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도행전 4장 / 최초의 박해
1. 체포 (행 4:1-4)
우리는 앞에서 이 사건을 간단하게 언급했다. 이것은 종교적인 탄압의 시작이다.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지 않았으며 베드로의 설교에 반대했다. 물론 제사장들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로 고발을 당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메시지가 그들의 국가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주님은 자기의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돌아 오셨을 것이다.
2. 재판 (행 4:5-22)
소집된 법정은 기본적으로 대제사장의 가족으로 구성되었다. 제사장 직분이 타락하여 “가족의 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 법정은 유대인의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의 공식 모임이었다. 이들 중에는 몇 주 전의 그리스도를 “재판”할 때 보조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7절에 나오는 이들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재판을 상기시킨다(마 26:57- 참조). 예수께서는 세상이 그를 취급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제자들을 대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일이 있다(요 15:17-). 마태복음 21장 23-44절에 나오는 지도자들도 똑같이 주님의 권위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질문한 일이 있음에 대해서도 주목하자.
베드로의 응답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며, 누가복음 21장 12-15절과 마태복음 10장 20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성취한 것이었다. 오늘날 신자들은 이 약속을 연구 또는 교육과 설교를 위한 준비를 등한히 해도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성령은 성실하게 시간들을 보내는 중에서도 준비가 불가능했던 때와 같은 긴급한 사태에서 우리를 지원하신다.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못박혔다가 이제는 살아계신 주님께서 그의 사도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한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무서운 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떨리는 일이었을까?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이들의 마음은 굳어 냉담해 있었기 때문이다.
11절은 중요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를 돌로,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을 건축가로 밝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편 118편 22-23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유대의 지도자들과 논란을 벌일 때에 이 구절을 사용하셨다(마 21:43). 왕국을 건설할 선택된 돌이신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거절했으므로, 그 거절당한 돌이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셨다(엡 2:20). 그리스도를 돌로 가르친 성경을 찾아보려면 스가랴서에 대한 내용을 복습하라.
베드로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절하였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음에 유의하라. 그러나 12절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을 초청하고 있다. 이 구절이 모든 시대의 모든 죄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베드로의 시대에 이 민족에게는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지도자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주님은 몇 년 안에 이루어질 무서운 파멸의 운명과 비극에서 이 민족을 구원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13-17절에서 “배심원들”은 휴정을 하고 이번 사건을 깊이 생각했다. 이들은 사도들의 담대함에 감명을 받았다. 이것은 베드로가 며칠 전에 두려워서 주님을 부인한 것과 같이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학문이 없는 범인”이란 “배우지 못하여 글을 모른다”는 뜻이다. 즉, 사도들은 랍비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성경에 대하여 그처럼 많이 알고 있었다. 지도자들은 또한 이 사람들이 동산에서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며, 주께서 죽기 전에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주간 동안 함께 있던 자들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훨씬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거지가 고침을 받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들은 그 기적을 부인할 수가 없었으므로, 따라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침묵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사도들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향한 이들의 충성은 정부로부터 보호되는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은 마침내 그들을 가게 하였다. 제자들의 담대함, 말씀의 능력, 고침받은 거지의 간증은 모두 판관들의 말문을 막기에 충분하였다.
3. 승리 (행 4:23-37)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와 같은 동료”에게로 향하는 법이다(요일 2:19).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교회는 통곡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하는 중에 기도하였다. 25-26절에 나오는 구절은 시편 2편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시는 명백한 메시야에 관한 시로서, 그리스도가 권능을 가지고 다스리기 위해 돌아오실 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신자들이 왕국에 관한 시편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1-7장에서 유대인에게 주어지는 왕국이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보다 확실한 증거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도를 매두었기 때문이다(요 15:7).
이들은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으로써 응답하셨다. 이것은 “성령의 두번째 강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능력으로 채워 주기 위해 오시는 것이지 선지자들에게 세례(침례)를 주려고 오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은 또한 이들에게 놀라운 단합을 주셨으므로, 이들은 자기의 물건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기독교 공산체제”는 성령이 임재하신 또 하나의 증거였다. 이것은 모든 국가가 성령을 받아 이타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때인 왕국 시대에 대한 본보기였다. 이 공동체는 오늘날 소련의 공산주의와는 관계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내 것은 네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소련공산주의자들은 “네 것은 내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물건의 통용이 일시적이라는 것과,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본보기는 아님에 유의하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사랑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반면, 분리된 공동체에서 살며 소유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사도행전 11장 27-30절에 보면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신자들에게 구제 헌금을 보내야 했던 일이 있다(롬 15:26/고전 16:1-3/고후 8:1-4/고후 9:2).
이스라엘이 왕국을 거절하였을 때 성령의 이 은혜로운 사역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신약 교회의 본보기는 디모데전서 5장 8절과 데살로니가후서 3장 7-13절에 있다.
“담대함”은 본 장의 핵심 사상인 듯하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어떻게 이러한 담대함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이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였고(8, 31절), 기도하였으며(29절),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였다(25-28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먹고 기도하고 성령께 순복한다면, 우리의 행실과 전도에 있어서 담대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담대함을 주시기 때문이다(히 4:16/히 10:19).
▣ 실천적인 교훈
하나님의 영에 반항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들의 진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신실하면 주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하여 영화롭게 될 것이다.
13절은 알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가 되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으며, 그리스도께로부터 놀랍게 3년을 배운 터였다. 영적인 진리들을 안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바울은 배운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께 능력으로 사용되었음을 잊지 말자. 교육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주님과의 밀접할 행보(行步)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말씀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베드로가 그랬듯이 문제가 올 때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고침을 받은 거지처럼 현실의 살아 있는 기적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는 최선의 증명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첫째로 충성을 다해야 하는 분은 주님이시다(19절). 사람들은 주님께 마음껏 봉사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생애를 포기한다. 이러한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소홀히 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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