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다니엘2 - 단 1장(포로 생활과 타협)

JORC구원열차 2009. 7. 9. 09:58

1. 다니엘 1장 / 포로 생활과 타협

 

다니엘서의 역사에서 우리는(1-6장) 세 차례의 곤경을 보게 된다. 바벨론에 도착하였을 때 당한 네 히브리인의 시련(1장)과, 불타는 풀무(용광로/3장), 그리고 사자의 굴(6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하여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승리를 얻었고, 1장에 설명된 첫 승리는 다른 승리들의 기초가 되었다. 유대 소년들이 아직 10대였을 동안에 하나님께 충성했으므로 하나님은 그 이후의 날 동안에 그들에게 신실하셨다.

 

1. 어려운 시련들(1-7절)

 

10대의 네 히브리 소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가정에서 탈취당하여 머나먼 바벨론으로 이송된 것을 상상해 보라. 이들 모두는 왕족에 속하는 왕자들이었으므로 이러한 방식의 취급에는 익숙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부모들의 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여호와께 순종하기를 거절하였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경고한 대로 바벨론 군대들이 주전 606-586년에 쳐들어 왔으며 그 땅을 점령하였다. 가장 훌륭한 젊은이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와서 왕의 궁정에서 훈련을 시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었다.

 

3절의 이 네 젊은이들은 정예의 표본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수려하며, 사회적으로는 경험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받으며, 정신적으로는 예리하고 교육을 잘 받았으며, 영적으로는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누가복음 2장 52절에서의 그리스도와 같이 10대의 완전한 모범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시련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왕은 강권적으로 이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방식에 따를 것을 명하였다. 그는 이 훌륭한 유대인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바벨론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였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은 시련에 직면한다. 사단은 우리가 “이 세상을 따르게 되기를” 원한다(롬 12:1-2).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양보하여 그들의 능력과 그들의 기쁨과 그들의 간증을 잃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음 변화들에 주목하자.

 

1) 새로운 가정(1-2절)-

이제 이들의 주위에는 예루살렘의 종교적인 일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없었다. 또한 더 이상 그들의 경건한 부모들과 교사들의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집을 떠나면 “경계를 풀고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기회로 삼아 이를 즐긴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2) 새로운 지식(3-4절)-

옛 유대인의 지혜는 버려야만 하였다. 이제부터는 세상의 지혜, 바벨론의 지혜로 대신해야 했으며,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지혜와 언어를 배워야만 하였다. 왕은 이러한 “세뇌 활동”이 그들을 보다 훌륭한 종으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다.

 

3) 새로운 음식(5절)-

그 다음 3년 동안 왕의 식사법에 따라 먹어야 했는데, 물론 이것은 유대인의 율법에 있는 식사법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음식들이 그 땅의 우상들에게 바쳐진 것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히브리의 젊은이들이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이방의 신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4) 새로운 이름들(6-7절)-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네 소년 각각은 그들 이름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은 벨드사살(“벨이 그의 생명을 보호한다”)로 바뀌어졌다. “벨”(Bel)은 바벨론의 신의 이름이었다. 하나냐(“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사드락(“월신의 명령”), 미사엘(“하나님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은 메삭(“아구-이방신, Aku-와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으로, 그리고 아사랴(“여호와는 나의 도움”)는 아벳느고(“느고-이방신, Nego-의 종”)로 바뀌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 새로운 이름들이 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으며, 점차적으로 그들이 어울려 살며 연구하고 있는 이방 백성들을 닮아가게 되기를 희망하였다.

 

2. 대담한 시험(8-16절)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의 가정, 학문, 음식, 이름을 바꿀 수는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로 뜻을 정하였다 이들은 세상을 따를 것을 거절하였다. 물론 이들은 핑계를 댈 수도 있었으며, 오늘날의 어떤 그리스도인들과도 같이 군중을 “따라갈 수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어!” 또는 “왕에게 순종하는 것이 낫겠어!” 또는 “순종하는 체하면서 은밀히 우리의 믿음을 지키자”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로마서 12장 1-2절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여호와께 굴복시켜 하나님께서 남은 일을 하시도록 하였다.

 

다니엘은 열흘 간 시험해 볼 것을 요청하였다. 이 기간은 앞으로 3년간 훈련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긴 기간이 아니었으므로 감독은 그들의 계획에 동의하였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마 6:33/잠 22:1 참조). 그 종은 왕의 명령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젊은이들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었으므로, 다니엘의 시험 제안에 따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해결책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높이셨다. 소년들은 채소(콩류)와 물로 열흘을 보냄으로써 바벨론의 피 섞인 고기와 더럽혀진 음식을 피하였다. 시험을 마칠 때 즈음에는 네 소년이 왕의 식탁에서 먹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 건강하고 잘 생겨 보였다.

 

세상의 유혹과 압력을 이기려면 믿음과 순종(“믿고 따라감”)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의 말씀이 아직 기록되지 않은 때였으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체험으로 그 진리를 알고 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의 신하에게 얼마나 정중하고 친절하였는지 주목하자. 그는 자기의 신앙을 “펼쳐 보이지도 않았고” 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는 괴팍하게 굴지 않고도 신념을 소유할 수가 있다.

 

3. 하나님의 승리(17-21절)

 

열흘 간의 시험은 단지 한 가지의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바벨론의 대학에서의 3년 과정은 어떠하였을까? 대답은 17절에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하셨으며 이러한 지식 위에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를 첨부시키셨다. 물론 20절의 “박수와 술객”(마술사와 점성술사)은 왕을 위해 연구하며 일들을 결정하는 그 왕국의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들 역시 꿈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리석은 종교와 바벨론의 행습을 믿지 않았으나 똑같은 것을 공부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며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과 꼭 같았다. 다니엘은 그 거룩하지 못한 곳에서 그를 증인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였다. 다니엘은 그 후 75년간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증인이 되었다!

 

왕은 스스로 네 히브리 청년들이 그의 가장 훌륭한 고문들보다 열 배는 머리가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종류의 명성은 점성술사들로 하여금 시기하게 했으며, 후에 유대인들을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니엘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인기인”이 되었다면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또는 여호와를 실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았으므로 인간의 체면이나 위협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시는 일을 행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부엌이나 교실에서, 또는 왕좌에서조차도 매사에 그리스도를 첫자리에 둘 것을 마음의 진정한 목적으로 삼은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다니엘은 계속해서... 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간증이 아닐 수 없다! 사단은 다니엘에게 “당신이 이 근처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면 군중의 말을 따르는 편이 좋을 거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호와께 순종하였으며, 그 누구보다 “보좌 가까이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는 네 왕을 모시며 사역하였고 아마도 유대인들이 유배를 끝내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사실 오늘날 우리들은 다니엘의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며 도움을 얻고 있다. 그가 젊을 때에 직면한 시험들에서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렸다면 다니엘은 말년의 승리들과 축복들을 누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자”(10:11)라는 말을 들었는데 성경에서 이런 말을 들은 다른 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았던 까닭으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렸다(요일 2:15-17). 그의 정화된 삶(헌신)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그의 믿음은 그를 충성된 자가 되게 하였다. “다니엘처럼 담대하여... 담대하게 홀로 서며... 담대하게 뜻을 굳히고... 담대하게 그것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