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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잠언4 - 잠 12, 18장(혀로 말미암는 죄)

by JORC구원열차 2009. 7. 3.

3. 잠언 12, 18장 / 혀로 말미암는 죄

 

잠언에는 혀에 대한 관련 구절들이 많다. 12장과 18장에는 혀에 대한 구절들이 여러 번 나오기 때문에 본 장을 읽으라고 제시했는데, 당신은 아마도 실천의 책인 본서(잠언)의 다른 관련 구절들도 찾아 검토해 보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말하는” 놀라운 은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마땅히 경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을 남용한다.

 

혀의 죄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보기 앞서 “경건한 혀”의 축복들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물론 이것은 거룩한 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혀는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선을 위하여 사용하였을 때 혀는 가치있는 은과 같다(10:20). 이것은 아름답고 열매 맺는 생명나무이며(15:4/12:14/18:20), 새롭게 하는 샘이요(18:4/10:11), 건강을 위한 양약이다(12:18 / 약 3장 참조).

 

혀는 바른 목적, 즉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15:1/15:26), 잘못을 행한 자에게 지혜롭게 책망하며(25:12/28:23), 잃어버린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며(11:9/14:3-5/14:25/12:6),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가르치고(15:7/16:21/16:23/20:15)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25:25)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단과 육신이 혀를 붙들고 있으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혀로 말미암아 삶과 가정과 교회에게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할 혀가 명예를 손상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데에 사용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혀는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약 3:5 참조), 의의 도구로서 하나님께 양도되어야 할 지체이다(롬 6:12-13 참조). 혀가 범하는 죄들에 대하여 조금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언변의 은사를 좀 더 주의깊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1. 거짓말 (잠 12:17-22)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혀를 미워하신다(6:16-17). 때때로 거짓말하는 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이(행 5장 참조), 그리고 사악한 유다와 같이 마음의 죄를 가리우고 있다(10:18). 12장 18절에서 거짓말은 칼로 찌름과 같으나, 진리는 치료하는 약과 같다고 솔로몬은 말한다. 진리는 영원하지만 거짓말은 어느 날 드러날 것이며, 거짓말쟁이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9절/ 시 52:4-5 참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은 마음의 부실로 인함이라고 20절은 설명한다. 결국 입술은 참된 말을 할 수 있으나 마음의 의도가 악하면 그의 진술은 거짓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르는 채로 비 진리를 말한다면 그의 진술 역시 거짓말이 될 것이지만 그를 거짓말쟁이로 정죄할 수는 없다. 성경은 마음의 의도를 시험하고 드러낸다(히 4:12 참조). 따라서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말씀과 성령이 혀를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진리는 영혼들을 구원한다(14:25). 그러나 거짓말은 속박과 수치로 이끌어갈 뿐이다.

 

잠언 1장 4절은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쟁이에게 귀를 기울이기를 좋아한다고 시사한다. 험담에 귀를 기울이기를 즐기는 사람은 자신이 험담에 오르내리게 될 차례가 온다. 마음은 입술뿐만 아니라 귀도 지배한다. 그러나 모든 거짓말은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19:5/19:9 /두번 반복됨). 그들은 “자신이 한 말을 먹을 것이며” 그것은 자갈과 같이 될 것이다(20:17). 하나님은 이들을 영원히 심판하실 것이다. 지옥은 “거짓말을 좋아하며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계 22:15 참조).

 

2. 나쁜 소문을 퍼뜨림 (잠 18:8)

 

모세는 레위기 19장 16절에서 이 죄를 경고한다.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이란 숨겨져야 마땅한 일을 사실이거나 거짓이거나 간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다(11:13). 10장 12절은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고 말한다(17:9/ 벧전 4:8/약 5:20 참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그들을 개인적으로(은밀히) 도우려 하며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인도하려 할 것이다(마 18:15-18 참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문 퍼뜨리는 자들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었는가! 말은 무기처럼 치명적일 수가 있다.

 

25장 18절에서 솔로몬은 속이는 말을 세 가지 다른 무기, 즉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을 부숴뜨릴 수 있는 방망이와, 자르는 검과, 멀리서도 쏠 수 있는 화살로 비유하고 있다.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과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20:13). 그는 불을 타오르게 하는 자이며(26:20) 우정을 파괴하는 자이다(17:9).

 

3. 말을 너무 많이 함 (잠 12:13 / 잠 18:6, 7)

 

이 구절들의 배후에는 어리석은 자가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며 문제에 빠져들어갈 말을 한다는 개념이 담겨 있다. 그의 입은 함정이 되고 자기가 그 함정에 빠지게 된다.

