제거하는 데 헌신한 유대인이었다.

 

레갑 집안에 대하여 더 알아보려면 예레미야 35장을 보라. 사마리아에 도착하여 예후는 바알을 섬기겠다는 자기의 의향을 널리 알리었고, 백성들은 그를 믿었다. 바알의 충성된 추종자들을 바알의 산당에 모이게 하고 군대를 밖에 세워 두고는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사람들이 실수로 이교의 전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깊게 군중을 점검하였다. 예후 자신은 이 의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의식이 끝나자 지키던 사람들이 바알의 추종자들을 죽였으며, 우상의 형상들과 전을 파괴하였다 “산당은 변소로 바뀌었으며” 영속적으로 불결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하여 듣고, 움츠러들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에 회개하고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후의 열성이 이 일을 해 낸 것이지만 그의 동기가 반드시 영적인 것만은 아니었으며, 그는 죄악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 해를 기다렸으며, 하나님의 자비가 그것을 받을 만하지 못한 민족에게 닿을 동안 심판은 “잠을 자고” 있었다. 죄인은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은혜의 때를 저버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3. 방종함 (왕하 10:29-36)

 

하나님은 예후가 순종한 것을 칭찬하시고 4대에 걸쳐 안정된 보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15:1-12 참조). 그러나 예후는 여호와의 말씀을 간직하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 숭배로 곧장 되돌아갔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있는 죄들을 판단하기가 쉬우나, 우리 자신의 삶에서 똑같은 죄들을 보지는 못한다(마 7:1-5 참조).

 

하나님은 수리아 왕 하사엘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영토를 빼앗게 하심으로 예후를 징계하셔야 했다. 그는 28년 동안 통치하였다. 호세아 선지자는(호 1:4) 하나님께서 예후의 집에 대해 이스르엘에서 흘린 피를 복수할 것이라고 알렸으며,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셨다. 예후는 여호와를 포기했었으며 이제 여호와께서는 네 세대가 지난 후에 그와 그의 씨를 포기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후와 관계된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근본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자비는 오랫동안 기다려 주기는 하지만 주님의 심판의 말씀은 성취된다. 죄인은 흔히 거짓된 평화에 빠져든다. 왜냐하면 심판의 검이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올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불경건한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죄와 저주로 인도해 간다. 아합이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과 바알 숭배를 따라간 일은 그 집안과 국가를 어두움과 운명으로 인도해 갔다. 한 사람이 백성을 죄 가운데로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할 수 있으나, 그런 후에 스스로 철저하게 순종하는 데 실패할수 있다. 예후가 만일 여호와께 대하여 계속해서 열심이었다면 그의 통치는 특별히 축복되었을 것이나, 자신이 오히려 우상을 숭배한 일은 그와 가족을 정죄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