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도행전 3장 / 기적과 설교
1. 권능 (행 3:1-11)
베드로와 요한이 여전히 성전에 있고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처음 일곱 장이 유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증거한다. 오늘날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를 이해하는 신약 그리스도인은 기도 모임을 가지러 성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절름발이는 잃어버린 죄인에 대한 생생한 실례이다.
① 절름발이로 태어남 -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난다.
② 걸을 수 없음 - 죄인은 걷지 못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③ 성전 밖 - 죄인들은 하나님의 성전 곧 교회의 밖에 있다.
④ 구걸함 - 모든 죄인은 만족을 찾아 구걸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 기적을 행한 것은 그 사람의 고뇌를 벗게 하며 그의 영혼을 구하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이미 임하셨음과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다. 이사야 35장 6절은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영접할 때 이와 같은 기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유대인들에게 약속하는 구절이다.
기적이 일어난 후에 그 사람이 취한 행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그는 성전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그의 위치가 하나님의 교회로 옮겨졌음을 말해 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들(4:13-14)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간증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어서 관원들도 할 말이 없었다.
2. 설교 (행 3:12-26)
베드로는 이것을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그 민족에게 왕국을 제시하는 기회로 사용한다. 그가 2장 14, 22절에서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연설하고 있음에 유의하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을 고발한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베드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했기 때문에(요21장) 자기의 실패를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롬 8:32-34 참조).
17절은 대단히 중요하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알지 못함”이 이러한 무서운 죄를 범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형벌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신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그들의 메시야를 받아들일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계시다.
베드로는 19-20절에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도말하실 것과(사 43:25/사 44:22-23), 그리스도를 보내어 “새롭게 하는 때”를 주실 것임을 약속한다. 이 “때”는 예레미야 23장 5절, 미가 4장 3절, 이사야 35장 1-6절, 11장 2-9절 그리고 65장 19-23절에 설명되어 있다. 베드로는 여기서 개인적인 구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이 회개하고 믿을 때에 이들에게 올 축복을 말하고 있다. 물론 민족의 구원은 개인적인 믿음에 의존한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회복의 시기”가 올 때까지 하늘(Heaven)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기 계시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돌아와 믿을 때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왕국을 의미한다. 이 시기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언급된 바 있는데, 베드로는 21절에서 이를 언급한다. 이 구절은 베드로가 교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구약에서 교회가 거론된 일은 전혀 없다. 선지자들은 오직 이스라엘의 미래 왕국에 대해서만 말했는데, 만일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베드로의 메시지를 믿고 회개했다면 그 왕국이 세워졌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방인들은 어떠한가? 베드로는 25절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녀들인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이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실 것이며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축복하실 것이었다. “땅의 모든 족속(이방인들)이 네 씨(아브라함의 씨)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창 22:18 참조).
구약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회복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축복하는 것이었는데,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 사도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그 왕국을 세우게 될 때에 이방인들이 축복받을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고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제쳐진 후에 바울이 이방인에게로 간 이유를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도 이런 사실에 원인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계시하신 “비밀 계획”, 즉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계획을 깨달을 수가 없었다(롬 11:11-12 참조). 이 계획은 구약 시대에는 숨겨졌다가 바울을 통하여 계시된 “비밀”이었다(엡 3:1-).이 민족이 스데반을 죽여 성령께 대항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했을 때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적인 계획이 정지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 날로부터 이스라엘은 제쳐졌고 교회가 무대에 등장하였다.
3. 박해(4:1-4)
이러한 초청에 대하여 이 민족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많은 수가 믿고 구원을 받았으나,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체포하였다. 사두개인들은 물론 부활을 믿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베드로의 메시지를 듣고 감정이 좋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미워하였는데, 주님께서 그처럼 많은 죄들로 바리새인들을 고발하셨기 때문이다(마 23장).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요한복음 15장 18절-16장 4절에서 약속하신 박해가 이제 일어나고 있었다.
▣ 실천적인 교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얼마나 인내하시는지 알아보자! 이들은 세례(침례)요한을 죽였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하나님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계신다(벧후 3:9 참조).
절름발이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그는 받을 만하지 못했었다. 이것은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용서하실 때 그의 죄를 잊으신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셨으므로, 베드로가 그 죄에 다시 마음을 쓰도록 만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에 성경을 사용한다. 죄인들은 명석한 논쟁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다(히 4:12).
병고침을 받은 사람은 재판 때에 “A급 증거”였다(4:14).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행실을 지닌 구원받은 죄인은 성경이 진실하며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가장 좋은 증명이다(롬 6:1-6).
신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할 때에 박해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비열한 태도나 교만한 영 때문에 받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베드로가 사랑과 겸손으로 전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원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할 때 거칠게 굴거나 비판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을 우리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이다.
몰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할당될 형벌의 정도가 다르기는 하다. 진리를 안 사람이 그 진리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는 형벌이 가중된다.
'구원의 이정표 > 핵심성경연구-신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6 - 행 5장(표적과 기사) (0) | 2009.07.16 |
---|---|
사도행전5 - 행 4장(최초의 박해) (0) | 2009.07.16 |
사도행전3 - 행 2장(오순절) (0) | 2009.07.16 |
사도행전2 - 행 1장(약속을 기다림) (0) | 2009.07.16 |
사도행전1 - 사도행전 개요/서론 (0) | 2009.07.16 |