 

6장 1-5절에서 이 죄가 사람들을 어떻게 문제로 이끌어 가는지 알아보라. 10장 19절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조절을 받는 혀는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하나(13:3), 느슨한 혀는 가난과(14:23 /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어리석음의 도구이다(15:2).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17:27-28). 불행하게도 때로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조차 말이 많은데, 전도서 5장 1-7절에는 이에 대한 좋은 충고가 기록되어 있다.

 

4. 너무 빨리 말함 (잠 18:13,17)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야고보서 1장 19절은 명령한다. 우리는 때때로 듣는 것은 느리고(우리는 인내로 전체를 끝까지 듣는 일은 없다) 말하기는 빨리 한다. 그리고는 이로 말미암아 문제에 빠지게 된다. 참으로 말해야 할 것이 있기까지 “입술을 제어하는 것”이 현명하다(10:19). 경건한 사람은 대답할 말을 연구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의 입을 열어 어리석음을 쏟을 것이다(15:28).

 

보디발은 요셉의 편에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큰 죄를 범하였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하도록 허락을 받지 못했다. 사건이 정직하게 심리되기 전에 적들로 말미암아 판결이 내려졌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문제마다 면밀하게 조사 연구하고(25:2) 공정한 판단을 하기를 원하신다.

 

잠언 18장 17절은 우리가 듣는 “첫번째 주장”에 동요하지 않고 문제의 양 편을 다 살피기를 원하신다.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포함되어 있는 곳에서조차 한 가지 이야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한 문제에 대해서 같은 방식으로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다윗도 죄없는 므비보셋에 대하여 성급한 결론을 내렸었는데, 문제의 또 다른 면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삼하 16:1-4/삼하 19:24-30 참조).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시 39:1 참조).

 

5. 아첨 (잠 26:28)

 

아첨이 거짓말의 일종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을 따로 분리하여 살펴보는 이유는 이것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26장 28절은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킨다”고 경고하며 29장 5절은 아첨을 죄없는 자의 발 앞에 펼쳐져 있는 위험한 그물에 비유하고 있다. 아첨하는 입에 대하여는 시편 5편 9절에도 언급되어있다. 아첨이란 이기적인 동기를 지닌 사람이 진실성없이 하는 찬양 또는 칭찬을 말한다.

 

“아첨”(Flatter)과 “동요, 소동”(Flutter)은 동류의 단어이다. 아첨하는 사람은 자기의 희생자를 동요시키며 자기에 대해 강한 인상을 주려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사단은 하와를 유혹할 때에 이 아첨의 방법을 사용하였다(“너희가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다”). 사악한 여자들은 젊은이를 유혹할 때에 아첨을 한다(5:3/7:5/7:21). “부자들에게 친구가 많은 주된 이유”는 그에게 아첨하여 무엇인가 얻어내려는 데에 있다(14:20/19:4-6).

 

우리는 아첨하는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20:19). 유감스럽게도, 때때로 의인이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악인에게 아첨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25:26). 이러한 일은 마치 독을 넣은 샘과 같이 그 가정과 교회, 나라를 오염시킨다. 정직한 책망은 아첨보다도 그 사람에게 더 유익이 된다(28:23).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유다처럼)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라고 27장 6절은 말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정직한 찬양이 머물 곳이 있다(살전 5:12-13 참조). 정직한 찬양은 용광로와 같다(잠 27:21). 용광로는 최고의 순수한 금 또는 찌꺼기를 만들어 낸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육신적이어서 칭찬을 받지 못한다. 칭찬을 받으면 그들은 흥분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나쁜 경우는 그들이 다른 칭찬을 받게 되도록 서 있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다윗을 칭찬했을 때, 그 칭찬은 다윗을 겸손하게 만들었으나 사울에게서는 시기심과 교만을 드러내었다(삼상 13:5-9 참조).

 

6. 다툼 (잠 12:16,18)

 

의로운 분노가 있기는 하나(엡 4:26), 너무도 많은 경우 불의한 분노가 되어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논쟁을 일으키게 만든다(29:22). 성난 사람은 불에 연료를 더하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26:21). 그리고 성난 말들은 연료가 된다. 논쟁을 멈추는 최선의 방법은 부드러운 말이다(15:1-2). 이것은 “뼈를 꺾는” 가장 좋은 길이다(25:15). 사람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군대나 또는 제국을 지배하는 것과도 같다(16:32/14:17/14:29/17:1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